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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 개정판 ㅣ 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평점 :
내 삶에서 대학 입학 후를 제외하고 가장 독서량이 많았던 기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었다. 남들 다 하는 공부는 안 하고 복도에 서서 책을 읽던 내가 그 시절 가장 좋아한 분야는 소설과 에세이였지만 내가 문학을 전공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습게도 생활기록부에 한 줄 추가하기 위해 학교에 명목상 존재하던 아침 독서시간을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은 전교에 몇 명 되지 않았다. 심지어 대학 입시에 즈음해서는 선생님들까지도 독서를 자제하라는 권고를 할 정도였다. 아무튼 그 1년간 나는 약 40권의 에세이를 읽었다. 그 기간 이후로도 드문드문 에세이를 읽을 기회가 있었지만, 문학을 전공하며 주로 읽은 것은 소설이었다.
그랬기에 우연히, 오랜만에 읽은 에세이 한 권이 마음을 울렸다. 민음사에서 출간된 '그르니에 선집'이다. 많은 에세이를 읽어보았지만 철학자가 쓴 에세이는 읽어본 기억이 드물다. 개인적으로 어떤 깊이가 있을까 궁금해하기도 했지만, '에세이의 범람'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현 상황에서 그르니에의 에세이는 어떤 위치를 획득하고 있을지도 궁금했다. 온갖 서점의 베스트셀러가 현대적으로 쓰인 에세이인 지금, 100년 전의 철학자 그르니에가 쓰고자 했던 글에서 우리는 어떤 묵직함을 경험할 수 있을까.
정성스럽게 제작한 종이 위에 말 없는 장인이 깎은 고결한 활자들이 조심스럽게 찍히던 사회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가?
이 책을 읽으며 주로 느꼈던 감정을 가장 잘 요약한 문장을 옮긴이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지만 또 한쪽으로 생각하면 이것이 이상한 것만은 아니다. 옮긴이야말로 이 책을 가장 가까이에서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읽은 독자일 테니 말이다.
옮긴이의 말처럼 지금을 일컫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가벼움'일 것이다. 문장에 대한 가치판단을 모두 떠나서 확실히 글과 문화의 무게가 과거보다는 가벼워졌으며 공동체보다는 개인에게 초점을 두고 있다. 또한 인쇄술의 발달로 과거에 한 자 한 자 옮기던 책을 대량으로 찍어내게 되었으니 이 또한 과거의 책보다 현대의 책이 가벼이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다. 일련의 산업화와 창작의 보편화가 가져온 지금의 도서 시장은 심리적으로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수많은 소비자의 요구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장인이 아닌 기계가 책을 빠르게 찍어내야 한다. 그러나, 글까지 가벼워질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그르니에 선집 중 첫 번째 책인 『섬』을 읽으며 나는 옮긴이의 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하나의 글에 오랜 시간을 들여 곱씹고 그 맛을 충분히 느끼던 시대에서 우리는 얼마나 멀리 떠나왔을까.
그르니에는 하나의 사물과 현상을 관찰하고도 그에 대해 오랜 시간을 생각했다. (대부분의 철학자가 그러하므로 내가 철학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가장 정직한 단어와 문체를 사용해 자신이 본 것을 표현했다. 그의 정갈한 문체에서 그것이 드러났는데 옮긴이는 문장의 옮김에 있어 그의 문체를 해치고 싶지 않았다고 책에 기록해 두었다. 그만큼 그르니에의 문체는 형용할 수 없이 간단하면서도 정확한 것을 담고 있었다.
인간들을 서로 구별지어주는 것은 사실 그들의 이른바 사상이란 것이 아니라 행동이다.
『섬』 안에는 장 그르니에가 겪은 다양한 상황에 대한 일화와 고찰이 담겨 있다. 아마 그중 현대인이 가장 사랑할 만한 이야기는 단연 '고양이'에 대한 것이 아닐까. 적어도 나에게는 「고양이 물루」가 가장 인상적으로 남았다. 한 고양이와 함께 했던 일련의 시간들에서 장 그르니에가 느낀 감정의 폭은 넓다. 무덤에서 시작한 고양이의 삶을 무덤으로 돌아갈 때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이 수미상관의 느낌을 주었다.
위의 문장은 「고양이 물루」에서 인용하였다. 철학자들의 시선은 늘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지극히 가벼운 상황이더라도 그 안에서 주어지는 메시지를 끌어내는 이들의 능력에 늘 감탄하곤 하니 말이다. 공동묘지에서 단순한 무덤들을 보는 것을 좋아하던 장 그르니에에게 고양이는 "존재"였다. 존재를 가까이에 하기 좋아했던 그에게 고양이 물루는 한눈에 봐도 안정감을 주는 동물이었다. "이 세상 삼라만상에 그네들의 향기를 깃들게 하는 저 유랑하는 고양이 종족"은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존재했으며 "죽은 이후"에도 여전히 있을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다. 고양이에 대해 이렇듯 사실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이 철학자가 애묘인임을 잘 보여준다. 아무래도 동물, 특히 고양이는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보다.
1900년대 초, 그가 살던 시기에는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발달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고양이 물루의 마지막이 안락사로 끝난다는 것이 조금은 충격적이었지만,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반려인으로서 최선을 다한 것이라는 묘사가 등장하기에 물루의 묘복을 빌며 책을 덮었다. 인간을 서로 구별지어주는 것은 사상이 아니라 행동이라고 말한 그르니에의 문장은 아마도 생각이란 것보다 표현으로 서로를 구분하는 인간의 면모를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문장을 고양이에 대한 글에 넣은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고양이를 통해 인간을 비추어보고자 시도한 그의 생각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철학자의 글쓰기는 이렇듯 흥미롭다. 무거운 것처럼 보이지만 한없이 일상적인 것에서 출발하는 장 그르니에 선집의 개정출간은 환영받을 만하다. 특별히 나보다 딱 100년 전에 태어난 작가의 생각을 읽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있는 독서 경험이 되기도 했다. 선집의 첫 번째 책인 『섬』에는 앞서 말한 고양이 물루의 이야기 외에도 아홉 개의 글이 더 실려 있다. 특별히 「이스터 섬」의 전개와 맺음도 좋았는데 '정육점'을 죽음의 공간으로 보며 이스터 섬의 "거대한 석상들"과 그 이미지를 대응시켰기 때문이다. 정육점 주인과 장 그르니에게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듣고 있자면, 장 그르니에가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마치 이미지처럼 말이다.
"도살장에서는 양들을 연달아 잡지요." 하고 그는 말하곤 했다.
"그런데 '저들은' 나를 혼자 죽게 만들어요."
기르던 고양이부터 혼자 죽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그가 삶에서 얻은 매혹적인 메시지를 감각하는 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다른 일을 망각하게 만들었다. 그의 문장은 간결하고 분명하며 도저히 한 문장이 담을 수 있는 적당량의 사유를 전달한다. 옮긴이가 이 글을 아끼고 사랑했듯, 나 역시 이 선집의 분홍빛을 손으로 한동안 매만질 수밖에 없었다. 머리로, 손으로, 가슴으로 느껴지는 100년 전의 울림이 새로이 정리되어도 존재의 묵직함을 전달한다.
그것이 그가 지금의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단 하나의 '행동'이었을 것이다.
(본 리뷰는 개인 블로그의 리뷰를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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