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날씨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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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날씨다』의 저자는 "부담스러운 생각"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 '딱 두 가지 선택지'를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육식을 하는 사람과 채식주의자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층위의 식이가 존재한다. 유제품부터 차근히 소비를 줄여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참치캔의 맛은 포기하지 못하지만 붉은 육류만큼은 소비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자신의 나름대로 동물성 재료의 소비를 줄여가는 중이며 나는 그 방향성만을 바라보고 싶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더 나은 방향과 절충안을 만들어왔다. 나는 근사하게 성공하는 한 사람보다 어영부영 무언가를 시도하는 여러 사람이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믿는다.

'나만 아니면 돼', '나 하나쯤이야'는 2000년대와 2010년대에 유행처럼 번진 말이었다. 나는 이러한 유행이 지금도 달갑지 않다. 이 말은 타인과 나의 경계를 그어버리기는 동시에 개인이 가진 위력을 격하시키기 때문이다. 남이야 어떻든 나는 상관없다는 태도는 '나 또한 당할 수 있는 어떤 일'에서마저 우리가 눈을 돌리도록 한다. 연대까지는 하지 못하더라도 여러 개인의 노력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나는 그 가능성을 『우리가 날씨다』에서 보았다. 무엇보다, 지구에 주어진 시간이 없다. 인류를 포함한 모든 종을 위협할 큰 기후변화가 일어나기까지는 20년, 10년, 아니 수 개월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아직 닥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지나치게 낙천적으로 평가하는 기질을 천부적으로 타고났다. 그런데 그게 언제까지 유용할까. 정말로 나 하나쯤이야 어떻겠느냐는 마음으로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가 날씨다. 지구의 한계를 넘어선 인간의 폭력을 멈출 수 있는 것은 '나 하나'밖에 없다. 낙관은 멸망을 앞당길 뿐이라고 말하는 이 책을 읽고 기후와 동물권, 인간의 연결고리가 아직 남아있는 어떤 파도에 몸을 실어보자. '당신도 우리와 연결되었습니까'라고 묻는 질문에 긍정의 답을 할 수 있는 이들이 지구에는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하다. 지구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어쩌면 나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위의 리뷰는 제 개인 블로그에 업로드한 리뷰를 일부 인용한 것입니다.

원문 보기 : https://blog.naver.com/sol_narae98/222135721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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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정판 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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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서 대학 입학 후를 제외하고 가장 독서량이 많았던 기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었다. 남들 다 하는 공부는 안 하고 복도에 서서 책을 읽던 내가 그 시절 가장 좋아한 분야는 소설과 에세이였지만 내가 문학을 전공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습게도 생활기록부에 한 줄 추가하기 위해 학교에 명목상 존재하던 아침 독서시간을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은 전교에 몇 명 되지 않았다. 심지어 대학 입시에 즈음해서는 선생님들까지도 독서를 자제하라는 권고를 할 정도였다. 아무튼 그 1년간 나는 약 40권의 에세이를 읽었다. 그 기간 이후로도 드문드문 에세이를 읽을 기회가 있었지만, 문학을 전공하며 주로 읽은 것은 소설이었다.

그랬기에 우연히, 오랜만에 읽은 에세이 한 권이 마음을 울렸다. 민음사에서 출간된 '그르니에 선집'이다. 많은 에세이를 읽어보았지만 철학자가 쓴 에세이는 읽어본 기억이 드물다. 개인적으로 어떤 깊이가 있을까 궁금해하기도 했지만, '에세이의 범람'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현 상황에서 그르니에의 에세이는 어떤 위치를 획득하고 있을지도 궁금했다. 온갖 서점의 베스트셀러가 현대적으로 쓰인 에세이인 지금, 100년 전의 철학자 그르니에가 쓰고자 했던 글에서 우리는 어떤 묵직함을 경험할 수 있을까.

정성스럽게 제작한 종이 위에 말 없는 장인이 깎은 고결한 활자들이 조심스럽게 찍히던 사회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가?

이 책을 읽으며 주로 느꼈던 감정을 가장 잘 요약한 문장을 옮긴이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지만 또 한쪽으로 생각하면 이것이 이상한 것만은 아니다. 옮긴이야말로 이 책을 가장 가까이에서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읽은 독자일 테니 말이다.

옮긴이의 말처럼 지금을 일컫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가벼움'일 것이다. 문장에 대한 가치판단을 모두 떠나서 확실히 글과 문화의 무게가 과거보다는 가벼워졌으며 공동체보다는 개인에게 초점을 두고 있다. 또한 인쇄술의 발달로 과거에 한 자 한 자 옮기던 책을 대량으로 찍어내게 되었으니 이 또한 과거의 책보다 현대의 책이 가벼이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다. 일련의 산업화와 창작의 보편화가 가져온 지금의 도서 시장은 심리적으로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수많은 소비자의 요구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장인이 아닌 기계가 책을 빠르게 찍어내야 한다. 그러나, 글까지 가벼워질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그르니에 선집 중 첫 번째 책인 『섬』을 읽으며 나는 옮긴이의 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하나의 글에 오랜 시간을 들여 곱씹고 그 맛을 충분히 느끼던 시대에서 우리는 얼마나 멀리 떠나왔을까.

그르니에는 하나의 사물과 현상을 관찰하고도 그에 대해 오랜 시간을 생각했다. (대부분의 철학자가 그러하므로 내가 철학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가장 정직한 단어와 문체를 사용해 자신이 본 것을 표현했다. 그의 정갈한 문체에서 그것이 드러났는데 옮긴이는 문장의 옮김에 있어 그의 문체를 해치고 싶지 않았다고 책에 기록해 두었다. 그만큼 그르니에의 문체는 형용할 수 없이 간단하면서도 정확한 것을 담고 있었다.

인간들을 서로 구별지어주는 것은 사실 그들의 이른바 사상이란 것이 아니라 행동이다.

『섬』 안에는 장 그르니에가 겪은 다양한 상황에 대한 일화와 고찰이 담겨 있다. 아마 그중 현대인이 가장 사랑할 만한 이야기는 단연 '고양이'에 대한 것이 아닐까. 적어도 나에게는 「고양이 물루」가 가장 인상적으로 남았다. 한 고양이와 함께 했던 일련의 시간들에서 장 그르니에가 느낀 감정의 폭은 넓다. 무덤에서 시작한 고양이의 삶을 무덤으로 돌아갈 때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이 수미상관의 느낌을 주었다.

위의 문장은 「고양이 물루」에서 인용하였다. 철학자들의 시선은 늘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지극히 가벼운 상황이더라도 그 안에서 주어지는 메시지를 끌어내는 이들의 능력에 늘 감탄하곤 하니 말이다. 공동묘지에서 단순한 무덤들을 보는 것을 좋아하던 장 그르니에에게 고양이는 "존재"였다. 존재를 가까이에 하기 좋아했던 그에게 고양이 물루는 한눈에 봐도 안정감을 주는 동물이었다. "이 세상 삼라만상에 그네들의 향기를 깃들게 하는 저 유랑하는 고양이 종족"은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존재했으며 "죽은 이후"에도 여전히 있을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다. 고양이에 대해 이렇듯 사실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이 철학자가 애묘인임을 잘 보여준다. 아무래도 동물, 특히 고양이는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보다.

1900년대 초, 그가 살던 시기에는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발달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고양이 물루의 마지막이 안락사로 끝난다는 것이 조금은 충격적이었지만,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반려인으로서 최선을 다한 것이라는 묘사가 등장하기에 물루의 묘복을 빌며 책을 덮었다. 인간을 서로 구별지어주는 것은 사상이 아니라 행동이라고 말한 그르니에의 문장은 아마도 생각이란 것보다 표현으로 서로를 구분하는 인간의 면모를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문장을 고양이에 대한 글에 넣은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고양이를 통해 인간을 비추어보고자 시도한 그의 생각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철학자의 글쓰기는 이렇듯 흥미롭다. 무거운 것처럼 보이지만 한없이 일상적인 것에서 출발하는 장 그르니에 선집의 개정출간은 환영받을 만하다. 특별히 나보다 딱 100년 전에 태어난 작가의 생각을 읽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있는 독서 경험이 되기도 했다. 선집의 첫 번째 책인 『섬』에는 앞서 말한 고양이 물루의 이야기 외에도 아홉 개의 글이 더 실려 있다. 특별히 「이스터 섬」의 전개와 맺음도 좋았는데 '정육점'을 죽음의 공간으로 보며 이스터 섬의 "거대한 석상들"과 그 이미지를 대응시켰기 때문이다. 정육점 주인과 장 그르니에게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듣고 있자면, 장 그르니에가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마치 이미지처럼 말이다.

"도살장에서는 양들을 연달아 잡지요." 하고 그는 말하곤 했다.

"그런데 '저들은' 나를 혼자 죽게 만들어요."

기르던 고양이부터 혼자 죽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그가 삶에서 얻은 매혹적인 메시지를 감각하는 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다른 일을 망각하게 만들었다. 그의 문장은 간결하고 분명하며 도저히 한 문장이 담을 수 있는 적당량의 사유를 전달한다. 옮긴이가 이 글을 아끼고 사랑했듯, 나 역시 이 선집의 분홍빛을 손으로 한동안 매만질 수밖에 없었다. 머리로, 손으로, 가슴으로 느껴지는 100년 전의 울림이 새로이 정리되어도 존재의 묵직함을 전달한다.

그것이 그가 지금의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단 하나의 '행동'이었을 것이다.



(본 리뷰는 개인 블로그의 리뷰를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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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 여섯 개의 세계
김초엽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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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의 생활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확진자수와 사망자수, 세계에 바이러스가 퍼지는 여러 지표를 통해 '대유행'의 현실화를 지켜보고 있는 지금,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팬데믹'이다. 대유행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단어를 통해 앞으로의 일상에 바뀌는 것이 더 많아질 것임을 짐작할 수 있으며, 이것은 저마다 다른 크기의 두려움을 느끼게도 한다. 이 바이러스의 종식 이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 시간을 경험해본 이가 없기에, 대유행 이후의 세상은 막막하고 추상적으로 보인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는 앤솔로지 한 권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듀나, 김초엽, 배명훈 등의 SF 작가가 참여한 『팬데믹』이라는 이름의 책이다. 과학소설 작가들은 대유행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바뀌리라 예상했을까. SF의 이름으로 쓰인 여섯 가지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이 어려움 이후의 세계를 조금 맛볼 수 있을지 모른다. 전혀 다르겠지만, 완전히 예측불가능하지는 않은 코로나19 이후의 시간으로 독자를 초대하는 앤솔로지 『팬데믹』을 읽어보았다.

"예언자로서 SF 작가들은 적중률이 별로다. 그래도 운 좋게 맞아떨어지는 작품들이 있어서 체면을 세워주는 것일 뿐."

듀나 작가의 말은 유머있게 이 책을 요약한다. 신과 접하지 않은 이상 미래를 완벽히 예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신과 접할 수 있는 사람은 있을까.) 그러나 개인적으로 소설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신비한 힘이 깃들어있다고 믿는 편이다. 그들 역시 하나의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창조주의 위치에 턱이라도 걸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남들보다 '창조'에 익숙한 작가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운 좋게 맞아떨어지"기도 하기에 이 책을 믿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대유행 이후 우리가 마주할, 어쩌면 지금도 가장 크게 우리를 삼키고 있는 감정은 '그리움'이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 「최후의 라이오니」를 보고 떠오른 생각이다. 김초엽 작가의 다른 단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좋아하는데 「최후의 라이오니」는 이 작품과 꽤 비슷한 색을 가지고 있다. 두 소설에 나오는 가장 중심이 되는 주제가 '그리움'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 역시 강하게 그리워하는 것이 있다. 이전의 삶이든 이후의 삶이든, 바이러스의 종식과 관계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모두에게 있다. 「최후의 라이오니」의 배경은 바이러스의 대유행이다. 그 이후 살아남은 기계들은 '라이오니'라는 사람을 기다린다. 맹목적으로 한 존재가 오기를 바라는 기계들의 모습은 조금 강압적이고 주인공을 감금시키는 형태로 드러나지만, 아마 그리움을 다루는 데에 있어 약간의 서투름이 있다는 점이 소설을 읽는 마음을 더 깊이 찌른다.

라이오니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의 데이지처럼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결함이 있기에 기계들을 다정하게 다루었다. 데이지와 라이오니의 공통점은 불완전함을 통해 완전함을 이루었다는 데에 있다. 팬데믹 속에서도 사랑과 감정은 소멸하지 않는다. 단 한 명의 사람이 있는 한, 단 하나의 그리움이 존재하는 한 결함과 결함이 만나 이루는 하나의 퍼즐은 우리를 지탱해주는 힘이 된다. 셀이 라이오니를 만나기 직전까지 종료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결말부에서 셀이 라이오니를 만났다고 생각한다.)

"전염병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지만, 절망 가운데서도 제자리를 지키는 용감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썼다."

김초엽 작가는 팬데믹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이기에 오히려 쓰기 어려운 소재였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가 발 딛고 선 지금의 현실은 가장 공감의 여지가 많으며 그렇기에 감정이나 몰입을 덜어내고 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아주 다른 세상을 만들었다. 라이오니와 셀, 그들의 결함이 맞물리는 세상을. 독자들이 이음매를 매만져줄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는 어떤 시공간을. 「최후의 라이오니」를 읽으며 팬데믹의 한가운데에 있는 우리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듀나 작가의 소설 「죽은 고래에서 온 사람들」은 고래에게 도는 전염병을 다룬다.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 도는 질병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독특했고 고래 위에서 사는 사람들을 통해 누구보다 가깝지만, 간접적으로 팬데믹을 겪고 있는 이들의 시점에서 소설을 진행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고래병은 코로나 바이러스와도, 조류 독감이나 돼지열병 바이러스와도 다른 층위에 놓여 있다. 인간이 직접 걸리지는 않지만 생존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마치 지금 내가 사는 집에 병이 걸려 무너진다면 어떨까 상상을 하며 읽었다. (물론 무생물은 바이러스의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듀나 작가의 소설은 전혀 다른 듯 보이던 소설의 배경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곳과 연결되는 지점에서 오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대유행은 재미있는 주제가 아니기에 '의미'있다고 말함이 옳을 것이다.

정소연 작가의 「미정의 상자」는 하나의 문장에서 시작한다.

"만약 정말로 힘든 상황이 온다면 시계를 되돌리고 싶을 순간이 바로 오늘일 것입니다."

이 문장은 2020년 8월 25일 있었던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의 발언에서 따온 것이다. 실제로 이 소설은 2020년 8월 25일부터 거꾸로 이야기를 서술해간다. 아마도 바이러스의 대유행을 겪고 있는 현실을 배경으로 한 것처럼 보인다. 정소연 작가의 이 소설은 『팬데믹』의 여러 소설 중 가장 현실에 가까운 배경을 갖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만약 우리가 지금부터 시간을 거꾸로 살게 된다면 가장 돌아가고 싶은 날은 언제일까. 이 바이러스가 시작되기 전일까. 아니면 그보다 훨씬 이전의 시간일까. 그도 아니면 비교적 최근의 시기일까. 시간여행을 하지 않고도 마치 시간여행을 한 것처럼, 「미정의 상자」는 팬데믹 이전의 과거를 더듬어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바로 뒤에 나오는 김이환 작가의 「그 상자」 역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팬데믹의 가장 극한 상황을 그렸는데 아무도 집에서 나오지 못한 채로 항체가 있는 사람들이 식료품과 생필품을 보급하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는 그 안에서 부모님의 유골함을 잘못 배송받은 독특한 인물을 통해 질병의 대유행 속에서 하나의 어긋남을 설정한다. 초반의 설정은 독자들에게 이 소설의 색을 선명하게 제시한다. 또한 하나의 도시에 대한 치밀한 설정은 마치 우리가 앞으로 겪을 수 있는 대유행에 대해 경고하는 메시지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가장 몰입이 잘 되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 것처럼. 그러나 지나치게 허황되지 않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을 보고 있자면 어디선가 희미한 사이렌이 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거봐요. 감금된 거 아니잖아요. 그냥 걸어 나와도 아무도 뭐라 그러는 사람 없다고요."

배명훈 작가의 「차카타파의 열망으로」는 읽기 전부터 가장 궁금했던 소설이다. 최근 배명훈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기에 이 작품 역시 절대로 나를 실망시키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역시 상상력부터 남달랐다. 앞서 나왔던 김이환 작가의 「그 상자」 가 팬데믹 중의 세계를 밀도있게 설정했다면, 「차카타파의 열망으로」 는 팬데믹 이후의 세계를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보았다. 작가가 주목한 것은 '침방울'이었다. 바이러스의 대유행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바이러스'지만 그것을 매개하는 것은 역시 침방울이다. 그리하여 전염병의 대유행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거센소리'가 점차 사라지게 되고 그것이 굳어져 거센소리는 아래아나 순경음처럼 문법 및 발음적으로 소멸하게 된다. 그 안에서 대학원생인 주인공과 뜬금없이 나타난 배우 서한지의 관계는 조금 특별하다.

'발음'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들은 역시 배우와 아나운서 등 공적인 말하기를 자주 하는 직업군일 것이다. 배우 서한지가 2020년의 사극을 찾아보는 이유 역시 부드럽게 성립된다. 지금 사극을 위해서 배우들이 순경음을 연습하지는 않지만 먼 미래에서 지금의 사극을 찍을 때에는 거센소리를 연습할 것이라는 설정이 지극히 2020년 중심적이긴 하다. 그러나 그런 상상이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적어도 독자들의 흥미를 위해서는. 작가가 예사소리로 소설을 전부 바꾸어 쓴 것과 가끔 등장하는 21세기의 거센소리가 충돌하는 것을 보는 재미 역시 이 소설을 읽는 이유가 될 것이다. 배명훈 작가의 작품은 늘 나에게 상상력에 대한 만족을 준다. 그것이 팬데믹을 그리는 방식 역시 그러했다.

이종산 작가의 「벌레폭풍」 은 앤솔로지 안에서 유일하게 '질병'의 대유행을 그리지 않은 작품이다. 앞의 작품들과 달리 벌레 떼에 대해서 주제를 잡고 들어간 소설이라는 점에서 내용의 환기가 되었고, 소설의 배경이 독특하고 기술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 있어서 읽는 데에 지루함이 없었다. 미래의 시간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차카타파의 열망으로」와 비슷한 시간대를 설정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전혀 다른 느낌의 소설이 되었다면 점에서 흥미로웠다. 작가가 대유행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같은 시간대라도 전혀 다른 이미지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앤솔로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소설을 읽는 재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역시 새삼스레 들었다. 여섯 개의 작품이 모두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지만 특별히 두 작품이 큰 대비를 이루었다. 벌레의 팬데믹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다룬 소설이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팬데믹 속에서도 '사랑'의 온기는 꺼지지 않았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기에 감정을 가장 깊이 건드리는 작품이었다.


SF 작가들이 쓴 대유행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하면서 책을 펴들었던 처음과 끝에 느껴지는 감정이 많이 달랐다. 앤솔로지 『팬데믹』은 현재를 가장 잘 반영하는 문학이다. 흔히 하나의 유행이 생기고 그것이 문학으로 반영되기까지의 시간은 길다고들 말한다. 문학은 사회를 뒤늦게 반영한다고 단정지어버리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팬데믹』은 지금 여기의 문학이다. 어쩌면 미래를 이끌 기반이 될 수도 있는 작품들이 여섯 편이나 실려 있다. 서사에 한계는 없으며, 스토리에 제한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작가들의 목소리가, 대유행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질병의 팬데믹을 몸으로 통과하고 있는 우리에게 손을 내미는 미래에게 조금은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나중의 시간들에게 보내는 전파들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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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의 궤적
리베카 로언호스 지음, 황소연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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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황금가지 출판사는 판타지와 SF등 장르소설에 있어서는 믿고 보는 곳이다. 그랬기에 신간 『천둥의 궤적』의 출간 소식을 접하자마자 꼭 받아보고 싶었다. 평소 환상적인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인데 '전설 속의 존재들이 되살아난'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내 취향에 맞을 것 같았다. 감사하게도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읽어볼 기회를 얻었고 며칠 뒤 도착한 책은 표지부터 흥미로웠다. 천둥이 치는 배경에 화살 하나가 관통하는 붉은 그림이 소설의 분위기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한 부족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했고, 화살의 모양이 원시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지, 작가가 판타지 세계를 창조한 것인지 궁금해지는 제목과 표지였다.

작가 리베카 로언호스는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의 어머니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백인 가정에 입양되어 성장되며 '아웃사이더'의 정체성을 느꼈다고 한다. 작가의 성장 배경이 반드시 소설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천둥의 궤적』은 나바호 인들의 등장처럼 여러 부분에서 작가의 성장 배경을 다양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 작품은 '미국'이라고 말하면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장소성과 많이 동떨어져 있다. 한 부족의 전설을 듣는 것처럼 진행되는 초반에는 깊이 집중할 수 있는 환상적 요소가 있었다. '괴물 사냥꾼'이라고 불리는 매기 호스키가 커다란 이물을 무찌르는 것으로 소설이 시작하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를 잔인하게 공격하는 괴물과 그것을 무찌르는 매기 호스키의 모습을 속도감 있게 진행시키는 것을 보며 작가가 '판타지'라는 장르를 선택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괴물에게 감염된 아이를 어쩔 수 없이 스스로의 손으로 죽여야 했던 주인공 매기의 모습이 정말 압권이었다. 처음의 장면들에서는 작가로서 리베카 로언호스의 장점이 이야기의 추진력이라는 것을 느꼈다. 『천둥의 궤적』이라는 이름을 가진 만큼 이 소설에는 번뜩이는 상상력의 장면이 많이 나온다. 전투와 결투 등 싸움 역시 종종 등장하는데 등장인물과 괴물들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웠고 역동적인 움직임이 작품을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비틀비틀 아이의 몸에서 물러난다. 내가 불과 몇 분 만에 벌여 놓은 학살의 흔적들이 바닥에 여기저기 널려 있다. 나는 그 흔적들을 내 안으로 끌어들인다. 냄새, 피, 목 없는 시체들. 그것들을 내 기억에게 맡긴다. 이건 악몽의 재료들이다. -32쪽

『천둥의 궤적』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현실과 전설적인 이물의 조합이다. '클랜 파워'를 가진 괴물 사냥꾼 매기가 파헤치는 것은 '어째서 그들이 등장했는가' 이다. 괴물의 출연은 갑작스러웠으며 매기는 사라진 스승 네이즈가니를 찾으며 여행을 떠난다. 작품이 끝날 때까지 독자들을 궁금하게 하는 것은 '괴물'이 등장한 이유이며, 이것이 밝혀지는 결말부는 소설에 반전을 가져다주었다. 그 여정에서 만나는 노인 카흐와 그의 손자인 치유술사 카이, 쌍둥이 클라이브는 매기의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감염을 통해 다른 괴물을 만드는 쎄나예이 등을 무찌르며 매기의 일행이 닿으려는 결말에는 어떤 진실이 존재할까.

일행이 모험을 떠나는 중간에 등장하는 코요테와 모지 같은 인물들은 매기의 스승인 네이즈가니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는 동시에 적대자로 기능하기도 한다. 그들의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천둥의 궤적』에 나오는 인물들의 특징 중 하나는 '동물'의 속성을 지닌 이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코요테'처럼 직접적으로 동물의 이름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모지'는 고양이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고 묘사된다. 인간은 이들 사이에서 오히려 특이한 존재처럼 보이며 나바호인 식의 표현으로 '다섯손가락'이라고 불린다.

나는 네이즈가니와 비슷하지 않다. 천만에. 그는 전설적인 괴물 사냥꾼이고, 두 '신성한 사람들'의 아들, 불사신이다. 나는 인간, 다섯손가락 여자고. -17쪽

소설은 나바호인들이 사는 곳을 배경으로 벌어진다. 읽으며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은 나에게 미국이나 나바호인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었다는 점이다. 나바호 자치국이나 미국의 전설과 신화 등에 관심과 지식이 있다면 『천둥의 궤적』을 읽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각주로 주어지는 정보는 소설을 이해하는 데에 충분했지만,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나바호 인과 그들의 이야기가 사실을 배경으로 했는지 가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는데 작가 소개를 통해 리베카 로언호스가 나바호 자치국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미국의 작가가 쓴 판타지 소설을 읽을 때 원주민들의 전설과 신화에 대해서 다룬 것을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에도 흥미가 생겼다.

『천둥의 궤적』의 뒷표지에 쓰인 '서사시'라는 말이 이 소설에 잘 어울렸다. 괴물 사냥꾼인 매기 호스키의 여정을 그려내는 이야기의 넓이가 굉장하기 때문이다. 굵직한 사건들과 괴물, 신화의 맥락으로 이어지는 줄기가 분명히 판타지의 '스토리텔링'이지만 서사처럼 느껴졌다. 판타지의 경계를 나도 모르게 정해두고 편견을 가진 것이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로 새로운 느낌의 소설이었다. '서사시'는 자칫 옛 이야기로 오해받을 수 있지만 『천둥의 궤적』은 그렇지 않다. 세련된 현대의 배경과 신비스러운 괴물, 이물의 등장으로 재미가 오히려 살아나기 때문이다. 어떤 원인을 통해 되살아난 괴물을 쫓는 여정에서 긴박함과 때로 다정한 인물들을 통해 신화의 맛을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이다.

"내가 미리 얘기를 안 했는데, 결승전은 피를 내면 끝나는 게 아니라 죽어야 끝나." -341쪽

어떤 전투에 대한 내용일까. 여기서 매기 호스키와 스승인 네이즈가니의 비밀이 밝혀진다. 혼자 읽고 있다는 것이 아까울 만큼 박력 있는 전투 장면들이 소설에 여럿 나오는데 이 부분이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다. 싸움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데에 주목하며 읽으면 더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예상대로 황금가지의 판타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다양한 나라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늘 이 출판사의 책들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서평단을 통해 리베카 로언호스라는 이름의 좋은 작가를 알게 되어 기뻤다. 『천둥의 궤적』은 길고 드라마틱한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또 꺼내서 보고 싶어질 것 같다.

천둥만큼 번쩍이는 상상과 큰 세계에 몸과 머리를 담그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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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셜리 클럽 오늘의 젊은 작가 29
박서련 지음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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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흔히 '오젊작'이라고 줄여 부르는,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는 나의 최애 책들이다. 젊은 작가들의 이야기는 늘 가장 생생한 현재를 반영하며, 이입이 쉽고 때로 유쾌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신간 <더 셜리 클럽> 역시 전혀 망설이지 않고 출간되자마자 읽어 보았다. (본 후기는 민음사로부터 감사하게도 책을 받아 작성하게 되었다.) 책에 대한 경험이 얕은 탓에 박서련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하지만 요새 온라인 문학 플랫폼 '던전'은 꽤나 작가와 독자들 사이에서 유명하기 때문에 던전의 운영자라는 작가 소개가 소설에 대한 흥미를 끌어올렸다. (운영자가 작가님이셨군요!)



내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가 비단 작품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젊작은 표지를 잘 뽑는다. 이번 <더 셜리 클럽> 역시 표지가 부드러운 분홍의 느낌을 잘 살려 알록달록한 느낌을 준다. SNS를 통해 구병모 작가님께서 소설을 다 읽고 나면 표지의 하트 가운데에 크게 붙은 반창고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걸 보았는데, 과연 완독 후 표지의 느낌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 (표지 천재 오젊작)


어쨌거나 이제 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더 셜리 클럽>은 제목부터 무슨 이야기인지 호기심이 생긴다. 그리고 독자들은 소설을 몇 장 읽자마자 제목의 표면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은 호주의 '셜리 클럽'에 대하여 말하는 작품이다. (실제로 있는 모임인지는 잘 모르겠다.) 주인공 설희는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난다. 영어 이름으로 줄곧 '셜리'를 사용해온 설희는 '멜버른 커뮤니티 페스티벌'의 퍼레이드에서 '셜리 클럽'의 존재를 알게 된다. 세 명의 할머니가 퍼레이드 줄과 "애매한 간격을 두고", 이렇다 할 퍼포먼스도 없이 깃발('더 셜리 클럽 빅토리아 지부'라고 쓰인)을 들고 걸어오는 것이 전부였지만, 설희는 거기에서 어떤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셜리 클럽이라니. 설희는 그들과 자신이 '셜리'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 있다는 감정을 느낀 것 같다.

나는 셜리 H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셜리라는 이름은 유행이 한참 지나 버려서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붙이지 않는 것이었다. 한국 이름으로 치면 '자'나 '숙'으로 끝나는 이름보다도 더 오래된 느낌. -36쪽

'셜리'라는 이름은 호주에서 꽤 오래 전에 여성의 이름으로 유행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이름을 가진 이들이 모두 노인이 되었고, 젊은이들 중 이름이 '셜리'인 사람을 찾아보기는 힘들어졌다. 이런 이유로 할머니들이 가득한 '더 셜리 클럽'에 대뜸 동양의 젊은이가 찾아와 '내 이름도 셜리에요!'라고 그들에게 말하는 것은 언뜻 보면 우스꽝스러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면, 이것은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유행이 한참 지난 이름을 가진 노인들과 서양에서 지내며 차별을 견뎌야 하는 동양인 젊은이는 '주변'이라는 키워드로 묶인다. 이 책에는 설희가 호주에서 겪는 여러 차별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기도 하다.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지만 그 '중심'에 들어가기에는 힘들어진 사람들이 <더 셜리 클럽>의 인물들이다. '셜리 클럽'은 이 주변부의 사람들이 넓고 끈끈한 '연대'를 하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 요컨데, 이 모임의 다정한 할머니들은 젊은 한국 여성이 '셜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받아주지 않을 정도로 속좁은 이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설희는 그렇게 '리틀 셜리'라는 이름으로 모임의 일원이 된다. 이국에서도 유행이 지난 이름을 '세련된' 이름으로 바꾸지도 않고 살아가던 그녀가 결국은 자신과 같은 이름의 커다란 묶음을 발견한 것이다.

"누굴 찾고 있어요?"

거의 완벽한 보라색 목소리였다. -28쪽

<더 셜리 클럽>에서 설희의 이야기는 두 갈래로 이어진다. 하나는 '셜리 클럽'과 설희의 관계, 그리고 다른 하나는 'S'와 설희의 관계에 대한 경험이다.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호주에서의 시시콜콜하지만 적당히 굵은 줄기가 있는 에피소드들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어난 일, 치즈 공장에서 일어난 일, S의 친구들을 만난 일 등. 설희는 목소리가 "거의 완벽한 보라색"인 S를 사랑한다. 사실 S와 설희 사이에 이렇다 할 큰 사건이나 변곡점, 달달함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은은한 감정의 진폭이 소설의 끝까지 마음에 닿는다. 어떤 목소리는 '색'으로 들린다는 셜리에게 S의 목소리는 '보라색'이다.

소설의 중반부를 지나 후반부로 달려가는데, S가 갑자기 사라진다. 아무런 연락도, 메모도 없이. 설희는 사랑했던 S의 실종에 무작정 멜버른을 떠나 울루루에 가기로 한다. 나도 그녀를 따라 나서는 기분을 느꼈다. 셜리 클럽이 이렇게 먼 길을 갑자기 떠나는 설희, 아니 셜리를 그냥 떠나보낼 리 없다.

셜리 클럽은 빅토리아 지부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소수지만 지금 리틀 셜리가 가려는 노던준주에도 셜리 클럽 회원들이 있어요. 지금부터 다른 도시의 셜리들이 리틀 셜리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을 알아보려고 해요. 이 대륙 안에 있는 이상 셜리 곁엔 항상 클럽이 있다는 걸 기억해요. -152~153쪽

셜리 클럽은 '소수지만' 어디에든 있다. "셜리 곁엔 항상 클럽이 있다". 이 얼마나 따뜻한 말인지 모르겠다. 한 사람을 위해 온 집단이 도울 방법을 찾는다니. 설희가 받았을 위로를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그러나 '셜리'라는 이름의 할머니들은 그것을 해낸다. 덕분에 설희는 무사히(일지는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S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에피소드를 읽었을 때, 독자들은 비로소 표지의 그림에 담긴 의미를 깨닫는다. 설희의 마음에 담긴 크고 작은 사건들, 호주와 한국과 S, 그리고 수많은 일들 사이에 있는 빽빽한 공간들. 이 모든 것을 꾹꾹 채워줄 수 있는 것,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셜리 클럽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 역시 <더 셜리 클럽>이다.


<더 셜리 클럽>으로 보았을 때, 박서련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은 '문장'이다. 아무리 잔잔한 이야기라도 작가의 손을 거치면 밀도있는 감정을 전달한다. 설희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박서련 작가의 문체는 분홍이 아닐까. 이 책의 표지처럼 약간 간지럽지만, 끈끈하고, 따뜻하며 풍성하다. 셜리 클럽처럼.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답해야 할지 한참을 생각했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그냥 답을 해야 할 것만 같아서. 읽지 않아도 표지에 그려진, 하트에 붙은 반창고에 눈물을 흘릴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더 셜리 클럽>은 위로의 이야기다. 크리스마스에 들려오는 캐롤처럼. 추운 세상에 따스한 감정을 입히는 소설이다.

그러니 우리는 읽어야만 한다. 설희가 셜리가 되고, 셜리 클럽에서 사랑을 받은 이 이야기를.

그 어디에 있었어도 당신 목소리는 보라색이었을 거고 내 이름은 셜리였을 테니까. -213쪽



(본 리뷰는 개인블로그에 업로드한 내용을 옮겨온 것입니다)

원문 보기 : https://blog.naver.com/sol_narae98/222082889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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