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의 궤적
리베카 로언호스 지음, 황소연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황금가지 출판사는 판타지와 SF등 장르소설에 있어서는 믿고 보는 곳이다. 그랬기에 신간 『천둥의 궤적』의 출간 소식을 접하자마자 꼭 받아보고 싶었다. 평소 환상적인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인데 '전설 속의 존재들이 되살아난'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내 취향에 맞을 것 같았다. 감사하게도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읽어볼 기회를 얻었고 며칠 뒤 도착한 책은 표지부터 흥미로웠다. 천둥이 치는 배경에 화살 하나가 관통하는 붉은 그림이 소설의 분위기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한 부족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했고, 화살의 모양이 원시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지, 작가가 판타지 세계를 창조한 것인지 궁금해지는 제목과 표지였다.

작가 리베카 로언호스는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의 어머니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백인 가정에 입양되어 성장되며 '아웃사이더'의 정체성을 느꼈다고 한다. 작가의 성장 배경이 반드시 소설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천둥의 궤적』은 나바호 인들의 등장처럼 여러 부분에서 작가의 성장 배경을 다양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 작품은 '미국'이라고 말하면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장소성과 많이 동떨어져 있다. 한 부족의 전설을 듣는 것처럼 진행되는 초반에는 깊이 집중할 수 있는 환상적 요소가 있었다. '괴물 사냥꾼'이라고 불리는 매기 호스키가 커다란 이물을 무찌르는 것으로 소설이 시작하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를 잔인하게 공격하는 괴물과 그것을 무찌르는 매기 호스키의 모습을 속도감 있게 진행시키는 것을 보며 작가가 '판타지'라는 장르를 선택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괴물에게 감염된 아이를 어쩔 수 없이 스스로의 손으로 죽여야 했던 주인공 매기의 모습이 정말 압권이었다. 처음의 장면들에서는 작가로서 리베카 로언호스의 장점이 이야기의 추진력이라는 것을 느꼈다. 『천둥의 궤적』이라는 이름을 가진 만큼 이 소설에는 번뜩이는 상상력의 장면이 많이 나온다. 전투와 결투 등 싸움 역시 종종 등장하는데 등장인물과 괴물들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웠고 역동적인 움직임이 작품을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비틀비틀 아이의 몸에서 물러난다. 내가 불과 몇 분 만에 벌여 놓은 학살의 흔적들이 바닥에 여기저기 널려 있다. 나는 그 흔적들을 내 안으로 끌어들인다. 냄새, 피, 목 없는 시체들. 그것들을 내 기억에게 맡긴다. 이건 악몽의 재료들이다. -32쪽

『천둥의 궤적』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현실과 전설적인 이물의 조합이다. '클랜 파워'를 가진 괴물 사냥꾼 매기가 파헤치는 것은 '어째서 그들이 등장했는가' 이다. 괴물의 출연은 갑작스러웠으며 매기는 사라진 스승 네이즈가니를 찾으며 여행을 떠난다. 작품이 끝날 때까지 독자들을 궁금하게 하는 것은 '괴물'이 등장한 이유이며, 이것이 밝혀지는 결말부는 소설에 반전을 가져다주었다. 그 여정에서 만나는 노인 카흐와 그의 손자인 치유술사 카이, 쌍둥이 클라이브는 매기의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감염을 통해 다른 괴물을 만드는 쎄나예이 등을 무찌르며 매기의 일행이 닿으려는 결말에는 어떤 진실이 존재할까.

일행이 모험을 떠나는 중간에 등장하는 코요테와 모지 같은 인물들은 매기의 스승인 네이즈가니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는 동시에 적대자로 기능하기도 한다. 그들의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천둥의 궤적』에 나오는 인물들의 특징 중 하나는 '동물'의 속성을 지닌 이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코요테'처럼 직접적으로 동물의 이름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모지'는 고양이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고 묘사된다. 인간은 이들 사이에서 오히려 특이한 존재처럼 보이며 나바호인 식의 표현으로 '다섯손가락'이라고 불린다.

나는 네이즈가니와 비슷하지 않다. 천만에. 그는 전설적인 괴물 사냥꾼이고, 두 '신성한 사람들'의 아들, 불사신이다. 나는 인간, 다섯손가락 여자고. -17쪽

소설은 나바호인들이 사는 곳을 배경으로 벌어진다. 읽으며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은 나에게 미국이나 나바호인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었다는 점이다. 나바호 자치국이나 미국의 전설과 신화 등에 관심과 지식이 있다면 『천둥의 궤적』을 읽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각주로 주어지는 정보는 소설을 이해하는 데에 충분했지만,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나바호 인과 그들의 이야기가 사실을 배경으로 했는지 가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는데 작가 소개를 통해 리베카 로언호스가 나바호 자치국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미국의 작가가 쓴 판타지 소설을 읽을 때 원주민들의 전설과 신화에 대해서 다룬 것을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에도 흥미가 생겼다.

『천둥의 궤적』의 뒷표지에 쓰인 '서사시'라는 말이 이 소설에 잘 어울렸다. 괴물 사냥꾼인 매기 호스키의 여정을 그려내는 이야기의 넓이가 굉장하기 때문이다. 굵직한 사건들과 괴물, 신화의 맥락으로 이어지는 줄기가 분명히 판타지의 '스토리텔링'이지만 서사처럼 느껴졌다. 판타지의 경계를 나도 모르게 정해두고 편견을 가진 것이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로 새로운 느낌의 소설이었다. '서사시'는 자칫 옛 이야기로 오해받을 수 있지만 『천둥의 궤적』은 그렇지 않다. 세련된 현대의 배경과 신비스러운 괴물, 이물의 등장으로 재미가 오히려 살아나기 때문이다. 어떤 원인을 통해 되살아난 괴물을 쫓는 여정에서 긴박함과 때로 다정한 인물들을 통해 신화의 맛을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이다.

"내가 미리 얘기를 안 했는데, 결승전은 피를 내면 끝나는 게 아니라 죽어야 끝나." -341쪽

어떤 전투에 대한 내용일까. 여기서 매기 호스키와 스승인 네이즈가니의 비밀이 밝혀진다. 혼자 읽고 있다는 것이 아까울 만큼 박력 있는 전투 장면들이 소설에 여럿 나오는데 이 부분이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다. 싸움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데에 주목하며 읽으면 더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예상대로 황금가지의 판타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다양한 나라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늘 이 출판사의 책들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서평단을 통해 리베카 로언호스라는 이름의 좋은 작가를 알게 되어 기뻤다. 『천둥의 궤적』은 길고 드라마틱한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또 꺼내서 보고 싶어질 것 같다.

천둥만큼 번쩍이는 상상과 큰 세계에 몸과 머리를 담그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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