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셜리 클럽 오늘의 젊은 작가 29
박서련 지음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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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흔히 '오젊작'이라고 줄여 부르는,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는 나의 최애 책들이다. 젊은 작가들의 이야기는 늘 가장 생생한 현재를 반영하며, 이입이 쉽고 때로 유쾌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신간 <더 셜리 클럽> 역시 전혀 망설이지 않고 출간되자마자 읽어 보았다. (본 후기는 민음사로부터 감사하게도 책을 받아 작성하게 되었다.) 책에 대한 경험이 얕은 탓에 박서련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하지만 요새 온라인 문학 플랫폼 '던전'은 꽤나 작가와 독자들 사이에서 유명하기 때문에 던전의 운영자라는 작가 소개가 소설에 대한 흥미를 끌어올렸다. (운영자가 작가님이셨군요!)



내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가 비단 작품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젊작은 표지를 잘 뽑는다. 이번 <더 셜리 클럽> 역시 표지가 부드러운 분홍의 느낌을 잘 살려 알록달록한 느낌을 준다. SNS를 통해 구병모 작가님께서 소설을 다 읽고 나면 표지의 하트 가운데에 크게 붙은 반창고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걸 보았는데, 과연 완독 후 표지의 느낌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 (표지 천재 오젊작)


어쨌거나 이제 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더 셜리 클럽>은 제목부터 무슨 이야기인지 호기심이 생긴다. 그리고 독자들은 소설을 몇 장 읽자마자 제목의 표면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은 호주의 '셜리 클럽'에 대하여 말하는 작품이다. (실제로 있는 모임인지는 잘 모르겠다.) 주인공 설희는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난다. 영어 이름으로 줄곧 '셜리'를 사용해온 설희는 '멜버른 커뮤니티 페스티벌'의 퍼레이드에서 '셜리 클럽'의 존재를 알게 된다. 세 명의 할머니가 퍼레이드 줄과 "애매한 간격을 두고", 이렇다 할 퍼포먼스도 없이 깃발('더 셜리 클럽 빅토리아 지부'라고 쓰인)을 들고 걸어오는 것이 전부였지만, 설희는 거기에서 어떤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셜리 클럽이라니. 설희는 그들과 자신이 '셜리'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 있다는 감정을 느낀 것 같다.

나는 셜리 H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셜리라는 이름은 유행이 한참 지나 버려서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붙이지 않는 것이었다. 한국 이름으로 치면 '자'나 '숙'으로 끝나는 이름보다도 더 오래된 느낌. -36쪽

'셜리'라는 이름은 호주에서 꽤 오래 전에 여성의 이름으로 유행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이름을 가진 이들이 모두 노인이 되었고, 젊은이들 중 이름이 '셜리'인 사람을 찾아보기는 힘들어졌다. 이런 이유로 할머니들이 가득한 '더 셜리 클럽'에 대뜸 동양의 젊은이가 찾아와 '내 이름도 셜리에요!'라고 그들에게 말하는 것은 언뜻 보면 우스꽝스러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면, 이것은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유행이 한참 지난 이름을 가진 노인들과 서양에서 지내며 차별을 견뎌야 하는 동양인 젊은이는 '주변'이라는 키워드로 묶인다. 이 책에는 설희가 호주에서 겪는 여러 차별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기도 하다.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지만 그 '중심'에 들어가기에는 힘들어진 사람들이 <더 셜리 클럽>의 인물들이다. '셜리 클럽'은 이 주변부의 사람들이 넓고 끈끈한 '연대'를 하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 요컨데, 이 모임의 다정한 할머니들은 젊은 한국 여성이 '셜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받아주지 않을 정도로 속좁은 이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설희는 그렇게 '리틀 셜리'라는 이름으로 모임의 일원이 된다. 이국에서도 유행이 지난 이름을 '세련된' 이름으로 바꾸지도 않고 살아가던 그녀가 결국은 자신과 같은 이름의 커다란 묶음을 발견한 것이다.

"누굴 찾고 있어요?"

거의 완벽한 보라색 목소리였다. -28쪽

<더 셜리 클럽>에서 설희의 이야기는 두 갈래로 이어진다. 하나는 '셜리 클럽'과 설희의 관계, 그리고 다른 하나는 'S'와 설희의 관계에 대한 경험이다.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호주에서의 시시콜콜하지만 적당히 굵은 줄기가 있는 에피소드들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어난 일, 치즈 공장에서 일어난 일, S의 친구들을 만난 일 등. 설희는 목소리가 "거의 완벽한 보라색"인 S를 사랑한다. 사실 S와 설희 사이에 이렇다 할 큰 사건이나 변곡점, 달달함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은은한 감정의 진폭이 소설의 끝까지 마음에 닿는다. 어떤 목소리는 '색'으로 들린다는 셜리에게 S의 목소리는 '보라색'이다.

소설의 중반부를 지나 후반부로 달려가는데, S가 갑자기 사라진다. 아무런 연락도, 메모도 없이. 설희는 사랑했던 S의 실종에 무작정 멜버른을 떠나 울루루에 가기로 한다. 나도 그녀를 따라 나서는 기분을 느꼈다. 셜리 클럽이 이렇게 먼 길을 갑자기 떠나는 설희, 아니 셜리를 그냥 떠나보낼 리 없다.

셜리 클럽은 빅토리아 지부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소수지만 지금 리틀 셜리가 가려는 노던준주에도 셜리 클럽 회원들이 있어요. 지금부터 다른 도시의 셜리들이 리틀 셜리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을 알아보려고 해요. 이 대륙 안에 있는 이상 셜리 곁엔 항상 클럽이 있다는 걸 기억해요. -152~153쪽

셜리 클럽은 '소수지만' 어디에든 있다. "셜리 곁엔 항상 클럽이 있다". 이 얼마나 따뜻한 말인지 모르겠다. 한 사람을 위해 온 집단이 도울 방법을 찾는다니. 설희가 받았을 위로를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그러나 '셜리'라는 이름의 할머니들은 그것을 해낸다. 덕분에 설희는 무사히(일지는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S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에피소드를 읽었을 때, 독자들은 비로소 표지의 그림에 담긴 의미를 깨닫는다. 설희의 마음에 담긴 크고 작은 사건들, 호주와 한국과 S, 그리고 수많은 일들 사이에 있는 빽빽한 공간들. 이 모든 것을 꾹꾹 채워줄 수 있는 것,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셜리 클럽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 역시 <더 셜리 클럽>이다.


<더 셜리 클럽>으로 보았을 때, 박서련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은 '문장'이다. 아무리 잔잔한 이야기라도 작가의 손을 거치면 밀도있는 감정을 전달한다. 설희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박서련 작가의 문체는 분홍이 아닐까. 이 책의 표지처럼 약간 간지럽지만, 끈끈하고, 따뜻하며 풍성하다. 셜리 클럽처럼.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답해야 할지 한참을 생각했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그냥 답을 해야 할 것만 같아서. 읽지 않아도 표지에 그려진, 하트에 붙은 반창고에 눈물을 흘릴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더 셜리 클럽>은 위로의 이야기다. 크리스마스에 들려오는 캐롤처럼. 추운 세상에 따스한 감정을 입히는 소설이다.

그러니 우리는 읽어야만 한다. 설희가 셜리가 되고, 셜리 클럽에서 사랑을 받은 이 이야기를.

그 어디에 있었어도 당신 목소리는 보라색이었을 거고 내 이름은 셜리였을 테니까. -213쪽



(본 리뷰는 개인블로그에 업로드한 내용을 옮겨온 것입니다)

원문 보기 : https://blog.naver.com/sol_narae98/222082889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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