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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 뒤 맑음 - 사진과 이야기로 보는 타이완 동성 결혼 법제화의 여정
무지개평등권빅플랫폼 지음, 강영희 옮김,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네트워크 감수 / 사계절 / 2022년 9월
평점 :
내가 처음 동성 간의 연애를 목격한 건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여자 고등학교에 다니다 보니 여학생들끼리 사귀는 것을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내 친구가 자기 여자친구의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는데, 파란만장한 A의 연애담을 들으며 누구랑 사귀든 연애는 역시 힘들구나,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동성애가 이성애와 다를 것이 없다고 여겼다. 아니, 사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데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나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 태어났다. 부모님은 각 집안의 첫 세대 신자로 자손 3대가 교회를 다니면 그 아래로 천 대까지 복을 받는다는 신실함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태어나면서부터 교회를 다니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동성애를 비롯한 퀴어 혐오 문화에 젖어 살았다. 그럼에도 내가 처음 목격한 동성애는 이상하거나 불경스럽거나 죄스러운 행동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그때 동성애자 친구에게 ‘너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라는 말을 들었다.
2019년 5월 17일. 타이완은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 법제화를 이루었다. ‘아시아 최초’라니. 아직 모든 사랑의 평등을 보장하는 나라가 지금껏 아시아에 단 한 국가도 없었다는 게 의아하다. 그럼에도 무지개보다 다양한 퀴어, 그 중에서도 동성애자의 사랑이 법적으로 승인된 것은 한없이 기쁜 일이다. 타이완에서의 무지갯빛 승리는 평등한 사랑에 한 걸음 다가가는 사건임에 틀림없었다. 그들은 어떻게 이런 결실을 이루어냈을까? 사계절출판사의 신간 『비 온 뒤 맑음』은 법제화 이전, 약 3년간 타이완에서 있었던 무지갯빛 물결을 시간과 테마에 따라 정리했다.
"지금 표가 떨어져 나간다고 물러선다고요? 먼 훗날 언젠가 당신의 손자 손녀가 그때 찬성표를 던졌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할 겁니까? 이것은 시대적 흐름이에요. 우리는 마땅히 올바른 쪽에 서야 합니다." -쑤전창(타이완 행정원장)의 말 중
이 책이 말하고 있듯 타이완에서의 법제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도 퀴어를 낙담케 하는 사건이 종종 일어났다. 우리나라의 많은 퀴어가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리고 때로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것처럼 타이완에서도 성소수자의 사망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일이 있었다. 그 중 몇몇 사건이 이 책에서 자세히 설명되는데 그런 일은 단연코 동일한 환경에 놓인 퀴어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일련의 부정적이고도 억압적인 사회상을 보며 용기를 낸 사람들이 있었고, 그 물결이 한데 모여 ‘무지개평등권빅플랫폼’을 구성했다. 타이완에서 이 조직의 규모는 꽤 큰 것 같다. 물리적으로 와닿지는 않지만 ‘빅Big’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이 그렇다. 그 안에도 꿈틀대는 마음의 연대가 동성혼 법제화를 위해 끊임없이 힘을 냈다.
“법으로 사람들의 편견을 바꾸기는 쉽지 않지만, 법은 편견에 봉사해서는 안 됩니다.” (48쪽)
과정이 완전히 순탄한 승리는 없다. 타이완의 법제화도 국민투표에서 퀴어 지지자들이 완전히 패배한 어둠의 시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시 서로의 내면을 챙겼고, 그 과정에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법은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해야 한다. 물론 동성혼이 ‘시대적 흐름’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대에 상관없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저 지금, 매우 늦은 시기에 우리가 그것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타이완에서 이어진 3년간의 어둠, 그러나 마침내 그 끝에 핀 무지개를 어떻게 책 한 권으로 담을 수 있었을까. 그만큼 불가해한 밀도로 똘똘 뭉쳐 있던 그들의 마음에 존경심을 표한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사회의 진보를 향해, 끝내 평등을 향해 나아간 그들이 있었기에 타이완은 동성혼 법제화라는 큰 걸음을 디딜 수 있었다. 언젠가 우리나라가, 아시아가, 더 나아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사랑의 모습도 포용하는 시대가 도래했으면 좋겠다.
지금 비가 올지라도 푸른 하늘에 아로새겨진 무지개를 보는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 본 리뷰는 개인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리뷰 전문을 옮긴 것입니다
원문 보기 : https://www.instagram.com/p/CjzPqkzpH_F/?igshid=YmMyMTA2M2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