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 난 물고기 모어
모지민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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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랙’ 또는 ‘드랙 아티스트’의 존재를 가장 먼저 접한 건 2020년 국내 초연한 뮤지컬 ‘제이미’를 통해서였다. 게이이자 드랙 아티스트인 실제 인물 ‘제이미 캠벨’을 주인공으로 창작된 이 뮤지컬은 그의 정체성을 유쾌하고 강한 메시지를 담아 풀어낸 공연이었다. 제이미가 학교 축제에 드레스를 입고 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드랙 아티스트가 되기까지의 드라마틱함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본래 하이힐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조권 배우의 퍼포먼스를 보며 드랙이 발산하는 힘을 처음으로 느낀 공연이었다.

이후 드랙 아티스트에 대한 관심은 늘 마음 한켠에 있었다. ‘Holy Freak’이라는 드랙 퍼포머 인터뷰집이 눈에 들어왔을 때도, 뮤비나 광고에서 드랙퀸이 등장할 때에도 언제나 내 눈을 이끄는 건 그들의 에너지였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들만 내뿜을 수 있는 기운이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내 안의 비굴함과 억눌림을 해소하는 기분이었다. 예술이 사람의 마음을 발산하는 통로라고는 하지만, 이런 종류의 막대한 힘이 인간 안에 잠재되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니 우연히 SNS에서 마주친 드랙 아티스트 모지민의 에세이 출간 소식이 나를 사로잡지 않았을 리 없다. “당신이 절대 알 수 없었던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소개글, 『털 난 물고기 모어』라는 제목, 황인찬, 이랑, CL의 추천사만 읽고도 이 책을 보아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얼마 전에 지난 생일 선물로 받지 못한 것이 야속했지만 천운으로(!) 서평단에 선정되었고 책이 도착하자마자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드랙 아티스트의 에너지는 심상치 않다. ‘평범’에 가둘 수 없는 힘이 그들에게는 있다. 그중 모어의 문장에서 나오는 힘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글보다 끼스럽고 아름답고 역겹고 무엇보다 생생하다”라는 아티스트 이랑의 말을 빌려야 하겠다. 모지민의 글에는 감히 모방할 수 없는 단단함과 그만의 색이 이미 자리잡아 있다. 단순히 무엇이라고 명명할 수 없는 모종의 심상찮음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감지된다. 두려울 정도로 몰입되는 내용과 문장 사이의 에너지에 몸을 내맡길 수밖에 없었다. 

드래그가 파괴하는 정형성과 이분법처럼 이 책은 매여있지 않은 글의 가장 자유로운 형태를 보여준다. 에세이, 시, 희곡, 일대기, 고백 중 어느 것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모지민만의 글이 온 페이지에서 헤엄치고 있다. 그의 전위적임을 똑 닮은 글자들이 모여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각 페이지에서 독자를 향해 몸을 흔든다. 그 몸에는 털이 있으며, 움직임은 우아하다.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심지가 물고기의 뼈대를 구성한다.

“무수히 많은 단어들이 내 세치 혀에서 / 줄넘기를 하고 있다 / 그런 언어도 있는 법”. 털 난 물고기가 하는 줄넘기는 그야말로 요상하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떤 비정형이 책에서 마음껏 꿈틀거린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지 놀라다가, 한편으로는 그의 삶을 보고 이해한다. 이 짧은 분량으로 요약될 수 없는 경험과 분투와 체념과 다시 일어남이 모든 문장에서 중첩되고 누적된다. 종이에 가지런히 인쇄된 글씨들이 이렇게 역동적인 한 인생을 가만히 담고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니 나는 모어를 계속 사랑해야겠다. SNS를 팔로우하고 나서 언팔하지 않고 관계를 지속해야겠다. 응원이라는 두 글자 안에 전부 담을 수 없는 감정을 품고 니씨염뚜 니씨염뚜 주문처럼 그가 알려준 욕을 상스럽게 하면서 무엇이든 이겨내야겠다. 무기력하고 단조롭기 그지없던 내 맨땅에 하염없는 끼스러움으로 찾아준 그처럼. 털 난 물고기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들려올 때마다 내가 그를 알고 있다는 기쁨에 더 웃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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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개인 SNS(인스타그램)의 리뷰 전문을 발췌한 것입니다.
원문 링크 : https://www.instagram.com/p/Cc7d_2ILol4/?utm_source=ig_web_copy_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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