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 -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는 양극화의 기묘한 작동 방식
바르트 브란트스마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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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에 너무나도 익숙한 단어가 양극화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용어의 기본 개념과 그것의 생성 원리, 작동 방식,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다고 할 정도로 무지하다. 갈등과 갈라 치기에 휘둘리지 말자고 하면서도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드는지, 그 책임자가 누구인지조차 가늠하지 못하여 그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오늘 소개할 바르트 브란트스마의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는 책은 얇지만 우리 사회의 문제로 떠오른 것의 실체를 파헤쳐놓았기에 소개해 본다.



바르트 브란트스마 작가 소개

지역과 국가 문제에 대하여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는 네덜란드의 컨설턴트이자 실용 철학자로서 경·검, 경영진, 언론인, 정치인, NGO 활동가 및 다양한 전문가들을 가르치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일하면서 그는 우리 사회에 항상 존재하는 역학을 탐구하기로 결정했다. 분쟁 지역에서 양극화 전략을 테스트했으며 유럽 각지에서 연구를 계속하며 양극화 사고 프레임워크를 개발했다. 기업을 설립하고 책을 집필하여 전문가들에게 양극화의 역동성과 그러한 역동성 내에서 전문가의 역할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고자 했다.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고 미디어 시대에 증가하는 양극화에 대한 깊이와 품질에 답변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책 속으로

1장에서는 양극화의 세 가지 기본 법칙부터 논한다. 그 내용은 사고 구조, 연료, 직감의 역학이다. 쉽게 말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하여 상대의 정체성을 만들어 구분하는 사고 구조에서 시작된다. 나쁜 점은 오늘의 주제이며 좋은 점은 사고의 구성하는 개념과 프레임을 살펴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즉 현재 사회의 문제에 무력하게 손을 놓고 있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료 공급이 필요하며 이때의 연료는 의도의 좋고 나쁨을 논하지 않고 이용되는 특징이 있다.

개인적으로 기본 원칙 중 세 번째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바로 이런 현상은 이성의 영역이 아닌 직감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양극화가 증가함에 따라 합리성은 감소한다는 것. 심지어 명확하게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나와서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지해야 하는 순간에도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음모론을 들고나온다고 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말하는 자신은 스스로의 발언에 대하여 무조건 논리적인 진실만 말한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양극화 작동 방식에는 다섯 가지 역할이 있는데 순서대로 주동자, 동조자, 방관자, 중재자, 희생자가 있다. 이 부분이 생각보다 중요한데 바로 자신이 정치나 미디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기본 개념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주동자는 사고에 연료를 공급하는 임무를 띠고 있으며 동조자는 주동자의 견해를 완벽하게 찬성하거나 반대하지는 않지만 결정적일 때는 지지자의 진영에 들어간다. 방관자는 말 그대로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중간자이며 중재자는 양쪽의 대화를 주선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위치이다.

희생자는 정확히 중간 지대에서 찾으며 중간 지대의 허용 범위에 따라 양극화 압력을 측정할 수 있다. 웃긴 것은 이 희생자의 역할에 가장 알맞은 후보군이 중재자라는 것이다. 주동자는 자신의 편을 만들 때 동조자가 아닌 중간에 위치한 방관자나 중재자를 타깃으로 잡는다. 어느 쪽이든 이미 내 편을 더 내 편으로 만드는 노력보다는 세력을 넓히는 쪽을 택하기 때문이다. 3부에 가면 이런 현상을 바로잡는 방식이 나와 있다. 흔히 말하는 서로를 알기 위한 대화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제시한 후 제시하는 방법이기에 꽤 몰입도가 높았다.

나의 생각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이다. 좋은 의미로 이름을 불러주면 나에게 의미가 생긴다는 말이지만 바르트 브란트스마는 상대에게 정체성이라는 이름을 붙여줌과 동시에 양극화는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서로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 내에서 같은 것에 대하여 욕구를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과정을 전문적이지 않은 용어와 많은 예시로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설명하였다.

주동자, 동조자, 방관자 이야기를 우리의 현실로 잠시 접목하면 TV에서 방영하는 정치인의 토론은 결코 상대에게 자신을 이해시키거나 상대를 이해할 목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조자이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 편에 서지 않은 국민과 중간 지대에 있는 방관자들을 좀 더 확실하게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하여 하는 행위. 눈은 상대를 바라보고 있지만 말은 TV를 보고 있는 국민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구조를 파악하면서 미디어를 마주한다면 조금은 덜 휩쓸리지 않을까 한다.

바르트 브란트스마의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는 기존의 관련 도서들과는 결이 조금 다른 도서이다. 현재와 같은 사회에서 이런 식으로 사고방식을 정립하고 판단력을 키워 그 파도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 아니라 이런 현상이 생기게 된 원인을 인간 본성에서 찾으며 철저히 구조적으로 분석하려고 노력한 책이다. 그래서 독자가 자신의 편협함으로 인하여 사회의 파도에 맹목적으로 휩쓸렸다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책 속에 빠질 수 있다.

점점 더 심각해져 가는 양극화 현상을 우리는 누구나 느끼고 있다. 남과 여,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노인과 청년, 부자와 빈자, 고학력과 저학력, 도시와 농촌 등등 이름을 붙이기만 하면 일단 시작되는 갈라치기 현상. 이에 대하여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개탄하기는 하지만 명확한 대책이 없어 위기감만 느끼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조금이라도 스스로의 자존감과 자신감 그리고 이성적인 판단력을 유지하면서 이런 위기를 잘 넘겨보고 싶은 분이라면 누구나 몰입하여 읽을 수 있는 책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 견해로 작성했습니다.

#우리는왜극단에서는가 #바르트브란트스마 #양극화분석 #한스미디어 #안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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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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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죽으려고 하는 자와 이를 막으려고 하는 자가 아닌 자신이 살면서 대조되는 모든 것을 넣고 생각하다가 보면 천재적인 작가의 생각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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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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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를 처음 만났던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처절했던 디스토피아 소설인 더 로드를 통해서였다. 서점가에 블록버스터 영화를 개봉하는 것처럼 광고를 하던 책이었기에 속는 셈 치고 한번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가 몇 년을 책의 그림자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후 이 작가의 책은 심력 소모가 심하다는 것을 깨닫고 멀리했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어 미리 밝히지만 그만큼 잘 쓰인 작품이라는 뜻이다. 그러던 나였지만 죽을 듯이 더운 더위를 넘기고 나니 그의 그림자가 그리워져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코맥 매카시의 선셋 리미티드를 손에 잡았다.


코맥 매카시 작가 소개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1933년 미국 태어난 매카시는 1951년 테네시 대학교에 입학해 인문학을 공부했다. 1965년 첫 소설 『과수원 지기』로 문단에 데뷔한 이래 1985년 작 『핏빛 자오선』으로 명성을 얻었다. 2007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로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을 출간하며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출간작으로는 『모두 다 예쁜 말들』, 『국경을 넘어』, 『평원의 도시들』, 『바깥의 어둠』 『신의 아들』 『서트리』 등이 있다.


줄거리

내 이유의 핵심은 점차

환상을 믿는 척하지 않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뿐이에요.

현실의 본질을

점차 깨닫게 된 거지요.

세계의 본질을.

p.116



이 작품은 꽤 단조로운 희곡 형식으로 전개된다. 최소한의 움직임과 오로지 두 남자의 대화로만. 한 남자는 백인이며 교수이다. 문명에 대하여 더 알아가면서 어느 순간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고 선셋 리미티드(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달리는 급행열차)에 몸을 던진다. 다른 남자는 흑인이며 살인으로 교도소를 다녀온 목사이다. 그는 자신의 생일날 달리는 열차에 몸을 던지는 백인을 구해 자신의 집 탁자에 앉혀 놓았다. 서로 자신의 의견이 맞는다며 토론의 장을 벌인다.


모든 걸 포기해버렸어.

그런데 문득 그 말을 해버렸어.

이렇게 말한 거야.

날 좀 살려주세요.

그러니까 살려주시더라구.

p.103

백인은 흑인의 도움에 감사함을 느끼지만 여전히 그 장소를 벗어나 자신의 고집대로 길을 가겠다는 입장이며 흑인은 그를 어떻게든 길게 그를 잡아 두고 신의 존재를 피력하면서 백인이 열차에 몸을 던지는 일을 막아보려고 한다. 교수가 생을 마감하려는 이유를 이해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아닌 독자도 있을 정도로 모호하다. 목사는 교수가 더는 스스로 선셋 리미티드에 몸을 던지지 않으려는 의지를 심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의 생각

완전히 바닥까지 떨어져서

어떻게든 크게 한 걸음을

떼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을

하느님이 눈여겨보는 것

같다는 거야.

p.51

이 작품에서 선셋 리미티드는 열차라는 구체적인 사물을 의미한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책 속에서는 현실에서는 절망에 빠져 그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넓게 본다면 인류의 운명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sunset은 해 질 녘이라는 뜻이지만 마지막(끝나가는)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한정된 마지막. 이것이 느껴지는 순간 그의 작품 더 로드의 이미지가 이 도서와 겹치기 시작했다.


만약 사람들이 슬픔 때문에

자살을 하는 거라면,

그렇게 죽은 사람들을

해가 지기 전에 죄다 땅속에

묻는 것만 종일 해야 할 거야.


p.125

사실 현실적인 삶만 보자면 교수의 삶이 빈민가 목사의 삶보다 훨씬 나아 보인다. 게다가 교수가 느끼는 절망은 한 개인으로서 사적인 의미의 감정이 아니기에 한편으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절망적인 삶에서 희망과 생명을 보고 이를 전하는 흑인과 죽음을 말하는 백인. 시니컬한 마음을 가지고 읽으면 백인의 사고에 빠지게 되고, 긍정의 마음을 가지고 읽으면 흑인의 설득에 빠지면서 그의 안타까움을 심장 끝에서 끓어오듯이 느낄 수 있다.


중요한 건, 교수 선생.

인생에 괴로움이 없다면

자신이 진짜로 행복하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는 거 아니겠소?

뭐에 비교할 건데?

이 책을 읽다가 보면 자동으로 니체의 고통에 관한 부분과 연결이 된다. 인간이 고통을 싫어하고 저주하는 이유는 고통 자체가 아니라 고통의 무의미 때문이라고. 그러니 고통으로부터 멀어지지 말고 용기를 내어 그 심연을 들여다보며 고통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사실 이 책을 읽는 도중에는 흑인의 주장으로는 어느 누구도 설득시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백인의 의견에 매료되었다. 아마 홀로 삶의 피곤함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교수의 주장에 빠져들 것이다.

빛이 선생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다만 선생이 어둠밖에

보지 못할 뿐이다.

그 어둠은 바로 선생이다.

선생이 그 어둠을 만드는 것이다.

p.114

그러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면서 오히려 단면만 바라보며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스스로의 생명을 끊으려는 교수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신을 내세우며 타인을 설득하려는 목사가 편협한 것일까? 아니면 발생하지도 않은 미래를 자신의 생각으로 재단하고 생명을 끝내려는 고집을 꺾지 않는 교수가 편협한 것일까? 마지막 흑인 목사가 하나님을 향해 울면서 하는 기도를 보면서 삶과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건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글쎄. 사람들은 가끔 어떤 걸

손에 쥐고 나서야 그걸 자기가

쭉 원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하던데.

p.84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삶과 죽음을 말하는 코맥 매카시의 선셋 리미티드는 형식이 보여주는 것처럼 연극 무대로 올랐으며 2011년도에 토미 리 존슨과 사무엘 잭슨 주연으로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삶과 죽음의 대비를 백과 흑으로 나눈다면 흑인이 삶인 백쪽에 있고 백인이 그 반대쪽에 있는 부분도 인상 깊었다.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죽으려고 하는 자와 이를 막으려고 하는 자가 아닌 자신이 살면서 대조되는 모든 것을 넣고 생각하다가 보면 천재적인 작가의 생각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선셋리미티드 #코맥매카시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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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구원
에단 호크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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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펼치기 전 에단 호크라고 하면 작가라기보다는 어릴 때 보았던 죽은 시인의 사회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였다. 배우가 쓴 작품. 이 단서 때문에 이 책에 대한 허들이 내겐 높았다. 자신의 유명세만 믿고 쓴 글에 온갖 미디어의 찬사만 붙은 껍데기만 있는 활자 무더기가 아닌가 하는 의심.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잘생기고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가 아닌 책상 앞에서 백스페이스를 미친 듯이 누르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작가의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몸은 세포 분열로 인하여 커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던 한 어른의 성장통을 연극 무대와 연계하여 쓴 작품이 에단 호크의 완전한 구원이다. 이 책은 그의 자전적 소설로 알려져 있다. 작중 인물은 너무나 어린 시절 겪었던 부모의 이혼에서부터 자라지 못한 마음과 너무 어린 시절에 시작한 배우 생활로 마음의 성장이 멈춰버린 모습, 유명인으로서 겪는 사생활에 대한 관심과 그에 따른 비난 등은 그의 현실적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연극 속에 빠지다 보면 불륜, 애정 없는 부모, 거짓말, 아버지로서의 실패작이라는 말로만 정의되는 존재가 아닌 것 같다. 나를 정의하는 다른 말이 있을 것 같다.

-p.47


주인공 윌리엄 하딩은 서른두 살의 유명한 배우이며 록스타 가수와 결혼하여 딸과 아들을 두고 6년째 결혼생활 중이지만 그다지 순탄치 않다. 누구나 인생의 어느 순간에 느끼듯이 하딩도 자신의 존재와 그 이유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에 대한 충동으로 아프리카로 촬영을 간 때 그곳의 젊은 여자와 하룻밤 관계를 맺게 되고 이것이 각종 일간지에 대서특필이 되면서 완벽하게 이들의 결혼은 끝이 난다. 그러나 그에게는 헨리 4세의 무대가 기다리고 있다.


"계획을 다 포기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반짝거리고 섹시하고 차갑고 거만한 공주님과 결혼한 부분만 포기하면 돼요. 당신은 항상 똑똑했잖아요."

-p.108


이혼이 하고 싶지 않았던 하딩은 모든 정신을 무대에 쏟아붓지만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세상 모든 사람이 그의 문제를 알고 있지만 본인만 모르는 상태랄까? 하지만 세상은 한 인간이 가장 바닥에 떨어졌을 때 한줄기 빛을 내려준다고 했던가. 연극 무대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그에게 어떤 방식으로든지 힘을 주려고 한다. 무뚝뚝한 이는 그 나름대로, 상냥한 이는 상냥한 대로,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는 그만의 방식으로. 그러나 하딩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게 그거야.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야. 그런 건 중요하지 않지. 우리가 원하는 건 특정한 일을 위한 자유다."

-p.300



여전히 아내가 자신을 용서하고 다시 가정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혼자만의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게다가 그는 영화배우였기에 연극 무대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 스스로만 돋보이면 되는 주인공에서 모두가 함께 합을 맞춰야 하는 상황. 그리고 주인공은 또 따로 있다. 6주의 연습 후 드디어 공연 시연을 하게 되었는데 일간지에서는 주인공과 다른 사람들에게는 찬사를 보내지만 하딩의 연기에는 혹평만이 가득하다. 점점 일에서도 무너지는 느낌을 받고 있는 상황. 과연 그는 어떻게 이를 극복하고 성장할 것인가?



"만약 우리가 그 공허함을 받아들이고 그 안을 들여다본다면, 한없이 깊은 그 어두운 우물 안에 평화가 있다는 걸 알게 될지도 몰라."

-p.75


어른의 성장통을 다룬 에단 호크의 완전한 구원 속 하딩을 보면  누구나 자신이 가장 힘들게 망가졌던 시기를 떠올리게 된다. 그것이 지나간 사람도 있을 테지만 현재 진행형이라면 꽤 빠져들게 된다. 이유는 그 과정이 드라마처럼 극적이라든가 아름답지 않고 냉정한 현실 속에서 절절하게 아파하는 모습으로 인하여 특별한 사람의 고통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변인의 위로와 방법이 그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그들만의 방식으로 전달되는 것도 상당히 현실적이다.



'사느냐 죽느냐'는 자살할까 말까 자문하는 말이 아닐세. 깨어 있는 정신으로 자신의 인생에 집중하겠는가를 묻는 거지."

-p.313



본인이 하고 싶고, 원하는 것은 가져야만 했던 철부지 남자는 절망도 하고, 화도 내고, 스스로 망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떤 사건으로 인하여 결국은 깨닫는다. 자신이 얕잡아 본 대역도, 명성만으로 주인공을 꿰찼다고 여긴 원수 같은 배우도, 관객의 박수는 한 개인의 배우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리고 지금 자신의 곁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작정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면서 빛줄기 하나 없이 어두워 언제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한껏 움츠리고 있던 어린아이가 드디어 고개를 들고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만약'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선택이라는 개념과 맞닥뜨렸음을 압니다."

-p.323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과정이 헨리 4세 연습하는 것에서부터 마지막 무대까지 그 안의 연기와 함께 한다는 점이다. 셰익스피어의 대사와 함께 하는 소설이기에 자칫 가벼울 수 있는 내용이지만 상당히 고급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심지어 작품의 챕터 또한 막과 장 그리고 인터미션으로 구성되어 있어 책을 다 읽고 나면 연극 속의 또 다른 연극을 본 느낌이다. 이 연극은 단순한 서사가 아니라 하딩의 심리 상태와 꽤 잘 어우러져 독자로 하여금 어느 것이 연극이고 어느 것이 현실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다.



"바람은 그냥 불어올 뿐입니다. 그게 바람이에요. 비도 그냥 내릴 뿐입니다. 비니까."

-p.160



연극이 시작되면서부터 하딩의 대기실에는 매번 그가 어려움을 견딜 수 있도록 유명인의 어록이 쓰인 쪽지가 붙어 있다. 마지막 공연까지. 중간에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힘을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찾으려고 노력을 하지만 공연이 끝난 직후까지 찾지 못한다. 마지막에 그 존재가 밝혀지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어서 놀라웠다. 마지막에 그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그것을 타면 안 될 것 같다며 강아지와 함께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모습에서 그가 문제를 대하는 마음가짐의 변화를 독자는 느낄 수 있다.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 견해로 작성했습니다.


#완전한구원 #에단호크 #다산북스 #자전적소설 #어른의성장통 #영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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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뷰 - 제1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우신영 지음 / 다산책방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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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하지만 고백하자면 작년에 문경민 작가의 지켜야 할 세계로 처음 혼불문학상 수상작을 접했다. 창작물에 대한 의심보다는 상 받은 작품은 어렵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의도적으로 피한 결과였다. 이때 접한 책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다. 사회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서사적 구조와 끝까지 독자를 끌고 가는 필력까지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올해도 제1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으로 우신영 작가의 시티-뷰가 뽑혔다는 소식에 이렇게 소개한다.



<작가 소개>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명지대학교와 인천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올해 8월에 동화 『언제나 다정 죽집』으로 제30회 황금 도깨비상을, 9월에 장편소설 『시티 뷰』로 제14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했다. 또한 10월에 <맨홀에 빠진 앨리스>를 출간하여 단숨에 독자들에게 성큼성큼 다가온 작가이다. 국어교육과 출신답게 작품에서 다루는 단어에서 일반적이지 않음이 돋보이는 저자이다.



<등장인물>


​이석진 : 수미의 남편이며 내시경을 담당하는 내과 의사이다. 가난하고 평탄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으며 집을 벗어나기 위하여 의사가 되었다.

염수미 : 로펌을 운영하는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으며 어릴 때 발레를 하다가 포기하고 호주로 건너가 필라테스를 시작하여 지금은 석진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둔 엄마이자 필라테스 원장.

주니 : 수미의 어린 연인으로 여자친구와 동거 중이며 헬스 트레이너.

백유화 : 조선족 여자이며 매번 주기적으로 면도 칼을 삼켜서 주기적으로 석진에게 오는 여자.


사실 이 책은 줄거리라고 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 소설의 배경은 잠들지 않는, 늙지 않는, 자신만을 반사하는 송도 신도시에서 사업 수완도 좋고 화려한 수미와 키도 작고 딱 공부만 잘한 석진이가 십여 년째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부 사이에 문제없이 잘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에게도 영락없이 안나카레리라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 어쩌면 이곳에 나오는 그 누구보다 문제가 많달까.



이런 문제를 나름의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수미는 거의 스무 살 정도 차이가 나는 연인이 있는 남자를 꾀어 텅 빈 마음을 채우면서 가정을 지켜나간다. 석진도 어린 시절의 문제, 많이 기운 결혼 등으로 인한 문제 등으로 인하여 항상 영혼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페이 닥터로 지내는 것에 대한 자격지심까지 있다. 그가 일하는 곳에 주기적으로 면도날을 삼키고 오는 여자가 있는데 마지막 출근날까지 그녀가 온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내와 상의하여 처가의 도움으로 자신과 아내의 이름을 섞어 병원을 하나 차린다. 숫기라고는 전혀 없는 석진인데 심지어 옆 건물에 사업 수완 좋은 사람이 똑같이 내과를 차린다. 읽다가 보면 옆 병원을 차린 사람에 대하여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이런 그를 구제해 준 사람은 수미였다. 그가 결혼하기 전에 했던 봉사활동을 다시 시작하고 SNS 홍보를 하라고. 나머지는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고.



의료자원봉사를 나간 곳에서 석진은 뜻밖의 사람을 만난다. 바로 매번 유화이다. 언제나 반듯한 몸, 남에게 책잡히지 않을 우아한 행동 등에 대한 강요를 당하던 석진은 유화를 만나면서 살아있다는 감정을 받게 된다. 그런 유화는 생각보다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다. 나중에 석진이가 알았을 때 몸이 떨릴 정도의 비밀. 사람의 삶에서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했던가. 이들에게도 서로가 속이고 있던 것들의 베일이 하나씩 벗겨진다. 과연 이들이 숨기고 있던 비밀은 무엇이고 이들의 앞날은 어떻게 흘러갈까?



"신데렐라는 원래 힘들었어. 인마. 어차피 힘들 거면 재투성이 옷 입고 힘든 것보다 골프웨어 입고 힘든 게 낫잖아?"

-p.174


제1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우신영 작가의 시티-뷰는 사실 줄거리가 큰 의미가 없다. 단순하게 줄거리만 보자면 여느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에 중점을 두면, 읽고 나서도 상당한 여운이 남는다. 그 이유는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모두 심각한 결핍을 가지고 있으며 조금씩 모두 부도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멍이 숭숭 뚫린 인물들이 어떻게든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보고자 최선을 다하여 자신도, 타인도 속여가면서 사는 모습을 보며 독자는 스스로를 투영하게 될 수밖에 없달까?


"이 건물 말이에요. 꼭 노아의 방주처럼 생겼어요. ……(중략) 선택받은 자들만 탈 수 있다고 했죠."

-p.201



이런 이들과 정면으로 대결구도에 놓인 사람은 유화의 남자친구인 해룡이이다. 작중 등장인물 중 가장 도덕적이며 비밀도 없고 모든 이들의 입에서 착하고 따뜻하다는 평을 받는 그. 그는 한국으로 넘어와 한껏 움츠러든 유화가 잘 적응하게 도우면서 그녀와 가정을 꾸리기 위하여 빌딩 창문 청소하는 일을 하게 된다. 모두가 주변을 더럽히며 하늘을 위하여 올라가려고 할 때 그만은 빌딩 꼭대기에 밧줄을 묶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도시를 깨끗하게 만든다.



"유혹의 결과는 귀찮았지만 유혹할 수 있는 자신의 역량을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흥미진진했다."

-p.189


개인적으로 결혼 후 외도하는 것에는 어떠한 참작 사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처음에 수미의 외도를 보면서 상당히 거북한 마음으로 읽었는데 막상 끝을 향해 달려가다가 보니 가정을 향한 가해자로 보였던 그녀 또한 상당한 피해자였기에 묘하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강박, 욕망, 향유, 절망, 공허, 결핍, 상처, 추락, 자본, 계급까지 우리의 현실에서 매일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는 문제들의 총체적 합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삶은 마지막까지 진행형이었다.


제1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우신영 작가의 시티-뷰는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작가들이 심사한 후 뽑은 작품이다. 은희경, 전성태, 이기호, 편혜영, 백가흠, 최진영, 박준 등. 마지막에 심사평이 실려 있는데 한 작품을 읽고 각자가 느낀 포인트가 다르다는 것을 보며 이 책에 더 마음이 갔다. 하나의 도서를 보고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만 하게 만드는 책보다는 각자의 시각에서 재해석할 수 있는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팍팍한 현실을 살면서 나에게만 특별하게 더 불행이 찾아온다고 느끼는 분이 읽는다면 꽤 힘을 얻을 수 있다.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 견해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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