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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구원
에단 호크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9월
평점 :

책장을 펼치기 전 에단 호크라고 하면 작가라기보다는 어릴 때 보았던 죽은 시인의 사회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였다. 배우가 쓴 작품. 이 단서 때문에 이 책에 대한 허들이 내겐 높았다. 자신의 유명세만 믿고 쓴 글에 온갖 미디어의 찬사만 붙은 껍데기만 있는 활자 무더기가 아닌가 하는 의심.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잘생기고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가 아닌 책상 앞에서 백스페이스를 미친 듯이 누르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작가의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몸은 세포 분열로 인하여 커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던 한 어른의 성장통을 연극 무대와 연계하여 쓴 작품이 에단 호크의 완전한 구원이다. 이 책은 그의 자전적 소설로 알려져 있다. 작중 인물은 너무나 어린 시절 겪었던 부모의 이혼에서부터 자라지 못한 마음과 너무 어린 시절에 시작한 배우 생활로 마음의 성장이 멈춰버린 모습, 유명인으로서 겪는 사생활에 대한 관심과 그에 따른 비난 등은 그의 현실적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연극 속에 빠지다 보면 불륜, 애정 없는 부모, 거짓말, 아버지로서의 실패작이라는 말로만 정의되는 존재가 아닌 것 같다. 나를 정의하는 다른 말이 있을 것 같다.
-p.47
주인공 윌리엄 하딩은 서른두 살의 유명한 배우이며 록스타 가수와 결혼하여 딸과 아들을 두고 6년째 결혼생활 중이지만 그다지 순탄치 않다. 누구나 인생의 어느 순간에 느끼듯이 하딩도 자신의 존재와 그 이유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에 대한 충동으로 아프리카로 촬영을 간 때 그곳의 젊은 여자와 하룻밤 관계를 맺게 되고 이것이 각종 일간지에 대서특필이 되면서 완벽하게 이들의 결혼은 끝이 난다. 그러나 그에게는 헨리 4세의 무대가 기다리고 있다.
"계획을 다 포기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반짝거리고 섹시하고 차갑고 거만한 공주님과 결혼한 부분만 포기하면 돼요. 당신은 항상 똑똑했잖아요."
-p.108
이혼이 하고 싶지 않았던 하딩은 모든 정신을 무대에 쏟아붓지만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세상 모든 사람이 그의 문제를 알고 있지만 본인만 모르는 상태랄까? 하지만 세상은 한 인간이 가장 바닥에 떨어졌을 때 한줄기 빛을 내려준다고 했던가. 연극 무대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그에게 어떤 방식으로든지 힘을 주려고 한다. 무뚝뚝한 이는 그 나름대로, 상냥한 이는 상냥한 대로,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는 그만의 방식으로. 그러나 하딩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게 그거야.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야. 그런 건 중요하지 않지. 우리가 원하는 건 특정한 일을 위한 자유다."
-p.300
여전히 아내가 자신을 용서하고 다시 가정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혼자만의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게다가 그는 영화배우였기에 연극 무대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 스스로만 돋보이면 되는 주인공에서 모두가 함께 합을 맞춰야 하는 상황. 그리고 주인공은 또 따로 있다. 6주의 연습 후 드디어 공연 시연을 하게 되었는데 일간지에서는 주인공과 다른 사람들에게는 찬사를 보내지만 하딩의 연기에는 혹평만이 가득하다. 점점 일에서도 무너지는 느낌을 받고 있는 상황. 과연 그는 어떻게 이를 극복하고 성장할 것인가?
"만약 우리가 그 공허함을 받아들이고 그 안을 들여다본다면, 한없이 깊은 그 어두운 우물 안에 평화가 있다는 걸 알게 될지도 몰라."
-p.75
어른의 성장통을 다룬 에단 호크의 완전한 구원 속 하딩을 보면 누구나 자신이 가장 힘들게 망가졌던 시기를 떠올리게 된다. 그것이 지나간 사람도 있을 테지만 현재 진행형이라면 꽤 빠져들게 된다. 이유는 그 과정이 드라마처럼 극적이라든가 아름답지 않고 냉정한 현실 속에서 절절하게 아파하는 모습으로 인하여 특별한 사람의 고통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변인의 위로와 방법이 그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그들만의 방식으로 전달되는 것도 상당히 현실적이다.
'사느냐 죽느냐'는 자살할까 말까 자문하는 말이 아닐세. 깨어 있는 정신으로 자신의 인생에 집중하겠는가를 묻는 거지."
-p.313
본인이 하고 싶고, 원하는 것은 가져야만 했던 철부지 남자는 절망도 하고, 화도 내고, 스스로 망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떤 사건으로 인하여 결국은 깨닫는다. 자신이 얕잡아 본 대역도, 명성만으로 주인공을 꿰찼다고 여긴 원수 같은 배우도, 관객의 박수는 한 개인의 배우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리고 지금 자신의 곁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작정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면서 빛줄기 하나 없이 어두워 언제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한껏 움츠리고 있던 어린아이가 드디어 고개를 들고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만약'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선택이라는 개념과 맞닥뜨렸음을 압니다."
-p.323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과정이 헨리 4세 연습하는 것에서부터 마지막 무대까지 그 안의 연기와 함께 한다는 점이다. 셰익스피어의 대사와 함께 하는 소설이기에 자칫 가벼울 수 있는 내용이지만 상당히 고급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심지어 작품의 챕터 또한 막과 장 그리고 인터미션으로 구성되어 있어 책을 다 읽고 나면 연극 속의 또 다른 연극을 본 느낌이다. 이 연극은 단순한 서사가 아니라 하딩의 심리 상태와 꽤 잘 어우러져 독자로 하여금 어느 것이 연극이고 어느 것이 현실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다.
"바람은 그냥 불어올 뿐입니다. 그게 바람이에요. 비도 그냥 내릴 뿐입니다. 비니까."
-p.160
연극이 시작되면서부터 하딩의 대기실에는 매번 그가 어려움을 견딜 수 있도록 유명인의 어록이 쓰인 쪽지가 붙어 있다. 마지막 공연까지. 중간에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힘을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찾으려고 노력을 하지만 공연이 끝난 직후까지 찾지 못한다. 마지막에 그 존재가 밝혀지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어서 놀라웠다. 마지막에 그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그것을 타면 안 될 것 같다며 강아지와 함께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모습에서 그가 문제를 대하는 마음가짐의 변화를 독자는 느낄 수 있다.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 견해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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