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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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를 처음 만났던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처절했던 디스토피아 소설인 더 로드를 통해서였다. 서점가에 블록버스터 영화를 개봉하는 것처럼 광고를 하던 책이었기에 속는 셈 치고 한번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가 몇 년을 책의 그림자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후 이 작가의 책은 심력 소모가 심하다는 것을 깨닫고 멀리했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어 미리 밝히지만 그만큼 잘 쓰인 작품이라는 뜻이다. 그러던 나였지만 죽을 듯이 더운 더위를 넘기고 나니 그의 그림자가 그리워져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코맥 매카시의 선셋 리미티드를 손에 잡았다.


코맥 매카시 작가 소개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1933년 미국 태어난 매카시는 1951년 테네시 대학교에 입학해 인문학을 공부했다. 1965년 첫 소설 『과수원 지기』로 문단에 데뷔한 이래 1985년 작 『핏빛 자오선』으로 명성을 얻었다. 2007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로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을 출간하며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출간작으로는 『모두 다 예쁜 말들』, 『국경을 넘어』, 『평원의 도시들』, 『바깥의 어둠』 『신의 아들』 『서트리』 등이 있다.


줄거리

내 이유의 핵심은 점차

환상을 믿는 척하지 않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뿐이에요.

현실의 본질을

점차 깨닫게 된 거지요.

세계의 본질을.

p.116



이 작품은 꽤 단조로운 희곡 형식으로 전개된다. 최소한의 움직임과 오로지 두 남자의 대화로만. 한 남자는 백인이며 교수이다. 문명에 대하여 더 알아가면서 어느 순간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고 선셋 리미티드(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달리는 급행열차)에 몸을 던진다. 다른 남자는 흑인이며 살인으로 교도소를 다녀온 목사이다. 그는 자신의 생일날 달리는 열차에 몸을 던지는 백인을 구해 자신의 집 탁자에 앉혀 놓았다. 서로 자신의 의견이 맞는다며 토론의 장을 벌인다.


모든 걸 포기해버렸어.

그런데 문득 그 말을 해버렸어.

이렇게 말한 거야.

날 좀 살려주세요.

그러니까 살려주시더라구.

p.103

백인은 흑인의 도움에 감사함을 느끼지만 여전히 그 장소를 벗어나 자신의 고집대로 길을 가겠다는 입장이며 흑인은 그를 어떻게든 길게 그를 잡아 두고 신의 존재를 피력하면서 백인이 열차에 몸을 던지는 일을 막아보려고 한다. 교수가 생을 마감하려는 이유를 이해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아닌 독자도 있을 정도로 모호하다. 목사는 교수가 더는 스스로 선셋 리미티드에 몸을 던지지 않으려는 의지를 심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의 생각

완전히 바닥까지 떨어져서

어떻게든 크게 한 걸음을

떼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을

하느님이 눈여겨보는 것

같다는 거야.

p.51

이 작품에서 선셋 리미티드는 열차라는 구체적인 사물을 의미한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책 속에서는 현실에서는 절망에 빠져 그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넓게 본다면 인류의 운명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sunset은 해 질 녘이라는 뜻이지만 마지막(끝나가는)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한정된 마지막. 이것이 느껴지는 순간 그의 작품 더 로드의 이미지가 이 도서와 겹치기 시작했다.


만약 사람들이 슬픔 때문에

자살을 하는 거라면,

그렇게 죽은 사람들을

해가 지기 전에 죄다 땅속에

묻는 것만 종일 해야 할 거야.


p.125

사실 현실적인 삶만 보자면 교수의 삶이 빈민가 목사의 삶보다 훨씬 나아 보인다. 게다가 교수가 느끼는 절망은 한 개인으로서 사적인 의미의 감정이 아니기에 한편으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절망적인 삶에서 희망과 생명을 보고 이를 전하는 흑인과 죽음을 말하는 백인. 시니컬한 마음을 가지고 읽으면 백인의 사고에 빠지게 되고, 긍정의 마음을 가지고 읽으면 흑인의 설득에 빠지면서 그의 안타까움을 심장 끝에서 끓어오듯이 느낄 수 있다.


중요한 건, 교수 선생.

인생에 괴로움이 없다면

자신이 진짜로 행복하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는 거 아니겠소?

뭐에 비교할 건데?

이 책을 읽다가 보면 자동으로 니체의 고통에 관한 부분과 연결이 된다. 인간이 고통을 싫어하고 저주하는 이유는 고통 자체가 아니라 고통의 무의미 때문이라고. 그러니 고통으로부터 멀어지지 말고 용기를 내어 그 심연을 들여다보며 고통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사실 이 책을 읽는 도중에는 흑인의 주장으로는 어느 누구도 설득시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백인의 의견에 매료되었다. 아마 홀로 삶의 피곤함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교수의 주장에 빠져들 것이다.

빛이 선생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다만 선생이 어둠밖에

보지 못할 뿐이다.

그 어둠은 바로 선생이다.

선생이 그 어둠을 만드는 것이다.

p.114

그러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면서 오히려 단면만 바라보며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스스로의 생명을 끊으려는 교수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신을 내세우며 타인을 설득하려는 목사가 편협한 것일까? 아니면 발생하지도 않은 미래를 자신의 생각으로 재단하고 생명을 끝내려는 고집을 꺾지 않는 교수가 편협한 것일까? 마지막 흑인 목사가 하나님을 향해 울면서 하는 기도를 보면서 삶과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건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글쎄. 사람들은 가끔 어떤 걸

손에 쥐고 나서야 그걸 자기가

쭉 원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하던데.

p.84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삶과 죽음을 말하는 코맥 매카시의 선셋 리미티드는 형식이 보여주는 것처럼 연극 무대로 올랐으며 2011년도에 토미 리 존슨과 사무엘 잭슨 주연으로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삶과 죽음의 대비를 백과 흑으로 나눈다면 흑인이 삶인 백쪽에 있고 백인이 그 반대쪽에 있는 부분도 인상 깊었다.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죽으려고 하는 자와 이를 막으려고 하는 자가 아닌 자신이 살면서 대조되는 모든 것을 넣고 생각하다가 보면 천재적인 작가의 생각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선셋리미티드 #코맥매카시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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