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 -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는 양극화의 기묘한 작동 방식
바르트 브란트스마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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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에 너무나도 익숙한 단어가 양극화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용어의 기본 개념과 그것의 생성 원리, 작동 방식,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다고 할 정도로 무지하다. 갈등과 갈라 치기에 휘둘리지 말자고 하면서도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드는지, 그 책임자가 누구인지조차 가늠하지 못하여 그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오늘 소개할 바르트 브란트스마의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는 책은 얇지만 우리 사회의 문제로 떠오른 것의 실체를 파헤쳐놓았기에 소개해 본다.



바르트 브란트스마 작가 소개

지역과 국가 문제에 대하여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는 네덜란드의 컨설턴트이자 실용 철학자로서 경·검, 경영진, 언론인, 정치인, NGO 활동가 및 다양한 전문가들을 가르치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일하면서 그는 우리 사회에 항상 존재하는 역학을 탐구하기로 결정했다. 분쟁 지역에서 양극화 전략을 테스트했으며 유럽 각지에서 연구를 계속하며 양극화 사고 프레임워크를 개발했다. 기업을 설립하고 책을 집필하여 전문가들에게 양극화의 역동성과 그러한 역동성 내에서 전문가의 역할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고자 했다.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고 미디어 시대에 증가하는 양극화에 대한 깊이와 품질에 답변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책 속으로

1장에서는 양극화의 세 가지 기본 법칙부터 논한다. 그 내용은 사고 구조, 연료, 직감의 역학이다. 쉽게 말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하여 상대의 정체성을 만들어 구분하는 사고 구조에서 시작된다. 나쁜 점은 오늘의 주제이며 좋은 점은 사고의 구성하는 개념과 프레임을 살펴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즉 현재 사회의 문제에 무력하게 손을 놓고 있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료 공급이 필요하며 이때의 연료는 의도의 좋고 나쁨을 논하지 않고 이용되는 특징이 있다.

개인적으로 기본 원칙 중 세 번째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바로 이런 현상은 이성의 영역이 아닌 직감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양극화가 증가함에 따라 합리성은 감소한다는 것. 심지어 명확하게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나와서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지해야 하는 순간에도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음모론을 들고나온다고 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말하는 자신은 스스로의 발언에 대하여 무조건 논리적인 진실만 말한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양극화 작동 방식에는 다섯 가지 역할이 있는데 순서대로 주동자, 동조자, 방관자, 중재자, 희생자가 있다. 이 부분이 생각보다 중요한데 바로 자신이 정치나 미디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기본 개념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주동자는 사고에 연료를 공급하는 임무를 띠고 있으며 동조자는 주동자의 견해를 완벽하게 찬성하거나 반대하지는 않지만 결정적일 때는 지지자의 진영에 들어간다. 방관자는 말 그대로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중간자이며 중재자는 양쪽의 대화를 주선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위치이다.

희생자는 정확히 중간 지대에서 찾으며 중간 지대의 허용 범위에 따라 양극화 압력을 측정할 수 있다. 웃긴 것은 이 희생자의 역할에 가장 알맞은 후보군이 중재자라는 것이다. 주동자는 자신의 편을 만들 때 동조자가 아닌 중간에 위치한 방관자나 중재자를 타깃으로 잡는다. 어느 쪽이든 이미 내 편을 더 내 편으로 만드는 노력보다는 세력을 넓히는 쪽을 택하기 때문이다. 3부에 가면 이런 현상을 바로잡는 방식이 나와 있다. 흔히 말하는 서로를 알기 위한 대화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제시한 후 제시하는 방법이기에 꽤 몰입도가 높았다.

나의 생각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이다. 좋은 의미로 이름을 불러주면 나에게 의미가 생긴다는 말이지만 바르트 브란트스마는 상대에게 정체성이라는 이름을 붙여줌과 동시에 양극화는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서로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 내에서 같은 것에 대하여 욕구를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과정을 전문적이지 않은 용어와 많은 예시로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설명하였다.

주동자, 동조자, 방관자 이야기를 우리의 현실로 잠시 접목하면 TV에서 방영하는 정치인의 토론은 결코 상대에게 자신을 이해시키거나 상대를 이해할 목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조자이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 편에 서지 않은 국민과 중간 지대에 있는 방관자들을 좀 더 확실하게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하여 하는 행위. 눈은 상대를 바라보고 있지만 말은 TV를 보고 있는 국민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구조를 파악하면서 미디어를 마주한다면 조금은 덜 휩쓸리지 않을까 한다.

바르트 브란트스마의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는 기존의 관련 도서들과는 결이 조금 다른 도서이다. 현재와 같은 사회에서 이런 식으로 사고방식을 정립하고 판단력을 키워 그 파도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 아니라 이런 현상이 생기게 된 원인을 인간 본성에서 찾으며 철저히 구조적으로 분석하려고 노력한 책이다. 그래서 독자가 자신의 편협함으로 인하여 사회의 파도에 맹목적으로 휩쓸렸다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책 속에 빠질 수 있다.

점점 더 심각해져 가는 양극화 현상을 우리는 누구나 느끼고 있다. 남과 여,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노인과 청년, 부자와 빈자, 고학력과 저학력, 도시와 농촌 등등 이름을 붙이기만 하면 일단 시작되는 갈라치기 현상. 이에 대하여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개탄하기는 하지만 명확한 대책이 없어 위기감만 느끼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조금이라도 스스로의 자존감과 자신감 그리고 이성적인 판단력을 유지하면서 이런 위기를 잘 넘겨보고 싶은 분이라면 누구나 몰입하여 읽을 수 있는 책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 견해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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