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NA의 역사 - 노벨상 수상자가 밝히는 생명의 촉매, RNA의 비밀
토머스 R. 체크 지음, 김아림 옮김, 조정남 감수 / 세종(세종서적)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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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노벨상 수상자 토마스 R. 체크의 베스트셀러 RAN의 역사를 읽으면 상당히 기묘한 느낌을 받게 된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가장 먼 우주를 이해하기 위하여 가장 작은 원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 책은 가장 먼 우주의 파헤쳐 진 비밀을 우리 몸에 적용하는 느낌이 강했다. 이 책의 주인공인 RNA는 우리 몸이라는 은하계 내부에서 스스로 움직이고 활동하는 별로 이해하면 생각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생소한 교양 과학서이지만 최대한 일상적인 언어로 설명해 놓은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RAN의 역사는 총 2부 11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부에서는 DNA만 중요하게 생각하던 시절에서 RNA의 발견을 통하여 생명의 기원은 RNA에 기반한다는 것을 하나씩 증명한다. 이후 2부에서는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 RNA의 역할 및 적용 그리고 유전자 가위라고 하는 크리스퍼 혁명에 대하여 논한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근본적인 과학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본주의 시장의 섭리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전체적인 핵심 내용은 그동안 DNA에 눌려 천대 시 받았던 RNA는 단순한 중간 산물이 아니라 생명의 작동을 촉진하는 촉매이며 생명 현상 전반의 조율자라는 것이다. RNA의 기능을 중심으로 생명 시스템을 재해석하는 이 책은 정보 보관 중심의 고정된 유전자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생명의 본질을 흐름과 반응의 관점에서 조명한다. 이를 가장 잘 반영해 준 예가 바로 저자이다. 저자는 오로지 DNA에만 관심이 있었으나 의도하지 않은 발견으로 인하여 RNA로 노벨상까지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전반부에서는 주로 RNA의 발견 과정과 역할 그리고 개념 설명을 위주로 꾸려져 있다. 이를 일반인에게 잘 이해시키기 위함이 위의 이미지이다. 저 표는 메신저 RNA(mRNA)의 코돈이다. 항상 세 개의 문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질병이 발생한다는 것을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저자는 고양이와 통통한 쥐로 변형하여 설명한다. 가령 기본 문장이 그 큰 고양이는 먹었다 하나의 통통한 쥐를이라고 한다면 거기에 하나의 문자가 삽입되어 강제 틀 이동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완전히 글자가 뒤바뀌어 버린다.




틀 이동 돌연변이를 한글로 변형하면 이런 식이다. 엄마는 방에 있다는 문장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여기에 모음 ㅣ가 하나 더 붙게 된다면 어미마는 방에 있다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모음 하나의 삽입으로 인해 받침이 뒤로 가버리는 것을 생물학에서는 틀 이동 돌연변이라고 하며 이렇게 하나의 모음 삽입으로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이 낭포성 섬유증, 크론병, 테이-삭스병 등이다. 그럼 두 개가 삽입되면 어떻게 될까? 어미마는 바오에 있다. 이런 경우 근육 관련 질병과 다발성 경화증을 앓게 된다.




우리에게 가장 심각하게 다가오는 경우는 세 개가 삽입된 경우이다. 어미마는 바오에 이쓰다의 경우 일반인의 삶이 바뀐다. 이 경우가 바로 암이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려운 생물학적 용어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가장 일반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RNA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이후 인트론, 스플라이싱, 크리스퍼 등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모든 경우를 다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기에 독자 스스로 이런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 부분은 나의 생각 편에서 좀 더 살펴보겠다.




책 후반부에는 RNA의 역할을 산업 및 기술적 응용으로 확장시킨다. 대표적인 사례로 다뤄지는 것이 바로 크리스퍼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기존에는 DNA를 직접 조작하는 방식으로만 이해되었지만 저자는 RNA의 가이딩 역할에 주목한다. 크리스퍼는 정확한 위치로 관련 단백질을 유도하는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며 이는 RNA가 단순한 정보 매개체를 넘어 정밀한 조정자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시이다. 이로써 RNA는 생물학을 넘어, 현대 생명공학 기술의 핵심 플랫폼으로도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RNA의 생물학적 역할을 요약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RNA를 통해 생명을 저장된 정보가 아니라 실행되고 편집되는 과정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DNA가 가능성이라면 RNA는 그 가능성을 현실로 옮기는 실행자다. 생명은 단순한 유전자 목록이 아니라 그 유전자가 언제, 어떻게, 어떤 조합으로 작동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는 복잡한 시스템이다. 저자는 이 복잡성을 해체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독자에게 RNA라는 촉매의 역동성과 창조성을 명확히 전달한다.



RAN의 역사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스플라이싱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용어였기에 고전할 줄 알았으나 이미지와 쉬운 설명으로 오히려 흥미 유발 포인트였다. 스플라이싱은 RNA 사이에 있는 빈 공간인 인트론 부분을 잘라 내고 나머지를 다시 붙이는 것을 말한다. 나는 철수와 함께 학교에 가서 국어도 배우고 수학도 배우고 영어도 배우고 점심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문장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스플라이싱은 여기에서 빠져도 의미 없는 부분을 인트론이라고 칭하고 그 인트론의 개수만큼 자르는 방법이 늘어난다. 철수와 함께를 잘라 내고 나는 학교에 가서로 바로 이동할 수도 있으며 모든 불필요한 것을 빼고 나는 학교에 가서 집으로 돌아왔다로 바로 귀결될 수도 있다. 더 섬세하게 자른다면 국어, 수학, 영어를 배우고처럼 뒤에 붙은 조사 부분에 손을 댈 수도 있다. 눈치가 빠른 분이라면 이미 아셨을 것이다. 고등 동물일수록 이 인트론의 개수가 많아 여러 가지 스플라이싱이 일어난다는 것을.



우리가 말하는 유전자 가위로 불리는 크리스퍼는 불필요하게 연결된 부분을 스플라이싱하여 정상적으로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이쯤에서 공상 과학에 등장하는 인간 병기를 떠올릴 수도 있다. 흔히 인간 병기라고 하면 터미네이터 비슷한 무언가를 떠올린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도록 스플라이싱을 한 다음 이 조각들이 서로 오류를 일으키지 않게 만든 게 인간 병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야말로 SF 영화에서 보던 1초 재생이 가능할 수도 있다. 스플라이싱 위치만 찾아낸다면.



RAN의 역사는 RNA의 구조적 기능, 정보 흐름, 분자 간 상호작용, 그리고 생명공학적 응용까지 폭넓게 다룬다. 전문적인 개념이 많지만 저자는 일상적 비유와 단계적 설명을 통해 비전공자도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구성했다. 특히 중반 이후에는 독자가 RNA의 작동 방식을 실제 세계와 연결 지어 사고할 수 있도록 구체적 예시를 제시하여 몰입도가 매우 높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제목이다. 어떻게 촉매라는 원제가 더 협소한 의미인 RNA의 역사로 바뀌었을까? 


#RNA의역사 #토머스R체크 #세종서적 #교양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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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양자역학 때문이야
제레미 해리스 지음, 박병철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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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인간 의식의 문제와 AI의 가능성을 그린 제레미 해리스의 이게 다 양자역학 때문이야!는 크게 세 가지에 포인트를 잡고 읽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양자물리학의 기본 개념 정립, 두 번째는 정립한 개념을 인간의 의식 및 자유의지에 적용하기, 마지막 세 번째는 앞부분에서부터 정리한 내용으로 AI에게 자율 사고를 가지게 할 수 있는 방법 모색 정도로. 그럼 세 포인트를 하나씩 알아보자.





주류 과학에서는 양자역학의 창시자인 막스 플랑크의 플랑크 상수를 시작으로, 광전 효과를 발견한 알버트 아인슈타인, 불확정성 원리로 유명한 닐스 보어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복잡한 디랙 방정식을 제시한 폴 디랙, 그리고 파동 이론을 통해 고양이 실험으로 잘 알려진 에르빈 슈뢰딩거를 비롯해 인류 역사상 가장 똑똑했다고 평가받는 존 폰 노이만까지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닐스 보어 한 사람만을 대표적으로 다루고 나머지는 모두 생략되어 어려운 이론이나 복잡한 수학적 개념은 등장하지 않는다.



양자역학하면 정확한 개념을 모르더라도 누구나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떠올린다. 이 책도 개념 정립을 위하여 여기에서 시작한다. 보통 이 개념 정립을 위하여 엄청난 글자 수를 자랑하기 마련인데 저자는 위의 이미지처럼 켓(l >)을 이용하여 과학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도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서술하였다. 작가가 AI 관련 일을 하고 있어서인지 고전적인 방식보다는 현대적 방법을 도입했다고나 할까? 지금까지 읽었던 그 어떤 양자역학 관련 책보다 개념을 쉽게 정리해 놓았다고 장담할 수 있다.







보통 양자역학은 우주론과 연결되어 확장적인 개념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주류 양자역학을 독자에게 설명하기 위함이 아니다. 바로 인간의 의식과 자유의지 그리고 AI와의 접목이 목적이다. 따라서 기존의 주류 과학계는 닐스 보어가 대표한다. 그 사이에 끼인 독특한 이론의 폰 노이만, 과학으로 신의 존재를 정의했다고 알려진 범우주적 의식의 아미트 고스와미, 다중우주 가설의 휴 에버릿, 결정론을 말하는 데이비드 봄이 주요 타석에 등장한다. 



이들의 이론으로 인간의 의식을 설명하기 위한 기본 구조는 바로 슈뢰딩거 고양이의 관측자의 정립이다. 과연 누가 관측하는 것일까? 꼭 인간이어야만 하는 것인가? 누구라도 보기만 하면 된다면 동물은 불가능한가? 본다는 관점에 포인트를 둔다면 카메라나 현미경도 가능한 것 아닌가? 이런 식의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답을 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저자는 독자를 서서히 인간의 의식 부분으로 끌어온다. 마치 고양이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양자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 듯한 느낌으로.







각자의 이론에서 관측자의 정의를 정하고 이에 따라 인간의 자유의지 인정과 불인정으로 나뉜다. 누구는 완벽한 자유의지를 인정하지만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기도 하고, 누구는 과학적으로 완벽하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살하는 내용을 주장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 있었던 이는 아미트 고스와미였으며 과학적 신뢰도가 높은 사람은 다중우주론의 휴 에버릿이었다. 모두의 주장에는 엄청난 구멍이 있어 어느 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는 현재 지구에 사는 지적 동물이 밝혀낸 양자물리학의 현실이다.



결국 마지막에는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을 AI와 의식의 문제에 어떻게 접목시키는지에 대한 논의로 채워져 있다. 물리학적 원리와 철학적 질문이 결합된 이 책은 과학이 단지 실험과 계산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데까지 이어진다. 특히, 저자는 양자역학이 의식의 본질과 자유 사고의 가능성을 이해하는 데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심도 있는 탐구를 이어간다. 이는 기존의 자유 의지와 AI의 문제를 단순히 기술적 관점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보다 심리학적이고 철학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



즉, 양자역학을 인간의 의식과 AI에 적용하여 자율 사고를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저자는 양자역학의 원리를 AI와 의식의 문제에 결합시키면서 우리가 AI에게 자유 의지를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한다. 저자는 AI가 자율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관측자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고 양자역학의 원리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이를 통해 AI의 의식과 자유 의지가 가능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과정에서 기계적인 사고와 자율적인 사고의 경계를 허물려는 노력을 보인다. 이러한 접근은 AI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자율 사고와 감정을 가질 수 있는 AI의 윤리적 책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사고를 동시에 요구하는 저자가 제시하는 양자역학의 개념을 통해 우리는 AI의 자유 의지와 자율성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엿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의식과 자유 의지가 단순히 과학적 법칙에 의해 정의될 수 없는 복잡한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저자가 소개한 여러 이론들에는 각기 다른 장점과 한계가 존재한다. 이처럼 다양한 이론을 비교하며 저자는 인간의 의식을 양자역학적 사고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반드시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제레미 해리스의 이게 다 양자역학 때문이야!는 양자역학을 넘어 인간 의식의 문제와 AI의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물리학적 이론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AI와 의식의 관계를 물리학적 관점에서 탐구하려는 도전적이고도 심오한 시도를 보여준다. 양자역학을 통해 자유 의지와 자율 사고를 이해하려는 이 책의 접근은 기존 과학 서적에서 보기 힘든 철학적 깊이와 윤리적 고민을 담고 있다. 처음 양자역학을 접하는 분이나 철학적 접근을 심도 있게 하고 싶은 분이라면 만족도가 높을 것이다.


#이게다양자역학때문이야 #제레미해리스 #문학수첩 #교양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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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천문학자들 - 천문학에 한 획을 그은 여성 과학자들
쇼히니 고스 지음, 박성래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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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라서평단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레이디 퍼스트라는 말은 본래 기사도가 아니라 위험한 공간에 여성을 먼저 들여보내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과학이라는 이름의 공간에서도 여성은 늘 먼저 들어갔지만 끝까지 기록되진 않았다. 진화를 말할 땐 종의 우월성을 강조하지만 그 종에서 인간은 곧 남성을 의미하곤 했다. 저자는 묻는다. 과학은 언제부터 남성의 전유물이었으며 그 기록은 누가 써왔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하여 끝까지 존재를 증명한 투명 인간 전사들의 이야기가 담긴 쇼히니 고스의 지워진 천문학자들 속으로 들어가 보자.


과학이란 본디 정확성과 객관성을 생명으로 한다. 그러나 과학의 역사, 그중에서도 기록된 과학사의 영역으로 들어서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곳에는 빠진 이름들이 있고 지워진 업적들이 있으며 말해지지 않은 진실이 있다. 끝까지 존재를 증명한 투명 인간 전사들의 이야기가 담긴 쇼히니 고스의 지워진 천문학자들은 그러한 공백을 채우기 위한 기록이다. 과학이라는 이름 뒤에서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세계를 바라봤던 여성 과학자들을 복원하고자 하는 시도다.



저자는 여성 과학자들의 삶과 연구를 한 명씩 천천히 불러낸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물리학의 영웅들 뒤에 있었지만 이름은 남지 않았던 이들, 오랜 시간 동안 계산원이나 보조자로 불렸던 이들의 진짜 정체를 드러낸다. 시어도르 멜피 감독의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 유색 인종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것만으로도 우리는 분노를 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영화 속 내용은 매우 정제되었으며 현실은 백인 여성에게조차 매우 가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는 애나 점프 캐넌, 안토니아 모리, 미나 플레밍, 세실리아 페인 가포슈킨으로 시작한다. 이들은 분광학으로 별을 관측하고 기록하는 일을 했다. 당시 여성에게 관측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았으나 다행스럽게 조력자가 각각 한 명씩은 존재한다. 이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세실리아 페인 가포슈킨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어니스트 러더퍼드나 닐스 보어 등과 같은 노벨상 수상자로부터 교육을 받았으나 성별의 한계로 인해 결국 미국으로 와야만 했던 인물이었다. 


이어 등장하는 헨리에타 레빗은 변광성의 주기를 기록하며 우주의 거리 측정 기준을 제공한 인물이다. 허블이 그 주기를 바탕으로 우주의 팽창 이론을 정립할 수 있었던 건 그녀 덕분이었다. 하지만 레빗의 이름은 오랫동안 각주에 머물렀다. 또한 마거릿 버비지의 사례는 연구만큼이나 제도와 싸웠던 삶을 보여준다. 핵 합성 이론의 핵심을 밝혀냈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망원경 사용 권한조차 얻지 못했다. 그녀는 별의 죽음을 밝힌 인물이다. 백색왜성뿐만 아니라 초신성까지. 



가장 인상 깊었던 장은 3장 우주 탐험의 길잡이들이었다. 학위조차 금지되어 있던 시기에 여성이 우주 산업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었다. 미국 내 남성들이 전쟁에 참여하면서 그 자리를 메꿀 인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대리인으로 입사했지만 점차 그녀들은 회사에서 인정받아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곳에서 역량을 펼쳤다. 물론 극소수이지만. 특히 록히드의 공정한 시선으로 자신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된 여성이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다는 것에 묘한 짜릿함이 느껴졌다.



이 책은 단순한 개인의 감동적 이야기 모음이 아니다. 각 인물의 삶과 연구를 통해 과학이 얼마나 많은 사회적 제약과 구조 속에서 움직였는지를 보여준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관찰이 아니라 기록만을 허락받았던 시대, 논문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연구자들, 그리고 그들이 이룬 발견들이 어떻게 다른 이름으로 전유 되었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게다가 단순하게 그들의 이름만 묻힌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연구 자료를 어떻게 탈취했는지도.


진화라는 말은 과학의 언어였고 동시에 사회의 언어이기도 했다. 다윈은 인간의 유래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며, 진화의 정도가 낮다고 적었다. 경쟁과 투쟁을 거쳐 발전한 성별이 남성이라면 여성은 감정과 본능에 머문 종속적 존재였다. 이 관점은 단순한 개인의 편견이 아니라 당시 과학계 전반에 퍼져 있던 사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분에 관한 내용을 제대로 대중에게 알린 이가 리처드 도킨스의 제자 루시 쿡이었다. 암컷들이라는 책을 통하여 다윈의 남성우월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책 속 여성 과학자들은 단순히 배제를 견딘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아직 진화하지 못했다는 평가 속에서 스스로 진화를 입증한 인물들이었다. 정식 학위도, 이름도, 논문 저자 자격도 없이 그저 결과로, 숫자로, 관측으로 말해야만 했던 사람들. 과학이 인간의 이성을 증명하려 할 때, 이들은 이성 너머의 끈기로 과학을 이어갔다. 그 결과 서서히 하나하나의 국가에서 그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림원 위원회의 눈에는 여전히 투명 인간으로 존재한다.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그녀들에게 남성이 벽으로만 작용되지는 않았다. 비록 제도에 막혀 제도권 내에서는 도울 수 없었지만 그것들을 비틀어 도운 이들이 있었다. 에드워드 찰스 피커링, 제임스 코난트, 록히드 등등. 매우 드물지만 단 한 명의 지원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의 비밀을 알게 해 주었다. 여담으로 하나 더 밝히자면 9년 동안 우주여행을 하고 온 이는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라는 여성이었으며 최초의 우주로 날아오른 동물은 뉴멕시코 초파리였다. 한국은 2008년 여성을 최초의 우주 비행사로 선발한 유일한 국가라고 한다. 


끝까지 존재를 증명한 투명 인간 전사들의 이야기가 담긴 쇼히니 고스의 지워진 천문학자들은 과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과학사의 맥락을 잘 모른다 해도, 누구나 진입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설명은 쉽고, 사례는 구체적이며, 무엇보다도 저자의 시선은 따뜻하다. 복잡한 과학 이론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론을 만들어낸 사람의 존재를 기억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려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를 설계하는 작업이다. 더 이상 과학이 누군가의 이름을 지우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워진천문학자들 #쇼히니고스 #보라서평단 #VORA #영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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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느슨함 - 돈, 일,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품위 있는 삶의 태도
와다 히데키 지음, 박여원 옮김 / 윌마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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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와다 히데키의 어른의 느슨함 또한 노년의 삶을 다룬다. 이전까지는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견뎌내야 할 간병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면 이 책은 오히려 그 어른들 자신이 읽어야 할 책이다. 시선이 조금 다르다. 특히 은퇴를 앞두거나 이미 한 은퇴자들을 위한 책이라는 정의가 더 어울린다. 태어나면서부터 경쟁 사회에서 앞만 보고 달리던 한 인간이 사회에서 배제되기 시작하면서 꽤 많은 문제가 일어나는데 이를 노인 정신과 의사의 시각으로 풀어 의미를 더한다.



윌마에서 출간한 은퇴자들을 위한 책 와다 히데키의 어른의 느슨함은 아직 한창 사회에서 앞을 향해 돌진하는 세대가 읽기에는 밋밋하기도 하고 뻔한 내용처럼 들릴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읽으면서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65세가 넘으신 부모님의 눈에는 공감대가 꽤 형성되는 것을 보고 전문가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점점 길어지는 노년 생활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총 5장으로 구성되었는데 1장에서는 치열한 사회에서 밀리고 신체적 한계를 느끼면서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첫 단계를 조명하고 있다. 이제는 무엇인가를 바꾸고, 성장하는 시기가 아닌 평생을 자식과 회사와 국가를 위하여 일하였으니 스스로에게 눈을 돌리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말한다. 특히, 무엇인가를 못 하게 된 나를 받아들이는 용기 파트는 부모님 세대가 꽤 공감하지 않을까 한다. 사실, 40대부터 사회생활에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못 하게 된 나를 받아들이는 요령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2장으로 넘어가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여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요령을 서술하고 있다. 아마 뉴스에서 목이 말라 롯데리아에 갔다가 키오스크로 바뀐 주문을 보고 어르신이 콜라를 주문하지 못하여 그냥 나와 서글펐다는 기사를 보았을 것이다. 아마 이분이 20대였다면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당당하게 물어보았을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죄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잇값을 하기 위하여, 체면을 차리기 위하여 혼자서 삭히는 게 우리의 어르신들이다. 



세 번째 파트로 넘어가면 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면 살고 싶은 대로 살라고 말한다. 타인에게 미움을 받을 수도 있으며 무한한 배려가 답은 아니라면서. 특히 좋은 사람 되기는 오히려 노년 생활에 만족도가 현저히 떨어진다고 꼬집는다.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 타인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보다 시선을 자신에게 돌려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은 4장이다. 바로 건강 관리 파트이다. 충격적인 내용은 일본에서 노령으로 돌아가신 분들을 해부한 내용이었다. 85세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서 암이 존재했다는 이 결과를 두고 모든 사람은 암에 걸린다고 말한다. 다만, 암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걸린 줄도 모르고 살다가 가신 분도 많다는 것. 심지어 암이 사망 원인이 아닌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 암에 걸리는 것에 대하여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기 보다 그냥 누구나 걸리는 것이라는 마인드를 평소에 가져야 건강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치매 파트이다. 책에서는 눈으로 확연하게 드러나는 결과를 자아낸 두 마을에 대한 연구 결과가 나온다. 한마을은 치매 진단을 받자마자 모든 사회적 업무, 가정적 엄무에서 배제되고 가족에 의한 가택 연금을 시켰다. 반면 다른 마을은 진단 결과와 관계없이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는 있지만 여전히 일을 하고, 손자들을 돌보며 평소와 같이 지냈다. 그 결과 전자는 급격하게 치매가 진행되었지만 후자는 진행이 더뎌 여전히 활동을 이어갔다.



저자는 말한다. 치매에는 경증과 중증이 있는데 이를 잘 구별하여 대해야 나의 부모가 그리고 내가 좀 더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한 채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결과는 부모가 가야 할 길이자 언젠가 내가 가게 될 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흔히 치매라고 하면 요양원부터 생각하는데 그것만이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오해하면 안 된다. 중증일 때 자식의 도리를 한다고 집에서 모시는 것은 둘 다 나락으로 가는 길이라고 꽤 여러 곳에서 명시하고 있으니까.



마지막 5장에 가면 진정으로 느슨하게 사는 방법에 관하여 논하고 있다. 여기에도 우리가 아는 상식과 다른 부분이 나온다. 무조건 저염식을 해야 하고, 당분은 자제해야 한다는 내용은 노인들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이렇게 극단적인 식단은 뇌 손상, 경련, 의식장애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오히려 이 나이가 되면 무엇이든 잘 먹는 것이 중요하며 다이어트 등은 신체와 정신에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노인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꽤 유의해야 한다고 한다.



주변에서 보면 어르신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푸념이다. 그러나 와다 히데키는 어른의 느슨함에서 오히려 이 나이이기에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고 한다. 법에 저촉되는 것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개인적으로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키우느라 하고 싶은 것을 많이 참아야 했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사실, 어린 시절에는 원래 어른은 참아야 하며, 먹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별로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직접 나이를 먹고 보니 오히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이 많음을 깨달았다. 그 이후 신기하거나 새로운 것, 처음 보는 음식이 보이면 언제나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찾는다. 처음에는 어색함만 감돌았는데 어느 순간 새로운 것을 마주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자신감을 가지는 모습에 태어나서 가장 잘하고 있는 습관이 아닐까 하는 자부심을 가졌다. 마지막 5장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행복해지기 위하여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 스스로의 설계.



윌마에서 출간한 은퇴자들을 위한 책 와다 히데키의 어른의 느슨함의 카테고리는 자기 계발이다. 더 발전하고 더 나아지기 위한 자기 계발이 아닌 온전하게 스스로를 지키고 보듬으며 인생의 황혼을 아름답게 만들 자기 계발이다. 앞으로의 나를 위해서, 현재 이 시기를 넘어가고 있는 부모님을 위해서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한다. 30년간 노인 정신의학 분야에 종사하면서 연구한 의사가 썼기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많을 것이다.



#어른의느슨함 #와다히데키 #윌마 #은퇴자를위한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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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초대륙 - 지구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판구조론 히스토리
로스 미첼 지음, 이현숙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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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히말라야산맥이 해마다 수 밀리미터씩 솟아오르고, 아프리카 대륙의 동부가 서서히 갈라지고 있으며, 지구의 평균 기온은 태양 복사량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불의 고리라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 주변에서는 연쇄적인 지진과 화산 활동이 관측되며, 그 여파는 동해를 포함한 한반도 인근에서도 빈번하게 감지된다는 기사들을 자주 접한다. 이는 인간이 발 딛고 있는 대륙이 얼마나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단단한 땅 위에 서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매일 항해 중인 인류에 가깝다.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 줄 로스 미첼의 다가올 초대륙을 살펴보자.


인류가 살고 있는 이 대륙들은 과연 영원할까? 지금의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럽은 과연 고정된 형태일까? 지질학자 로스 미첼은 다가올 초대륙에서 이러한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대륙들이 다시 하나로 뭉칠 것이고, 바다였던 곳이 육지가 되며, 육지였던 곳이 바다로 가라앉을 수도 있다는 사실. 이 책은 우리가 지구라고 부르는 이 별이 얼마나 거대한 움직임 속에 있는지를, 그리고 그 변화의 상상력이 얼마나 드라마틱 하고 아름다운지를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이는 작품이다.


세계적인 초대륙 순환 이론 전문가인 로스 미첼은는 초대륙이 형성되고 분열되는 메커니즘을 토대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지구를 입체적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륙은 그 자체로 완성형이 아니라 거대한 순환 속 한 시점에 불과하다. 과거엔 판게아가 그 이전에는 로디니아와 컬럼비아가 있었고, 미래에는 아마시아가 등장할 것이라 예측한다.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과거의 흔적에서 미래를 읽어낸다는 점이다. 지질학자는 대륙 이동 속도, 해양 지각의 자성, 암석의 연대 등을 바탕으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예측한다. SF 작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논리는 과학적 데이터에 충실하다. 2억 년 후 대륙이 하나로 합쳐질 가능성과 그 다양한 경로에 대한 가설은 독자로 하여금 수억 년의 스케일을 감각적으로 상상하게 만든다. 지질학이 이토록 상상력과 친한 학문이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이 단순한 미래 예측 시나리오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저자는 현재 우리가 서 있는 땅이 과연 얼마나 안정적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뿌리내리고 살아간다고 믿는 대지는 사실, 평균 시속 수 센티미터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거대한 플레이트의 일부다. 집도 도시도 문명도 이 거대한 움직임 위에 놓인 임시 구조물이다. 그야말로 외부적으로는 공전과 자전으로, 내부적으로는 우리가 서 있는 아니 타고 있는 육지를 움직여 매일 항해를 시킨다.


저자는 한 챕터를 할애해 판 구조론의 기본 원리를 쉽게 설명한다. 어린 시절 과학 교과서에서 스쳐 지나갔던 내용이지만 책에서는 이를 최신 연구 사례와 함께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해령과 섭입대, 조산대의 역할, 마그마 활동이 대륙 이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지질학이라는 복잡한 분야와 친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게다가 우리에게 생소한 이론이 아닌 어린 시절부터 시험 문제 단골인 베게너의 이론으로 출발하여 심리적 접근성 또한 좋은 편이다.


다가올 초대륙에서는 미래 지구의 초대륙 형성 가능성을 여러 가지 시나리오로 풀어낸다.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북쪽에서 충돌해 형성되는 아마시아, 태평양이 닫히면서 남극 부근에 형성되는 노보판게아 등이다. 각각의 경로는 지질학적 데이터에 기반해 제안되며 그 설명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생생하고 흥미롭다. 실험 과학이라기보다는 이론과학에 가까워 과학서라기보다 과학을 품은 서사처럼 읽힌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의 목소리는 다소 철학적으로 변모한다. 그는 묻는다. 지구는 왜 이렇게 움직이는가? 그리고 그 움직임 속에 인간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우리는 지각판위에서 살아가며 생존과 문명을 쌓아 올리지만 결국 자연의 거대한 주기 앞에서는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즉, 현재 우리의 선택이 미래 세대가 항해할 육지를 만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덧없음이 곧 인간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움직이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더 단단해지려는 의지를 가지고 살아간다.


이 책은 과학을 통해 겸허함을 배우게 한다. 우리는 흔히 변하지 않는 존재를 설명할 때 땅이나 암석을 대상으로 비유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오히려 우리 주변에서 가장 뚜렷하게 변하는 것이 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변화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대륙조차 움직인다면 우리 삶의 고정불변이란 얼마나 덧없는가. 고층 빌딩, 인공섬, 국경선, 심지어 문명 그 자체까지도 결국은 흘러가는 지구의 리듬 앞에서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이 리듬을 인지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되짚게 만든다. 


과학 교양서지만 이 책은 감정의 진폭도 크다. 나, 내 가족, 내 나라를 위해서 갖은 힘을 쓰고 사는 우리이지만 결국 지구라는 배 위에서는 모두 우리가 될 수밖에 없음을 저자는 강조한다. 수억 년 후의 세계를 상상하는 일은 근원적인 외로움과 경외감을 불러온다. 그러나 로스 미첼은 거기서 끝내지 않는다. 그는 지구의 순환이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판이 갈라지고, 충돌하고, 또다시 합쳐지듯, 인류의 역사는 계속 이어질 것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말이다. 


다가올 초대륙은 정지된 듯 보이는 세계가 사실은 얼마나 거대한 움직임 속에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은 사실 떠다니는 배와 같으며 그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매일 항해 중인 인류이다. 모든 것이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일상 속에서, 이 책은 지구적 시야와 겸손함, 그리고 다시금 움직이는 삶에 대한 감각을 되살려준다. 이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이고 조용한 진동으로 다가온다. 

#다가올초대륙 #로스미첼 #흐름출판 #교양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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