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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천문학자들 - 천문학에 한 획을 그은 여성 과학자들
쇼히니 고스 지음, 박성래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25년 3월
평점 :

*** 보라서평단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레이디 퍼스트라는 말은 본래 기사도가 아니라 위험한 공간에 여성을 먼저 들여보내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과학이라는 이름의 공간에서도 여성은 늘 먼저 들어갔지만 끝까지 기록되진 않았다. 진화를 말할 땐 종의 우월성을 강조하지만 그 종에서 인간은 곧 남성을 의미하곤 했다. 저자는 묻는다. 과학은 언제부터 남성의 전유물이었으며 그 기록은 누가 써왔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하여 끝까지 존재를 증명한 투명 인간 전사들의 이야기가 담긴 쇼히니 고스의 지워진 천문학자들 속으로 들어가 보자.
과학이란 본디 정확성과 객관성을 생명으로 한다. 그러나 과학의 역사, 그중에서도 기록된 과학사의 영역으로 들어서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곳에는 빠진 이름들이 있고 지워진 업적들이 있으며 말해지지 않은 진실이 있다. 끝까지 존재를 증명한 투명 인간 전사들의 이야기가 담긴 쇼히니 고스의 지워진 천문학자들은 그러한 공백을 채우기 위한 기록이다. 과학이라는 이름 뒤에서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세계를 바라봤던 여성 과학자들을 복원하고자 하는 시도다.
저자는 여성 과학자들의 삶과 연구를 한 명씩 천천히 불러낸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물리학의 영웅들 뒤에 있었지만 이름은 남지 않았던 이들, 오랜 시간 동안 계산원이나 보조자로 불렸던 이들의 진짜 정체를 드러낸다. 시어도르 멜피 감독의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 유색 인종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것만으로도 우리는 분노를 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영화 속 내용은 매우 정제되었으며 현실은 백인 여성에게조차 매우 가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는 애나 점프 캐넌, 안토니아 모리, 미나 플레밍, 세실리아 페인 가포슈킨으로 시작한다. 이들은 분광학으로 별을 관측하고 기록하는 일을 했다. 당시 여성에게 관측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았으나 다행스럽게 조력자가 각각 한 명씩은 존재한다. 이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세실리아 페인 가포슈킨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어니스트 러더퍼드나 닐스 보어 등과 같은 노벨상 수상자로부터 교육을 받았으나 성별의 한계로 인해 결국 미국으로 와야만 했던 인물이었다.
이어 등장하는 헨리에타 레빗은 변광성의 주기를 기록하며 우주의 거리 측정 기준을 제공한 인물이다. 허블이 그 주기를 바탕으로 우주의 팽창 이론을 정립할 수 있었던 건 그녀 덕분이었다. 하지만 레빗의 이름은 오랫동안 각주에 머물렀다. 또한 마거릿 버비지의 사례는 연구만큼이나 제도와 싸웠던 삶을 보여준다. 핵 합성 이론의 핵심을 밝혀냈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망원경 사용 권한조차 얻지 못했다. 그녀는 별의 죽음을 밝힌 인물이다. 백색왜성뿐만 아니라 초신성까지.
가장 인상 깊었던 장은 3장 우주 탐험의 길잡이들이었다. 학위조차 금지되어 있던 시기에 여성이 우주 산업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었다. 미국 내 남성들이 전쟁에 참여하면서 그 자리를 메꿀 인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대리인으로 입사했지만 점차 그녀들은 회사에서 인정받아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곳에서 역량을 펼쳤다. 물론 극소수이지만. 특히 록히드의 공정한 시선으로 자신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된 여성이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다는 것에 묘한 짜릿함이 느껴졌다.
이 책은 단순한 개인의 감동적 이야기 모음이 아니다. 각 인물의 삶과 연구를 통해 과학이 얼마나 많은 사회적 제약과 구조 속에서 움직였는지를 보여준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관찰이 아니라 기록만을 허락받았던 시대, 논문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연구자들, 그리고 그들이 이룬 발견들이 어떻게 다른 이름으로 전유 되었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게다가 단순하게 그들의 이름만 묻힌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연구 자료를 어떻게 탈취했는지도.
진화라는 말은 과학의 언어였고 동시에 사회의 언어이기도 했다. 다윈은 인간의 유래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며, 진화의 정도가 낮다고 적었다. 경쟁과 투쟁을 거쳐 발전한 성별이 남성이라면 여성은 감정과 본능에 머문 종속적 존재였다. 이 관점은 단순한 개인의 편견이 아니라 당시 과학계 전반에 퍼져 있던 사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분에 관한 내용을 제대로 대중에게 알린 이가 리처드 도킨스의 제자 루시 쿡이었다. 암컷들이라는 책을 통하여 다윈의 남성우월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책 속 여성 과학자들은 단순히 배제를 견딘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아직 진화하지 못했다는 평가 속에서 스스로 진화를 입증한 인물들이었다. 정식 학위도, 이름도, 논문 저자 자격도 없이 그저 결과로, 숫자로, 관측으로 말해야만 했던 사람들. 과학이 인간의 이성을 증명하려 할 때, 이들은 이성 너머의 끈기로 과학을 이어갔다. 그 결과 서서히 하나하나의 국가에서 그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림원 위원회의 눈에는 여전히 투명 인간으로 존재한다.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그녀들에게 남성이 벽으로만 작용되지는 않았다. 비록 제도에 막혀 제도권 내에서는 도울 수 없었지만 그것들을 비틀어 도운 이들이 있었다. 에드워드 찰스 피커링, 제임스 코난트, 록히드 등등. 매우 드물지만 단 한 명의 지원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의 비밀을 알게 해 주었다. 여담으로 하나 더 밝히자면 9년 동안 우주여행을 하고 온 이는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라는 여성이었으며 최초의 우주로 날아오른 동물은 뉴멕시코 초파리였다. 한국은 2008년 여성을 최초의 우주 비행사로 선발한 유일한 국가라고 한다.
끝까지 존재를 증명한 투명 인간 전사들의 이야기가 담긴 쇼히니 고스의 지워진 천문학자들은 과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과학사의 맥락을 잘 모른다 해도, 누구나 진입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설명은 쉽고, 사례는 구체적이며, 무엇보다도 저자의 시선은 따뜻하다. 복잡한 과학 이론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론을 만들어낸 사람의 존재를 기억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려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를 설계하는 작업이다. 더 이상 과학이 누군가의 이름을 지우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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