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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초대륙 - 지구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판구조론 히스토리
로스 미첼 지음, 이현숙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4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히말라야산맥이 해마다 수 밀리미터씩 솟아오르고, 아프리카 대륙의 동부가 서서히 갈라지고 있으며, 지구의 평균 기온은 태양 복사량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불의 고리라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 주변에서는 연쇄적인 지진과 화산 활동이 관측되며, 그 여파는 동해를 포함한 한반도 인근에서도 빈번하게 감지된다는 기사들을 자주 접한다. 이는 인간이 발 딛고 있는 대륙이 얼마나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단단한 땅 위에 서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매일 항해 중인 인류에 가깝다.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 줄 로스 미첼의 다가올 초대륙을 살펴보자.
인류가 살고 있는 이 대륙들은 과연 영원할까? 지금의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럽은 과연 고정된 형태일까? 지질학자 로스 미첼은 다가올 초대륙에서 이러한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대륙들이 다시 하나로 뭉칠 것이고, 바다였던 곳이 육지가 되며, 육지였던 곳이 바다로 가라앉을 수도 있다는 사실. 이 책은 우리가 지구라고 부르는 이 별이 얼마나 거대한 움직임 속에 있는지를, 그리고 그 변화의 상상력이 얼마나 드라마틱 하고 아름다운지를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이는 작품이다.
세계적인 초대륙 순환 이론 전문가인 로스 미첼은는 초대륙이 형성되고 분열되는 메커니즘을 토대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지구를 입체적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륙은 그 자체로 완성형이 아니라 거대한 순환 속 한 시점에 불과하다. 과거엔 판게아가 그 이전에는 로디니아와 컬럼비아가 있었고, 미래에는 아마시아가 등장할 것이라 예측한다.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과거의 흔적에서 미래를 읽어낸다는 점이다. 지질학자는 대륙 이동 속도, 해양 지각의 자성, 암석의 연대 등을 바탕으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예측한다. SF 작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논리는 과학적 데이터에 충실하다. 2억 년 후 대륙이 하나로 합쳐질 가능성과 그 다양한 경로에 대한 가설은 독자로 하여금 수억 년의 스케일을 감각적으로 상상하게 만든다. 지질학이 이토록 상상력과 친한 학문이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이 단순한 미래 예측 시나리오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저자는 현재 우리가 서 있는 땅이 과연 얼마나 안정적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뿌리내리고 살아간다고 믿는 대지는 사실, 평균 시속 수 센티미터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거대한 플레이트의 일부다. 집도 도시도 문명도 이 거대한 움직임 위에 놓인 임시 구조물이다. 그야말로 외부적으로는 공전과 자전으로, 내부적으로는 우리가 서 있는 아니 타고 있는 육지를 움직여 매일 항해를 시킨다.
저자는 한 챕터를 할애해 판 구조론의 기본 원리를 쉽게 설명한다. 어린 시절 과학 교과서에서 스쳐 지나갔던 내용이지만 책에서는 이를 최신 연구 사례와 함께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해령과 섭입대, 조산대의 역할, 마그마 활동이 대륙 이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지질학이라는 복잡한 분야와 친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게다가 우리에게 생소한 이론이 아닌 어린 시절부터 시험 문제 단골인 베게너의 이론으로 출발하여 심리적 접근성 또한 좋은 편이다.
다가올 초대륙에서는 미래 지구의 초대륙 형성 가능성을 여러 가지 시나리오로 풀어낸다.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북쪽에서 충돌해 형성되는 아마시아, 태평양이 닫히면서 남극 부근에 형성되는 노보판게아 등이다. 각각의 경로는 지질학적 데이터에 기반해 제안되며 그 설명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생생하고 흥미롭다. 실험 과학이라기보다는 이론과학에 가까워 과학서라기보다 과학을 품은 서사처럼 읽힌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의 목소리는 다소 철학적으로 변모한다. 그는 묻는다. 지구는 왜 이렇게 움직이는가? 그리고 그 움직임 속에 인간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우리는 지각판위에서 살아가며 생존과 문명을 쌓아 올리지만 결국 자연의 거대한 주기 앞에서는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즉, 현재 우리의 선택이 미래 세대가 항해할 육지를 만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덧없음이 곧 인간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움직이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더 단단해지려는 의지를 가지고 살아간다.
이 책은 과학을 통해 겸허함을 배우게 한다. 우리는 흔히 변하지 않는 존재를 설명할 때 땅이나 암석을 대상으로 비유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오히려 우리 주변에서 가장 뚜렷하게 변하는 것이 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변화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대륙조차 움직인다면 우리 삶의 고정불변이란 얼마나 덧없는가. 고층 빌딩, 인공섬, 국경선, 심지어 문명 그 자체까지도 결국은 흘러가는 지구의 리듬 앞에서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이 리듬을 인지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되짚게 만든다.
과학 교양서지만 이 책은 감정의 진폭도 크다. 나, 내 가족, 내 나라를 위해서 갖은 힘을 쓰고 사는 우리이지만 결국 지구라는 배 위에서는 모두 우리가 될 수밖에 없음을 저자는 강조한다. 수억 년 후의 세계를 상상하는 일은 근원적인 외로움과 경외감을 불러온다. 그러나 로스 미첼은 거기서 끝내지 않는다. 그는 지구의 순환이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판이 갈라지고, 충돌하고, 또다시 합쳐지듯, 인류의 역사는 계속 이어질 것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말이다.
다가올 초대륙은 정지된 듯 보이는 세계가 사실은 얼마나 거대한 움직임 속에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은 사실 떠다니는 배와 같으며 그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매일 항해 중인 인류이다. 모든 것이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일상 속에서, 이 책은 지구적 시야와 겸손함, 그리고 다시금 움직이는 삶에 대한 감각을 되살려준다. 이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이고 조용한 진동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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