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가드닝 - 나만의 길을 찾아 평생 아름답게 가꾸는 삶의 기술
정재경 지음 / 샘터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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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커리어는 성과를 쌓아 올리는 일일까, 아니면 매일같이 돌보는 일상일까. 정재경의 커리어 가드닝은 흔한 자기 계발서처럼 목표와 속도, 경쟁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정원처럼 평생 가꾸고 돌보아야 할 일하는 삶이라고 하면서 반복과 관찰, 실패와 회복, 기록과 패턴 같은 느린 감각들에 주목한다. 이 책은 외적인 성취의 결과가 아니라, 내적 리듬의 흐름으로 일의 과정을 해석한다. 과연 일이라는 세계를 그렇게 가꿔갈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그 비유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그리고 그 관점이 어떤 사람에게 의미 있을지를 함께 살펴본다.


정재경의 커리어 가드닝은 직업적 여정을 성취의 대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돌봐야 할 관계로 본다. 저자는 일하는 삶을 식물처럼 가꾸는 존재에 비유하며, 반복과 관찰, 조정의 연속으로 해석한다. 이 관점은 계단식 성장 대신 일상 안에 살아 숨 쉬는 흐름으로 재배치한다. 시작과 종료가 아니라 유지와 돌봄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기존 자기 계발서와 구별된다. 이런 해석은 외적 결과가 아닌 내적 리듬의 조율로 방향을 전환한다. 삶의 한 영역을 바라보는 새로운 기본 단위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정원이라는 개념이 성립하려면 반복 가능한 루틴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이 책은 커리어를 형성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루틴을 제시한다. 아침 글쓰기, 운동, 기록, 정보 정리 같은 사소한 반복이 결국 커리어의 뿌리를 만든다고 강조한다. 일은 일회적 과업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리듬이다. 성과가 아니라 패턴을 기반으로 삶을 구축하려는 접근은 당장 눈에 띄지 않지만 장기적 설계에 있어 설득력을 가진다. 루틴은 훈련이 아니라 방향성을 점검하는 일이다.


반복이 커리어를 구성한다면 그 안에서 실패는 반드시 포함된다. 저자는 실패를 성과의 반대 개념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실패는 방향을 수정하고 속도를 조정하는 구성 요소이며 반복의 일부이다. 그는 실패를 회피하거나 제거할 것이 아니라 리듬 속에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루틴이 축적의 기술이라면 실패는 그 안에 밀도를 부여하는 장치이다. 오류를 흡수하는 시스템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커리어의 바탕이 된다. 실패 없는 설계는 반복도 진전도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공유한다.



이처럼 실패를 포함하는 시선은 직업적 여정을 결과물이 아닌 환경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저자는 특정한 직무 능력이 아닌 자율성, 시간 구조, 공간 구성, 반복 가능성 등 일상의 조건들이 만들어내는 총합에 주목한다. 성과보다 환경이 중요하다는 관점은 커리어 가드닝이 제안하는 생태적 접근과 맞닿아 있다. 이는 직무 변경이나 이직보다 환경 설계를 우선하는 태도로 이어지며, 일의 총합이 아닌 삶의 배치로 일하는 방식을 재해석하도록 이끈다. 환경을 중심에 둘 때 나이 또한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저자는 정원처럼 평생 가꾸고 돌보아야 할 커리어를 반복과 관찰, 조정이라는 키워드로 재정의한다. 목표 달성과 성취를 중시하는 기존 자기 계발 담론과는 달리, 일상의 흐름 속에서 전문성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루틴과 태도에 집중한다. 작가는 자신의 길을 계획하거나 쟁취해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매일 돌보며 반응을 살피는 존재로 바라본다. 우리가 얼마나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진다. 작은 돌봄의 누적이 비로소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책의 전반부는 이러한 돌봄의 개념을 구체화하기 위해 루틴, 실패, 환경, 기록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직업적 삶을 해석한다. 일은 점프식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아니라 일관된 리듬과 반복 속에서 천천히 자리를 잡아가는 일상적인 흐름으로 그려진다. 후반부에 들어서면서는 나이, 조건, 태도와 같은 외적 기준 대신 자율성과 회복력을 중심에 둔 새로운 방향 설정 방식을 제안한다. 전체적인 흐름은 정적인 이론이 아니라 실행과 실천을 전제로 한 살아 있는 철학으로 구성된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나이를 기준으로 성장 가능성을 제한하는 통념에 이의를 제기한다. 중요한 것은 나이 자체가 아니라 반복 가능한 리듬을 설계하고 지속할 수 있는 실행력이다.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는 유연한 감각이, 젊은 사람에게는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시도와 학습이 요구된다. 나이는 변수일 뿐이며 커리어의 지속은 조건을 어떻게 조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생물학적 나이가 아닌 환경 조정 능력이 결정적이라는 관점은 커리어를 시간축이 아닌 태도와 시스템의 조합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나이와 무관한 성장의 조건으로 저자는 기록을 강조한다. 글쓰기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사고의 질서를 재정비하는 수단이다. 반복적으로 자신을 검토하고 감정과 경험을 언어화하는 과정은 곧 삶을 조직하는 능력으로 이어진다. 기록은 과거를 저장하는 행위가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기초 작업이다. 매일 쓰는 글은 일관된 리듬과 관찰력을 길러주는 장치가 되며 동시에 자기 인식의 도구로 작동한다. 기록하는 사람은 자신이 만든 흐름 안에서 자신을 다시 조율할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현재의 리듬을 점검하게 만든다. 무엇을 해야 할지보다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다. 루틴과 실패, 환경, 기록이 연결되며 일과 삶을 구성하는 조건들이 드러난다. 성취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자신이 설정한 구조와 리듬에 따라 형성되는 흐름이다. 경쟁과 성과 중심의 프레임을 벗어나 유지와 순환의 감각으로 전환할 수 있게 만든다. 일에 대해 질문한다는 것은 곧 내가 어떤 삶을 짜고 있는지를 되돌아보는 일이 되며, 그 질문은 반복적으로 던져져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정재경의 커리어 가드닝은 커리어를 단절 없는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싶은 사람에게 적합하다. 직무나 성과보다는 존재를 잃지 않은 채 어떻게 일하고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커리어를 다시 구성할 수 있는 언어와 감각을 제공한다. 특히 이직이나 경력 전환, 혹은 성장의 방향을 잃었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외적 결과가 아닌 내적 리듬을 중심으로 삶을 조율하는 관점을 얻을 수 있다. 경쟁보다 지속, 확장보다 순환을 중시하는 독자라면 이 책의 메시지에 깊이 공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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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베네딕토회 : 캐드펠 수사의 등장 캐드펠 수사 시리즈 21
엘리스 피터스 지음, 박슬라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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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엘리스 피터스의 특이한 베네딕토회 : 캐드펠 수사의 등장은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다. 하지만 에필로그라고 보기보단 프롤로그에 더 가깝다고나 할까? 총 세 편의 단편 소설로 엮여 있으며 지금까지 모든 시리즈 중에서 가장 그의 성격이 많이 드러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완벽하고 공평한 정의가 아니라 도덕적 공정한 정의에 가까운 그의 윤리관이 많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은 독자들에게 의외의 통쾌함을 선사하여 만족도가 최상에 가까워지는 효과가 있다.


엘리스 피터스의 특이한 베네딕토회 : 캐드펠 수사의 등장은 우드스톡으로 가는 길에 만난 빛, 빛의 가치, 목격자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온 캐드펠이 어떻게 슈루즈베리 수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두 번째 작품에서는 본질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며 마지막 스토리는 언제나 서로에게 불평과 불만만 가득한 아버지와 아들에게 위험이 닥쳤을 때 피의 진하기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렸다


개인적으로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읽으면서 12세기 중세 잉글랜드 무정부 시대의 역사를 매우 깊게 공부하였다. 물론 작중에 꾸준히 당시의 시대 상황이 나오기에 따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역사인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궁금해서 꽤 열심히 찾아보았다. 엘리스 피터스의 특이한 베네딕토회 : 캐드펠 수사의 등장에 수록된 작품은 각각의 시대를 한 토막씩 반영하고 있어 앞에서부터 꾸준히 읽어온 독자에게는 역사적 배경의 정리를 하는 단계로 적용되기도 한다.


먼저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헨리 1세가 전쟁을 끝내고 돌아온 후 모든 혈육이 풍랑으로 배가 전복되어 왕위를 이을 사람이 모드 황후 하나만 남는 것으로 시작한다. 캐드펠은 왕과 함께 십자군 전쟁에 나갔다가 돌아온 직후를 그렸으며 이때 그의 도덕관은 정의롭기는 하였지만 상당히 날 것에 가깝다는 것을 작품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나쁜 짓을 하는 주군에게 닥친 위험에 대하여 경고는 하되, 가해자는 알려주지 않는 묘한 그의 결정은 통쾌하지만 아쉬웠다.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의 대결에서 누가 승리했을지 궁금증 해소가 되지 않으니까.


독특하게도 이번 책에 수록된 두 작품 속 부인들은 모두 자신보다 직급은 낮지만, 남편보다 건장하고 젊은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희대의 나쁜 인간이 되지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인간의 욕망을 한 테이블에 올리면 한편으로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 돈에 팔려 자신보다 적게는 열 살, 많게는 쉰 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남편에게 충실하여야 하는 그녀들. 부부의 의무론 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정의의 칼날이 내려쳐야 하지만 인간의 심리적인 부분으로 재단하자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두 번째 작품부터는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가 격렬하게 정치적 싸움을 하던 시기이다. 이 작품에서는 기존의 작품과 달리 이런 정치적인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없지만, 이들의 행동으로 서민들의 생활이 피폐해져 있음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당장 굶어죽을 위기에 놓인 서민,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타인에게 빼앗다시피한 귀중품을 수도원에 기부하는 귀족,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약속을 저버리는 귀족들에게서 스스로 권리를 찾아야만 하는 서민들의 모습 등등에서. 



개인적으로 마지막 작품이 가장 인상 깊었다. 윌리엄은 슈루즈베리 수도원에서 지역민에게 빌려준 토지에 대한 세금을 징수하러 다니는 사람이다. 이런 그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둘 사이는 일촉즉발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좋지 않다. 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온 아들은 개차반에 가까워 감옥에 갈 위기에 놓여 있을 정도이며 이런 아들이 영 못마땅하여 속이 끓는 그였다. 아들은 그 나이 또래 아이들답게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읽지 못하고 멋대로 살아간다.


이런 윌리엄이 강도 살인 미수의 피해자가 된다. 아버지를 해한 범인을 찾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거는 아들 에드워드. 모든 사건이 해결된 후 장꾸끼가 발동한 캐드펠은 윌리엄에게 넌지시 아들 에디 흉을 보는데 그 이후는 독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가족의 흉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일지라도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해 준 작품이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스스로에게 위기가 몰려올 때 두 팔을 걷어붙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듯.


캐드펠이라는 인물은 베네딕토회 수도사이지만, 전직 군인이자 약초사라는 이중 정체성을 지닌다. 그는 사건을 해결하면서도 죄를 심판하기보다는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판단 기준은 교리보다 양심에 가깝고, 정의보다는 자비를 앞세운다. 이런 점이 그를 단순한 수도사가 아닌 시대의 양심으로 만들어준다. 왕권 쟁탈을 위해 나라가 두 개로 쪼개져 싸우면서 국민은 나 몰라라 하던 시기여서 더 가슴 깊이 다가온다. 이로 인해 종교적 엄격함보다는 인간적 온기를 전하는 인물로 독자에게 각인된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매 작품마다 인간의 내면을 흔들리는 시대와 연결해 보여준다. 신분, 성별, 나이, 상황을 막론하고 모든 인물은 갈등과 선택의 순간을 겪는다. 그리고 캐드펠은 그 순간마다 고정된 법이 아닌 유동적인 이해를 택한다. 이는 냉철한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현대의 독자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를 거듭 생각하게 만든다. 단죄와 용서, 법과 도덕, 질서와 연민 사이를 오가는 이 작품은 중세라는 배경 속에서도 현대의 딜레마를 되짚는다. 결국 누가 죄인인가 보다는 누가 사람인가를 묻는 작품으로 남는다.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중세의 혼란 속에서도 인간다움과 선택의 윤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이야기다. 정치와 종교, 도덕과 감정이 얽힌 시대 속에서 캐드펠은 매번 타인의 고통을 자기 일처럼 받아들이며 따뜻한 해법을 모색한다. 이 시리즈는 추리물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단죄가 아니라 이해로, 심판이 아니라 공감으로 향하는 매 권의 결말은 언제나 시대를 초월한 바람직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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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고 - 세계사를 훔친 오류와 우연의 역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글루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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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리는 흔히 활자로 기록된 역사를 있는 그대로 믿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슈테판 츠바이크의 유작 아메리고에서는 이 믿음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아메리카 대륙에게 자신의 이름을 나누어준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야기를 통하여 고발하고 있다. 그는 세계사를 훔친 오류와 우연의 역사가 어떻게 만들어지며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논리적으로 그리고 있다. 과연 아메리카 땅을 발견한 적도 없는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어쩌다가 그 큰 땅에 명성을 기록했을까?


슈테판 츠바이크의 아메리고는 1000 년 세상의 종말론이 대두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로 인하여 낙원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1503년 어느 날 알베리쿠스 베스푸치우스라는 사람이 쓴 신세계라는 팸플릿이 도시에 날아든다. 세상 어디에서도 평화를 찾을 수 없던 사람들에게 위의 문구가 적힌 그의 팸플릿은 곧바로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새로운 땅에 대한 소망은 처음에 부와 명예보다는 종교적 염원과 평화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이후 학자들이 모여 새롭게 찾은 땅을 기록하기 위하여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을 수정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이 땅을 아메리카로 명명한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학교를 세워준 백작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스스럼없이 실제 사건보다는 날조된 내용을 기록한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실제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를 옹호하는 쪽과 베스푸치를 옹호하는 쪽이 모여 이 자료에 대한 진실성 여부를 두고 치열하게 싸운다. 증거를 들이밀면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아메리고는 세계사 이야기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알려진 자료들을 통하여 아메리카라는 이름의 근원을 찾아올라 가는 탐사 기록에 가깝다. 애초에 왜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서 콜롬비아라고 명명하지 않았는지, 왜 하필이면 아메리고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고 이름을 지었는지를 하나씩 자료를 통하여 따져간다. 세계사를 훔친 오류와 우연의 역사라는 소제목만 보면 철저히 베스푸치에게 불이익을 논할 것 같은 제목이지만 저자는 철저히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1장부터 3장까지는 기존의 항해 역사와 베스푸치의 여행 그리고 아메리카가 탄생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가 여러 곳에 보낸 수많은 보고서 형식의 편지와 일기부터 파헤치는데 그 내용에 오류가 심각하다. 가장 먼저 날짜를 2년씩 조절한 것도 있었으며 많은 이가 자신이 하지도 않은 여행을 언급한 책을 찍어내고 있을 때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야말로 자신의 명성을 위하여 일부러 자료를 조작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보며 혼자서 만족했을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4장으로 넘어가면서 아메리카에 대한 논쟁이 시작된다. 철저히 베스푸치를 옹호하는 이들이 그간의 의혹을 잠재우기 위하여 조사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범죄 사실만 더 드러낸다. 반면에 콜럼버스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단순히 베스푸치의 악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능성까지 제시하면서 의심을 내비친다. 덕분에 그동안 죽음마저 외롭게 맞이해야 했던 콜럼버스의 명성이 다시 부활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미 당사자들은 하늘의 별이 된지 오래인데 말이다.



5장으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콜럼버스와 베스푸치와의 대결이 시작되는데 그 과정이 굉장히 코믹하다. 왜냐하면 생전에 당사자들의 관계와 주변인의 관계에서 온도 차이가 현저하게 다름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문제로 재판까지 열리는데 상세한 내용은 책으로 접해보길 추천한다. 여기까지가 실질적인 증거에 의한 츠바이크의 해석이다. 남아 있는 자료는 매우 미흡했고, 말만 분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장에서 저자는 베스푸치 자체를 탐구한다.



마지막 6장에 넘어오면 베스푸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조명한다. 사실, 앞부분이 굉장한 흥미를 끄는 내용이었다면 6장은 독자가 그에게 연민을 느끼고 공감을 하게 만드는 파트였다. 41살에 실직자가 되었고, 집도, 아내도, 자녀도 없는 그가 먹고살기 위하여 찾은 직업이 항해사였다. 물론 처음에는 이름도 없는 한 사람으로 탑승하지만 돌아올 때는 멋진 항해사로 거듭났다. 이후 9년이 지난 후 드디어 가정을 이루었으나 그가 죽을 때는 매우 가난하였다. 



남북 아메리카의 대륙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대단한 명성을 가졌지만 그에게 주어진 것은 가난이 전부였다는 아이러니함을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역사를 전복시킬 정도의 영향력이 있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자료들을 통하여 심리학적으로 저자는 해석한다. 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그가 쓴 편지 중 일부를 분석하면 그는 매우 성실하고 정직하며 조용한 편이지만, 다른 편지에서는 거짓말쟁이에 명예욕이 넘쳐나며, 사기꾼 기질이 다분하다고 나온다. 그야말로 몸통 하나에 두 명의 사람이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 책은 단순히 한 인물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인간의 욕망이 작용하여 발생한 오류와 우연이 어떻게 대륙의 명칭을 정하고, 한 사람을 역사에 새겨 넣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이 치밀한 탐사를 통하여 우리가 믿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불확실한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를 드러낸다. 세계사를 훔친 오류와 우연의 역사라는 부제는 역사가 늘 진실만을 말해주는 건 아니라는 냉정한 고발이기도 하다.



세계사를 훔친 오류와 우연의 역사를 그린 슈테판 츠바이크의 유작 아메리고는 단순한 전기나 역사 해설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어떻게 조작되고, 반복되며, 어느새 진실이 되어버리는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역사는 늘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때로는 실수와 무관심, 그리고 작은 인쇄물 하나가 세계사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니 역사를 읽는다는 건 그 허술함을 인정하고도 다시 들여다보려는 태도를 배우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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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수사의 참회 캐드펠 수사 시리즈 20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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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글로스터의 로버트 백작의 아들 필립은 스티븐 왕의 침입에 아버지인 로버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상황에 눈을 돌린다. 더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필립은 아버지를 배신하고 스티븐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필립의 아래에는 캐드펠의 아들인 올리비에가 있었다. 이 항복 때 자신의 지조를 버린 이들은 그대로 필립의 아래에서 스티븐 왕을 위해 싸웠으나 그렇지 못한 이들은 모두 포로가 되었다. 올리비에도 포로였다.



이때는 포로가 되면 가족이나 그가 충성하던 주인이 돈을 주고 포로에서 해방시켜주는 형식을 취했다. 따라서 모든 포로는 현재 누구에게 붙잡혀 있는지 알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올리비에의 행방은 묘연했다. 이를 알게 된 캐드펠은 수도원장께 말하고 아들을 찾으러 나선다. 이때 수도원장은 돌아올 날짜를 지키지 않으면 더는 우리 수도회의 사람이 아니라고 못 박는다. 이렇게 도착한 회의장에서 아들의 소식은커녕 살인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심지어 가해자로 몰린 사람은 억울한 이브 위고넹이었는데...




<역사적 배경 설명>


모드 왕후가 마틸다 왕비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도망간다. 이때 마틸다 진영의 수장 로버트 오브 글로스터가 포로로 잡혔고, 1141년 말 스티븐과 로버트는 맞교환되며 스티븐 왕이 복권되었다. 곧 조프루아 5세가 노르망디를 침공하면서 마틸다 진영은 잉글랜드에 고립되었고 귀족들은 이탈하기 시작했다. 주화 통제권도 무너져 지역 주교와 영주들이 자체 화폐를 찍는 등 왕권이 극도로 약화되었다. 한편 제프리 드 맨더빌은 수도원을 점거하고 약탈을 일삼다 1144년 전사했다.



1144년 초 조프루아가 루앙에 입성해 노르망디 전역을 장악하고 프랑스 왕의 공인을 받자, 스티븐은 용병과 측근 의존도를 높이며 내전을 이어갔다. 1143년 모드 황후 진영의 핵심 장수 마일즈가 사고사하고, 1145년 스티븐은 패링던을 점령해 마틸다 세력을 서부 전선에서 고립시켰다. 같은 해 말, 글로스터의 로버트의 아들 필립 피츠로버트가 스티븐에게 귀순해 콘월 백작 부부를 생포해 넘겼으나, 스티븐은 명분을 위해 이들을 석방했다. 이에 감명받은 레지널드는 스티븐과 화해했고, 백작 작위를 공식 인정받았다. 


위 역사적 배경은 중세 잉글랜드의 상황을 11권 이후 20권 사이에 있었던 일을 짧게 요약한 것이다.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12세기 영국의 무정부 시기의 역사를 그대로 품도 있어 역사 추리 소설이라고도 한다. 실제 사건과 실제 인물이 그대로 등장하기 때문에 첫 권부터 진득하게 읽기만 하여도 당시의 영국 상황을 모두 알 수 있다. 게다가 이 당시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왕가의 거듭된 배반은 한 치 앞을 모르는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의 싸움은 독자를 더욱 즐겁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캐드펠 수사의 참회에서는 그가 세상을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로 맹세한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게 된다. 바로 아들의 생사를 알 수 없다는 소식 때문이다. 이에 지금까지 모든 사람에게 비밀로 하였던 아들의 존재를 라둘푸스 수도원장에게 털어놓고 올리비에를 찾으러 나선다. 이 과정에서 필립을 만나게 되면서 작품은 캐드펠과 올리비에, 글로스터의 로버트 백작과 필립의 구도로 자리를 잡아간다. 양쪽 다 부자지간이지만 각자의 행동이 매우 달라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달까?



먼저 백작과 필립의 경우에는 아버지의 도움 거부로 인해 스스로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왕을 배반하고 스티븐 아래로 들어간다. 이후 둘은 냉각 상태를 맞이하고 서로에게 단 한 마디도 건네지 않은 채 완전히 멀어진다. 그런데 캐드펠은 다르다. 단 하루도 아들과 함께하지 못했지만 그 아들을 위해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고 기꺼이 수도복을 벗을 각오를 한다. 이를 지켜본 필립은 자신에게는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아버지라는 개념과 처음 마주하게 된다. 그때부터 이야기는 단순한 수사극을 벗어나 전쟁과 혈연, 믿음과 후회가 얽힌 묵직한 이야기로 넘어한다.



범인은 마지막에 겨우 나타날 정도로 풀기 어려운 살인은 일어났고, 이브는 포로가 되었고, 올리비에는 실종되었다. 이번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권력을 위하여 싸움을 벌이는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나쁜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모두 이해가 되며 안쓰럽기 그지없을 뿐이다. 심지어 살인자까지도. 게다가 단순한 배신자인 줄 알았던 필립에게는 생각보다 큰 대의가 존재했었기에 어떤 면에서는 이번 20권에서 가장 멋진 인물로 기억된다. 로맨스 소설의 남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래서 이야기가 풀어나갈수록 독자의 감정 이입은 더욱 커지고 모두가 필립의 편에 서서 그를 응원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역사 추리 소설답게 모든 스토리를 알고 있지만 작가가 끼워 넣은 모종의 사건들과 그녀의 필력 덕분에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지는 아이러니를 느낀다. 과연 캐드펠은 이번 사건에서 아들도, 필립도, 이브도 구하고, 범인도 잡은 후 무사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마지막 권이기에 작가는 그를 다시 속세로 돌려보냈을까?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 20권 캐드펠 수사의 참회는 지금까지 읽었던 열한 권의 이야기와 달리 정말 마음을 졸이면서 읽었다. 가운데 건너뛴 이야기들이 궁금하여 이번에 예스24에서 주간 우수 리뷰로 선정되어 받은 포인트에 조금 더 보태서 바로 캐드펠 수사 시리즈 로얄 컴플리트 에디션 박스 세트를 구매했다. 나머지 여덟 권은 조금 더 천천히 내용을 음미하면서 이번 여름 더위를 날려줄 친구로 함께 할 예정이다. 중복된 세 권은 조만간 블로그 이벤트로 나눔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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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미스터리 캐드펠 수사 시리즈 1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손성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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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실제 사건과 실제 인물이 등장하는 역사 추리 소설인 캐드펠 시리즈의 새로운 시리즈가 출간되었다. 기존에 10권까지 출간되었으나 이번에 나머지 11권이 더해져 완결본이 나왔다.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시리즈 11 위대한 미스터리는 기존의 작품과 결이 조금 달라 시리즈를 읽는 사람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그 소재는 기존의 내용보다 더 충격적이고, 더 인간적이어서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럼 이번에는 캐드펠이 어떤 활약을 하는지 살펴보자.



헨리 1세(11세기)는 왕좌를 딸 마틸다에게 물려주지만 그가 죽자마자 스티븐 왕이 왕위를 찬탈한다. 이후 모드 황후는 프랑스로 피신을 가고 각자 지지하는 세력들과 결탁하여 싸운다. 모드 황후는 스티븐 왕을 이겨 그를 가두는데 성공하지만 거만함으로 인하여 시민들에게 지지를 얻지 못한다. 이번 이야기는 시민들에 의해 쫓겨난 모드 황후와 중간에 배신을 했다가 다시 돌아온 헨리 주교와의 전쟁이 주 배경이다. 이 싸움으로 인하여 모드 황후의 피해는 극심해졌으며 자신의 오른팔인 글로스터의 로버트 백작이 포로로 잡힌다.



북하우스에서 출간한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시리즈 11권 위대한 미스터리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1411년 8월 평온한 슈루즈베리이지만 다른 쪽은 지금 모드 황후와 헨리 주교 및 마틸다 왕비의 군대가 싸우고 있다. 이곳에서 피난을 온 휴밀리스 수사와 벙어리 피데일리스 수사. 휴밀리스는 젊은 시절 십자군 전쟁에 나갔다가 불구가 될 정도로 큰 상처를 입고 돌아온다. 한 여자와 약혼을 하고 갔으나 이 상처로 인하여 그는 수도원에 몸을 맡기고 혼인을 파기해 버린다.



파혼 후 3년이 지난 어느 날 휴밀리스의 과거 부하가 줄리언과의 결혼 승낙을 위해 그를 찾아온다. 흔쾌히 승낙하여 그는 그녀의 집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약혼녀 줄리언 크루스는 이 파혼 소식을 듣고 수녀원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네 명의 하인과 재물을 싣고 수녀원으로 떠나지만 이후 행방이 묘연해진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수녀원에서는 그녀가 오지 않았다고 하여 결국 혐의는 네 명의 하인에게 돌아가는데...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 그 이상의 내용이 기다리고 있는 위대한 미스터리이다.



북하우스에서 재출간한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 11권 위대한 미스터리는 기존의 작품과 달리 캐드펠이 얌전한 편이다. 10권까지 그는 수도원 내에 있는 시간보다 온갖 동네 일을 해결하기 위하여 마을 밖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60%가 지나도록 수도원 안에만 머무는 특징이 있다. 덕분에 독자들은 이후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져 마지막에 사건을 해결할 때에 카타르시스가 몇 배에 달하게 만든다.



그는 손수 사건에 몸을 던지던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사건의 흐름을 관찰하는 위치에 서 있다. 이런 그의 캐릭터 변화는 오히려 독자들에게 사건 발생의 시점을 유추할 수 없어 더 큰 긴장감을 준다. 이런 그의 행동 장치는 사건의 전개를 더욱 예측할 수 없게 만들어 10권 이후 다음 책의 출간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독자들에게 선물처럼 다가온다. 캐드펠의 깊은 통찰이 마침내 빛을 발하는 순간 그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짜릿하게 해소된다.



이번 작품에서 중요한 점은 죽음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죽음이 전통적인 살인 사건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모든 사람이 실종된 약혼녀의 행방을 알기 위하여 노력하면서 점차 사건은 그녀의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것으로 흐른다. 작가의 트릭이 매우 강하여 독자마저도 눈앞에 뿌려진 단서를 보기보다 행정 장관 휴 등의 수사를 따라가기 급급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녀가 범죄의 피해자가 아님을 알게 된다.



눈치가 빠른 분은 아시겠지만 문제는 그 이유와 그녀의 행방이다. 나쁜 사람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 발생한 사건은 모든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결국, 사건의 진상을 풀어가는 과정은 사람들 간의 오해와 착각이 얽혀 있는 미로와도 같고, 그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 나가는 캐드펠의 모습을 통해 독자는 인간 심리의 미세한 변화를 포착하게 된다. 이 사건은 단순한 범죄를 넘어서, 각 인물들이 숨기고 있는 깊은 감정과 상처를 드러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엉뚱한 피해자가 발생한다. 바로 아내에게 이용당하고 버림받아 상처로 얼룩진 유리언 수사이다. 수도원 내에서 성추행을 일삼는 그의 행태에 독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더는 등장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결말까지 읽고 나면 그 또한 어떤 사건의 피해자임이 드러난다.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독자는 그의 행동들에 대하여 용서할 수는 없지만 애처로운 눈길로 그를 바라볼 여지를 가질 수 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블랙 코미디에 가까우니 이 부분은 작가의 서비스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작품 속에는 상처를 입은 사람이 이름 있는 등장인물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정치 싸움에 휘말려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이유도 모른 채 죽은 자와 남겨진 가족들까지 셀 수 없는 피해자가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 마지막에 캐드펠이 던지는 남은 자의 상실에 대한 회복의 한 마디는 독자는 칼을 들고 싸우는 중세 영국에서 현실로 끌고 나온다. 죽음을 향해 힘껏 달리는 우리의 삶도 상실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도 회복은 가능하다는 그의 한 마디는 마치 어두운 터널 끝에 빛을 비추는 등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 11권 위대한 미스터리의 포맷은 기존과 달라졌지만 캐드펠의 통찰은 오히려 더 날카롭고 깊어졌다. 읽고 나면 가벼움보다는 중세의 사건을 통해 현대 삶에 대한 지혜를 얻으며 묵직함이 남는다. 그의 깊은 사고는 단순한 추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각 사건마다 숨겨진 인간의 감정선과 철학적 고민이 드러나며 그 안에서 우리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추리 소설의 계절이 왔다. 단순히 흥미 위주로 흐르지 않고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기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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