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고 - 세계사를 훔친 오류와 우연의 역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글루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리는 흔히 활자로 기록된 역사를 있는 그대로 믿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슈테판 츠바이크의 유작 아메리고에서는 이 믿음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아메리카 대륙에게 자신의 이름을 나누어준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야기를 통하여 고발하고 있다. 그는 세계사를 훔친 오류와 우연의 역사가 어떻게 만들어지며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논리적으로 그리고 있다. 과연 아메리카 땅을 발견한 적도 없는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어쩌다가 그 큰 땅에 명성을 기록했을까?


슈테판 츠바이크의 아메리고는 1000 년 세상의 종말론이 대두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로 인하여 낙원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1503년 어느 날 알베리쿠스 베스푸치우스라는 사람이 쓴 신세계라는 팸플릿이 도시에 날아든다. 세상 어디에서도 평화를 찾을 수 없던 사람들에게 위의 문구가 적힌 그의 팸플릿은 곧바로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새로운 땅에 대한 소망은 처음에 부와 명예보다는 종교적 염원과 평화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이후 학자들이 모여 새롭게 찾은 땅을 기록하기 위하여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을 수정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이 땅을 아메리카로 명명한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학교를 세워준 백작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스스럼없이 실제 사건보다는 날조된 내용을 기록한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실제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를 옹호하는 쪽과 베스푸치를 옹호하는 쪽이 모여 이 자료에 대한 진실성 여부를 두고 치열하게 싸운다. 증거를 들이밀면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아메리고는 세계사 이야기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알려진 자료들을 통하여 아메리카라는 이름의 근원을 찾아올라 가는 탐사 기록에 가깝다. 애초에 왜 콜럼버스의 이름을 따서 콜롬비아라고 명명하지 않았는지, 왜 하필이면 아메리고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고 이름을 지었는지를 하나씩 자료를 통하여 따져간다. 세계사를 훔친 오류와 우연의 역사라는 소제목만 보면 철저히 베스푸치에게 불이익을 논할 것 같은 제목이지만 저자는 철저히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1장부터 3장까지는 기존의 항해 역사와 베스푸치의 여행 그리고 아메리카가 탄생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가 여러 곳에 보낸 수많은 보고서 형식의 편지와 일기부터 파헤치는데 그 내용에 오류가 심각하다. 가장 먼저 날짜를 2년씩 조절한 것도 있었으며 많은 이가 자신이 하지도 않은 여행을 언급한 책을 찍어내고 있을 때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야말로 자신의 명성을 위하여 일부러 자료를 조작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보며 혼자서 만족했을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4장으로 넘어가면서 아메리카에 대한 논쟁이 시작된다. 철저히 베스푸치를 옹호하는 이들이 그간의 의혹을 잠재우기 위하여 조사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범죄 사실만 더 드러낸다. 반면에 콜럼버스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단순히 베스푸치의 악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능성까지 제시하면서 의심을 내비친다. 덕분에 그동안 죽음마저 외롭게 맞이해야 했던 콜럼버스의 명성이 다시 부활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미 당사자들은 하늘의 별이 된지 오래인데 말이다.



5장으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콜럼버스와 베스푸치와의 대결이 시작되는데 그 과정이 굉장히 코믹하다. 왜냐하면 생전에 당사자들의 관계와 주변인의 관계에서 온도 차이가 현저하게 다름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문제로 재판까지 열리는데 상세한 내용은 책으로 접해보길 추천한다. 여기까지가 실질적인 증거에 의한 츠바이크의 해석이다. 남아 있는 자료는 매우 미흡했고, 말만 분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장에서 저자는 베스푸치 자체를 탐구한다.



마지막 6장에 넘어오면 베스푸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조명한다. 사실, 앞부분이 굉장한 흥미를 끄는 내용이었다면 6장은 독자가 그에게 연민을 느끼고 공감을 하게 만드는 파트였다. 41살에 실직자가 되었고, 집도, 아내도, 자녀도 없는 그가 먹고살기 위하여 찾은 직업이 항해사였다. 물론 처음에는 이름도 없는 한 사람으로 탑승하지만 돌아올 때는 멋진 항해사로 거듭났다. 이후 9년이 지난 후 드디어 가정을 이루었으나 그가 죽을 때는 매우 가난하였다. 



남북 아메리카의 대륙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대단한 명성을 가졌지만 그에게 주어진 것은 가난이 전부였다는 아이러니함을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역사를 전복시킬 정도의 영향력이 있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자료들을 통하여 심리학적으로 저자는 해석한다. 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그가 쓴 편지 중 일부를 분석하면 그는 매우 성실하고 정직하며 조용한 편이지만, 다른 편지에서는 거짓말쟁이에 명예욕이 넘쳐나며, 사기꾼 기질이 다분하다고 나온다. 그야말로 몸통 하나에 두 명의 사람이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 책은 단순히 한 인물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인간의 욕망이 작용하여 발생한 오류와 우연이 어떻게 대륙의 명칭을 정하고, 한 사람을 역사에 새겨 넣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이 치밀한 탐사를 통하여 우리가 믿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불확실한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를 드러낸다. 세계사를 훔친 오류와 우연의 역사라는 부제는 역사가 늘 진실만을 말해주는 건 아니라는 냉정한 고발이기도 하다.



세계사를 훔친 오류와 우연의 역사를 그린 슈테판 츠바이크의 유작 아메리고는 단순한 전기나 역사 해설이 아니다.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어떻게 조작되고, 반복되며, 어느새 진실이 되어버리는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역사는 늘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때로는 실수와 무관심, 그리고 작은 인쇄물 하나가 세계사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니 역사를 읽는다는 건 그 허술함을 인정하고도 다시 들여다보려는 태도를 배우는 일이 아닐까?



#아메리고

#슈테판츠바이크

#세계사를훔친오류와우연의역사

#이글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