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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베네딕토회 : 캐드펠 수사의 등장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21
엘리스 피터스 지음, 박슬라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엘리스 피터스의 특이한 베네딕토회 : 캐드펠 수사의 등장은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다. 하지만 에필로그라고 보기보단 프롤로그에 더 가깝다고나 할까? 총 세 편의 단편 소설로 엮여 있으며 지금까지 모든 시리즈 중에서 가장 그의 성격이 많이 드러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완벽하고 공평한 정의가 아니라 도덕적 공정한 정의에 가까운 그의 윤리관이 많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은 독자들에게 의외의 통쾌함을 선사하여 만족도가 최상에 가까워지는 효과가 있다.
엘리스 피터스의 특이한 베네딕토회 : 캐드펠 수사의 등장은 우드스톡으로 가는 길에 만난 빛, 빛의 가치, 목격자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온 캐드펠이 어떻게 슈루즈베리 수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두 번째 작품에서는 본질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며 마지막 스토리는 언제나 서로에게 불평과 불만만 가득한 아버지와 아들에게 위험이 닥쳤을 때 피의 진하기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렸다
개인적으로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읽으면서 12세기 중세 잉글랜드 무정부 시대의 역사를 매우 깊게 공부하였다. 물론 작중에 꾸준히 당시의 시대 상황이 나오기에 따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역사인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궁금해서 꽤 열심히 찾아보았다. 엘리스 피터스의 특이한 베네딕토회 : 캐드펠 수사의 등장에 수록된 작품은 각각의 시대를 한 토막씩 반영하고 있어 앞에서부터 꾸준히 읽어온 독자에게는 역사적 배경의 정리를 하는 단계로 적용되기도 한다.
먼저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헨리 1세가 전쟁을 끝내고 돌아온 후 모든 혈육이 풍랑으로 배가 전복되어 왕위를 이을 사람이 모드 황후 하나만 남는 것으로 시작한다. 캐드펠은 왕과 함께 십자군 전쟁에 나갔다가 돌아온 직후를 그렸으며 이때 그의 도덕관은 정의롭기는 하였지만 상당히 날 것에 가깝다는 것을 작품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나쁜 짓을 하는 주군에게 닥친 위험에 대하여 경고는 하되, 가해자는 알려주지 않는 묘한 그의 결정은 통쾌하지만 아쉬웠다.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의 대결에서 누가 승리했을지 궁금증 해소가 되지 않으니까.
독특하게도 이번 책에 수록된 두 작품 속 부인들은 모두 자신보다 직급은 낮지만, 남편보다 건장하고 젊은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희대의 나쁜 인간이 되지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인간의 욕망을 한 테이블에 올리면 한편으로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 돈에 팔려 자신보다 적게는 열 살, 많게는 쉰 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남편에게 충실하여야 하는 그녀들. 부부의 의무론 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정의의 칼날이 내려쳐야 하지만 인간의 심리적인 부분으로 재단하자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두 번째 작품부터는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가 격렬하게 정치적 싸움을 하던 시기이다. 이 작품에서는 기존의 작품과 달리 이런 정치적인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없지만, 이들의 행동으로 서민들의 생활이 피폐해져 있음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당장 굶어죽을 위기에 놓인 서민,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타인에게 빼앗다시피한 귀중품을 수도원에 기부하는 귀족,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약속을 저버리는 귀족들에게서 스스로 권리를 찾아야만 하는 서민들의 모습 등등에서.
개인적으로 마지막 작품이 가장 인상 깊었다. 윌리엄은 슈루즈베리 수도원에서 지역민에게 빌려준 토지에 대한 세금을 징수하러 다니는 사람이다. 이런 그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둘 사이는 일촉즉발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좋지 않다. 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온 아들은 개차반에 가까워 감옥에 갈 위기에 놓여 있을 정도이며 이런 아들이 영 못마땅하여 속이 끓는 그였다. 아들은 그 나이 또래 아이들답게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읽지 못하고 멋대로 살아간다.
이런 윌리엄이 강도 살인 미수의 피해자가 된다. 아버지를 해한 범인을 찾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거는 아들 에드워드. 모든 사건이 해결된 후 장꾸끼가 발동한 캐드펠은 윌리엄에게 넌지시 아들 에디 흉을 보는데 그 이후는 독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가족의 흉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일지라도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해 준 작품이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스스로에게 위기가 몰려올 때 두 팔을 걷어붙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듯.
캐드펠이라는 인물은 베네딕토회 수도사이지만, 전직 군인이자 약초사라는 이중 정체성을 지닌다. 그는 사건을 해결하면서도 죄를 심판하기보다는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판단 기준은 교리보다 양심에 가깝고, 정의보다는 자비를 앞세운다. 이런 점이 그를 단순한 수도사가 아닌 시대의 양심으로 만들어준다. 왕권 쟁탈을 위해 나라가 두 개로 쪼개져 싸우면서 국민은 나 몰라라 하던 시기여서 더 가슴 깊이 다가온다. 이로 인해 종교적 엄격함보다는 인간적 온기를 전하는 인물로 독자에게 각인된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매 작품마다 인간의 내면을 흔들리는 시대와 연결해 보여준다. 신분, 성별, 나이, 상황을 막론하고 모든 인물은 갈등과 선택의 순간을 겪는다. 그리고 캐드펠은 그 순간마다 고정된 법이 아닌 유동적인 이해를 택한다. 이는 냉철한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현대의 독자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를 거듭 생각하게 만든다. 단죄와 용서, 법과 도덕, 질서와 연민 사이를 오가는 이 작품은 중세라는 배경 속에서도 현대의 딜레마를 되짚는다. 결국 누가 죄인인가 보다는 누가 사람인가를 묻는 작품으로 남는다.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중세의 혼란 속에서도 인간다움과 선택의 윤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이야기다. 정치와 종교, 도덕과 감정이 얽힌 시대 속에서 캐드펠은 매번 타인의 고통을 자기 일처럼 받아들이며 따뜻한 해법을 모색한다. 이 시리즈는 추리물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단죄가 아니라 이해로, 심판이 아니라 공감으로 향하는 매 권의 결말은 언제나 시대를 초월한 바람직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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