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잔혹사 - 약탈, 살인, 고문으로 얼룩진 과학과 의학의 역사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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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에 과학계에 핼리혜성처럼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날아온 책인 주기율표에 얽힌 역사 이야기인 '사라진 스푼'이라는 책을 기억하는가? 당시 이 책을 읽고 한동안 학교 다닐 때 그토록 외우기 힘들었던 주기율표를 성인이 되어 줄기차게 외웠던 기억이 있다. 이후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어느 날 굉장히 익숙한 저자의 이름이 들려왔다. 바로 샘 킨. 홀로 전율을 하면서 오늘 읽은 과학 잔혹사의 저자이다. 사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과학과 역사라는 키워드가 붙었을 때 무조건 싫어하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 한다.


얼마 전 뱅하민 라바투트의 매니악에 대하여 소개한 적이 있다. 책의 절반 이상의 비중이 조니 폰 노이만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과학 잔혹사라고 하기에 과학적인 개발로 인하여 인류를 해친 내용이 주를 이룰 줄 알았는데 완벽하게 예상이 빗나갔다. 오히려 과학이라는 것에 함몰되어 인간성을 버려 끝이 비참한 과학자들의 생애와 그 피해자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당연하게 이들의 발견, 비인간적 선택, 검증은 베이스로 깔려 있지만, 그것보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한 그 이면의 스토리가 훨씬 재밌었다. 그럼 몇 가지만 소개해 볼까 한다.


노예 무역의 참상에 치를 떨었지만, 연구비 충당을 위하여 결국은 노예 무역에 손을 댄 18세기 영국의 헨리 스미스먼의 이야기가 나온다. 박물학 학자였고, 흰개미집 연구로 명성을 쌓은 사람이다. 이 사람에 대하여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실질적 책의 내용은 이렇게 요약을 한다고 제대로 알 수가 없으니 직접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스미스먼이 흰개미집을 연구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 너무 놀라워 공유하고 싶어서 소개한다. 이 책에는 매 챕터마다 이렇게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이게 만드는 에피소드들이 여러 개 나오는데 오늘은 딱 세 개만 소개하려고 한다.


먼저 우리는 농업 혁명이 사피엔스의 전유물처럼 여긴다. 게다가 이 농업 혁명은 인간에게 더 많이 일하고 덜 건강하고 더 불행하게 하는 지상 최대의 사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농업이 사피엔스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한다면 믿겠는가? 그렇다. 스미스먼이 흰개미집을 연구하다가 개미가 6천만 년 전부터 농사를 지어왔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심지어 개미들이 작물을 기른 이유도 인간처럼 식량을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마 호기심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과학 잔혹사'라는 책에 손이 근질거릴 것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로 눈을 반짝이면서 읽었던 부분도 소개한다. 과거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의과대학에 해부용 시신이 많이 부족했다고 한다. 대안으로 도굴꾼들이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고, 나중에는 더 심한 범죄로 이를 충당했다고 한다. 좀 웃겼던 것은 남의 무덤을 파헤치는 것보다 시신에 있는 수의나 보석을 훔치는 것이 더 중죄로 인정되어 사형 선고를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몇 푼을 받기 위하여 밤새 타인의 무덤은 파헤쳐도 그 안에서 나오는 물건은 모두 놓고 갔다고. 심지어 당시 한 건당 금액도 그리 높지 않아 저 물건들이 더 가치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나중에 이것이 문제가 되면서 결국은 구빈원과 무연고자 시신만 의과대학으로 보내기로 하였는데 삶에 의한 생물학적인 변화로 인하여 장기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결국은 기증으로 흘러간다. 자! 그럼 역사상 최초로 자신의 시신을 기증한 사람이 누구일까?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공리주의를 주창한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다. 인류를 위하여 자신의 사후까지 기증한 철학자라니 생전의 모습을 사후에도 실천하려는 것 같아 인상 깊었다. 정말 공리주의가 무엇인지 철저하게 실천으로 증명한 사람이지 않을까 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에피소드는 우리에게 CSI, NCIS, FBI, SUV 등등 온갖 알파벳이 난무하는 범죄과학 드라마를 연상케하는 스토리이다. 심지어 그 배경은 하버드 대학교 의과대학이었으며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하버드대 의학과 출신이었다. 둘 사이가 그렇게 좋은 사이는 아니었는데 어느 날 피해자가 가해자를 만나고 난 후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아무리 찾아도 없는데 어이없게 이곳의 수위가 억울하게 의심을 받게 되어 이를 벗어나기 위하여 가해자의 사무실을 뒤지다가 머리가 없는 시신을 발견한다.


당시에는 계급론이 있어 같은 계급끼리는 어지간하면 건드리지 않는 계급 동맹이 관례라고 하였다. 배심원을 제외한 모두가 하버드대 졸업생이었던 것. 심지어 판사는 우리에게 꽤 친숙한 사람과 관련이 있었다. 바로 모비딕의 저자 허먼 멜빌의 장인이었던 것. 모든 사람들은 당연하게 수위가 억울하게 누명을 쓸 줄 알았다. 계급도 낮고 그들만의 리그였으니까. 게다가 시체에 머리가 없고 심하게 타서 신원확인이 어려워 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여기서 치과 의사와 해부학자들의 활약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치아가 틀니였는데 이 틀니에 열을 가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깔끔하게 설명하는 법의 치과학의 진면목으로 법정은 시작이 된다. 게다가 해부학에 도가 튼 학자들은 난도질한 사람이 누구이든 의학과 해부학에 능통한 자라는 것을 증명하였고, 수위는 이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은 계급 동맹이 깨지면서 가해자인 교수가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에 처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법의학의 초기 역사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것은 과학자들과 의학자들이 윤리 의식을 잃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아마 눈치가 빠른 분이라면 작가가 이야기를 굉장히 매끄럽고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썼다는 것을 알 것이다. 즉, 지루하기 짝이 없는 역사적, 전문적 용어가 아니라 어느 누가 보더라도 이해하기 쉽고 빠져들기 쉽게 내용이 전개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앞으로 더 먼 미래에 인류에게 어떤 범죄가 발생할 수 있을지에 대한 예시를 들면서 책은 마무리된다. 이것이 단순 공상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을 대입하여 든 예시여서 굉장히 신빙성 있게 느껴졌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문장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은 훌륭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이 지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훌륭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은 인성이다."

샘 킨의 과학 잔혹사 중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 인용문 p. 436


이 말은 프롤로그를 들어가기 전에도 나오며 12개의 에피소드가 끝난 후 결론에서 또 한 번 나온다. 즉, 작가가 이 책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말을 가장 잘 축약해 놓은 인용문인 것이다. 책의 과학자들은 의외로 돈이나 명성보다 지식 욕구에 의해 범죄를 저지르는 경향이 있었다. 범죄의 내용도 굉장히 다양했는데 앞서 소개한 것과 같이 노예 무역부터 시작하여 도둑질, 모함, 동물 고문 및 살해, 비인간적 실험, 성별 교체, 각종 말도 안 되는 수술, 사기, 세뇌, 살인 등등 그 유형도 굉장히 다양했다.


얼음송곳으로 정신적으로 아픈 환자에게 뇌 수술을 너무나 가볍게 진행한 의사 얘기를 보면서 수재나 캐헐런의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가 떠올랐다. 딱히 병명과 증세를 확실하게 설명하지도 못하면서 일단 가두고 약을 먹이고 뇌엽 절제술을 시행하던 것을 직접 침투하여 실험한 로젠한의 이야기가 거짓이라는 것을 고발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오늘 과학 잔혹사를 보면 로젠한이 직접 들어가서 실험한 것은 아닐지언정 그와 같은 치료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명성을 위하여 하루에 수십 명씩 의사 한 사람이 집도를 했다니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도 뭔가 비윤리적인 행동을 저질렀을 것이다. 이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경계 태세이다. 카를 융이 말했듯이, 악인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으며, 그 사실을 인정할 때에만 그 악인을 길들일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샘 킨 과학 잔혹사 p.435


샘 킨은 과학자와 의학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못 본체 하면서 잠시 스스로의 잘못을 정당할 때 그 연구의 결과 또한 매우 좋지 않다고 책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말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었던 것 같다. 그 대상이 꼭 과학자와 의학자만이 아니라는 것! 바로 당신일 수도 있다는 것! 그때 스스로의 잘못에 대하여 정당화를 한다면 이 책에 나오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간처럼 될 수 있으며 그 결말은 결단코 본인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경고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샘 킨의 과학 잔혹사는 단순하게 과학에 관심이 있거나, 인류의 숨겨진 역사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도 참 좋은 책이지만, 글을 쓰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책이다. 너무나도 다양한 인간 군상과 미래에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범죄까지 예시를 잔뜩 들어놨으니 말이다. 500페이지가 넘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아마 아이디어가 필요하면 언제든 다시 펴서 볼 도서로 기억될 것이다.



#샘킨 #과학잔혹사 #해나무 #영감도서 #과학의이면그림자 #서평단 #과학도서 #역사도서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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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
모티머 J. 애들러.찰스 밴 도렌 지음, 독고 앤 옮김 / 시간과공간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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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문해력이다. 얼마 전 EBS에서 기획한 독서 프로그램에서 청소년의 문해력에 관하여 문제점과 해결 방식에 대하여 상세히 다루었다. 그러나 비단 이것이 청소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모 국회의원의 '심심한 사과'에 악플이 달리거나 '봇물 터지다'라는 말에 학부형이 항의하는 모습은 이제 주변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찾아볼 수 있다. 문해력 향상을 위해서는 미디어보다 책을 더 많이 접해야 하는데 단순히 많이 읽기보다 제대로 읽어야 하는 문제점이 남아 있다. 그러면서 의문이 생겼다. 과연 나는 책을 제대로 읽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은 미국의 최상위 명문 대학의 필독서로 지정되어 있으며 아마존 최장기 베스트셀러로 등극되어 있는 책이다. 아마 많은 독자는 'How to Read a Book'라는 영어 제목이 더 익숙할 것이다. 1940년에 첫 발행이 되었으며 이후 꾸준하게 재출간되었으며 독서법에 관한 책 중에는 고전에 꼽힌다. 저자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편집장이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게 책들도 굉장히 많으며 부록으로 필독서 목록과 독서의 수준별 연습문제와 테스트까지 수록하여 스스로 연습하도록 유도하는 섬세함도 보였다.


가장 먼저 독서의 수준을 4단계로 나누면서 시작한다. 순서대로 기초적 읽기, 살펴보기, 분석하며 읽기, 통합적 읽기이다. 각 단계에서 또 세부적 단계로 나눠지며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대부분은 기초적 읽기 단계에서 머무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기초적 읽기라고 하니 설마 그럴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초적 읽기의 4단계가 혼자서 책을 읽고 그 책에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단계이며 단순하게 책에서 지식을 얻는 수준이라고 하는 말을 보니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이 천천히 읽지 말고, 이해도 못 할 만큼 빨리 읽지 마라"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 p.55


2단계인 살펴보기부터는 단순하게 책장을 펴들고 읽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발생한다. 아마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실천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속표지, 머리말, 목차, 찾아보기 등등. 이렇게 미리 책을 훑는 것으로 시작하여 자신과 이 책이 맞는지, 좋은 책인지, 읽으려고 결정했다면 어떤 속도로 읽을 것인지, 책에 메모는 어떤 식으로 하는지, 책을 내 책으로 만드는 방법 등등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평소에 궁금했던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부분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면 아직 2단계는 수준은 아니지 않을까?(남 얘기가 아님)


3단계인 분석하며 읽기로 넘어오면 이제 매우 능동적인 독서가가 되어야 한다. 적극적 독서의 기본은 책 분류로 시작한다. 언뜻 보면 책을 나누는 것이 뭐가 어려울까 싶지만, 서점에서 나누는 것처럼 단순하게 카테고리 분류가 아니어서 2단계를 잘 해야 3단계로 발돋움을 할 수 있다. 게다가 분야별로 읽는 방법까지 상세하고 설명하고 있어 스스로 독서법을 분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과학, 수학, 역사, 문학, 철학, 사회과학, 요약판 등등. 


이 단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비평이 독자의 의무라고 하는 부분이었다. 비평은 단순하게 저자의 잘못이나 나와 의견이 다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심지어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도 비평의 형태라고 하였다. 좋은 책을 쓰는 저자라면 독자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저자의 의견에 단순 비판이 아닌 자신의 코멘트를 다는 것이 비평이라고 하니 책을 제대로 읽는 것에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자명한 일이다. 그리고 비평의 방법과 지켜야 할 에티켓을 상세히 설명해 줘서 서평을 쓰는 입장으로써 꽤 유익했다. 


마지막 단계는 통합적 읽기이다. 두 권 이상의 책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비교 분석하는 것을 말한다. 조금 이해가 쉽게 말하자면 메타 분석과 비슷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본문에서 저자는 통합적 읽기를 위한 기초 과정부터 심화 과정까지 총 다섯 단계로 나누어 상세하게 예시까지 들어가며 설명해 놓아 의외로 이해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연습이 필요할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좋은 책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말하며 나에게 좋은 책이 남에게 좋은 책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까지 꼼꼼하게 강조한다. 그리고 제대로 선택한 좋은 책이 우리의 정신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준다. 이해력 향상의 키포인트는 현재 수준 나의 수준으로 이해가 쏙쏙 되는 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더 수준이 높은 책을 선택하여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고군분투하여 이해하는 것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렵다고 포기하기에는 꽤 큰 것이 걸려 있다고 하니 이 책을 접한 독자라면 어렵다고 쉽게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라디오, 텔레비전, 도서관도 없는 섬에 책만 달랑 10권 있다면? 그런 상황을 상상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정말 비현실적일까? 그렇지 않다.  누구나 조금씩은 무인도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곳에서 부딪칠 일과 비슷한 일, 훌륭한 인생을 살려고 자기 내면에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일에 도전받으며 살고 있다."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 p.373



우리가 흔히 인생 책이라고 일컫는 책을 말할 때 무인도에 꼭 가져가고 싶은 책이라고 명명한다. 그런데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물리적인 무인도는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무인도에 어느 정도 살고 있다고. 그러니 현실을 살면서 좋은 책을 선택하여 읽으라고 한다. 게다가 이렇게 능동적으로 책을 읽는 것이 우리의 정신을 살아 있게 하고 성장하게 만든다고 한다. 스스로 자신의 독서법이 옳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작가 스스로 실용서라고 못 박으면서 말하는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에서 그동안 독서하면서 답답했던 부분을 반드시 해소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생각을넓혀주는독서법 #아마존최장기베스트셀러 #베스트셀러 #시간과공간사 #모티머J애들러 #찰스밴도렌 #책을제대로읽는방법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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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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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과학 서적에 무한 매력을 느껴서 한국의 과학소설이 궁금하여 선택한 배명훈 작가의 청혼. 무려 11년 전에 나온 것인데 이번에 개정판이 나왔다고 하여 후딱 데려왔다. 게다가 SF이면서 사랑 이야기라는 책 소개에 SF에서의 로맨스는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한몫했다. 표지도 주홍 빛깔이어서 뭔가 풋풋한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전체적인 맥락은 책 소개가 맞았으나 다 읽고 나서는 내가 책을 잘못 읽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혀 다른 메시지로 다가왔다. 정말 내가 제대로 못 읽은 것일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좀 답답해졌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접고 작가의 말을 읽어보고 작가의 이력과 인터뷰 내용까지 찾아보면서 오히려 이 책을 왜 로맨스 소설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더 안 되었달까. 작가는 서울대 외교학 석사였으며 에세이 쓰는 일과 인터뷰에 굉장히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쪽이었다. 그리고 청혼이 처음 나왔을 당시에는 순수 문학이 대세였으며 SF 장르 자체를 굉장히 천대(?) 시 하는 풍조였다고 한다. 게다가 작가는 말한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읽었다고 말하는데 이 부분에서 해석은 독자의 몫이라는 의미가 느껴져 그냥 내가 느낀 그대로 서평 작성을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우주 전쟁과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맞다. 그러나 계속 읽다가 보면 전쟁을 하는 아군의 집단이 계속 두 개로 나누어져 있어 묘하게 싸움의 대상이 이질적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적군은 외계인. 아군은 지구 출신과 우주 출신. 표면상으로는 적군과 아군이 싸우는 모양새이지만, 실제로는 아군끼리의 전쟁이라는 것을 마지막에는 알 수 있다. 작가는 어떤 집단을 여기에 비유해 놓은 것일까 하는 의문에 여러 집단을 대입해 보았다. 


정부 대 민간인, 여당 대 야당, 고정 관념 대 창의력, 좁은 시야 대 넓은 시야, 핍박하는 거짓된 속박인 대 핍박 당하는 자유인, 권위주의 대 신자유주의, 독재 시대 대 자유 시대, 순수 문학 대 SF 문학. 정치학을 전공했으니 이것을 정치나 시대사조와 연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러나 작가님의 인터뷰를 보면서 얼마나 조심스러운 성격을 가졌는지 알게 되면서 자신의 정치관을 소설에 녹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게 되었다. 그러면 결국 남는 것은 당시의 주류인 순수 문학과 비주류로서 문단에서 문학으로 인정조차 받지 못한 SF 문학만 남게 되었다.


작가의 말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내가 제대로 하는 게 맞나' 의심하는 시간이 길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런 아노미를 극복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나는 소설 단행본을 스무 권쯤 출간하고, SF에 관한 에세이를 출간했으며, 소설 속에 세계를 담아내는 법을 강의하고, 내가 터득한 것을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는 일을 맡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허공에 떠 있는 듯 아슬아슬해 보이는 이 지점이 실은 거대한 우주 도시를 건설해도 좋을 만큼 탄탄한 중력 균형점이었다는 깨달음이다."


​청혼 배명훈 p.157


이 말을 단서로 잡고 책을 다시 보면 이들이 우주에서 왜 아군끼리 싸우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주류인 순수 문학 안에서 무엇인가 존재의 옳음을 밝히려는 SF 장르와의 싸움. 소설 안에서 우주 출신 군인들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자신들이 옳았음을 증명하려고 한다. 당시 작가도 자신이 선택한 장르가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학 장르로 인정받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주변의 비난과 뿌리의 얕음 그리고 소수라는 벽에 부딪친 외로운 싸움을 소설로 풀어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게 되었다.


청혼에서 또 하나 굉장히 독특한 부분이 나온다. 바로 주인공과 그녀의 이름부터 시작하여 등장인물 중 아군의 수장 두 명을 제외하고는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주인공은 별명이 반란군이다. 두 수장의 이름에도 의미가 남달랐다. 본명이 아니라 예명으로 불렸다. 리델이라는 지구 태생 수장의 이름의 의미는 유명한 전략 이론가의 이름을 따와서 붙였고, 데 나다라는 우주 태생 대장의 이름은 아무것도 아닌이라는 의미로 붙여졌다. 이름만으로도 당시 SF 장르가 얼마나 한계로 몰렸는지 느껴질 정도였다.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줄게."


청혼 배명훈 p.154


이 말로 페이지는 끝이 난다. 사랑 이야기로 보자면 너무나도 애틋하지만, 이것을 인정받지 못한 문학 장르를 걷는 미래의 SF 작가들에게 남기는 말이라면 굉장한 의지가 느껴지는 말이다. 첫 출간 후 11년이 지난 지금 SF 문학은 크기는 작지만 확실하게 자신의 영역을 자리 잡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작가는 지난 11년의 시간을 돌아보며 그 뒤를 열심히 따라가고 있는 후배들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지 않을까 한다. 


그냥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내가 날아온 거리만큼, 그 지긋지긋한 우주 공간만큼 사랑하는 거라고. 그래서 너를 한자리에 매어두고 싶다고. 하지만 그 말은 할 수 없었어. 정말로 너를 매어두는 게 옳은 일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 부분이 애매했지. 그래서 말할 수가 없었어. 그건 버글러의 모순을 해결한다고 전달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영혼에 관한 문제였으니까.


청혼 배명훈 p.37


위와 같은 결론을 내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이 부분을 읽는데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작중 주인공과 여자 친구는 작가 자신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비난받으며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였을 당시 주류인 순수 문학으로 가느냐, 그래도 내가 선택한 SF 문학으로 계속 나아가느냐의 흔들림을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물론 사랑 이야기로 받아들인다면 매우 매력적인 남자 주인공의 대사로 보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쪽은 아닌 것 같다.


점점 과학이 발달하여 직접 우주 정거장이 생기고 얼마 전엔 이곳에서 식물을 기르는 남자의 기사가 나는 지금이지만 SF 장르가 주류가 되었다고 말하기는 이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엔 웹 소설 분야에 만연해 있던 우주 전쟁이 점점 대형 서점에 자리를 잡고 있는 중이며 이 길을 가려는 작가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즉,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는 말이다. 혼돈 속에서 외로이 이 길을 간 선배가 말한다.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주겠다고.


배명훈의 청혼을 나름대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꼭 문학 장르에만 국한시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이 정한 길을 외로이 달리게 되면 누구나 마음의 흔들림을 겪는다. 내가 가는 길이 정말 옳은 것일까? 남들이 다 가는 길에는 내가 모르는 당연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며. 자신의 꿈을 향해 달리다가 앞이 보이지 않아 포기하고 싶거나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이 책을 마주한다면 그 길을 계속 달릴 작은 별빛을 보게 될 것이다.



​#청혼 #배명훈 #북하우스 #SF소설 #개정판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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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자국 소설의 첫 만남 10
김애란 지음, 정수지 그림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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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이 시작하면서 필사에 대한 매력을 알게 되었고 꾸준하게 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깨달음을 주거나 고전일 때가 태반이다. 즉, 신선한 표현보다는 우아한 표현 위주로 필사를 했다는 말이다. 필사를 진행한 책에 딱히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요즘 들어 뭔가 좀 신선한 표현들을 공책에 새기고 싶다는 갈망이 샘솟았다. 그러던 중 문예 창작과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필사 책이라며 추천을 받았다. 필사 전 왜 문예 창작과 학생들이 선택을 했는지 궁금하여 읽어보았다.



​칼자국은 김애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사람만 좋고 무책임한 아버지와 성질은 급하고 무심하며 장난기 많은 어머니. 당연하게 생존 문제는 어머니 몫으로 돌아왔고, 국졸인 어머니이지만 음식 솜씨가 좋았기에 칼국수 가게를 연다. 가게 이름이 만나당이었다. 제과점 이름 같은 칼국수 가게여서 의아함이 스쳤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고 나니 가난의 서글픔이 그대로 느껴져 마음이 시렸다. 작가가 어린이 시절의 엄마부터 마지막 장례식 날 엄마까지의 이야기가 80페이지에 쓰여 있다. 두세 페이지마다 따뜻한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어 책을 읽는 내도록 그 따스함이 배가 되었다. 



​처음 읽을 때 궁금했던 것도 완벽히 해소가 되었다. 책의 온도는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끝까지 유지가 된다. 담담하지만 슬픔보다는 따스함을 얘기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여기저기에 보여 독자가 마음대로 슬픔에 빠지게 만들지 않게 하는 부분도 꽤 인상적이었다. 또한 표현 방법이 굉장히 독특한 편이었다. 그게 이상하다는 느낌보다는 어떻게 이렇게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달까. 어느 한곳만 뚝 잘라서 필사하기엔 단어 하나하나가 아까울 정도였다. 다행히 짧아서 통필사로 진행해도 큰 부담이 없을 것 같아 전체를 필사해 볼 생각이다. 



​혹시 글쓰기를 할 때 참신한 표현이나 문체가 궁금하여 필사를 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김애란 작가의 칼자국을 적극적으로 추천드린다. 게다가 이 책은 청소년 문학이다. 다시 말하자면 자녀와 같이 읽기에도 좋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다른 책이 심히 궁금해진다. 마지막으로 좋았던 문장을 공유하며 오늘의 서평을 마치려고 한다.



"오른손이 칼질을 하는 동안 왼손 손가락 두 개는 칼 박자에 맞춰 아장아장 뒷걸음쳤다."


칼자국 김애란 p.16



​"칼은 도마 위를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어머니의 손은 빨랐고 칼 박자는 경쾌했다."


칼자국 김애란 p.42



​"저 삼촌과 저 사촌과 이 육촌은 아무 데서나 출몰했다. 그들의 얼굴은 곧 내 얼굴이기도 했다. 나는 화장실에서 내 이마를 만나고, 신발장 앞에서 내 콧잔등을 만나고, 주차장에서 내 쌍꺼풀을 만났다."


칼자국 김애란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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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자국 소설의 첫 만남 10
김애란 지음, 정수지 그림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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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한 참신한 표현들이 가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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