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 누구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일할 것인가?
제현주 지음 / 어크로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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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단히 계산을 좀 해보자. 삼각김밥 하나의 가격은 800 원이다. 요즘은 그 형태나 맛에 따라 가격이 다양하긴 하지만, 클래식한 삼각김밥들은 어쨌든 800 원이니까 800 원으로 잡는다. 성인 남자인 내가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선 최소 두 개 정도는 있어야 할 테니. 800 × 2 = 1,600. 거기다가 목이 메지 않기 위해서는 마실 게 필요하다. 우유나 음료수가 넉넉잡아 1000원이니까, 수식은 이렇게 된다. (800 × 2) + 1,000 = 2,600. 한 끼에 딱 2,600원이면 된다. 나는 하루에 세 끼를 먹는다. 아침은 거르지 않고 꼭 먹는다. 그리고 일 년이 365일. 이렇게 하면 딱 한 해의 식비가 나온다. 총 2,600 × 3 × 365 = 2,847,000 원. 그렇다. 생각보다 얼마 안 든다. 현재 내 자산으로 비춰보면 부모님 집에서 숨만 쉬고 산다는 가정 하에서는 무려 10년도 넘게 살 수가 있다!

 

 

위와 같이 아주 단순하고도 멍청해 보이는 계산을 시도한 건 작년 가을부터다. 회사 2년 차에 접어들던 당시, 정말 미치도록 일하기가 싫었던 순간이 찾아왔다. 이 일이 나랑 맞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이 일을 해서 앞으로 얼마나 더 재미를 느낄지도 모르겠으며, 이 회사에서의 나의 미래가 도저히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때려치우자니 바깥은 지옥이라 하고, 많든 적든 월급은 꼬박꼬박 나오고 있긴 한데... 하면서 혼자 답 없는 속앓이를 하던 중. 문득 삼각김밥이 내 눈에 들어왔다. 결국 '먹고사니즘'의 문제. 만약 먹고사는 게 보장이 되기만 한다면? 그래서 당장 폰을 꺼내 들고 계산해 봤다. 결과는 아주 놀라웠다. 꽤나 많은 시간과 돈이 나에게 남아 있었다. 일을 그만둔다 해도 말이다. 그 돈을 삼각김밥으로 모두 탕진하기 전까지는 뭐가 됐든 새로운 벌이를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당시의 고민이 한 결 가벼워졌다. 물론 그와 동시에 사표를 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없어졌고, 더 이상 회사의 압박에 웅크리지 않게 되었다. 일상이 다시 살만해졌다. 그렇게 한고비를 넘긴 것이다.

 

 

그 후 종종 일에 대한 고민이 올라올 때면 나는 마법의 연산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저축액이 쌓이는 만큼, 버틸 수 있는 기간도 점차 늘어 이제는 삼각김밥 10년도 거뜬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내 스트레스와 자세의 문제이지. 근본적인 답은 아니었다. 너 계속 그렇게 살래? 하는 질문이 내게 주어질 때마다 나는 일과 내가 어떻게 안 맞는지에 대해서만 대충 나를 변호할 뿐. 확연한 답을 건낼 수가 없었다. 어쩌면 코너에 몰릴 때만 생각을 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일하기는 싫은데,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요 며칠 바람이 차가워졌다. 그 찬 바람을 타고 동기들의 퇴사 소식이 하나 둘 들려왔다. 나는 또 한 번 삼각김밥 값을 계산할까 하다가 그냥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를 집어 들었다. 지난 여름 출판사 대표 30인이 뽑은 추천도서 목록에서 본 적이 있는 책. 여름에 읽을까 하던 것을 잠깐쟁여두었는데 그게 참 다행이구나 싶었다. '내리막 세상', '노마드'와 같은 단어에서 풍겨지듯, 책은 젊은 세대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어줍짢은 힐링 대신 현실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일'과 '나'의 관계, '일'의 개념 등에 대해서 고찰한다.

 

 

'일'과 '나'는 동일한가? 하나의 직업으로 나를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고전적인 질문들부터, 일은 놀이가 될 수 있는가? 우리가 '잉여짓'이라 부르는 돈 안되는 행위 들은 일이 될 수 있는가? 까지 막힘없이 펼쳐진다. 주제가 주제다 보니 모든 답이 명쾌할 수는 없었지만, 저자의 의견에 참 많은 부분 공감했다. 읽으면서 지금의 내 모습과 미래의 내 모습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생각했다. 특히 사회의 불평등은 계급에서 오는 게 아니라 유전적 능력의 차이에서 더 크게 올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 부분에서는, 내 호흡도 따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소위 말하는 능력이라는 게, 그러니까 사회가 원하는 그 능력에 대한 보상이라는 것이 과연 공정한 것인가? 다른 말로는 타고나는 것. 즉 적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생각해봐야지 싶다. 일터에서의 측정, 평가, 피드백으로 이어지는 구조에 대한 이야기이도 하니 말이다. 결국 사람들은 이 프로세스를 납득하지 못해 일터를 떠나가고, 잠시 재충전을 거쳐 또 다른 일터를 찾아 나선다. 이번엔 다르겠지 하면서.

 

 

노마드가 될 것인가 말 것인가의 기로에 서서 고민하는 젊은 세대에게 책은 말한다. 자신의 욕구를 이해하고, 일과 관계 지어지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새롭게 정의해보라고 말이다. 그 과정 속에서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고, 그것을 위한 새로운 공동체(플랫폼)를 꾸려 보길 권한다. 아주 천천히, 그렇지만 꾸준하게. 그 흔한 혼자서는 못한다는 이야기가 이번에는 더욱 그럴싸하게 들려온 것은 왜일까? 가깝게는 블로그 이웃들이 진행하는 여러 책모임들, <야만스러운 탐정들>속 내장사실주의자들이 떠올랐으며, 내가 몸담았던 대학 동아리가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했다. 모인다는 것. 모여서 뭐라도 꼼지락거린다는 것의 재미를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다. 그러한 움직임이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일이 되고, 동시에 지금의 회사 또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일로 남아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욕심이 너무 많은 건가? 이런저런 생각들이 뒤엉켜 이어지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12시가 넘은 월요일이다. 진짜로 삼각김밥만 먹고살 게 아니라면 일단 출근부터 하고 보자. 가서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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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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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랑 싸우면 안 된다.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일요일에는 성당에 가야 한다. 나쁜 짓 하면 안 된다. 꼭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 맞는 말이니까. 이를테면 바른 생활 책에도 쓰여있을법한 이야기들. 소년이 위 문장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초도 걸리지 않았다. 소년은 늘 생각했다. 어떤 행동을 하기에 앞서 늘 부모님, 선생님의 표정을 떠올릴 것. 모든 일은 그렇게 하면 간단해지는 문제였다. 소년에게는 모범생이라는 타이틀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성적도 마찬가지였다. 어른들은 누구나 다 소년을 좋아했다. 소년은 말을 잘 안 듣는 또래 남자아이들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려울 게 없는데... 그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되는 건데...

 

 

 

중학교, 고등학교도 초등학교와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말만 잘 들으면 그만이었다. 다만 몸이 커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신경 써야 할 부분이었다. 몸이 커지자 호기심도 덩달아 커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어른들의 영역(슬, 담배, 여자)를 멀리 하라 했다. 때가 되면 다 풀어질 것이니 기다리라고 말이다. 이 또한 소년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 맞는 말이니까. 아직까지는 미성년자였으니까. 그렇게 하면 간단해지는 문제였다. 소년이 그러거나 말거나 말 안 듣던 또래 남자아이들은 중, 고등학교에서도 말을 들을 기미가 안 보였다. 그들은 이제 캔맥주를 마시고, 담배도 피우기 시작했으며, 옆 학교 누구를 따먹었네 마네 하고 자랑하고 다니기 일쑤였다. 소년은 말을 잘 안 듣는 또래 남자 아이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심한 놈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에 없던 찝찝함이 조금씩 남기 시작했다. 그래서 '도무지'라는 수식어는 생략하기로 했다.

 

 

 

스무 살이 되고 어른이 되었다. 대학교는 이전까지와는 달랐다. 아무도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수업 시간표도 소년의 마음대로, 술, 담배, 여자도 소년의 마음대로였다. 대신 모든 것에는 돈이 필요했다. 소년은 자유가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담당 교수라는 사람을 찾아가 보았지만. 그 교수는 본인 연구에만 바쁜 사람이었다. 소년이 바른 대학생인지 아닌 지에는 쥐뿔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교수는 소년에게 학과가 업계 평판이 나쁘지 않으니, 영어 공부 열심히 해서 취업이나 잘하라 했다. 동아리 선배들이 하는 소리도 똑같았다. 대학이란 곳은 이래도 취업, 저래도 취업이 목표처럼 보였다. 소년은 조금씩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학 수업 중에는 '바른 생활'이란 과목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 군대를 다녀왔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개인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필요가 없었다. 까라면 그냥 까는 곳이었다. 한국 사회는 군대를 다녀와야 진정한 남자가 된다고 말했다. 소년은 그곳에서 진정한 아저씨가 되어 돌아왔다. 학창시절 그렇게 말 안 듣던 또래 친구들도 군대를 다녀오자 모두 모범생이 되었다. 정확히 그 시점부터였다. 심지어 어떤 친구들은 소년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말도 더 잘 듣기 시작했다. 있는 집 자식들은 해외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없는 집 자식들도 뒤질세라 소위 말하는 스펙을 열심히 쌓기 시작했다. 꼭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 필요한 일이니까. 이를테면 자기소개서에 끄적거릴 수 있을 법한 일들. 친구들은 늘 생각했다. 어떤 행동을 하기에 앞서 늘 취업에 도움이 될 지 여부를 떠올릴 것. 모든 일은 그렇게 하면 간단해지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것이 소년에게는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더 재밌게 놀고 싶고, 기왕이면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소년은 자신도 모르는 새 삐딱선을 타고 있었다. 가끔은 스스로가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다행히도 운 좋게 걸린 인턴십 덕분에 남들보다 일찍 취업에 성공했다. 졸업까지는 1년이 더 남아 있었지만, 더 좋은 직장을 구하려고 발버둥 치지는 않았다. 대신 소년은 남은 1년을 즐기는 데 주력했다.

 

 

 

회사는 또 다른 군대였다. 여기서도 까라면 그냥 까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아니 어쩌면 한국 사회 자체가 원래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힘있는 누군가가 위에서 꾹 하고 누르면, 아래 있는 사람들은 등살이 터져 나갔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때려치우라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회사 밖은 지옥이란다. 정말로 밖에서는 비명이 들려오는듯했다. 소년에게는 용기가 필요했다. 아니면 앞서 행동에 옮긴 사람들의 샘플이라거나. 소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생각만 했다. 이 세상은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고. 그 어디에도 '바른 생활'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말을 잘 듣고, 안 듣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차피 개인은 세상의 힘 앞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결국 이 세상의 시스템이었다. 소년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도 겪어온 세상의 시스템. 그렇게 시스템은 늘 존재해왔다. 아무것도 모르던 소년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차 세상의 시스템에 대해 알아차리게 된다는 것. 소년의 눈에도 이제 일정한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한 주 동안 소년은 세 권의 장강명을 만났다. 제각기 다른 크기의 판형처럼 각 권은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소설적 기법도 모두 달랐다. 전형적인 인터넷 SF 습작처럼 보이는 <호모도미난스>, 20대 후반 젊은 여성의 고백투로 이어지는 <한국이 싫어서>, 그리고 도민준이 잠깐 생각날 뻔했던, 하지만 앞선 두 편보다는 소년의 취향에 가장 근접했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까지. 만약 시차를 두고 따로따로 읽었다면, 호불호도 굉장히 갈렸을 작품들. 작가는 장강명 한 사람이었지만, 서로 다른 작가가 썼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변덕스러운(?) 스타일의 교체를 통해 장강명이 보여주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달리 말해 장강명이 숨겨둔 소설 속 세계의 패턴은 무엇이란 말인가? 소년은 세 권을 차례로 읽고, 다음에는 그 순서를, 각 장의 문단들을 왔다 갔다 섞어 읽어보면서 패턴을 찾기 위해 주말의 밤을 지새웠다. 중학교 시절 내신과목 벼락치기가 생각나기도 했다. 이러한 작업이 어떠한 금전적인 보상을 가져다주는 것은 물론 아니었지만,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일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말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세 권의 장강명에서 소년이 공통적으로 목격한 것은 '우리가 세상을 마주하는 방식들'이었다. 시스템이 휘두르는 거대한 힘을 마주하며, 누군가는(리원, 명준) 시스템을 닮은 지배자가 되길 원했고, 다른 누군가는(계나) 다른 시스템으로의 탈출을 모색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남자, 아주머니) 시스템의 패턴을 따라 자신의 기억을 재구성하기도 했다. 일상 속 우리들의 모습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주인공들은 어느 날 세상에 맞설 무기를 하나씩 장착하게 되면서 이야기를 끌어간다. 무기는 현실적으로는 '시민권'의 모습으로, SF 적으로는 '우주 알'이나 'X 인자'의 모습으로 독자에게 나타난다. 마치 무협지와도 비슷하다. 주인공이 무기를 다루게 되는 그 과정이 하나, 둘 밝혀질 때마다 소년들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물론 주인공이 그 무기를 들고 세상에 맞서 싸운다 한들 세상의 시스템에는 티끌만 한 상처 하나 남지도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말이다. (장강명씨는 SF를 자양분으로 삼는 작가인데, 이러한 부분 만큼은 또 지극히 현실적이다.)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가 이토록 많은 지지를 받았던 것도 어쩌면 간단한 문제였을 수도 있다. 주변에서 봤다면 혀를 끌끌 찼을 그녀에게서, 소년 또한 몇 가지 샘플을 추출하고 있었다. 장강명이 그려낸 캐릭터는 서사와 함께 서서히 흘러간다 해도, 이 세상은 현실 속에 끝까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다음 타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소년이 될 게 분명해 보인다. 지금까지 소년의 무기는 그저 '시키는 대로 말을 잘 듣는 것'이었다. 그다지 소설적인 무기는 아니었다. 만약 장강명의 다음 소설 속으로 소년을 끌고 들어간다면, 소년은 어떤 무기를 들고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마주하게 될까? 만약 당신이 시스템의 패턴, 장강명의 패턴을 능히 알고 있다면 한 번쯤 예측해보는 재미도 있을 수 있겠다. 장르는 기왕이면 <호모도미난스>보다는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쪽에 가깝기를 바란다. 아니면 정말로 경쾌하고 선이 굵게 본격 활극으로 펼쳐 본다든지. 털려도 이제는 아주 속 시원하게 말이다. 읽고 있나? 소년의 또래 친구들아! 그리고 되도록이면 읽지 말아 주세요. 소년의 부모님이나 선생님이나 직장 상사 여러분들은요. 그냥 그러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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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의 신 - 천만 방문자를 부르는 콘텐츠의 힘
장두현 지음 / 책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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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4학년 2학기는 조금 심심했다. 일반적으로는 취업에 목을 맬 시즌이긴 했지만, 나는 이미 전년도의 인턴십을 통해 진로를 확정한 상태였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와... 할 그런 회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어디 가서 내밀기 부끄러운 회사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적당한 회사. 대졸 평균 초봉에 살짝 걸친 연봉도, 때깔 좋아 보이는 연구원이라는 직함도, 모두 적당해 보였다. 물론 지금이야 월급이 조금만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고 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랬다. 인생의 한고비를 무탈하게 넘겼다. 딱히 다른 지원서를 쓰면서 아둥바둥하고 싶지 않았다. 태평한 성격 때문일까? 그저 재미있게 다니고 싶었다. 사람들을 더 만나고 싶었고, 취미 활동을 찾아보고 싶었다. 통기타 동아리에서는 노욕을 부리며 젬베 혼을 불살랐고, 생전 처음 대외 활동을 시작하며 다른 학교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블로그(http://verdesox.com)를 시작한 것도 바로 그 시기였다. 스스로를 문과 감성의 이과인이라고 세뇌하고 있었기에 글에는 자신이 있었다, 이게 좋게 말하면 나르시시즘이고, 통속적으로 말하면 그래, 자뻑이 있었다.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막연하게 확신이 있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타임라인에 애써 작성한 글을 흘려보내기가 아까웠다. 어디든 고여있길 바랐다. 글이 고여 샘을 이루고 나면, 그다음은 세수하러 나온 토끼들이 마시고 가리라. 블로그 주제는 책과 영화, 음악 등에 대한 총체적인 감상. 대신 남들과는 다르게, Remarkable 하게 쓰고 싶었다.(마침 세스 고딘의 <보랏빛 소가 온다>에 홀려 있기도 했다.) 목표는 나름 현실적(?)으로, 3년 내에 파워블로그를 만들기. 약간의 고민을 거쳐 '녹색양말'이라는 닉네임을 만들었다. 오직 글 만으로 승부를 보고 싶었기에, SNS를 통한 지인 버프도 받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 유명해지기 전까지 절대 오픈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말이다.

 

이런 저런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휴대폰 케이스 리뷰, 책 리뷰, 고속버스 노선도 리뷰 등.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블로그 방문자가 100을 넘어갔다. 진짜 이러다 파워블로거가 되는 거 아니야 싶었다. 하지만 착각. 역시 그리 녹록지 않았다. 곧 졸업이 다가왔고, 회사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블로그에 흥미를 잃어갔다. 그냥 한 달에 한 두 차례 포스팅하는 게 전부. 그나마 지하철에서 보내는 통근 시간이 길어 책을 읽었던 게 도움이 됐다. 책에 대한 글은 계속 쓸 수 있었으니까. 자연스레 이 블로그는 북로그가 되어 있었다. 가끔 운이 좋게 출판사나 서점의 눈에 들어 글이 외부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들은 이 블로그를 접을까 하면 글을 뽑아주고, 또 접을까 하면 다시 뽑아주었다. 호흡기를 댔다 떼었다 하는 것 같았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블로그 구독자 수가 늘어갔다. 이전에는 댓글 방문이나 공감 방문도 잘 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다행히도 늘어갔다.(이웃분들과의 교류도 요즘에서야 맛 들인 편이다.) 여자친구는 내 블로그를 보면서 대체 사람들은 뭐 하러 이런 데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했다. 그렇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게 귀여웠다.

 

'여러분들의 공감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공감 버튼을 꾹 눌러주세요'와 같은 꼬리말은 아직도 낯부끄러워 달지 못하겠지만, 실제로 그런 게 힘이 되기는 한다. 꾸준히 찾아주시는 분들이 생기니 욕심도 의지도 생긴다. 그래서 1년 주기로 블로그 운영에 대해서 정리를 하고 개편을 하기 시작했다. 블로그 디자인을 몇 차례 수정했고, 블로그 제목과 프로필 양말도 한 번씩 바꿨다. 요즘은 블로그 운영에 있어서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다. 책 감상을 기반으로 조금 더 1인 잡지스러운 블로그를 꾸려보고 싶다. 몇 가지 카테고리의 통/폐합과 신설이 필요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즐겨 찾는 사이트 소설리스트(http://sosullist.com/)나 <Axt>, <Chaeg>과 같은 잡지들을 보면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물론 블로그 운영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도 빼놓을 수는 없다. 콘텐츠가 아무리 만족스럽다 해도 읽는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소문이 나지 않으면 말이다. 이런 책들은 그래서 읽는다. 파워블로거가 된 사람들의 노하우를 또 한 번 훔쳐보는 것이다. 적어도 한 두 가지는 배워갈 게 있다. 오늘은 그런 장르의 책들 중 나름 신작인 <블로그의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다 옆길로 또 새버린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사실 어느 정도 블로그를 붙잡고 있던 입장에서 읽으면 이런 책들은 잘해야 본전이다. 초장에 본인이 어떻게 파워블로거가 되었나를 이야기하고, 시작하기 좋은 블로그는 어디인지, 그러니까 네이버냐 티스토리냐 구글이냐 등을 이야기한 다음, 블로그의 각 기능과 이웃들을 모으는 비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끝으로 여러분도 파워블로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웹에서 만나요. 뿅! 초심자가 아닌 이상에야 의미 없는 매뉴얼들이 나열된다. 디테일이 부족한 게 늘 아쉽다. 게다가 그들의 블로그가 웹에서 비치는 것과는 다르게, 블로거들의 책은 편집이나 디자인도 어딘지 촌스러운 편이다. 뭐 그래도 소셜 브랜드의 값이 있으니 잘 팔리기는 하는 모양이지만.

 

다행히도 이번 책은 썩 괜찮았다. 광고 문구같이 보이겠지만, <블로그의 신>은 달랐다. 큰 궤를 보면 역시나 같은 구성이지만, 기존 블로그 서적들이 간과했던 부분들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느껴졌다. QR코드를 적극 활용하여 책과 웹의 연결고리를 걸어둔 것, 사전의 옆면처럼 찾기 쉽게 색인을 활용한 것, PPT나 PREZI를 연상시키는 깔끔한 디자인, 구글이나 여타 사이트들을 활용하는 팁 등이 인상적이다. 과연 '블로거팁닷컴(http://bloggertip.com/)'이라는 블로그를 운영 중인 저자답다. 평소에 저자가 다루던 분야를 그대로 책으로 옮겨왔기 때문일까? 툭툭 던지는 팁의 질이 다르다. 더도 말고 디테일에서 딱 반보 씩만 앞으로 나아갔을 뿐인데, 전체적으로는 이,삼보 더 뻗은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블로그 운영에 유용한 사이트들을 다룬 부록 1이 가장 좋았다. 블로그 로딩 속도를 측정해볼 수 있는 Page Speed Insight(https://developers.google.com/speed/pagespeed/insights/)와 네이버 애널리틱스(http://analytics.naver.com/)같은 곳들은 정말로 처음 들어가 봤다. 이어지는 부록 2에서는 대한민국 전문 주제 블로그 50곳을 다루고 있다. 책과 관련해서는 역시 서평가 이현우 님의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http://blog.aladin.co.kr/mramor)과 정군 님의 블로그 '달님은 어찌 그리 고우신지(http://blog.naver.com/jmh5000)가 소개되어 있었다. 그 외 본문에서 떠올려보면 큐레이션에 대한 개념과 활용 부분이 가장 와닿았던 부분이다. 실제로 다음 블로그 개편 때는 다른 이웃분들의 서평을 소개해보는 그런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어 볼까 싶어지기도 했다. 서점에서 뽑는 '이 주의 우수 리뷰'처럼, 보상은 없다 해도 '이 주의 이웃 리뷰'같은 그런 카테고리 말이다. 나름 재밌을 것 같다.

 

짧게 읽을 수 있는 카테고리와 기존처럼 길게 읽을 수 있는 카테고리의 공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블로그의 신> 저자 역시 장문보다는 단문이 낫다고 이야기하지만, 이 블로그의 근간은 누가 뭐래도 '읽고 끄적임'의 긴 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주는 분들을 위해 쓰고 있다. 책을 닮은 감상을 쓰기 위해서도 길이는 지금 정도가 가장 적당하다. 글을 기계처럼 찍어내고 싶지는 않다. 대신 읽었던 모든 책에 대해서 다 쓸 수는 없으니, 짧게 쓸 수 있는 글들도 병행하는 것으로 하자. 가끔씩 쓰고 있는 '300자 단상'과 쓰다만 '껍데기는 가라'와 같은 카테고리 말이다.('껍데기는 가라'는 더욱 심플하게)

 

다음 개편은 아마 추석 전에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 역시 뭐니 뭐니 해도 꾸준함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블로그의 '신'이 되지 못하는 이유도 8할이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그런데 글을 마칠 때가 되니 문득. 회사일도 이렇게 체계적으로 생각하면 다 잘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오는 것은 왜 일까? '월화수목금' 회사원에 '토일' 블로거라니... 그리고 지금은 벌써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시간이라니... 한 주 또 열심히 하자. 개편 시즌은 여기나 회사나 마찬가지니까. 살아남으려면 나나 블로그나 다 그래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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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야간비행 - 정혜윤 여행산문집
정혜윤 지음 / 북노마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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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양서류에게.

 

 

혹시나 오해할까 봐 그러는데. 우선 밝혀두고 시작할게. 사실 다른 사람이 쓴 편지를 몰래 들춰보는 일은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어. 나는 사람이 쓰는 모든 편지에는 일정량의 생명력이 있다 생각하거든. 흔히들 우스갯소리로 그까짓 거 조금 쳐다 보면 닳느냐고들 이야기하잖아? 그 말 진짜 같지 않아? 정말로 닳는 것 같다니까. 초등학교 3학년 때 옆자리에 앉던 여자애가 정확히 그렇게 설명했어. 당시 걔는 내 친구하고 러브장이었는지 펜팔이었는지를 하고 있었거든. 아마 그 여자애 딴에는 자신의 비밀 이야기를 훔쳐볼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말라는 취지였을 거야. 별 이야기도 아닌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부터 나는 다른 사람들의 편지에 흥미를 잃게 됐어. 누군가를 위해 고심해서 쓴 문장들을 내가 읽는다 해서 그것을 100% 느낄 수도 없는 일이고, 또 내가 볼 때마다 그 100%가 80%가 되고, 또 80%가 40%가 돼버릴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나더라고.

 

이 책 <스페인 야간비행>이 펼치면서도 뜨악했어. 기대했던 본격 스페인 여행기 대신 '미스 양서류에게'라며 너에게 쓴 편지들덜컥 튀어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이야기의 시작은 또 필리핀 보홀이라니. 속으로 Hola! Me llamo domingo. Como estas?를 실컷 되뇌고 있었는데 말이야. 지난 2년간 스페인어 공부를 하면서, 특히 초급반만 서너 차례 리부트 하면서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든 몇 안되는 표현이었거든. 사진 한 장 없는 여행기라는 홍보 문구에도 흔들림이 없었는데, 첫 장에서부터 내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어. 역시나 범상치 않은 책이었던 거지. 뻔한 여행기가 지겨워서 집어 든 책이었으니 성공적이었다고 봐야 할까? 머지않아 아름답다 못해 흘러내리는 감성들이 문장으로 쏟아지기 시작했어. 건조해진 회사원 감성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순간들도 있었지.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어. 나는 기왕 펼친 책, 어디까지 가나 하는 마음으로 한 챕터씩 읽어나가기 시작했어.

 

미스 양서류야. 너 혹시 '퀀텀 점프'라는 용어를 알고 있니? 물리학에서 나오는 용어기는 한데, 쉽게 말하자면 어떤 단계에서 다음 단계까지 순식간에 뛰어오른다는 이야기야. 흔히들 말하는 계단식 성장처럼 껑충하고 말이지. 나는 정혜윤 피디야말로 퀀텀 점프의 달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 필리핀 보홈에서 쓰고 있던 여행기는 껑충 뛰는 순간 포르투갈로 가있기도 했고, 또 껑충 뛰는 순간 스페인으로 건너 가있기도 했으니까. 그야말로 시공간이 무색했지.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었어. 퀀텀 점프는 2단, 3단 계속되었어. 현재의 여행이 과거의 여행으로 점프하고 나면, 정혜윤 PD는 또 한 차례 힘을 내서, 작가의 작품 속으로 점프를 했어. 그곳에서 사라마구가 나타났고, 조지 오웰이 등장했어. 페소아와 타부키는 서로의 분신이 되었고, 작가의 분신들이 흩어지자 돈키호테가 서있었지. 그리고 다시 또 퀀텀 점프. 최종 목적지는 역시나 정혜윤 피디 자신의 내면이었어. 그리고 그곳에는 미스 양서류, 너의 출생의 비밀도 숨겨져 있었지. 물론 여기서는 그 비밀에 대해 발설하지 않을게. 편지를 훔쳐본 것만 해도 이미 충분히 미안한 마음이니까.

 

아무튼 나도 <스페인 야간비행>을 읽고 여행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 매 여행이 끝났던 순간들을. 여행지의 나로부터 일상의 나로 돌아왔던 나는 어떻게 달라져 있었는지를. 하릴없이 또 인도를 생각하게 됐고, 볼라뇨의 칠레와 쿤데라의 체코를 상상하게 됐어. 정혜윤 피디는 여행과 또 다른 여행 사이의 점프. 그 말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을 문장과 작가들로 이어보고 또 보여주려 했던 것 같아. 물론 그녀의 경험이기에 100% 공감할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일이었어. 그래 맞아. 여행은 신기루로 끝나는 게 아니었어. 다녀오면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니란 이야기지. 게임의 세이브/로드 포인트처럼 우리는 여행 속에 점프 포인트를 남겨두고 온 거야. 원한다면 언제라도 퀀텀 점프가 가능할 수 있도록 말이야.

 

그래. 미스 양서류야. 이대로 가다가는 나도 싸이월드 시절의 중2 감성이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사화산이 되어버린 줄 알았는데 아직 휴화산이었나 봐. 더 구질 구질 해지기 전에 적당선에서 이 편지는 마무리해야겠다. 다음에 또 정혜윤 피디와 편지를 주고받는다면 그때는 내 안부도 좀 같이 전해주렴. 그 초록색 책 재밌게 읽었다고 말이야. 그런데 대체 그러는 나는 누구냐고? 아, 그러고 보니 내 소개를 깜빡했네. 기억해줘 미스 양서류야.

 

 

내 이름은 미스터 양말류야.

 

 

으악ㅎㅎ... 진짜 구질구질하다. 끝.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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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가우초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이경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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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뇨의 소설을 읽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구성이 있다. 가령 A가 어떠한 이유로 인해 B의 존재를 알게 된다고 치자. 여기서 A와 B는 아직 만난 적이 없거나, 아니면 오래전 같은 울타리 안에 있던 사람이다. 그 후 A는 B의 동향에 대해 종종 신경 쓰게 된다. 시간이 흐른다. 자연스레 B의 소식도 희미해진다. 그러다 문득 A는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B를 다시 떠올린다. 그 후 A는 B의 궤적을 따라, B를 추적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그 집요한 추적 과정 속에서 볼라뇨가 그리는 세계가 드러난다. B를 발견하고 발견하지 못하고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 여정을 통해 A는 B가 되기도 하고, 내가 되기도 하고, 또 우리가 되기도 하니까.

 

그러면 이제 나를 A라고 치자.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을 쭉 돌아봤을 때 B가 될 수 있는 인물들을 한 번 떠올려 보자. 제아무리 평면적인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한 둘 떠오르는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연인보다는 친구 쪽이 그나마 떠올리기 수월하다.) 싸움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던, 마치 엄석대 같았던 친구 K, 지난번에도 한 번 언급한 적 있던 연기자 지망생 M, 친구가 대신 써준 자소서를 동의 없이 빼돌려서 취업에 성공한 J등. 뭐 여의치 않으면 아무 친구라도 좋다. 친구의 친구건 어디서 들은 얘기 건 간에 그냥 조금 살을 붙여서 B를 만들어 보자.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자유로운 창작자니까.

 

B를 생성해 냈다면 이제 80% 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본다. 이제 볼라뇨의 소설 중에 감명 깊었다거나, 적당해 보이는 소설 하나를 가져오자. 어차피 국내에서야 볼라뇨가 잘 팔리지 않았으니까, <칠레의 밤>이나 <야만스러운 탐정들>같은 작품만 빼고 고르면 별 탈은 없을 것이다. 대표작은 <2666>이라 하지만, 한국에서 무려 5권이나 되는 그 소설을 완독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별로 없을 테니까 괜찮다. 그런데 같은 이유로 나도 아직 못 읽어서 패스. 아무 단편이나 하나 가져오자. 이번에 읽은 <알바로 루셀로트의 여행>도 나쁘지 않을듯하다. 그리고 고른 소설 위에 고명을 얹듯, A와 B를 얹어서 한국 스타일로 단편을 하나 써보자. 치명적인 문장이 있다면 살려두고 계속해서 버무려 보자. 레퍼런스가 있다 해서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꾹 참고 한 번 쓰자. 혹시 모른다. 계속해서 퇴고해나가다 보면 어디 조그만 문학상이라도 하나 타서 등단할 수 있을지.

 

표절 아니냐고? 이거 아실만한 분들이 왜 그러실까? 소설은 인간이 쓰는 것이고 인간은 누구도 자신의 양심과 기억을 장담할 수 없다. 아직까지는 미래의 작가들과 문학의 발전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괜찮다. 처음에만 안 걸리면 된다. 나는 초반에 몇 번만 빌려와서 몸값이 올라가고 나면 그 이후부터는 자력으로 써나갈 것이라 스스로 다짐도 했으니까. 그러다 나중에 걸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럼 쿨하게 사과는 하되, 적절히 유체이탈 화법만 써주면 된다. 내 생각에도 A라는 작가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오히려 아몰랑을 시전하던 모 표절 작가와는 다르게 솔직한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크게 걱정하지 마시라.

 

오히려 걱정할 것은 과거의 표절이 아닌 표절 이후의 필력이다. 기껏 발판 밟고 날아올라 놓고 착지에서 발을 삐어버리면 그다음 점프의 기회는 사라지게 된다. <알바로 루셀로트의 여행>에 나오는 영화감독 '기 모리니'가 딱 좋은 예다. 프랑스의 젊은 예술가였던 그는 데뷔작 '잃어버린 목소리'와 차기작 '하루의 테두리'를 통해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극찬을 받았다. 두 작품 모두 아르헨티나의 작가 '알바로 루셀로트'의 소설을 가져다 쓴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지만, 의혹은 의혹일 뿐. 정확한 정황도 없었고 원작자인 루셀로트도 항의하지 않았으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오히려 루셀로트는 이러한 표절 의혹으로 인해 유명세를 얻고 성공한 작가로 커갔으니 모리니에게 감사 인사라도 했어야 한다.

 

감독 모리니와 작가 루셀로트는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고, 또 비슷한 시기에(루셀로트가 매번 조금 빠르긴 했지만) 비슷한 내용의 소설과 영화를 두 편씩 내놓으며 성공해갔다. 하지만 뭐든지 삼세번 아니랄까. 역시 세 번째가 중요했나 보다. 둘은 세 번째 작품부터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루셀로트는 커리어 최고의 소설 '곡예사 가죽'을 발표하며 성공의 쐐기를 박은 반면, 모리니는 '실종된 여인'이라는 그저 그런 영화를 발표했다. '실종된 여인'과 '곡예사 가죽' 사이에는 그 어떤 공통점도 없었으며. 심지어 지난 두 편의 작품과도 연관성이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프랑스 감독에게 내리막이 시작됐다. 이후 발표한 영화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모리니는 세상에서 잊혀 갔다. 적어도 루셀로트가 모리니를 찾아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다.

 

볼라뇨의 단편소설 <알바로 루셀로트의 여행>에서 A는 '루셀로트', B는 '모리니'였다. 어느 날 루셀로트는 자신을 표절했던 모리니가 세상에서 사라졌음을 알고 그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지만 루셀로트에게 모리니는 최고의 독자였던 것이다. 모리니를 찾으러 떠나간 여정에서 루셀로트는 허무함만 느끼고 온 것처럼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아 보인다. 굳이 찌그러져 있던 모리니를 찾아내어 그의 외마디 고함을 듣게 된 것, 그리고 그런 모리니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행위를 통해 루셀로트는 확인사살에 성공했다. 뿐인가? 한참 어린 여자와 로맨스도 즐기고, 프랑스 관광도 제대로 하고 뭐 이래저래 다음 작품에 쓸만한 에너지도 얻었으리라.

 

 

"저는 알바로 루셀로트라고 합니다. <고독>이라는 작품을 썼지요. 그러니까 <팜파스의 밤>의 저자입니다, 루셀로트가 말했다. 모리니는 잠시 뒤에야 반응을 보였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섭게 고함을 치더니 호텔 복도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 식의 반응이 나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루셀로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은 채 담배에 불을 붙이고(담뱃재가 양탄자 위에 떨어졌다) 서글픔에 시몬과 시몬의 아들, 그리고 살면서 맛본 것 중 가장 맛있는 크루아상이 나오던 파리의 카페를 떠올렸다. 이윽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리니를 불렀다. 이봐요, 아주 단호한 어조는 아니었다. 이봐요, 이봐요, 이봐요." -106p

 

 

그래서일까? <알바로 루셀로트의 여행> 역시 B를 추적하는 A의 시점이었지만, 이번만큼은 B인 모리니의 고함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메아리친다. 그는 자신을 찾아낸 루셀로트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대신 절규했다. 그 대상은 눈앞에 나타난 '루셀로트'였거나, 어쩌면 자신의 전작인 '잃어버린 목소리'와 '하루의 테두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루셀로트는 모리니가 평생 넘지 못한 한계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외마디 고함이 모리니의 표절을 입증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루셀로트의 '이봐요'는 그 두 손에 수갑을 채웠다. 참을 수 없이 초라한 순간이었다. 실력이 부족한 표절 감독의 말로란 이런 것이다. 실력이 없었다면 뻔뻔함이라도 있었어야 했거늘. 모리니는 그러지 못했다. 차라리 한국 문단의 작가들을 보고 배웠다면 조금 어땠을까? 영화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고 인간은 누구도 자신의 양심과 기억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냥 그렇게 멋들어지게 이야기하면 되는 거 아니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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