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 누구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일할 것인가?
제현주 지음 / 어크로스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단히 계산을 좀 해보자. 삼각김밥 하나의 가격은 800 원이다. 요즘은 그 형태나 맛에 따라 가격이 다양하긴 하지만, 클래식한 삼각김밥들은 어쨌든 800 원이니까 800 원으로 잡는다. 성인 남자인 내가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선 최소 두 개 정도는 있어야 할 테니. 800 × 2 = 1,600. 거기다가 목이 메지 않기 위해서는 마실 게 필요하다. 우유나 음료수가 넉넉잡아 1000원이니까, 수식은 이렇게 된다. (800 × 2) + 1,000 = 2,600. 한 끼에 딱 2,600원이면 된다. 나는 하루에 세 끼를 먹는다. 아침은 거르지 않고 꼭 먹는다. 그리고 일 년이 365일. 이렇게 하면 딱 한 해의 식비가 나온다. 총 2,600 × 3 × 365 = 2,847,000 원. 그렇다. 생각보다 얼마 안 든다. 현재 내 자산으로 비춰보면 부모님 집에서 숨만 쉬고 산다는 가정 하에서는 무려 10년도 넘게 살 수가 있다!

 

 

위와 같이 아주 단순하고도 멍청해 보이는 계산을 시도한 건 작년 가을부터다. 회사 2년 차에 접어들던 당시, 정말 미치도록 일하기가 싫었던 순간이 찾아왔다. 이 일이 나랑 맞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이 일을 해서 앞으로 얼마나 더 재미를 느낄지도 모르겠으며, 이 회사에서의 나의 미래가 도저히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때려치우자니 바깥은 지옥이라 하고, 많든 적든 월급은 꼬박꼬박 나오고 있긴 한데... 하면서 혼자 답 없는 속앓이를 하던 중. 문득 삼각김밥이 내 눈에 들어왔다. 결국 '먹고사니즘'의 문제. 만약 먹고사는 게 보장이 되기만 한다면? 그래서 당장 폰을 꺼내 들고 계산해 봤다. 결과는 아주 놀라웠다. 꽤나 많은 시간과 돈이 나에게 남아 있었다. 일을 그만둔다 해도 말이다. 그 돈을 삼각김밥으로 모두 탕진하기 전까지는 뭐가 됐든 새로운 벌이를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당시의 고민이 한 결 가벼워졌다. 물론 그와 동시에 사표를 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없어졌고, 더 이상 회사의 압박에 웅크리지 않게 되었다. 일상이 다시 살만해졌다. 그렇게 한고비를 넘긴 것이다.

 

 

그 후 종종 일에 대한 고민이 올라올 때면 나는 마법의 연산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저축액이 쌓이는 만큼, 버틸 수 있는 기간도 점차 늘어 이제는 삼각김밥 10년도 거뜬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내 스트레스와 자세의 문제이지. 근본적인 답은 아니었다. 너 계속 그렇게 살래? 하는 질문이 내게 주어질 때마다 나는 일과 내가 어떻게 안 맞는지에 대해서만 대충 나를 변호할 뿐. 확연한 답을 건낼 수가 없었다. 어쩌면 코너에 몰릴 때만 생각을 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일하기는 싫은데,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요 며칠 바람이 차가워졌다. 그 찬 바람을 타고 동기들의 퇴사 소식이 하나 둘 들려왔다. 나는 또 한 번 삼각김밥 값을 계산할까 하다가 그냥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를 집어 들었다. 지난 여름 출판사 대표 30인이 뽑은 추천도서 목록에서 본 적이 있는 책. 여름에 읽을까 하던 것을 잠깐쟁여두었는데 그게 참 다행이구나 싶었다. '내리막 세상', '노마드'와 같은 단어에서 풍겨지듯, 책은 젊은 세대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어줍짢은 힐링 대신 현실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일'과 '나'의 관계, '일'의 개념 등에 대해서 고찰한다.

 

 

'일'과 '나'는 동일한가? 하나의 직업으로 나를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고전적인 질문들부터, 일은 놀이가 될 수 있는가? 우리가 '잉여짓'이라 부르는 돈 안되는 행위 들은 일이 될 수 있는가? 까지 막힘없이 펼쳐진다. 주제가 주제다 보니 모든 답이 명쾌할 수는 없었지만, 저자의 의견에 참 많은 부분 공감했다. 읽으면서 지금의 내 모습과 미래의 내 모습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생각했다. 특히 사회의 불평등은 계급에서 오는 게 아니라 유전적 능력의 차이에서 더 크게 올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 부분에서는, 내 호흡도 따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소위 말하는 능력이라는 게, 그러니까 사회가 원하는 그 능력에 대한 보상이라는 것이 과연 공정한 것인가? 다른 말로는 타고나는 것. 즉 적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생각해봐야지 싶다. 일터에서의 측정, 평가, 피드백으로 이어지는 구조에 대한 이야기이도 하니 말이다. 결국 사람들은 이 프로세스를 납득하지 못해 일터를 떠나가고, 잠시 재충전을 거쳐 또 다른 일터를 찾아 나선다. 이번엔 다르겠지 하면서.

 

 

노마드가 될 것인가 말 것인가의 기로에 서서 고민하는 젊은 세대에게 책은 말한다. 자신의 욕구를 이해하고, 일과 관계 지어지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새롭게 정의해보라고 말이다. 그 과정 속에서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고, 그것을 위한 새로운 공동체(플랫폼)를 꾸려 보길 권한다. 아주 천천히, 그렇지만 꾸준하게. 그 흔한 혼자서는 못한다는 이야기가 이번에는 더욱 그럴싸하게 들려온 것은 왜일까? 가깝게는 블로그 이웃들이 진행하는 여러 책모임들, <야만스러운 탐정들>속 내장사실주의자들이 떠올랐으며, 내가 몸담았던 대학 동아리가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했다. 모인다는 것. 모여서 뭐라도 꼼지락거린다는 것의 재미를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다. 그러한 움직임이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일이 되고, 동시에 지금의 회사 또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일로 남아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욕심이 너무 많은 건가? 이런저런 생각들이 뒤엉켜 이어지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12시가 넘은 월요일이다. 진짜로 삼각김밥만 먹고살 게 아니라면 일단 출근부터 하고 보자. 가서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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