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가우초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이경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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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뇨의 소설을 읽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구성이 있다. 가령 A가 어떠한 이유로 인해 B의 존재를 알게 된다고 치자. 여기서 A와 B는 아직 만난 적이 없거나, 아니면 오래전 같은 울타리 안에 있던 사람이다. 그 후 A는 B의 동향에 대해 종종 신경 쓰게 된다. 시간이 흐른다. 자연스레 B의 소식도 희미해진다. 그러다 문득 A는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B를 다시 떠올린다. 그 후 A는 B의 궤적을 따라, B를 추적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그 집요한 추적 과정 속에서 볼라뇨가 그리는 세계가 드러난다. B를 발견하고 발견하지 못하고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 여정을 통해 A는 B가 되기도 하고, 내가 되기도 하고, 또 우리가 되기도 하니까.

 

그러면 이제 나를 A라고 치자.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을 쭉 돌아봤을 때 B가 될 수 있는 인물들을 한 번 떠올려 보자. 제아무리 평면적인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한 둘 떠오르는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연인보다는 친구 쪽이 그나마 떠올리기 수월하다.) 싸움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던, 마치 엄석대 같았던 친구 K, 지난번에도 한 번 언급한 적 있던 연기자 지망생 M, 친구가 대신 써준 자소서를 동의 없이 빼돌려서 취업에 성공한 J등. 뭐 여의치 않으면 아무 친구라도 좋다. 친구의 친구건 어디서 들은 얘기 건 간에 그냥 조금 살을 붙여서 B를 만들어 보자.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자유로운 창작자니까.

 

B를 생성해 냈다면 이제 80% 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본다. 이제 볼라뇨의 소설 중에 감명 깊었다거나, 적당해 보이는 소설 하나를 가져오자. 어차피 국내에서야 볼라뇨가 잘 팔리지 않았으니까, <칠레의 밤>이나 <야만스러운 탐정들>같은 작품만 빼고 고르면 별 탈은 없을 것이다. 대표작은 <2666>이라 하지만, 한국에서 무려 5권이나 되는 그 소설을 완독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별로 없을 테니까 괜찮다. 그런데 같은 이유로 나도 아직 못 읽어서 패스. 아무 단편이나 하나 가져오자. 이번에 읽은 <알바로 루셀로트의 여행>도 나쁘지 않을듯하다. 그리고 고른 소설 위에 고명을 얹듯, A와 B를 얹어서 한국 스타일로 단편을 하나 써보자. 치명적인 문장이 있다면 살려두고 계속해서 버무려 보자. 레퍼런스가 있다 해서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꾹 참고 한 번 쓰자. 혹시 모른다. 계속해서 퇴고해나가다 보면 어디 조그만 문학상이라도 하나 타서 등단할 수 있을지.

 

표절 아니냐고? 이거 아실만한 분들이 왜 그러실까? 소설은 인간이 쓰는 것이고 인간은 누구도 자신의 양심과 기억을 장담할 수 없다. 아직까지는 미래의 작가들과 문학의 발전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괜찮다. 처음에만 안 걸리면 된다. 나는 초반에 몇 번만 빌려와서 몸값이 올라가고 나면 그 이후부터는 자력으로 써나갈 것이라 스스로 다짐도 했으니까. 그러다 나중에 걸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럼 쿨하게 사과는 하되, 적절히 유체이탈 화법만 써주면 된다. 내 생각에도 A라는 작가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오히려 아몰랑을 시전하던 모 표절 작가와는 다르게 솔직한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크게 걱정하지 마시라.

 

오히려 걱정할 것은 과거의 표절이 아닌 표절 이후의 필력이다. 기껏 발판 밟고 날아올라 놓고 착지에서 발을 삐어버리면 그다음 점프의 기회는 사라지게 된다. <알바로 루셀로트의 여행>에 나오는 영화감독 '기 모리니'가 딱 좋은 예다. 프랑스의 젊은 예술가였던 그는 데뷔작 '잃어버린 목소리'와 차기작 '하루의 테두리'를 통해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극찬을 받았다. 두 작품 모두 아르헨티나의 작가 '알바로 루셀로트'의 소설을 가져다 쓴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지만, 의혹은 의혹일 뿐. 정확한 정황도 없었고 원작자인 루셀로트도 항의하지 않았으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오히려 루셀로트는 이러한 표절 의혹으로 인해 유명세를 얻고 성공한 작가로 커갔으니 모리니에게 감사 인사라도 했어야 한다.

 

감독 모리니와 작가 루셀로트는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고, 또 비슷한 시기에(루셀로트가 매번 조금 빠르긴 했지만) 비슷한 내용의 소설과 영화를 두 편씩 내놓으며 성공해갔다. 하지만 뭐든지 삼세번 아니랄까. 역시 세 번째가 중요했나 보다. 둘은 세 번째 작품부터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루셀로트는 커리어 최고의 소설 '곡예사 가죽'을 발표하며 성공의 쐐기를 박은 반면, 모리니는 '실종된 여인'이라는 그저 그런 영화를 발표했다. '실종된 여인'과 '곡예사 가죽' 사이에는 그 어떤 공통점도 없었으며. 심지어 지난 두 편의 작품과도 연관성이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프랑스 감독에게 내리막이 시작됐다. 이후 발표한 영화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모리니는 세상에서 잊혀 갔다. 적어도 루셀로트가 모리니를 찾아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다.

 

볼라뇨의 단편소설 <알바로 루셀로트의 여행>에서 A는 '루셀로트', B는 '모리니'였다. 어느 날 루셀로트는 자신을 표절했던 모리니가 세상에서 사라졌음을 알고 그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지만 루셀로트에게 모리니는 최고의 독자였던 것이다. 모리니를 찾으러 떠나간 여정에서 루셀로트는 허무함만 느끼고 온 것처럼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아 보인다. 굳이 찌그러져 있던 모리니를 찾아내어 그의 외마디 고함을 듣게 된 것, 그리고 그런 모리니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행위를 통해 루셀로트는 확인사살에 성공했다. 뿐인가? 한참 어린 여자와 로맨스도 즐기고, 프랑스 관광도 제대로 하고 뭐 이래저래 다음 작품에 쓸만한 에너지도 얻었으리라.

 

 

"저는 알바로 루셀로트라고 합니다. <고독>이라는 작품을 썼지요. 그러니까 <팜파스의 밤>의 저자입니다, 루셀로트가 말했다. 모리니는 잠시 뒤에야 반응을 보였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섭게 고함을 치더니 호텔 복도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 식의 반응이 나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루셀로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은 채 담배에 불을 붙이고(담뱃재가 양탄자 위에 떨어졌다) 서글픔에 시몬과 시몬의 아들, 그리고 살면서 맛본 것 중 가장 맛있는 크루아상이 나오던 파리의 카페를 떠올렸다. 이윽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리니를 불렀다. 이봐요, 아주 단호한 어조는 아니었다. 이봐요, 이봐요, 이봐요." -106p

 

 

그래서일까? <알바로 루셀로트의 여행> 역시 B를 추적하는 A의 시점이었지만, 이번만큼은 B인 모리니의 고함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메아리친다. 그는 자신을 찾아낸 루셀로트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대신 절규했다. 그 대상은 눈앞에 나타난 '루셀로트'였거나, 어쩌면 자신의 전작인 '잃어버린 목소리'와 '하루의 테두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루셀로트는 모리니가 평생 넘지 못한 한계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외마디 고함이 모리니의 표절을 입증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루셀로트의 '이봐요'는 그 두 손에 수갑을 채웠다. 참을 수 없이 초라한 순간이었다. 실력이 부족한 표절 감독의 말로란 이런 것이다. 실력이 없었다면 뻔뻔함이라도 있었어야 했거늘. 모리니는 그러지 못했다. 차라리 한국 문단의 작가들을 보고 배웠다면 조금 어땠을까? 영화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고 인간은 누구도 자신의 양심과 기억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냥 그렇게 멋들어지게 이야기하면 되는 거 아니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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