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성웅화 작업국가에 대한 충성과 애국심을 강조하며 국가주의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순신 성웅화 작업이 진행되면서 곳곳에 이순신 동상이 세워졌다. 사진은 한 국민학교에 세워진 이순신 동상.
10·17쿠데타는 박정희의 강렬한 권력욕 외에는 정당화시킬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 사회적·경제적 위기도 없었고, 남북관계는 어느 때보다도 평온했다. 미·중 간의 화해도 박 정권을 위기에 빠뜨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위기 극복 체제라고 보기에는 종신 집권의 의도가 너무나 빤히 들여다보이는 일인체제였다. 유신체제는 박정희 한 사람의 권력을 위한 박정희 일인체제로, 박정희 체제에 다름 아니었다.
음반과 라디오는 음악의 종류를 막론하고 그 청자의 규모에 있어서 전대미문의 증가를 가져왔다. 이제 음악은 거의 모든 사람이 - 그들이 받은 음악 훈련의 수준과 상관없이 -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이러한 테크놀로지는 바흐에서 바르토크에 이르는 클래식 레퍼토리의 광범위한 보급을 가져왔으며, 먼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덜 알려져 있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것은 또한 팝음악, 블루스, 재즈의 성장을 촉진했다. - P296
여운형과 안재홍 등이 해방된 그날부터 좌우연합을 추구한 것은, 기본적으로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단결하면 강대국의 지원을 경쟁적으로 받을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하면 항상 민족적 위기에 처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로 미·소 양군이 주둔하고 있는 상황에서 두 나라와 등거리외교를 하면서 좌우합작을 하는 길만이 민족적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