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람들이 나이 들어가는 현실을 사진을 통해서, 가장 은밀하고 괴로운 방식으로, 주시한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든 자주 사진에 찍히는 공인이든, 어떤 사람의 낡은 사진을 바라보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뭔가를 느끼기 위해서다. 가령 그때에는 내가(그녀가, 혹은 그가) 얼마나 젊었던가를. 사진은 죽음을 낱낱이 기록해 둔다.이제는 사후에야 깨닫데 될 인생의 얄궃음을 한 순간에 담아둘 수 있다. 그것도 손가락을 단 한번 까닥이는 것만으로. - P112
카메라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사진에 찍히는 사람에게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도덕적 한계와 사회적 금기를 넘나들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여권이다. 그 사람의 삶에 끼어드는 것이 아니라 방문하는 것, 바로 그것이 누군가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의 핵심이다. - P75
원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상황에 개입하지 않는 활동이다. 가솔린 통에 다가가는 베트남 승려, 몸통에 양팔이 묶인 이적행위자를 총검으로 찌르는 벵골의 게릴라 사진 등 인상적일 만큼 대성공을 거둔 동시대 포토저널리즘이 공포감을 자아내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사진작가들이 다음과 같은 인식, 즉 사진이나 살아 있는 피사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진을 선택하는 것도 타당하다는 인식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상황에 개입하면 기록할 수 없고, 기록하면 상황에 개입할 수 없다. - P29
1945년. 사진이 도덕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는 그에 상응하는 정치의식이 존재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정치가 없다면, 역사를 수놓은 살육 현장을 담은 사진일지라도 고작 비현실적이거나 정서를 혼란시키는 야비한 물건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