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월,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이 시작된 동남부 연해 도시를 순회 시찰 하면서 개혁개방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천명하였다. 덩샤오핑은 남순 강화로 불리는 몇 차례의 담화를 통해 개혁개방을 이분법적인 ‘성사성자’의 관점에서 평가해서는 안 되며, ‘삼개유리우’, 즉 사회주의 사회의 생산력 발전, 중국의 종합 국력 발전, 인민의 생활수준 향상 이 세 가지 방면에서 유리한가의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 P235
‘천안문 민주화운동’ 또는 ‘6.4운동’, ‘천안문 사태’, ‘천안문 사건’ 등으로 불리는 이 민주화운동에서 시위대는 정부가 4월의 학생시위를 불순세력의 책동으로 왜곡했던 것을 시정하고, 부패한 당 간부와 관료들을 처벌하며, 민생을 안정시키고, 민주적 절차를 강화할 것 등을 요구하였다. 당시 당내 강경파들의 주장과 달리, 시위 참여자들이 사회주의 철폐나 공산당 타도 또는 서구식 민주주의의 도입을 주장했던 것은 아니다. - P-1
그러나 덩샤오핑의 경제특구 정책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국가경제발전에 효과가 있었다. 기업체에 자금을 조달할 외국자본의 유입, 만성적인 외환부족의 완화, 일본과 서양의 선진 과학기술 및 산업기술의 도입, 실업자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중국 노동자들의 고용이 바로 그 소득이었다. - P177
경제회복과 함께 사회 분위기가 느슨해지자 사회주의적 혁명정신을 고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문예운동으로 시작된 이러한 움직임은 4인방의 기획하에 사상투쟁과 계급투쟁을 전면에 내건 문화대혁명이라는 급진적인 대중운동으로 전환되었다. - P157
당과 국가는 1958년부터 실시된 호구제도를 통해 모든 국민을 출생지에 따라 농촌인구와 도시인구로 분류하였다. 이 제도는 국가가 각종 사회복지혜택을 제공하던 도시지역에 농촌인구가 몰려드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국가의 재정적 부담을 줄이고자 하는 취지에서 실시된 것이다. - P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