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삶
샤를 와그너 지음, 문신원 옮김 / 판미동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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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참 여러가지로 놀라웠다. "심플라이프"라는 개념이 기술이며 문명이며 지금보다 훨씬 덜 발전된 시기에 존재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현대에 들어 사회와 삶 전반이 복잡해지면서 탄생했을 줄로만 알았는데, 단순함에 대한 욕망은 19세기에도 존재했었다. 또 하나의 놀라운 점은 그 때나 지금이나 삶의 큰 차이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을 더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 맹목적으로 부를 좇는 것 등 오늘날과 꽤나 닮아있었다. 1895년 샤를 와그너에 의해 쓰여진 이 책은 미국으로 번역 출판이 되기도 했으며, 그 유명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극찬을 한 책이라고도 한다.


 

 요즘 내 삶은 그 어느때보다도 복잡해 머리가 아플지경이다. 뭐 이리 하나 쉽게 해결되지 않는지 인간관계며 일이며, 심지어 감정까지도 단단히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엉망이다. 과연 나만 이런 복잡한 삶을 살고 있나 싶어 이야기를 꺼내보니, 이는 비단 나만의 고민은 아니었다. 어디서에서 해결책을 찾아야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도 명쾌한 답은 나오질 않는다.  조금이라도 이런 엉켜있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심플라이프의 원조격인 이 책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책은 "단순함은 일종의 정신상태다."라고 말한다. 단순함은 개인이 가진 이런저런 조건에 좌우되지 않고, 오히려 단순해지기로 마음먹으면 일상생활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들로부터 하나씩 탈피하면 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훨씬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영위하면서도, 그런 발달만큼 삶이 더 풍요로워졌다거나 행복해졌다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뭘까? 저자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현재 모습이나 운명에 만족하지 못하고 물질적인 욕망에 눈이 먼 사람들의 모습을 지적했다. 



 단순한 삶을 살지 못하는 원인도 외부가 아닌 우리 내부에 있었다.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를 하고,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노력하며 물질의 노예로 전락해버린 우리 스스로가 복잡한 삶을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가장 큰 원인은 본질과 부수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의 정신이다. 특히나 정신과 물질 중 물질을 우선시하면 크게 혼동한다. 돈이면 다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과 더 많이 소유해야 인정받는 사회는 물질 만능주의의 시대를 열었다. 나약한 정신이 결국 돈이라는 물질 앞에 무릎꿇게 만들고, 겉보기에 좋은 것, 남들 보기에 좋은 것에만 몰두하고 집착하다보니 정신은 더더욱 빈곤하고 피폐해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가 바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소유하기 위해 뭘하든 시간에 쫓기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며 걱정거리가 한 가득이다. 삶이 그저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런 판단의 착오가 삶의 모든 면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본질을 가린다는 것이 큰 문제점이다. "문명의 가치는 곧 그 중심에 있는 인간의 가치다." 인간보다 돈을 우선시하며 눈 앞의 행복, 만족을 찾기란 더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물질적인 잣대로 남을 판단하고 평가하며 자신의 위치나 권위로 자신을 드러낸다. 이는 점차 '나'만을 중요시하는 이기사회를 낳고, 세상의 발전을 지체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게 된다. 소유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책의 말이 참 와닿았다. "지갑 속에 든 것과 머리나 마음속에 든 것을 혼동하지 않는 사람, 부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같은 인간들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나날이 복잡해져 가는 삶에 고민이라면 내가 지향하는 삶, 나의 가치관부터 한 번 되돌아보는 건 어떨까. 오히려 그 속에서 쉽게 답을 찾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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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내일이 올거야
이시다 이라 지음, 이규원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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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에서부터 느껴지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 오늘날의 청춘들을 위한 책이다. 강하게 말해 흔히 저주받은 세대라고 불리는 요즘 이십대다. 나도 이 아름다운 시기를 치열하게 살아나가고 있는 이십대 중 한명으로서 눈길이 갈 수 밖에 없었던 책이다. 우리의 현실과도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책 속 주인공들은 꿈은 포기한지 오래고 자신들을 인생 종 친 놈들이라고까지 말한다. 대체 그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아 잘 될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라는 이한철의 <슈퍼스타>를 떠오르게 만드는 제목이 마음에 들어 읽게 된 책이다. 

 
 암울한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게시판 앞에 나란히 서 있는 청년 네 명, 그들이 보고 있는 건 계약 해지 공고다. 정식으로 한명 한명에게 보내는 해고 통지서가 아닌 A4용지 한장을 덩그러니 붙여놓았다. 심지어 이 공장에선 파견직원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지 두 자리 숫자로 이름을 대신했다. 그렇게 종이 한장엔 26개의 숫자가 적혀 있었다. 한 순간에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멍하니 게시판을 쳐다보며 화를 내는 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우리의 주인공 슈고, 신야, 린호센, 요스케도 다르지 않았다. 


 그때 도쿄까지 걷겠다고 한 슈고의 말이 그들의 운명을 바꾼다. 처음엔 미친짓이라 생각했다. 못해도 600에서 700킬로는 될 거리를 두 발에만 의지해 걸어간다니 무슨 생각인가 싶은 세 사람이다. 그러나 도쿄로 빨리 돌아간다 해도 마찬가지,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머지도 슈고의 계획에 동참하기로 한다. 역시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걷는 길은 쉽지만은 않았다. 걷기만으로도 벅찬데 씻기도 불편하고 잘 곳 찾기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날씨라도 도와주지 않는 날에는 더 힘든 걸음을 내딛어야만 했다. 그렇게 함께 하면서 삐걱거리기도 했지만, 친하지 않았던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붕없는 곳이 편해 야영을 시작했다는 슈고는 계속 여행만 하며 살 수 없지 않냐는 질문에 씁쓸한 대답을 이어나간다. "나는 정규직이 될 일도 없을거고 결혼도 안해." 가슴아픈 대답이 아닐 수 없다. 한 나라의 미래를 짊어진 청년의 입에서 나온 말치곤 어둡기 그지 없었다. 그렇지만 그의 대답은 현실을 비춘 것이었다. 슈고의 얘기를 시작으로 각자의 꿈을 말해보는데... 미용전문학교에 들어가고 싶은 호센과 딱히 꿈이없는 파워블로거 신야. 요스케도 신야와 비슷하게 큰 계획은 없지만 정규직이 되어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소박한 바람이 전부이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뭔가 대단한 일을 하겠다는 게 아니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은게 전부이거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박한 바람마저 그들에겐 사치였다. 먹먹한 느낌마저 들었다. N포세대라는 이름하에 수많은 것들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화가난다.

 
 그러나 파워 블로거 신야가 자신들의 이야기, <내일의 행진>을 블로그에 올리며 그들은 이 시대 청년들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주간지에 실리는가 하면, 1호팬을 비롯해 그들을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힘을 얻는다. <내일의 행진>은 단지 네 명의 청년들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근근히 버티며 살아가는 모든 우리들의 삶이 바로 그들이었던 것이다. 하나 둘 행진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넷이서 시작한 행진은 결국 수 백명의사람들과 함께 끝마치게 된다. 물론 중간 중간 몇 번의 위기가 찾아오긴 했지만 그들의 약속을 지키며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도쿄에 입성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그들의 일원이라도 된 양 뿌듯하고 벅차오르기까지 했다. 


 그렇게 아쉽게 끝난 여행이었지만, 그 끝엔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각자의 꿈을 향해 계속해서 달려나가는 주인공들. 시련이라고 생각했던 일에서 시작해, 주저앉지 않고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동안 내 눈앞의 현실에 불평만 늘어놓진 않았나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대한민국 청년들에겐 말도 못하게 잔인한 현실이지만, 그들처럼 멈추지 않고 한 발짝 나아간다면 또 다른 길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힘겹게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대한민국 청춘들이 이 책을 읽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 하루하루 버텨가는 그 날이 모이고 모여 분명 단단한 기반이 될 것이다. 그러니 포기하지 않고, 현재 서있는 그자리에서부터 다시 시작해보는건 어떨까. 나를 비롯한 모든 청춘들을 응원하며 읽어나간 책. 모두에게 곧 괜찮은 내일이 찾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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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이재익 지음 / 답(도서출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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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등포 뒷골목에서 모든 사람은 네 개의 이름으로 불린다. 아가씨, 삼촌, 이모. 그리고... 오빠! 홍등가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아가씨로, 포주, 업주 혹은 그 주변에서 일을 봐주는 사람들은 삼촌이나 이모로 불린다. 그리고 아가씨들이 상대하는 남자들이 바로 통칭 오빠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화려하고 북적거리는 타임스퀘어와는 정반대로 다소 음침하고 꺼림칙한 영등포의 한 뒷골목. 윤락업소들이 즐비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비오는 어느 늦은 밤, 그곳에서 일하던 일명 삼촌이라 불리는 이가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며 이야기는 흥미롭게 시작된다.



 좁으면 좁다고 말할 수 있는 사창가에서 연이어 두 사람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그렇게 공포와 불안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우고 있었다. 큰 간격을 두지 않고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은 골목안 사람들 마저 불안으로 몰아 넣었다. 잔심부름과 중재 역할을 하던 삼촌을 시작으로 포주(이모)가 죽음으로써, 다음 타깃은 아가씨들 중 한명이 아닐까 하는 흉흉한 소문들이 나돌기 시작한다. 두 건의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담당인 구형사는 피해자들을 연관지어 본다. 어떤 사건과 계기로 이 사건에 연루되었는지 실마리를 찾아가며 이야기는 영등포라는 곳에 더 집중한다. 누가 무엇 때문에 그들을 죽인걸까?



 실제로 존재하는 영등포를 배경이자 주무대로 이야기는 계속된다. 사실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윤락업소들조차 한때 사람들의 발길이 끈임없던 곳이라 알고있다. 물론, 지금은 사라져가고 있지만 화려한 쇼핑몰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의 뒷골목은 우리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성을 돈으로 사고 팔고 하는 일. 아가씨 중 한명으로 나오는 미선은 자발적으로 일을 찾아왔다. 가족들과 먹고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몸을 팔지만 항상 죄인된 마음으로 살고 있다. 남편을 잃고 혼자 아이를 키우며, 시어머니의 병간호까지 해야하는 상황이 얼마나 버거웠으면 떳떳하지도 못할 선택을 해야했을까. 그런 여성들이 옳은 선택을 했다는 건 아니지만 윤락업소 여성을 돈으로 사는 사람들 조차 그녀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거나 함부로 다루는 장면에서는 내심 불쾌하기도 했고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다.



 반면, 납치되어 업소에 끌려오다시피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도망치는 날에는 무시무시한 폭력이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다시금 끌려올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발버둥쳐봐도 결국엔 쉬이 벗어날 수 없는 늪과도 같은 영등포에서 그녀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더 나은 선택이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어둠만 비출뿐이다. 그저 한명의 손님이라도 더 받아야했다. 살기 위해서. 이해가 안갔다. 아무리 돈을 벌기 위해서라지만, 납치한 여자들이 자신들의 아내, 여동생, 딸이라면 그럴 수 있을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비록 떳떳한 삶을 살고 있진 못해도 그녀들이 바라는 건 다른 이들처럼 평범하게 사는게 아닐까? 그저 남들처럼 , 적어도 사람처럼 살고 싶은게 다일텐데 그 작은 바람조차 허락되지 않는 삶이란 어떤 기분일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책은 살인사건을 파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잘 보여준다. 평범한 사람들이 결코 알 수 없는 이들의 비정한 삶을 말이다. 그래서인지 책 속 이야기는 살인때문이 아닌, 우리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그 누군가의 이야기여서 더 무섭고 무겁게 다가왔다. 현실에서 벌어질만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 소설은 가독성이 좋아 쉽게 빨려들어간 책이다. 한 남자의 복수심이 만들어낸 살인. 과연 살인을 저지른 사람만에게만 죄를 물어야 마땅한 일일까 생각해본다. 그러기엔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무자비하게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 리얼했던 전개만큼 씁쓸했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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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바스켓 이야기 - 구멍가게에서 매출 5조원의 기업으로 성장한 전설의 슈퍼마켓
대니얼 코션.그랜트 웰커 지음, 윤태경 옮김 / 가나출판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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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나라도 작년부터 이어진 롯데가의 경영권 분쟁으로 떠들썩하다. 경영권 찬탈, 비리 등 검찰 수사까지 이어지면서 이목을 끌고 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 문제만은 아닌가보다. 책 속의 마켓바스켓 또한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고 이로 인해 갑작스럽게 매스컴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가족끼리 경영을 하고 있던 마켓 바스켓은 기업의 주인은 누구여야하는가란 주제에서 의견이 갈리며 소송까지 이어졌다. 아서 T 진영은 기업의 존재 목적은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에 있는 것으로 고객, 직원, 거래처 등을 기업의 주인으로 보았고, 아서 S측은 이와 반대로 주주의 입장을 대변하는 쪽에 섰다. 결국 이 분쟁에서 아서 T가 쫓겨나게 되었고 그 후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자신들의 CEO를 복직해달라는 시위가 펼쳐졌다. 현재 롯데가는 세 번째 주총의 결과 신동빈 회장측이 압승을 거두고 있다. 누가 새로운 주인이 되던 크게 신경쓰는 소비자나 직원들이 있을까? 일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러나 마켓바스켓의 경우는 달랐다. 일이고 뭐고 내팽개친 직원들, 경영자들뿐만 아니라 거래처, 고객들까지 시위에 앞장선 것이다. SNS로 까지 확산되며 시위는 불처럼 번져갔다. 이렇듯 이례적인 시위에 이런 충성심과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저자 또한 궁금했던 모양이다. 이 책은 어떻게 마켓바스켓이 꾸준한 수익을 내며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나갈 수 있었는지 그 원동력과 독특한 기업 철학에 대해 다루고 있다. 사실 작은 구멍가게에서 5조원의 매출을 달성했다는 실적보다는 사람을 향하는 그들의 기업문화가 어떻게 그렇게 탄탄하게 자리잡을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마켓바스켓이 체인점으로 성장하기 전 아주 작은 식료품점에 불과했다. 그 시작은 19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거의 죽어가던 도시인 로웰, 아크레라는 지역에 그리스 이민자 부부인 아타나시오스와 에프로시네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문을 연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았고, 형편이 어려운 주민들을 도우며 함께 살아나갔다. 가난한 도시였기에 외상 판매 및 공짜로 음식을 나눠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노동자 가정에 좋은 질의 제품과 최고의 서비스를 하겠다는 부부의 생각이 오늘날 마켓 바스켓까지 전해지고 있다. "내가 일하는 동기는 돈이 아닙니다. 나는 선량한 상인이 되고 싶습니다. 내 바람은 그 뿐이에요" 그의 기업철학은 오늘날 많은 기업들에게 큰 깨달음을 주지 않을까.



 그들이 죽고 나서는 아들인 텔레마커스와 조지가 사업을 물려받았고 점차 여러 지점을 세우며 확장해 나간다. 텔레마커스의 아들인 아서 T 또한 이런 아버지 가까이서 일하며 경영노하우를 전수받는다. 아서 T는 아버지의 경영 철학을 고스란히 이어나가며 지역 공동체 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했고, 추가 이익은 직원들과 함께 나누려 애썼다. 우리 물건을 사줄 고객, 돈을 벌어다 줄 직원이 아닌 진심으로 모두가 한 가족인 것 처럼 그들을 대했다. 이러한 아서 T의 마인드가 마켓바스켓의 원동력이었다. 그가 사람들에게 주는 신뢰는 곧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애사심, 기업에 대한 충성도로 돌아왔다. 내 가족을 자신의 가족처럼 아끼고 돌봐줬던 CEO, 소비자인 나에게 하나라도 더 나은 혜택을 주고자 했던 기업 대표가 쫓겨나니 그들은 손놓고 두고 볼 수만 없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마켓바스켓의 비밀은 소통과 분산적 리더십에 있었다. 직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그들의 작은 의견이라도 무시하지 않고 귀기울인다. 그러면서 직원들이 자신들의 일을 직접 찾아 할 수 있도록 많은 부분에서 권한을 위임하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그들만의 독자적인 노선 또한 큰 영향을 미쳤다. 경영학계의 새롭고도 효율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너도 나도 앞다투어 그 아이디어를 사업에 적용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마켓바스켓은 오히려 그런 흐름을 역주행하는 기업이다. 



 그 당시 슈퍼마켓들은 식료품을 넘어 카페, 음식점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 하나의 복합쇼핑 공간으로 나아가기 바빴다. 그리고 점차 소가족화 되고 있는 가족 구조에 맞게 식품들도 작은 용량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마켓바스켓은 그 어떤 추세도 따르지 않았다. 여전히 1주일에 한 번씩 장을 보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고품질 저가격의 상품과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입지를 굳혔다. 두 번째로는 그들의 영업지역이다. 마켓바스켓은 주로 소득이 중하위권인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새 점포를 열었다. 여기에는 경영대학원 졸업자나 박사학위를 딴 사람들이 드문데, 이러한 지역 주민들이 바닥부터 시작해 임원으로 승진하는 기업이 마켓바스켓이다. 그렇기에 실제 고위직 임원들도 경영이론에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현장에서 터득한 풍부한 유통업 지식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길을 열어나간다. 마지막 원천은 내부 승진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들은 학위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지만 마켓바스켓에선 통하지 않는다. 고위직은 졸업장으로 얻을 수 없다. 기본부터 시작해 자신의 실력을 입증한 사람들만이 승진의 기회를 얻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는 긍정적인 경쟁을 유도하고 결과적으로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모두가 가는 한 가지 길만이 답은 아니라는 교훈을 얻기도 했다. 



 감동적이면서도 참 많은 생각을 하는 경영 이야기였다. 읽는 내내 그들이 이어온 경영방침과 이에 대한 무한한 신뢰에 감탄했고,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기업이 탄생하지 못하는걸까 안타깝기도 했다. 많은 기업들이 직원과 소비자에게 충성을 요구하지만 정작 그들은 사람들을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나라 대기업들을 보면 진심에서 우러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몇이나 되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사회적인 분위기, 정부의 압력 혹은 이 또한 다시 매출로 돌아올거라는 기대감에서 오는 홍보, 보여주기식의 반 강제적인 책임을 억지로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기업의 진정한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지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렇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인 동시에 사람들의 위해, 사람들에 의해 가능해지는 일이다. 오늘날 기업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될 중요한 메시지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본인의 사익보다 큰 가치에 기여한다고 믿는 경우에는 개인적 희생을 감수할 의향이 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나만이 아닌 함께 이루고 나아가려고 노력할 때 더 큰 힘이 발휘된다. 점점 치열해져만 가는 시장이지만, 적장 살아남기 어려운 이유는 많은 기업들이 본질은 "사람"에 있다는 기본을 간과해서가 아닐까. CEO의 축출에 제 일처럼 분노하는 사람들과 단 한명의 직원도 스카웃 해갈 수 없는 놀라운 기업, 마켓바스켓의 비결은 그저 기본에 충실한 것이었다. 결국 마켓바스켓의 분쟁은 아서 T가 아서 S 진영 사람들의 지분을 인수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고 하는데 어떤 방향으로 타개할지는 모르겠으나 멀리서나마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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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슬림 - 중남미를 제패한 천재 경영자
디에고 엔리케 오소르노 지음, 김유경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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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하루에 10억씩 161년을 쓸 수 있는 남자'라는 카를로스 슬림에 대한 흥미로운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세계적인 부자의 대열에 오른 거은 알고 있었으나, 하루에 10억씩을 써도 백년 넘게 쓸 수 있다니 그가 어떻게 이렇게 막대한 부를 쌓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세계적인 갑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텔맥스에 있었다. 멕시코 통신회사인 텔맥스가 민영화 될 시점에 이를 인수했고, 여기에는 전 멕시코 대통령 살리나스의 입김이 강력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엄청난 지분을 인수받고 통신시장을 독점해 비싼 요금을 부과하며 그렇게 부를 축적해 온 것이다.



 이 기사 이외에도 『KBS 경제대기획 부국의 조건』을 읽으며 그가 어떻게 멕시코의 경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부패지수가 높은 멕시코에서 그의 자본은 정치계마저 휘두룰 수 있었다. 텔맥스의 독점이 가능한 이유 또한 다른 기업과 외국인 투자를 막은 정치계의 힘이었다고 밝혔다. 오랜시간 정치계에 뒷돈을 대주며 관계를 맺어온 것이다. 통신분야 뿐만 아니라 금융, 건설, 유통, 레스토랑 등 사람들이 이용하는 대부분의 서비스 산업에서 그는 독점을 해왔다. 그러나 서비스의 질은 형편없었다. 많은 독점 기업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다른 선택권이 없기에 질 낮은 서비스에도 침묵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 놀라웠던 것은 2006년 대통령 선출에 있어 카를로스 슬림이 선거를 조작했다는 내용이었다.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은 멕시코 민주주의를 지휘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유력 정치인들을 고성으로 초대해 회의를 하곤 합니다. 2006년 대선 전에도 유력 의원들을 모아 정치자금을 주는 대신에 이들이 이행해야할 공약 리스트를 전달했습니다." 아무리 자본주의 시대라 해도 그렇지, 한 나라의 원수가 개인에게 이렇게 힘없이 휘둘릴 수 있단 말인가. 이렇듯 카를로스 슬림하면 경제적 부와 정치권과의 결탁으로 멕시코를 쥐락펴락하는 부정적인 인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이 책은 그의 기업가 정신에 중점을 두어 천재적인 경영자라고 언급한다. 내가 모르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에서는 전반적인 카를로스 슬림의 삶을 다루고 있다. 그의 유년시절부터 가족, 사업, 그리고 그의 기업 철학까지 많은 내용을 담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 텔맥스 민영화와 살리나스 대통령과의 결탁이었기에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읽었다. 많은 기사들이 그의 부를 독점 사업 때문이라고 했으나 그는 이를 부인하며, 이 세상 어디에도 독점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지 하나의 회사가 다른 회사들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뿐이라고. 그의 말에 따르면 물론 완전 독점의 형태는 아니겠지만 텔맥스는 과점의 위치에 서있는 건 분명하지 않은가. 여전히 멕시코의 유선통신 80%, 이동통신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살리나스 대통령 시절에 일했던 로고진스키는 민영화 당시 카를로스 슬림이 가진 지분은 전체 텔맥스 지분의 약 3.8%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대통령의 외압은 없었다고 구체적인 수치와 함께 강조했다. 그럼에도 비효율적이고 독점적인 텔맥스 문제에 대해 규제를 적용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을 받아들였다. 



 독점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의 기업만 존재하므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카를로스 슬림의 말대로 그의 통신이 산업 전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그의 통신사인 텔셀이외에도 이아수셀, 모비스타, 넥스텔 등 여러 기업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통신 서비스의 질은 더 엉망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텔셀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는 멕시코에 통신탑이 부족했기 때문에 원활한 서비스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단순히 슬림이 독점한 상황에서, 국민들의 요구를 무시해 벌어진 일인줄만 알았는데 다른 사정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현재 텔맥스가 독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몇몇 지역에서는 다른 회사들이 투자를 꺼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돈이 되지 않는 지역에는 들어서지 않으려 하지만 그럼에도 텔맥스는 진입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한 쪽 면만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리고 단순히 자신의 부를 쌓기 위함이 아닌 부를 잘 경영해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그의 생각이나 검소한 소비습관 등은 다른 부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무엇을 하느냐, 그리고 그것이 어떤 종류의 부인가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여러가지면에서 비판 받을 일도 있지만 자신이 쌓은 부가 전혀 부끄럽지 않다는 그의 인터뷰에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성도 있음을 깨달았다. 어릴적 아버지의 경제 관념 교육을 통해 열 두살에 주식투자를 해가며 쌓아온 습관이 오늘날 수 백개의 사업을 거느르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물론 내가 읽은 몇 권의 책과 몇 개의 기사로 그에 대한 어떤 판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 그의 삶과 그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세계적인 부자 대열에 합류한 카를로스 슬림, 그에 대해 알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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