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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이재익 지음 / 답(도서출판) / 2016년 5월
평점 :
영등포 뒷골목에서 모든 사람은 네 개의 이름으로 불린다. 아가씨, 삼촌, 이모. 그리고... 오빠! 홍등가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아가씨로, 포주, 업주 혹은 그 주변에서 일을 봐주는 사람들은 삼촌이나 이모로 불린다. 그리고 아가씨들이 상대하는 남자들이 바로 통칭 오빠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화려하고 북적거리는 타임스퀘어와는 정반대로 다소 음침하고 꺼림칙한 영등포의 한 뒷골목. 윤락업소들이 즐비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비오는 어느 늦은 밤, 그곳에서 일하던 일명 삼촌이라 불리는 이가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며 이야기는 흥미롭게 시작된다.
좁으면 좁다고 말할 수 있는 사창가에서 연이어 두 사람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그렇게 공포와 불안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우고 있었다. 큰 간격을 두지 않고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은 골목안 사람들 마저 불안으로 몰아 넣었다. 잔심부름과 중재 역할을 하던 삼촌을 시작으로 포주(이모)가 죽음으로써, 다음 타깃은 아가씨들 중 한명이 아닐까 하는 흉흉한 소문들이 나돌기 시작한다. 두 건의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담당인 구형사는 피해자들을 연관지어 본다. 어떤 사건과 계기로 이 사건에 연루되었는지 실마리를 찾아가며 이야기는 영등포라는 곳에 더 집중한다. 누가 무엇 때문에 그들을 죽인걸까?
실제로 존재하는 영등포를 배경이자 주무대로 이야기는 계속된다. 사실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윤락업소들조차 한때 사람들의 발길이 끈임없던 곳이라 알고있다. 물론, 지금은 사라져가고 있지만 화려한 쇼핑몰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의 뒷골목은 우리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성을 돈으로 사고 팔고 하는 일. 아가씨 중 한명으로 나오는 미선은 자발적으로 일을 찾아왔다. 가족들과 먹고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몸을 팔지만 항상 죄인된 마음으로 살고 있다. 남편을 잃고 혼자 아이를 키우며, 시어머니의 병간호까지 해야하는 상황이 얼마나 버거웠으면 떳떳하지도 못할 선택을 해야했을까. 그런 여성들이 옳은 선택을 했다는 건 아니지만 윤락업소 여성을 돈으로 사는 사람들 조차 그녀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거나 함부로 다루는 장면에서는 내심 불쾌하기도 했고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다.
반면, 납치되어 업소에 끌려오다시피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도망치는 날에는 무시무시한 폭력이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다시금 끌려올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발버둥쳐봐도 결국엔 쉬이 벗어날 수 없는 늪과도 같은 영등포에서 그녀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더 나은 선택이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어둠만 비출뿐이다. 그저 한명의 손님이라도 더 받아야했다. 살기 위해서. 이해가 안갔다. 아무리 돈을 벌기 위해서라지만, 납치한 여자들이 자신들의 아내, 여동생, 딸이라면 그럴 수 있을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비록 떳떳한 삶을 살고 있진 못해도 그녀들이 바라는 건 다른 이들처럼 평범하게 사는게 아닐까? 그저 남들처럼 , 적어도 사람처럼 살고 싶은게 다일텐데 그 작은 바람조차 허락되지 않는 삶이란 어떤 기분일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책은 살인사건을 파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잘 보여준다. 평범한 사람들이 결코 알 수 없는 이들의 비정한 삶을 말이다. 그래서인지 책 속 이야기는 살인때문이 아닌, 우리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그 누군가의 이야기여서 더 무섭고 무겁게 다가왔다. 현실에서 벌어질만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 소설은 가독성이 좋아 쉽게 빨려들어간 책이다. 한 남자의 복수심이 만들어낸 살인. 과연 살인을 저지른 사람만에게만 죄를 물어야 마땅한 일일까 생각해본다. 그러기엔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무자비하게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 리얼했던 전개만큼 씁쓸했던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