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슬림 - 중남미를 제패한 천재 경영자
디에고 엔리케 오소르노 지음, 김유경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언젠가 '하루에 10억씩 161년을 쓸 수 있는 남자'라는 카를로스 슬림에 대한 흥미로운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세계적인 부자의 대열에 오른 거은 알고 있었으나, 하루에 10억씩을 써도 백년 넘게 쓸 수 있다니 그가 어떻게 이렇게 막대한 부를 쌓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세계적인 갑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텔맥스에 있었다. 멕시코 통신회사인 텔맥스가 민영화 될 시점에 이를 인수했고, 여기에는 전 멕시코 대통령 살리나스의 입김이 강력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엄청난 지분을 인수받고 통신시장을 독점해 비싼 요금을 부과하며 그렇게 부를 축적해 온 것이다.



 이 기사 이외에도 『KBS 경제대기획 부국의 조건』을 읽으며 그가 어떻게 멕시코의 경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부패지수가 높은 멕시코에서 그의 자본은 정치계마저 휘두룰 수 있었다. 텔맥스의 독점이 가능한 이유 또한 다른 기업과 외국인 투자를 막은 정치계의 힘이었다고 밝혔다. 오랜시간 정치계에 뒷돈을 대주며 관계를 맺어온 것이다. 통신분야 뿐만 아니라 금융, 건설, 유통, 레스토랑 등 사람들이 이용하는 대부분의 서비스 산업에서 그는 독점을 해왔다. 그러나 서비스의 질은 형편없었다. 많은 독점 기업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다른 선택권이 없기에 질 낮은 서비스에도 침묵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 놀라웠던 것은 2006년 대통령 선출에 있어 카를로스 슬림이 선거를 조작했다는 내용이었다.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은 멕시코 민주주의를 지휘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유력 정치인들을 고성으로 초대해 회의를 하곤 합니다. 2006년 대선 전에도 유력 의원들을 모아 정치자금을 주는 대신에 이들이 이행해야할 공약 리스트를 전달했습니다." 아무리 자본주의 시대라 해도 그렇지, 한 나라의 원수가 개인에게 이렇게 힘없이 휘둘릴 수 있단 말인가. 이렇듯 카를로스 슬림하면 경제적 부와 정치권과의 결탁으로 멕시코를 쥐락펴락하는 부정적인 인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이 책은 그의 기업가 정신에 중점을 두어 천재적인 경영자라고 언급한다. 내가 모르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에서는 전반적인 카를로스 슬림의 삶을 다루고 있다. 그의 유년시절부터 가족, 사업, 그리고 그의 기업 철학까지 많은 내용을 담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 텔맥스 민영화와 살리나스 대통령과의 결탁이었기에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읽었다. 많은 기사들이 그의 부를 독점 사업 때문이라고 했으나 그는 이를 부인하며, 이 세상 어디에도 독점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지 하나의 회사가 다른 회사들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뿐이라고. 그의 말에 따르면 물론 완전 독점의 형태는 아니겠지만 텔맥스는 과점의 위치에 서있는 건 분명하지 않은가. 여전히 멕시코의 유선통신 80%, 이동통신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살리나스 대통령 시절에 일했던 로고진스키는 민영화 당시 카를로스 슬림이 가진 지분은 전체 텔맥스 지분의 약 3.8%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대통령의 외압은 없었다고 구체적인 수치와 함께 강조했다. 그럼에도 비효율적이고 독점적인 텔맥스 문제에 대해 규제를 적용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을 받아들였다. 



 독점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의 기업만 존재하므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카를로스 슬림의 말대로 그의 통신이 산업 전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그의 통신사인 텔셀이외에도 이아수셀, 모비스타, 넥스텔 등 여러 기업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통신 서비스의 질은 더 엉망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텔셀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는 멕시코에 통신탑이 부족했기 때문에 원활한 서비스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단순히 슬림이 독점한 상황에서, 국민들의 요구를 무시해 벌어진 일인줄만 알았는데 다른 사정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현재 텔맥스가 독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몇몇 지역에서는 다른 회사들이 투자를 꺼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돈이 되지 않는 지역에는 들어서지 않으려 하지만 그럼에도 텔맥스는 진입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한 쪽 면만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리고 단순히 자신의 부를 쌓기 위함이 아닌 부를 잘 경영해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그의 생각이나 검소한 소비습관 등은 다른 부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무엇을 하느냐, 그리고 그것이 어떤 종류의 부인가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여러가지면에서 비판 받을 일도 있지만 자신이 쌓은 부가 전혀 부끄럽지 않다는 그의 인터뷰에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성도 있음을 깨달았다. 어릴적 아버지의 경제 관념 교육을 통해 열 두살에 주식투자를 해가며 쌓아온 습관이 오늘날 수 백개의 사업을 거느르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물론 내가 읽은 몇 권의 책과 몇 개의 기사로 그에 대한 어떤 판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 그의 삶과 그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세계적인 부자 대열에 합류한 카를로스 슬림, 그에 대해 알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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