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거울 나라의 앨리스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37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얼 그림,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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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예출판사의 SNS 게시물을 보면서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어릴 때 읽었던 동화였는데, 세계문학선에 들어있다니.

내가 생각하는 고전문학이 아닌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세계문학선에 담겨 있는 이유는 작품의 끝에 다다라서야 알 수 있었다.

 


 *

어린 나에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상한 등장인물들과 이상한 이야기에 푹 빠져 읽었던 앨리스의 모험담이었다면, 

지금의 나에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맛깔나는 말장난이 가득한 유머집이었다.

(아재개그 모음집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1. "그러니까 수업이지. 하루하루 지날수록 수가 없어지니까."


2. "왜 광어를 광어라고 하는지 아니?"

"왜 광어라고 하나요?"

"장화와 구두를 닦는 데 쓰기 때문이지."


이런 류의 기본적인 유머와 더불어,


3. "빵은 어떻게 만들지?"

"알아요! 우선 밀가루가 좀 있어야 하고……."

"꽃은 어디서 꺾는데?"


* 밀가루는 영어로 flour, 꽃은 flower로 두 단어는 발음이 같다.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말장난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인지 읽는 동안 영어 원서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번역을 통해 다른 언어로 변형된 형태보다,

작가의 언어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

말맛을 더 리얼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분리된 듯 보이는 두 세계를 통해

한 인간의 정체성이 부정되고 해체되고

다시 정립되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마치 피카소의 작품을 보는 듯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거울 나라의 앨리스』였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앨리스는 하는 일도 없이 언니와 강둑에 앉아 있기가 무척이나 따분했다. - P12

"식초는 사람들을 톡 쏘아붙이게 만들고, 카모마일 차는 사람들을 고약하게 만들고, 설탕 같은 건 아이들 마음씨를 달콤하게 만들지.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그러면 사탕을 가지고 그렇게 인색하게 굴지 않을 테고."
- P115

"네 말이 맞고 말고. 그것의 교훈은 ‘네가 되고 싶은 모습의 사람이 되어라‘란다. 그러니까 좀 더 간단히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네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모습과 다르게 될 수도 있고 되었을 수도 있다고 너 자신을 절대 상상하지 말라‘는 거야." - P118

앨리스의 언니는 시간이 흐른 뒤 어린 동생이 어떤 모습의 어른이 될지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앨리스가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의 소박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갈 모습, 자신의 아이들을 곁에 앉히고 신기한 이야기와 오래전 꿈에 나왔던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과 아이들이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반짝이며 듣는 모습, 어린 시절과 행복했던 여름날을 기억하며 아이들의 순수한 슬픔을 함께 느끼고 천진난만하게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기뻐하는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보았다. - P167

키티, 창문에 눈 부딪히는 소리 들려? 참 멋지고 은은하기도 하지! 누군가가 밖에서 창문 여기저기에 입을 맞추는 것 같아. 눈이 나무와 들판을 사랑해서 그렇게 부드럽게 입을 맞추는 걸까? 그러고 나서 눈은 하얀 이불처럼 나무와 들판을 포근하게 덮는 거야. 아마도 이렇게 말하겠지. ‘얘들아, 다시 여름의 올 때까지 잘 자.‘ 그리고 말이야 키티, 여름이 오고 나무와 들판이 잠에서 깨면, 온통 초록색의 옷을 입고는 바람이 불 때마다 춤을 추는 거야. 얼마나 예쁜지!" - P182

분명한 건, 언젠가 오늘보다 더 밝은 새벽을 보게 되겠지만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지금의 기쁨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그때는 흔들리는 나무나 일렁이는 잔물결보다 더 아름다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고, 천사의 손길이 여러분 방의 커튼을 걷어줄 것이며, 우리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나직한 음성보다 더 감미로운 목소리가 여러분을 깨워 새롭고도 영광스러운 날로 데려가 줄 거예요. 그리고 그날에는, 이 작은 세상에서 우리 삶을 어둡게 했던 모든 슬픔과 죄가 지나간 밤의 꿈처럼 다 잊힐 거예요! - P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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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애나 일러스트 리커버)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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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년기를 지나는 한 남자의 젊은 날에 대한 기억들. 


주인공 바움가트너는 어느 날 아침 일어난 사소한 일로 죽은 아내를 떠올리게 된다. 그녀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했다고 생각해 왔지만, 지난 10년 동안 ”쭉 그녀를 밀어내는 동시에 그녀에게 매달“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이후로 바움가트너는 하나씩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들(유년기와 부모에 대한 기억)과 함께 종종 생각에 잠긴다. 그는 문득문득 떠오르는 과거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며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아직 그의 삶은 끝나지 않았다.


*

『바움가트너』는 10년 전 아내를 잃고 살아가는 노교수가 과거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들을 통해 보편적인 감정을 느껴볼 수 있다. 과거 회상이라는 어쩌면 조금 단순하게 느껴지는 스토리는 애도와 나이듦, 그리고 그리움이라는 정서를 느끼기엔 전혀 부족하지 않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경험이 많지 않은 나에겐, 특히 배우자의 죽음은 상상하고 싶지 않을 만큼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충분한 애도를 하지 못한 주인공이 슬픔에 잠식한 채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이겨낸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내에 대한 기억들과 함께 새로운 내일을 살아가는 그를 보고 안도했다.

 

+

한 문장의 호흡이 길어 집중을 하는 것이 좀 힘들긴 했다. 그래도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걸 보면 또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나 보다.


+

폴 오스터의 작품은 처음이었는데, 『바움가트너』가 그의 유작이었다. 바움가트너가 과거를 회상하듯 폴 오스터의 작품을 거꾸로 읽어나가 봐야겠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그날 오후 신들은 아직 젊은 자아가 왕성한 힘을 내뿜고 있던 아내를 그에게서 탈취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그의 팔다리가 몸에서 뜯겨 나갔다. 네 개 전부, 팔 둘과 다리 두 개가 모두 동시에. - P36

바움가트너는 지금도 느끼고 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고, 지금도 살고 싶어 하지만 그의 가장 깊은 부분은 죽었다. - P66

젊었을 때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는 말, 이런저런 배우나 작가 이름들을 잊거나 상무 장관 이름이 머릿속에서 지워진 적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그런 일이 더 자주 일어난다는 말이며, 그런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는 바람에 이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알지 못한 채 현재 속에서 자신을 더는 따라 잡지 못하게 되면 결국 사라진 셈이 된다는 말, 아직 살아는 있으나 사라진 셈이 된다는 말이다. - P134

어떤 사건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실제로 진실이어야 할까, 아니면 설사 그 일이 일어나지 않 았다 해도, 어떤 사건의 진실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 을 진실로 만드는 것일까?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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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예술
이선아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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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이런 게 있었다고?',

'그게 유명 작가 작품이었다고?'

이선아 작가님의 『걷다가 예술』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책은 우리가 평소 다니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들을 볼 수 있어서

예술을 좋아하는 나에게 딱 알맞은 책이었다.

후루룩 후루룩 금세 읽어버렸다.



*

책을 읽기 전까지, 

말 그대로 지금까지는

큰 빌딩 앞에는 당연히 큰 설치 미술품들이 있는 거고,

호텔 로비나 백화점은 이용객들의 만족을 위해

아름답게 꾸며 놓은 거라고 생각했었다.

조금 눈에 띄는 건축물들은

'신기하게 생겼네.' 정도로 생각했고.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작품이었고,

작품들이 그곳에 존재하기까지

공간을 아우르고, 의미를 담는 모든 과정들이

담겨있는 결과물이었다.



그렇다 보니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까지

여러모로 충격이었다.

나름 예술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서 더 그랬을까.

특히나 충격? 받았던 건,

이태원 패션 5 앞에 있는

우고 론디노네의 「옐로 레드 몽크」였다.

패션 5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거기에서 처음으로 '푸딩'을 사 먹었던 기억 때문이다.

'푸딩이 이렇게 맛있는 거였구나'는 기억하지만,

정작 그 입구에 있던 작품은 본 기억조차 없었다는 것.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

여러모로 매력적인 책이다.

작품을 본 기억을 떠올리는 재미,

작품 사진을 보는 재미, 

작품들을 하나하나 검색해 보는 재미까지.



에세이 속 작품들과 공간을

체크리스트로 만들어서

하나씩 도장깨기를 다녀야겠다.



+ 꼭 후속편이 나왔으면 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번 책에서는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

주로 서울과 수도권의 작품들이 담겨있다.

그 외의 지역에도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2권 지역편'이 꼭 쓰이길 바라며:)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2002년 여름‘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 P13

"당신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걸 늘 기억하라." - P30

그는 항상 스케치북과 연필을 갖고 다닙니다. 그러다 인상적인 장면이 눈에 들어오면 바로 스케치북을 꺼내 드로잉하죠. 창의성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 그림일기도 씁니다. 일상 속에서 영감을 얻는 덕분에 그의 그림에는 ‘공감‘이 묻어 있죠. - P83

"AI의 활약이 커지면서 AI에 대한 두려움과 우려는 지금보다 더 커질 겁니다. 하지만 모두가 두려움과 피해망상에 사로잡히기보다는 가능성을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그 속에서 인간과 기계의 균형을 찾아나가야 하죠."
- P96

굳이 작품 앞에서 이렇게 깊은 메시지를 떠올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는 언제나 강조합니다. 그저 작품 앞에 서서, 보고, 무엇인가를 자유롭게 느끼면 그게 예술작품 감상의 첫 단계라고. - P105

"<카르마>는 쉽사리 삶을 포기할 수 없는 것도 인간임을 말한다. 오늘은 벅차고 내일은 불안한 현실, 우리는 이 시간에도 굳세게 걷는다." - P110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행위지만, 저마다의 보폭과 걸음걸이로 걷는 것이야말로 ‘나라는 팔레트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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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덮인 세계를 본 적 있는가 ㅣ 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8
공희경 지음 / 허블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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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연결되는 우주의 얘기이며

음악에 대한 찬가이며

세상 모든 작은 것들에 대한 사랑의 노래다."


「작가의 말」 중에서



*

경이로웠다.

압도적으로 거대한 상상력과

아름다운 문장들을 한 번에 만나기란 쉽지 않다.



공희경 작가님의 『몸으로 덮인 세계를 본 적 있는가』

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작으로

이의 없는 만장일치 당선작이라고 한다.

나 또한 그것에 이의가 없다.




소설은 거대한 세계관을 구성하며 시작된다.

어느 날 모든 생물을 증발시키는 비가 내리고,

그 비에 대항할 수 있는 유전 기술이 개발되며

인간은 두 개의 종으로 나뉘게 된다.



*

작품은 A.D. 2015 과거로 시작해서

'증발비'가 내리는 A.D. 2028 근 미래,

인간의 종이 나뉘게 되는 A.L.과 개동이라는

새로운 기원의 먼 미래까지 광활한 세대를 아우른다.



책을 한 권 다 읽고 나면,

마치 지구와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본 듯한 느낌이 든다.

과거에서 현재, 미래에서 다시 과거로 

지구와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한다.

소설 속의 미래는

지구와 인류의 미래이면서도 과거였다.



근미래의 표현은 구체적이고

먼 미래는 다소 환상적, 몽환적으로 표현되면서

소설이 진행될수록

마치 신화를 읽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

처음에 읽기 시작했을 때는

마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필력이 느껴질 만큼

정말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소설이다.



이 책은 몇 번이고 다시 읽어야

그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있을 듯하다.

SF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그리고,

조금 고차원적인 로맨스를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도

적극 추천한다.

우리에겐, 인간에겐 결국 사랑뿐이다.



*

SF 문학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인류가 존재하는 디스토피아 이후의 세계는

놀랍도록 지금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 참 무섭다.

지구와 인류가 멸망하게 된 이유를 찾고

그 절차를 다시 밟지 않으려고 하지만,

결국엔 다시 멸망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이.



물론 이 또한 우리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상상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 속 문장에도 나오듯,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생존 방식이 아닐까 싶다.




최근 들어 SF 문학을 쓰는 것이

참 어려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2020년대 초반만 해도

휴머노이드나 스페이스 SF와 같이

과학적 상상 기반의 SF 소설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디스토피아를 주제로 하는 소설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다.

(물론 내 관심 주제가 옮겨 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어서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곧 500살을 맞이할 상어 바나는 몸길이 6미터 10센티미터에 달하는 육중한 몸을 이끌고 북위 87도, 서경 1도를 지나 차가운 북극해를 횡단하고 있다. - P11

생이 구르다 구르다 똥통에 처박히면 어떻게 되는가. 멈추는가. 아니다. 썩는다. 그때부터는 썩은 몸을 짓누르며 굴러간다. 감각은 사라지고 굴러간다는 느낌만 남는다. 그때부터 몸은 바퀴가 된다. 내가 싣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도 않아진다. 구르고 있는 여기가 어디인지, 천 길 낭떠러지인지 불구덩이인지 알 필요가 없다. 끝장나기 전까진 그저 굴러간다. 이 무거운 몸을 짓누르는 힘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끌고 가는 거다. 나는 썩었으니까. 바퀴일 뿐이니까. 내게는 위안이 필요 없지. - P23

인생이 변하는 건 한순간의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직선을 옆으로 틀면 점이 된다. 굽이굽이 굴곡졌다고 생각하며 지나온 그 길들이, 하나의 화살로 꿰인 듯 느껴졌다. - P87

언제든 증발할 수 있다는 생각은 나를 기분 좋게 한다. 잡다한 생각마저 휘뚜루마뚜루 날아가 버린다. 생과 줄다리기를 하는 거다. 정말 나한테 이럴 거야? 좋아. 증발해 버리지, 뭐. - P113

"받아들여. 같은 종족에 비극이 반복되면 그건 더는 비극이 아닌 거야. 그 종족의 생존 방식인 거야." - P184

사랑을 이루기란 그렇게나 어렵더라. 사랑노벨상이 있다면 그 자리는 매년 공석일 거야. - P195

해가 질 무렵의 빛깔이 따뜻하다고 느끼는 건 빛이 떠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빛이 없는 긴 밤의 추위와 고독을 알기 때문이다. - P249

살라야,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에서 질량보존의 법칙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커지기만 하는 것이 단 하나 있단다. 그것은 사랑이야. 사랑은 증발하지 않는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면, 그건 오늘보다 내일 더 많이 널 생각할 거란 뜻이다. 네가 내 눈앞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 P253

인생이 변하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는단다. 변하는 건 힘의 방향이지, 사람이 아니라서. 그것은 시시때때로 휘몰리는 바람과 같이 우리를 쥐고 흔들고 때로는 내동댕이친다. 바람 속에 있을 때는 그 힘이 바람의 것인 줄 모르고 내 것인 줄 착각한다. 떨어져 나온 뒤에야, 우리는 그것의 정체를 볼 수 있다. - P294

우리는 때로 지켜야 할 것이 많아 살아남는 것보다 사랑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잊어버리고 마는데, 결국 그 사실을 알면서도 같은 길을 가고 마니….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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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작별
김화진 외 지음 / 책깃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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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불안'이라는 주제 아래

현실과 SF를 넘나드는 여섯 가지 이야기가 묶였다.



소설마다 시대적 배경이 달라짐에도 불구하고

차별과 불안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청소년과 청년들의 이야기들이다.



말 그대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요즘이다.

이러한 빠른 변화의 흐름 속에서

진정한 '나'의 존재 의미를 깨닫고,

어떻게 그 의미를 지켜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다시 한번 상기시킴과 동시에

실제로 이러한 문제 안에서 상처받고 있는 이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글들이라 느낀다.



10대 후반 청소년들과 20대 초반 청년들이

꼭 한번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었다.



-



▪️김화진, 「우연한 작별」

동갑내기 사촌이자 친구였던 두 사람. 그들의 십 대, "질투와 혐오 사이, 그 어디쯤"(p. 25)의 이야기.



▪️조우리, 「에버 어게인」

청소년 현장 실습 사고로 사망한 아들을 VR로 만난 엄마. 개인의 부주의로 결론이 났던 그때의 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



▪️최진영, 「휴일」

사고로 엄마를 잃고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대학을 포기하고 제빵사가 된 주인공의 이야기.



▪️허진희, 「너에게 맞는 속도」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출발선에서 달리기를 시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p. 128)은 아이들. 그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이야기.



▪️이꽃님, 「에이저」

"AI보다 더 나은 '인간'임을 증명해"(p.153) 야만 하는 두 친구의 이야기.



▪️이희영, 「페페」

팬데믹 이후 비대면이 일상이 되어 "사람을 만나는 게 어색"해진 시대에 '진짜 학교' 등교를 앞둔 한 가족의 이야기.




최근 근로 현장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청소년, 청년 근로자들의 사망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

「에버 어게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학교 실습 현장에서 사망한 아들을

VR 기술로 다시 만나게 되면서

‘개인의 부주의’로 축소시켰던

죽음의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지금의 현실보다 기술이 진보된 근미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 지배 계층들이 청소년, 청년들의 죽음을

개인적 죽음으로 호도하는 설정에 너무나도 가슴 아팠다.



소설 속 미래가 진짜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길 바라고,

바라는 만큼 어른으로서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연선이를 다시 만난 건 설날이었다. - P9

질투와 혐오 사이, 그 어디쯤 내 마음이 있었다. - P25

하지만 지금까지도 빈번하게 같은 일이 일어난다. 가장 약하고 가장 아래에 위치한 힘없는 아이들이 거대한 시스템에 갈려 버리는 일.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공론화되었더라도 극히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반향이 있을 뿐이었다. - P67

나는 있잖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봐. - P109

세상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출발선에서 달리기를 시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리고 그 차이를 좁히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나는 내기에서 이길 생각을 아예 접어 버렸다. - P128

친구라는 건 얼마나 가볍고 또 가벼운 존재인가. - P175

"그러고 보니 우리 때는 사람들이 여러모로 참 잔인했던 것 같아. 눈에 보이면 보이는 대로 힘들게 하고,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잔인하게 대했으니까."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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