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통해 저자는 최인훈의 <광장>,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를 소개하며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유토피아를 건설하기위해 수행되는 인간공학과 사회공학의 문제점을 소개한다. 

최인훈의 <광장>에서는 남한도 북한도 정착하지 못하고 주변인으로서 어디 한곳도 소속되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유토피아에 대해 소개하고 있고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에서는 한 섬의 보건원장과 섬주민(나환자)의 이야기를 통해 유토피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오는 디스토피아를 소개한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는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인간사육(인간공학)을 소개하고 조지 오웰의 <1984>을 통해서는 전체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위한 통제와 감시를 소개한다.  

 이 작품들을 소개받으며 난 유토피아의 건설과 수단/과정의 정당성에 대해 생각했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이 세상에서 유토피아는 존재할 수 있을까하는 물음에 유토피아는 존재할 수 없을 거라고 자문자답을 해본다.  단지 우리는 유토피아를 꿈꾸며 디스토피아로 빠질 수 있는 가능성에 저항하며 이 사회를 지켜나가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와 희망이 혼재되어 있는 이 사회에서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누구나 행복해 할 수 있는 유토피아는 불가능하다. 단지, 그 이상을 통해 이 사회가 디스토피아로 가는 길을 막을 뿐이다.  

결과와 목적을 위해 우리는 수단과 과정을 생략하거나 경시해도 될까. 그들이 만든 유토피아를 유지하기 위해 나타나는 비인간화와 억압과 통제는 불가피한 것일까. 목적(결과)을 위해 우리는 수단과 과정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결과를 위해 그 과정을 파괴하고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떨까? 그들의 유토피아를 위해 우리에게 디스토피아를 강요하고 있지 않을까. 그들의 유토피아를 위해 우리를 개조하려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를 통제하고 감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너와 나의 공존이, 소통과 타협이, 논쟁과 똘레랑스가 이 사회를 디스토피아로 가는 길을 막아 주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유토피아로 가는 과정의 한 모습이 아닐까. 유토피아라는 이상에 도달할 수는 없다해도 우리는 그들의 유토피아와 우리의 디스토피아를 막고 공존하는 공동체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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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에 나타난 전혀 다른 구원의 두길. 

그레트헨은 무한한 자기 체념을 통한 '종교적 구원의 길'을 갔고 파우스트는 무자비한 자기실현을 통해 '인간적 구원의 길'을 갔다. 

사람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 선과 윤리를 떠나 어떤 것이 사람을 구원할까.  

죵교적이란 참으로 사람에게 안도와 위안을 준다. 외롭지 않게 하고 두렵지 않게 해준다. 어려움에 있을 때, 괴로움에 있을 때, 혼란에 있을 때, 그 때에 신앙인은 의지할 수 있다. 신에게 의지한다.그 분은 절대적인 존재이며 세상의 것들을 초월하여 세상을 관장하는 신이다. 구하면 얻는다고 했고 찾으면 얻을 거라하였다. 사람은 기도하고 구한다. 그리고, 거기에 위안을 받고 절대적인 믿음에 평온을 찾는다. 그리고, 믿음과 뉘우침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확신을 준다. 그래서 종교적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안도와 위안을 준다. 초월적인 내 노력이 없어도 구원받을 수 있을거라는 안도와 위안을 준다. 

자아실현을 통한 '인간적 구원의 길'이라는 말이 나에게는 극기복례로 대표하는 유학 선비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파우스트는 말 그대로 무자비한 자기실현을 이루었지만, 그런 자기실현이 사람을 구원하는 길이라고는 동의할 수 없다. 그리고, 떠오른 모습이 선비의 모습이다.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나를 의탁할 수 있는 절대자/신 없이 자신을 다스려 나가 성인군자 경지에 오른 그런 선비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 선비는 도덕적인 자기수양의 모습이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자기실현에는 전제가 있다. 도덕적,윤리적,정의로움과 같은 훌륭함이 깃든 그것들이. 

사람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 믿음과 뉘우침에 의한 구원 아니면 (파우스트의 이기적 자기실현이 아닌) 고고함과 자기수양을 통한 자기실현을 통해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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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 난리다. 인사청문회.사퇴...... 

일을 성사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의 노력, 하늘의 뜻, 하나님의 뜻...... 

어떤 분은 따놓은 듯한 도백의 자리의 포기하고 거머쥔 듯한 만인자상의 자리가 날아갔다. 불출마를 선언할 때에 그 많던 추측에 맞게 제대로 베팅했구나 싶었는데, 낙동강 오리알이 되버렸다. 

진인사대천명일까, 교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알맞은 때에 알맞은 위치에 알맞게 쓰기위함일까. 

일은 누가 하고, 일은 성사시키는 것은 누구일까?  사람인가? 아니면 하늘/신/절대자? 아니면 자연의 그 어떤 힘? 

어떤 분의 잘 만들어지던 명예와 출세와 욕망이 참으로 어이없게 무너졌다. 여러 사람이 공들여 만든 것이. 여름에 끝무렵에 벌어진 굿판을 보고 궁금해졌다. 무엇이 일을 성사시킬까? 사람의 노력인가? 선택되어지는 건가?

나의 일을 성사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내 자신일까? 아니면 절대자/신/하늘일까? 

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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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구입한지도 한달이 지났다. 고전을 접하면서 철학에 호기심이 생겼던 그 때 발견한 책이었고 법전과 같은 두께를 보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있던 차에 동서양의 철학을 주제(인물)에 따라 비교하여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다는 평을 보고 용기를 내어 구매했다. 그리고 한달. 

아직도 읽고 있다. 성격상 읽던 책 덮어버리지 못해 끈기 있게 읽고 있으나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서양철학은 그전에 보지도 관심도 없던 분야여서 기본 지식도 없이 읽다보니 저자의 노력(쉽게 비교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편집하고 서술)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낚시에 걸린 느낌.  

그래도 동양편으로 오면서 다소 익숙한 내용이 나와 서양편에 비해 쉽게 읽고 있으나 누구의 평처럼 쉽게 이해가 가는 책이라는 말에는 당했다는 결론. 

철학사에 대해 어느정도의 지식을 갖고 이 책을 보면 괜찮을 것 같다. 시대순이라기 보다는 주제별로 대비시킨 편집이 또다른 이해와 지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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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나간 바깥은 더웠다. 태풍이 지나간 이후의 한낮은 그래도 덥다. 그러나, 에어컨이 돌아가는 사무실은 오히려 약간은 추위를 탈 정도로 시원하다.건물 하나를 두고 건물 안과 밖의 차이는 극과 극이다.  

뉴스를 보니 바깥은 온 난장판이다. 아직도 천안함은 오리무중이고 성희롱한 의원님도 오리무중이고 빌어먹을 4대강은 한쪽은 못해서 난리이고 한쪽은 안된다고 난리이며 시끄럽다. 그런나 사무실 안은 조용하다. 사람마저 없다. 적막할 정도다. 그들이 있는 세상과 내가 있는 세상의 차이는 극과 극이다. 

불과 몇걸음으로 느낄 수 있는 기온이 차이. 클릭 몇번으로 느낄 수 있는 세상의 시끄러움. 세상이 좋아져서 느끼는 감정인가? 아니면 세상이 참 못쓸 곳이 되어서 느끼는 감정인가? 극과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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