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이 있는 영화나 영화를 소설화한 작품들을 대할 때면 하게 되는 고민 하나. 영화를 먼저 볼까... 책을 먼저 읽을까... 책을 읽고서 영화를 보고는 실망했던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내가 상상했던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놀라움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기에 그 선택은 언제나 어렵다. 그래도 굳이 꼽자면 영화를 먼저 보기 보다는 책을 먼저 보기를 좋아한다. 이번에는 계획에 없이 뜻하지 않게 영화를 보게 되어 영화냐 책이냐 하는 별다른 고민없이 영화를 먼저 보게 되었다. 박찬욱의 영화는 그만의 색깔이 강하게 느껴진다. 무언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감독이다. 미리 각오를 하고 영화를 봐서인지 그리 불편하게 느끼지는 않았지만 그만의 색깔은 분명한 영화다. 극장을 나오면서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었다. 이 장면은 이런 의미였나, 저 장면은 저런 의미였나, 그들은 왜 그런거지... 내가 제대로 이해한건지 어떤건지 얼떨떨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었는데 책을 읽으니 영화를 좀 더 이해 할 수 있게되었다. 등장인물들의 디테일한 감정도 더 잘 느낄 수 있고 왜 그래야만 하는지도 좀 더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 연구소의 실험에 참여하지만 수혈받은 피로 인해 뱀파이어가 되어버린 신부 상현. 그동안 억눌렸던 그의 욕망이 그를 사로잡고 만다.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를 위해 살인까지 하게 되지만 그들에게 남은 건 행복이 아니다. 죄책감과 후회에 사로잡힌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할퀴고 그녀는 상현에 의해서 뱀파이어가 된다. 하지만 그녀는 상현과는 달리 피를 위해 살인을 서슴지 않게되고 곁에서 보고있는 상현은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된다. "이러다 우리 둘 다 지옥가요..." 상현의 목소리가 들리는것 같다. 상현과 태주는 정말 지옥에 갔을까. 그렇다면 강우와 강우의 엄마는 천국에 가는걸까. 과연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악일까. 또 그건 누가 판단하는 걸까. 끊임없는 물음들이 머리에 맴돈다. 상현이 믿고 따랐던 노신부님도 멀었던 눈을 뜨고싶어 상현에게 피를 나누어주길 간청하는 장면은 많은 물음을 던져준다. 그 누구도 선함과 악함에 있어서 자신할 수 없다. 나 스스로는 선하다 믿고싶지만 어떤 상황에 처해보지 않고서는 자신할 수 없다. 그저 나의 악함이 드러날 일이 없었을 뿐인지도.... 책을 읽는 내내 송강호의 음성이, 김해숙의 광기어린 눈이 책 속의 인물들과 자꾸만 오버랩된다. 상현이 상현으로 보이지 않고 송강호로 보이고 태주가 김옥빈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김옥빈의 연기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지 태주에게는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그저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면 됐으니 장면을 머릿 속으로 그려내기는 쉬웠지만 그만큼 소설을 내것으로 만드는 재미는 반감될 수 밖에 없었다. 내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는게 소설을 읽는 맛인데 자꾸만 영화가 책 속으로 끼어들고 만다. 책을 먼저 봤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내가 놓쳤던 부분들을 확인하고 싶어진다. DVD가 나오면 꼭 한 번 다시 봐야겠다.
내가 우디 앨런에 대해서 처음 접하게 된건 아쉽게도 그의 작품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이름을 알게 된건 한국계 입양아였던 '순이'와의 로맨스로 한창 이슈가 되었던 그 때로 기억한다. 어린마음에도 그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둘이 사랑할 수 있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가 유명한 영화감독이란 사실은 알았지만 그가 글도 많이 쓴다는건 알지 못했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도 그가 처음으로 낸 책인가 했는데 각본을 많이 쓰고 수상하기도 했고 책도 많이 냈다고 하니 나의 무지가 놀랍기만 하다. 사실 나는 단편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몰입할만 하면 끝나버리는 아쉬움 때문인지 단편을 읽고 나면 남아있는 찜찜함이 싫어서 단편은 가급적 피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아쉬움이 없었다. 아쉬움을 느끼지도 못할만큼 짧은 단편들이어서 마치 짤막한 꽁트를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한 편, 한 편이 풍자와 쌉쌀한 유머가 들어있는 짧은 시트콤의 시놉시스처럼 보인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고 있자니 안타까움과 연민이 느껴진다. 상류층에서 밀려날까 전전긍긍하는 부부, 주위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배우, 현실에 타협하고 마는 작가... 그들의 나약한 모습에서 나의 어떤 부분을 발견해서 그런지 그들의 모습이 안쓰럽고 씁쓸하다. 읽는 사람에게 이런 마음이 든다는건 이 소설들이 현실을 제대로 풍자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18편의 단편 중의 하나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는 정말 독특했다. 제목에서부터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패러디 하고 있는데 그 내용 또한 발칙하다. 니체의 미발표 유작인 다이어트 책이 발견되었다는 설정으로 그 작품을 인 용하고 있는데 단순한 이야기들을 어려운 철학적 용어를 써서 말하면서 조롱하고 있다. 이게 우디 앨런 스타일이구나 싶다. 아직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보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의 영화가 보고싶어 진다. 책을 읽으면서 한 편의 시트콤이 떠올랐으니 그의 영화는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분명 이 책 만큼 쌉쌀한 유머들이 넘치는 매력적인 영화일듯 싶다.
사랑한다는건 참 행복한 일이다. 가족간의 사랑이건 남녀간의 사랑이건 친구 사이의 사랑이건....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종종 그 '사랑' 때문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특히 변화무쌍한 남녀간의 사랑은 한없는 기쁨을 주기도하지만 무지막지한 아픔을 주기도 하면서 때때로 내 마음을 괴롭힌다. 인간의 사랑법에 아직 지치지는 않았지만 '신들의 사랑법'을 살펴보면 좀 더 노련한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신화 속의 신들은 그야말로 자유연애 주의자들이 많았다. 100년도 못사는 인간들과는 달리 영생의 삶을 사는 신들에게 근친상간이란 개념은 없었을터 상대를 가리지 않고 연애를 하는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찌보면 인간의 잣대로 근친상간이란 말을 들이미는것도 맞지 않을듯 하다. 신들은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면 작업을 걸었고 사랑을 나눴다. 특히 제우스의 경우에는 인간의 잣대로 보자면 파렴치한 바람둥이겠지만 세력을 늘려야 했던 제우스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행동이었을 거다. 아름다운 여자라면 신이던 님프던 인간이던간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것으로 만들었다. 철창에 갇힌 다나에에게는 황금비로 변신해서 찾아갔다니 그 집념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 곁을 지켜야 했던 아내 헤라의 마음이 어땠을까... 이 책에는 신화 속의 신들과 성서 속의 인물들의 사랑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연재되었던 것이 이 책의 시발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가벼운 문체들과 허걱 놀라게 만들만큼의 단어들을 거침없이 사용하고 있다. 엄숙한 신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자칫 거부감을 줄 수도 있겠다 싶다. 나야 키득거리면서 읽기는 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읽으라고 주진 못하겠다. 고등학생 정도 되면 허락할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노련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던 내가 우습게 느껴진다. 인간의 잣대로 보자면 그야말로 엉망진창 난장판의 계보를 가진 신들의 사랑을 어떻게 내가 닮을 수 있겠냔 말이다. 하지만 닮고싶은 부분이 한가지 있다. 그들의 감정에 대한 솔직함이다. 계산하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내어 감사해하고 미안해하고 사랑한다면 좀 더 행복한 사랑을 할 수 있을것 같다.
10년도 넘은 일이지만 처음 제주에 갔을 때의 놀라움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그동안 봐왔던 우리나라의 다른 바다들과는 확연히 다른 제주의 바다에 나는 넋을 잃고 말았다. 워낙 실개천이든 강이든 바다든 물이란 물은 무작정 좋아하는 내게 제주의 바다는 그야말로 혼을 쏙 빼놓는 풍경이었다. 같이 간 가족들만 없었다면 혼자 하염없이 앉아서 바다를 보고 싶었지만 가족 여행이란 언제나 내 뜻보다는 부모님의 계획된 일정을 따라야 하기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관광지 순례를 따라 다닐수 밖에 없었다. 첫 여행 이후로 제주에 반해서 몇 번의 제주여행을 했고 갈 때마다 제주의 새로운 매력을 느끼고 돌아왔다. 언젠가부터는 더이상 유명하다는 관광지를 들르지 않게 됐고 가급적이면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 다니게 됐다. 이 책을 집어든 이유도 숨겨져 있는 제주의 아름다운 곳을 찾아낼 수 있을것 같아서였다. 낭만제주... 그야말로 낭만스럽다 못해 닭살스러운 제주 이야기다. '낭만제주'라는 제목 옆에 자그맣게 씌여있는 '그녀와 산책하는'이라는 문장을 흘려봤었는데 책을 읽고나니 그 문구가 유난히 눈에 띄인다. 저자 임우석씨가 임우석씨의 그녀와 오랜 시간에 걸쳐 둘러 본 매력적인 제주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싱글이 읽으면 힘들겠다 싶다. 짝꿍있는 나도 읽기 힘든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그녀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는 장면들은 시샘이 날 정도다. 나의 '그'에게 이 책을 필독 시켜야 겠다. 그러면 그도 뭔가 느끼는게 있겠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그 어디라도 낭만적인 곳일테지만 아름다운 제주를 그, 그녀와 함께 한다니 '낭만'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제주의 아름다운 곳과 예전의 모습과는 다르게 손상되어 안타까운 곳, 사람 냄새가 나는 곳들이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실려있다. 사진이 좀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푸른 제주를 상상하기는 충분하다. 직접 가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사진들을 보면서 달래본다. 사람이 많은 여름은 피해서 가을 쯤 제주에 갈 계획이다. <낭만제주> 덕분에 이번 여행에서는 조금 더 다양한 제주를 만날 수 있을듯 하다. 제주의 구석구석을 천천히 천천히... 느리게 여행해야지. 제주의 푸른 바다를 직접 볼 그 날까지 이 책으로 마음을 달래야겠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도 배우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때만 해도 음악 교과서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하는 노래가 실려 있어서 부르곤 했었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그 노랫말처럼 당연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고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었다. 하지만 머리가 커가면서 통일이란 것이 그렇게 쉬운것도 아니고 무조건 행복의 길이 열리는 것도 아니란걸 조금씩 알게 됐다. 통일된 대한민국. 좀처럼 상상하기가 어렵다. 요즘처럼 남북의 화해모드가 깨지고 관계가 경색되어 있으니 더더욱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본다. 통일이 된다면....? 서로 군사적인 대치를 하지 않을테니 일단 국방비가 줄어들지 않을까. 외국에서 보는 대한민국의 전쟁발발 위험도 현저히 낮아질테니 투자도 활성화 될테고... 하지만 그런 핑크빛 미래만 있지는 않을것이다. 남한이 북한보다 경제력이 낫다는 판단으로 북한 사람들이 남한으로 많이 이주해 올것이고 그러다 보면 크고 작은 분쟁들도 많이 생길것이다. 점점 많아지고 있는 새터민들을 보는 시선을 생각하면 남북한 주민들이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거다. 또, 만일 흡수 통일을 하게 된다면 북한 지배계급의 와해는 피할 수 없을테고 그로 인한 반발심리도 적지 않을거다. 그 모든 문제들을 어떻게 최소화 할 수 있을지가 우리의 숙제가 아닐까. <국가의 사생활>에서 가능성이 있는 통일 대한민국의 미래 모습들 중 한가지를 보여주고 있다. 암울하고 총기류가 넘치는 무법천지에 범죄와 파멸이 난무하는 2016년 통일 대한민국. 책을 읽으면서 만나는 대한민국의 미래 모습은 내 마음을 답답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홍콩 느와르 영화처럼 우울하고 칙칙한 대한민국의 모습이 내 마음도 우울하게 만든다. 인민군 출신 조직 폭력단 '대동강'의 2인자 리강은 자신이 평양에 다녀온 사이에 조직원 림병모가 살해당한 것에 의문을 품고 사건을 은밀하게 조사하기 시작한다. '대동강'이 자리잡고 있는 광복빌딩에는 고위관료들을 접대하는 고급술집 '은좌'와 지하에는 고문과 살인, 사체처리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자리잡고 있다. 그야말로 조폭의 복합건물이라 하겠다. 리강이 사건을 파헤칠수록 뜻밖의 사실이 드러나고 '대동강'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이 책이 보여주는 통일 대한민국의 미래가 정말 현실이 될까. 전부 맞지는 않을지라도 일부분은 현실화 될수도 있겠다 싶다. 여전히 부패한 정치인들은 야합할것이고, 부패한 경찰들은 폭력단과 연계할 것이고, 부동산이라면 혈안이 되는 투기꾼들은 북한으로 몰려갈 것이다. 하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는 통일 대한민국을 위해 조금씩이라도 준비를 한다면 그 충격과 문제들을 완충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가 하고팠던 이야기가 무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내게는 통일 후 대한민국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통일이 두려운 일이 되지 않기만을 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