꿋꿋한 소년의 이야기

모래바람을 걷는 소년
나디파 모하메드 지음, 문영혜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4월

이 책을 처음 접하면서 '소말리아'에 대해 생각했을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것은 '내전'과 '가난'이었다. 소말리아에 대해 가끔 들려오는거라고는 해적이 출몰해 인질을 잡고 돈을 요구한다는 무시무시한 뉴스들 뿐이었다. 인질들의 몸값이 국가 소득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얘기도 있을정도고 오랜 내전으로 인해 치안상태는 엉망이라 봉사단체 사람들에 대한 공격도 벌어진다고 한다.

 

소말리아 국민들이 들으면 자존심 상해 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게 '소말리아'는 위험하고 가난한 나라들 중 한 나라였다. 이런 배경 때문에라도 소말리아 출신의 작가가 쓴 그 나라 이야기가 궁금했다. 과연 내가 알고 있는 소말리아가 진짜 그들의 모습일지, 혹시 부분만 보고 전체를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 소설은 작가 나디파 모하메드가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극화한 것이라고 한다. 살인죄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처형된 '마탄'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려고 조사하던 중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전해 들으며 소설의 주인공이 아버지로 바뀌었다. 어린시절 흘려만 들었던 아버지의 이야기가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것인지 뒤늦게 깨닫고 기록해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엄마와 단둘이 친척 집에 얹혀 지내고 있는 소년 '자마'는 항상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공장에서 일하는 엄마는 항상 바쁘고 지쳐있어 자마와 있는 시간은 부족하기만 하고 게다가 얹혀살고 있는 친척집 사람들의 구박으로 자마는 길거리를 배회하는 시간이 많다. 엄마의 죽음으로 혼자된 자마는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그 길에서 굶기도 하고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에 걸리기도 하지만 아버지를 만나겠다는 결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 뒤로 자마의 힘겹지만 감동적인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소말리아의 가난에 대해, 아니 그들이 지닌 무기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가난한 그들이 납치를 통해 받은 인질의 몸값으로 무기를 사들이고 그 무기로 인해 소말리아는 다시 위험한 상황에 내몰리는 악순환에 대해..... 과연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건 누구일까. 그들에게 식량이 아닌 무기를 파는 강대국들은 소말리아의 내전과 가난에 대해 책임을 느껴야하지 않을까.

 

이 소설에서 아쉬운 점은 나의 지식 부족이었다. 그 시대에 대한 세계사적인 지식이 좀 더 풍부했으면 책 읽기가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낯설기만 했던 '소말리아'라는 나라에 대해 조금은 더 알게된 점은 뿌듯하기만 하다.

외면하고픈 진실...

어둠의 아이들
양석일 지음, 김응교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책장을 덮어버리고 싶었다. 영화를 보다가 잔인한 장면이나 참혹하고 끔찍한 장면이 나오면 눈을 감아버리듯이 <어둠의 아이들>을 읽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책장을 덮고 눈 감아 버리고 싶었다. 이 책 속에 등장한 이야기들이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온전한 픽션이라면 읽기가 수월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픽션이 아니라 내가 숨쉬고 있는 이 순간, 어느 나라의 어느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니....

 

가끔 어린이 성폭행에 대한 뉴스를 들을때면 일부 사람들의 일그러진 마음 때문에 상처받게 된 아이들과 부모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힘없는 아이들을 상대로 자신의 추악한 욕심을 채우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핑계로 그저 눈감고 귀막아 버리는게 나의 대응책이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이기적인 마음으로 내 주위에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이 책을 끝까지 읽은데는 이번에는 눈감고 귀막지 않겠다는 오기가 크게 작용했는지 모르겠다. 끝까지 눈 똑바로 뜨고 그들의 추악함을 바로 보겠다고 단단히 마음 먹었지만 책을 모두 읽어내기가 쉽지않았다. 때로는 소설 형태를 띄고 이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열 살도 채 안된 아이들이 얼마되지 않는 돈에 팔려간다. 거기에는 어려운 형편에 아이들을 몇 푼의 돈에 팔 수 밖에 없는 부모들,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사오는 일을 하는 사람, 아이들을 외국 관광객들에게 성매매 도구로 이용하는 사람, 아이들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사람등 추악한 욕심들이 얼기설기 얽혀있다.

 

아직은 부모품에서 따뜻한 사랑을 받아야 할 아이들이 어른들도 겪지 말아야 할 일들을 겪는 모습은 정말 참혹했다. 어른들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해서 학대 당하다가 죽음에 이르는 아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이유로 쓰레기 하치장에 버려지는 아이, 장기매매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는 아이... 실제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이런저런 사리사욕으로 얼룩져 아이들을 옭아매고 있는 잔인한 고리를 누군가가 끊어야 한다. 그 누군가가 어느 한사람일 수는 없을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필요한 일일테고 어떤 방법으로 도와야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나도 힘을 보태고싶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길거리에 내몰려 학대받는 아이들이 더이상은 없기를 빌어본다.

고전을 읽는 힘..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 감각의 독서가 정혜윤의 황홀한 고전 읽기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0년 3월

어떤 책을 두 번 이상 읽기란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세상에 읽을 책은 넘쳐나고 가끔 서점에라도 나가보면 이 많은 책을 평생 다 읽지도 못하는구나 싶어 책읽기에 대한 욕심으로 마음은 바빠진다. 그러니 새로운 책을 읽는데만 마음이 급급해서 읽었던 책을 다시 들춰보기가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어쩌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 급관심이 생겨 다시 읽어보면 생경한 느낌이 들때가 많다. 그 책에 대해 갖고 있던 느낌과는 다른 느낌을 만나 감동하기도 하고 미처 깨닫지 못한것을 깨닫기도 하고, 때로는 그때와 같은 감동을 얻지못해 실망하기도 한다. 세월의 흐름 만큼 내 안의 무언가도 바뀌어서 책 속의 이야기를 듣는 힘이 달라진듯 하다.

 

그렇게 읽을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고 감동을 주는 책을 고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은 매력적인 독서가 정혜윤 PD가 들려주는 고전 이야기다. 그녀의 책은 이 책으로 두 번 만났는 저번에도, 이번에도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그녀의 책이야기를 따라 갈 만큼 나의 독서력이 탄탄치가 못함이 원통할 뿐이다.

 

그녀의 책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 모든 책들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는 그녀가 대단하게 여겨진다. 튼튼한 나무에서 뻗어나간 울창한 가지처럼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저 책에서 이 책으로 촘촘이 뻗어있는 그녀의 책읽기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더불어 그녀가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을까 하는 현실적인 궁금증도 생긴다. 도대체 어떻게 읽어내길래 이리도 깊이 있고 생생하게 기억해 내는걸까..

 

우습지만 책읽기에 대한 책을 읽을 때마다 하게되는 행동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을까 싶은데...

책에 수록된 책들 중에서 내가 읽어 본 책을 세어보는 일이다.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세어봤다. 이 책에 담겨있는 15권의 고전들 중에서 내가 읽은 고전은 겨우 1/3인 5권이었다.

 

이런류의 책읽기에 대한 책을 읽을때마다 느끼는건 내가 읽었던 책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가 더 흥미롭고 이해도 빠르다는 것이다. 내가 그 책을 읽으며 느꼈던것과 저자가 느꼈던 것을 비교해보기도 하고 그 부분을 이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구나 깨닫기도 하는게 이런 책을 읽는 매력이 아닌가 싶다.

 

그런 연유로 이 책에 실린 아직 읽지 못한 나머지 10권이 몹시 읽고 싶어진건 당연한 일이다.

또, 읽었던 책도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 책은 순서대로 한꺼번에 읽는 것도 좋겠지만 곁에 두고 책에 실린 고전을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꺼내어 다시 곱씹어 보면 더 매력적일것 같다. 고전을 열심히 읽어 이 책의 진짜 매력을 느꺼보고 싶다.

미스 마플의 오마주?

플로리다 귀부인 살인 사건 ㅣ 탐정 글래디 골드 시리즈 2
리타 라킨 지음, 이경아 옮김 / 좋은생각 / 2010년 3월

얼마전 애거서 크리스티의 몇몇 작품을 얼마전 다시 읽었다. 어릴적에 읽긴 했는데 다시 읽으니 애거서 크리스티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정교한 트릭은 재독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고 흥미로웠다. 물론 요즘 추리소설 속에서도 종종 만날 수 있는 트릭이지만 100년 전에 쓰여졌단걸 감안하면 놀랍기 그지없다. 세월이 흘러도 오래도록 사랑받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나보다.

 

<플로리다 귀부인 살인사건>은 그런 대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에 바치는 오마주라고 한다. 매력적인 할머니 탐정인 미스 마플의 오마주라는 말에 이번엔 어떤 멋진 할머니 탐정이 등장할지 기대감이 부풀었다. 고독하고 냉철한 젊은 탐정과는 다른, 미스 마플에 대적할만한 색다른 탐정을 만날 수 있을것 같아 책을 받아든 마음이 설레였다.

 

글래디 골드와 친구들은 모두 70이 넘은 할머니들이다. 동네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을 해결하고는 늙었지만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걸 깨닫고 탐정 사무소를 연다. 번듯한 사무실도 아니고 그럴듯한 사건의뢰도 아직 없는, 글래디 골드의 집에 마련한 탐정 사무소지만 탐정 할머니들은 매일 모여서 아웅다웅 하며 즐거워한다.

 

글래디는 남편의 불륜을 의심하고 있는 할머니가 불륜의 꼬리를 잡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데 이것이 탐정 사무소의 제대로된 첫 사건 의뢰였다. 탐정 할머니들은 미행과 잠복을 해가면서 의뢰인의 남편을 조사한다. 그런 와중에 부유한 할머니들의 연속적인 죽음을 접하게 되는데 이렇다하게 수상한 죽음은 아니지만 묘한 공통점을 발견한다.

 

골프장에서, 사우나에서 죽음을 맞은 그녀들은 거액을 상속받은 미망인이었다가 젊은 남자와 재혼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한 잇다른 죽음에 글래디는 의구심을 품지만 친구들과 크루즈 여행을 떠나면서 그 일은 잊기로 한다. 하지만 크루즈 여행에서 뜻밖의 사람들과 만나면서 글래디와 친구들은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미스 마플에 대적하는 매력적인 할머니 탐정을 기대했는데 실망스러웠다. 할머니 탐정들의 활약도 미미한데다 그 면면들이 그다지 공감가지도 않고 마음을 잡아 끄는 매력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추리소설이라기 보다 글래디 할머니의 연애 소설이라고 하는게 더 어울린다.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연애소설의 느낌이 풍겨서 아쉬움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와 이란의 70년대

테헤란의 지붕
마보드 세라지 지음, 민승남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3월

90년대 학번인 내게 학생운동은 그리 익숙한 일이 아니었지만 중학생 때만해도 대학생이 되면 누구나 데모를 하게 되는줄 알았었다. 가끔은 부모님께 대학에 가도 데모를 하면 안된다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80년대 시절은 그만큼 어수선했다. 어린 학생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다치고 죽어갔던 그 시절의 힘겨움을 내가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시국이 어수선한 요즘엔 시간이 10년은 거꾸로 흐른 듯하긴하지만...

 

말 한마디 잘못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거나(흠... 요즘에도 가끔 이런 일이 발생하더라ㅠㅠ), 고문사건들, 사회 지도인사들의 의문사 사건, 민주화를 외치며 학생운동을 하다 죽음을 당한 사람들... 그동안 책에서 만난 7,80년대의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이 책 <테헤란의 지붕> 속에서 그 시절의 우리나라와 비슷한 이란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읽는 동안 이란의 얘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테헤란의 중산층 마을에서 살고있는 열일곱 파샤는 단짝친구인 아메드와 지붕 위에서 별을 보며 잠들곤 한다. 테헤란에선 여름에 지붕에서 잠을 자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해마다 지붕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들이 많다며 만류하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파샤와 아메드는 지붕 위에서 만나 별을 보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별을 찾는다.

 

아메드와 아메드의 여자친구 파히드, 파샤는 자리의 집에서 행복한 여름을 보내고 추억을 쌓는다. 파샤는 자리를 남몰래 짝사랑 했지만 자리는 동네에서 신망받는 '닥터'의 약혼자였고 파샤 역시 '닥터'를 좋아하기에 그 마음을 감추고 있었다. 행복한 여름을 보낸 뒤 어느날, 지붕 위에 있던 파샤는 '닥터'가 비밀경찰에게 잡혀가는걸 목격한다.

 

70년대 이란은 비밀경찰이 사람을 함부로 잡아가서 고문을 하고 죽이는 경우도 있었는데 '닥터'가 그런 죽음을 당하게 된다.

기억을 잃고 정신병원에서 괴로워하는 파샤. 그가 잃어버린 기억 속에는 어떤 무서운 일들이 벌어졌던걸까.

'닥터'의 죽음과 그 뒤에 벌어진 일들은 열일곱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일들이었다. 기억의 퍼즐들이 맞춰지면서 파샤는 고통스러워하지만 현실을 이겨내려 애쓴다.

 

열일곱 소년 파샤의 고통이 내게도 전해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 했던,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던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처음 만났던 이란 성장소설이었지만 우리의 시대상황과 유사해서인지 낯설지가 않았고 파샤에게 감정몰입이 되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다시는 파샤와 자리, 닥터와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이 생기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