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 - 제142회 나오키상 수상작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김해용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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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을 선택함에 있어 '~상 수상작'이란 타이틀은 제법 매력적인 조건이다. 어딘가에서 검증받았다는 믿음이 생긴다고 할까.

우리 나라의 이런 저런 문학상에도 익숙하지만 일본 소설을 즐겨 읽다보니 일본의 이런저런 문학상에도 익숙해져 있다. 일본의 문학상 중에서도 가장 익숙한 상이 '나오키상'이 아닐까 싶은데 서점에 깔린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보면 일단은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그렇다고해서 나오키상 수상작이 모두 만족스러웠던것도 아닌데 일단은 눈길이 가는건 어쩔 수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도 그런 이유로 선택하게 됐다. 시라이시 가즈후미라는 작가는 낯설었지만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읽고 싶다는 열망을 부추겼다.

 

이십대에는 서른이 넘으면 어른스럽게 사랑을 할 줄 알았는데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이르러도 사랑한다는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괜한 일에 마음 상해서 울적해지기도 하고 그 사람의 진심이 뭔지 알수 없어 답답해 하기도 하고... 사랑한다는건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설레고 행복하고 마음 아픈 일들이 가득하다. 굳이 스무살의 사랑과 서른이 넘은 지금의 사랑이 다른 점을 찾자면 사랑의 색깔이 좀 다르다는 정도일까.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에서도 사랑하는 남녀가 등장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 <둘도 없이 소중한 너에게> 두 편의 소설이 들어있다. 제목만 들으면 세상에 더없이 달콤한 로맨스가 펼쳐질것 같지만 그렇진 않다. 먼저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는 좋은 집안에서 자랐지만 형들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는 우쓰기 아키오가 등장한다. 아키오는 탁월한 미모를 지닌 시바모코 나즈나와 결혼한다. 아키오는 열등감에 사로잡힌 집안을 벗어나기 위해, 나즈나는 옛 연인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루어진 결혼이었다. 이 결혼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둘도 없이 소중한 너에게>의 주인공 미하루는 약혼자 세이지와 연상의 이혼남 구로키의 사이에서 줄타기 사랑을 하고 있다.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세이지이지만 그에게서 느낄 수 없는 것을 구로키에게서 찾는다. 바람 피던 아버지를 보며 결혼에 대한 환상을 버린 미하루에게 결혼이란 그저 해야할 '일'같은 존재였고 세이지와의 결혼을 추진한다. 미하루와 세이지, 구로키의 사랑을 어떤 결말을 맺을까. 

 

연애소설을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가끔은 달달한 로맨스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기대로 집어들었던 이 책은 기대만큼 달달하지 않았다. 씁쓸한 뒷맛이 남는 사랑을 만나서 그런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더없이 소중하게만 느껴진다. 그런 의미로 시라이시 가즈후미에게 감사하다고 해야하려나. 그 누구의 말처럼 열심히 사랑하자,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는 유죄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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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하지 않으면 떠날 수 있다 - 나를 찾아가는 사랑과 희망 여행
함길수 글.사진 / 터치아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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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은 여행 서적이 참 다양하다. 기본적인 여행 지식을 담고 있는 책도 있고 특정 지역을 여행하며 쓴 여행 에세이도 있고 사진에 중점을 둔 여행 서적도 있다. 여행 서적이 이렇게 다양하고 많다는건 그만큼 떠나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반증일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일들을 내려놓고 가방하나 둘러메고 훌쩍 떠나고픈 마음이 불끈불끈 솟을 때가 많다. 하지만 떠나고 싶다는 열망에 비례해 떠나지 못하는 이유들도 많아진다.

 

내가 떠나지 못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이 쓴 여행기를 읽으며 대리만족을 느끼곤 하는데 모든것을 접고 오랜기간 동안 여행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날 때가 있다. 가끔은 온 가족이 떠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그들의 용기에 감탄하고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곰곰 생각해보면 떠나지 못한다고 꼽는 이유들이 내 욕심으로 인한게 아닌가 싶어진다. 지금 누리고 있는 평안함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그런 욕심. 그런 이유로 이 책 <소유하지 않으면 떠날 수 있다>의 제목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손에 움켜쥐고 놓치 못하는 것들로 인해 떠나지 못하고 있는 내게 한마디 툭 던지는듯 했다.

 

이 책의 저자는 많은 곳을 여행했다고 한다. 6개 대륙의 이름난 나라들은 모두 다녀온 것 같다니 대단하고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그 모든 나라들 중에서도 일상에서 문득 그리워지고 꼭 다시 가보고 싶어지는 나라들은 에티오피아, 라오스, 케냐, 수단, 베트남 등 아시아의 오지와 아프리카의 가난한 시골마을이라고 한다. 화려하고 멋진 곳은 아니지만 그곳 사람들의 마음이 따뜻하고 눈빛이 맑았기에 그런게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도 그런 나라들의 따뜻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물 긷고 가던 여자들과 아이들, 꼬질꼬질한 물걸레로 운동화를 닦아 준 에티오피아 소년, 검은 물이 흐르는 강가에서 빨래를 하며 생계를 잇는 인도의 불가촉천민. 그리고 감탄이 절로 나오는 아름답고 경이로운 자연을 담은 사진들도 많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글을 읽은 시간보다 사진을 들여다본 시간이 훨씬 길었다. 아름답고 순수한 사람들과 절경을 보고 있자니 흐르는 시간을 잊게 된다.

 

숨가쁜게 돌아가는 바쁜 도시에서 살아가다보면 때로는 숨이 차기도 한다. 잠시 멈춰서서 한숨을 돌리고 주위를 둘러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 속에 있는 사람들과 자연을 만나다 보면 내가 움켜쥐고 싶어하는 것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깨닫게 될테니까 말이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은 내게 휴식과도 같은 감사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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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평전 - 외롭고孤 높고高 쓸쓸한寒
몽우 조셉킴(Joseph Kim) 지음 / 미다스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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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대학 다닐땐 시집을 들고다니며 읽곤 했었다. 그 시를 다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때 시집 읽기를 즐겼던 시절이 있었다는게 지금의 나를 생각해보면 놀랍기만 하다. 언젠가부터 시가 어렵게만 느껴지면서 시집은 나와 먼 얘기가 되었다. 가끔 예전에 읽었던 시집을 꺼내 한 편씩 읽기는 하지만 새로운 시집을 사서 읽은건 언제적 일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 시절에 읽었던 시들 중에서 유난히 좋아하던 시 가운데 백석의 시가 있었다.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로 시작하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읽는 순간 마음이 철렁하는 감정을 느꼈다. 그때까지 내가 읽었던 시들과는 다른 시어들이 가득한 이 시는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가난한 내'가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 눈이 '푹푹' 나리는것도 그랬다. 정확히 지적할 순 없었지만 시인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듯 했다.

 

백석의 시집에서 좋았던 시들도 많았지만 미처 다 이해하지 못한 시들도 있었다. 시라는건 그저 마음으로 느끼면 되는거라 위안하긴 했지만 마음 속 어딘가에선 그의 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백석평전>을 봤을 때 그런 바람을 이룰 수 있을거란 기대로 마음이 설레였다. 백석... 그의 시와 그의 삶을 들여다 보고 싶은 마음에 책장을 넘기는 손이 바빠졌다.

 

이 책의 저자는 화가다. 백석의 삶을 들여다보기 전에 책의 날개에 적힌 저자의 이야기가 눈을 잡아 끌었다. 어릴적부터 몸이 약해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형의 미술 스승인 유태인 아브라함 차에게 조각과 미술, 종교, 문학, 예술 등에 걸쳐 집중적인 교육을 받았다. 화가로 자리잡아 가던 중 중소기업 대표가 자신의 사진을 내밀며 초상화를 그려달라 주문을 하자 자신의 왼손을 망치로 내려친다. 그는 왼손으로 그림을 그렸기에 더는 예전과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없었고 익숙하지 않은 오른손으로 새롭게 그림을 그려나간다.

 

점차 건강은 악화되고 목숨까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던 그에게 백석은 한 줄기 빛이 되어준다. 그는 죽기전에 꼭 이루고 싶었던 소원이 있었는데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와 같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것과 그들의 그림에 영감을 준 근원이 무엇인가를 아는것이었다. 그는 백석의 시를 통해서 그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의 그림 속에 백석의 시가 들어 있다는걸 알게된 것이다. 그는 백석의 시에 몰입하면서 건강도 되찾고 새로운 그림 세계를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두 사람의 예술인을 만났다. 시인 백석과 화가 김영진.

화가 김영진은 시인(詩人)처럼 화인(畵人)이 되고 싶다고 한다. '가家는 그 사람의 지위를 나타내지만, 인人은 사람 본인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 두 예술인의 예술혼을 만날 수 있었던것 만으로 이 책 <백석평전>을 읽은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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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탑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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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공놀이 노래>를 시작으로 국내 출간된 요코미조 세이시의 모든 책을 읽었다. 우리 조카들이 좋아하는 만화 '명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라는 긴다이치 코스케의 활약을 보는것도 즐거웠고 일본 전통적인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것도 색달라 요코미조 세이시의 책을 꼬박꼬박 챙겨봤었다. 그래서 <삼수탑>도 당연하게 읽어야 할 책이었고 그렇게 했다.

 

요코미조의 책을 읽으면서 책이 쓰여진 시기와 현재와의 50년이 넘는 세월의 차이를 가끔 느끼기도 했지만 <삼수탑>만큼 절절하게 느낀적은 없었다. 오래된 한국영화의 손가락이 오글거리는 장면을 보는것처럼 책 읽는 동안 손가락이 오글거리고 목덜미가 근질근질했다. 물론 내가 이런류의 로맨스를 좋아하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미스터리 부분을 제외하고 로맨스 소설로 본다하더라도 글쎄올시다 싶었다.

 

좋은 집안에서 얌전한 처녀로 자란 오토네에게 뜻밖의 유산상속 소식이 전해진다. 잘 알지 못하던 친척 할아버지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는데 조건이 있었다. 슌사쿠라는 청년과 결혼을 해야한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오토네는 슌사쿠를 시체의 모습으로 만나게 되고 오토네를 둘러싼 사람들은 차례차례 죽음에 몰린다. 오토네에게 접근한 운명같은 한 남자가 있었는데 정체를 알 수 없음에도 오토네는 자꾸만 그 남자에게 빠지게 된다. 과연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이고 오토네와 어떤 결말을 맞게 될 것인가......   

 

학창시절에 유행했던 하이틴 로맨스라는 소설책들이 있었다. 조그마한 책이었는데 일정한 패턴이 있는 연애소설 종류였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그런 소설, 처음엔 싫어했던 나쁜 남자에게 점점 빠져들었는데 알고보니 좋은 집안의 좋은 남자였다는 둥.... 조금 진부하다 싶은 연애소설이었지만 학창시절엔 반에서 돌려보는 인기있는 소설이었다. 그런 인기가 있던 소설이었지만 그때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삼수탑>을 읽으면서 자꾸 그 시절의 하이틴 로맨스가 떠올랐다. 그러니 이 책을 즐겁게 읽기란 내게 하늘의 별따기.

 

화자인 오토네의 감정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고 결말 부분도 전혀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고 성급하게 마무리한 느낌이었다. 혹여 이 책 한 권만 읽고 요코미조 세이시를 판단하는 독자들이 있을까 염려스럽다. 내가 그동안 읽었던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은 이 작품과는 많이 달랐기에 그의 작품이 다시 출간되면 또 읽게 될거같다. 다음엔 이렇게 실망하는 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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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 - 개정판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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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 국어 선생님께서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시면서 해주셨던 얘기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사진 속에는 가파른 산을 개간해 만든 다랭이 논에서 허리를 숙이고 일을 하고 계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멀리서 찍은것으로 한 장의 풍경화 같은 사진이었다. 선생님은 이 사진이 어떠냐고 물으셨고 우리들은 '멋있다', '아름답다' 따위의 말을 했었다. 선생님은 여행자의 시선으로 이 사진을 보면 멋진 풍경처럼 보이겠지만 사진 속의 사람들에겐 치열한 삶의 모습이라고 그저 단순한 풍경이란 감상으로 치우치면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때의 충격이란....

어린 내게는 내가 바라보고 느끼는게 전부였던 시선과는 다른,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면 다른 모습이 보인다는 놀라운 깨달음이 있었다. 그 이후로 내겐 또 하나의 시선이 생겼다. 아니, 또 하나의 시선을 만드려고 노력했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거나, 위대한 유적을 보거나, 험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거나.... 아름답다, 멋지다, 웅대하다, 대단하다 그런 감상들에 더해 그것을 만들었을 사람들의 고단한 노력과 정성을 다했을 마음까지 느껴져 마음이 찡하게 울린다.

 

우리 문학계의 거장 조정래님의 <대장경>은 그런 시선에서 그려지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리가 지켜나가야할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이 그저 아름다운 유물이라는 시선이 아닌, 대장경을 만들어낸 민초들의 순정한 나라사랑과 고결한 신앙심의 결과물로써의 '대장경'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려진다. 이 작품은 조정래님의 처녀 장편소설로 30여년 전에 쓰여졌다고 한다. 그 세월동안 4판을 찍었다니 대단하다 하겠다.

 

몽골의 침략으로 부인사에 있던 초조판대장경이 소실되고 그 과정에서 부인사 스님들과 마을사람들이 죽임을 당한다. 12살 나리에 가족을 모두 잃고 불사에 참여했던 장균, 경판 작업하는 일을 자신의 목숨처럼 여기며 혼신을 다해 대장경을 제작하는 목수 근필.. 그들의 대장경을 향한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내 마음에도 대장경 경판이 새겨지는듯 했다.

 

대가라 일컬어지는 사람에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에 이르는 대작에 흠뻑 취했었는데 조정래님의 초기작을 다시 읽으니 '역시'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앞으로도 절판되거나 오래된 판본으로 남아 있는 작품들이 있다면 이렇게 복간해서 새롭게 만나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신작을 만나는 것도 더 없이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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