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 - 개정판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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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 국어 선생님께서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시면서 해주셨던 얘기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사진 속에는 가파른 산을 개간해 만든 다랭이 논에서 허리를 숙이고 일을 하고 계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멀리서 찍은것으로 한 장의 풍경화 같은 사진이었다. 선생님은 이 사진이 어떠냐고 물으셨고 우리들은 '멋있다', '아름답다' 따위의 말을 했었다. 선생님은 여행자의 시선으로 이 사진을 보면 멋진 풍경처럼 보이겠지만 사진 속의 사람들에겐 치열한 삶의 모습이라고 그저 단순한 풍경이란 감상으로 치우치면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때의 충격이란....

어린 내게는 내가 바라보고 느끼는게 전부였던 시선과는 다른,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면 다른 모습이 보인다는 놀라운 깨달음이 있었다. 그 이후로 내겐 또 하나의 시선이 생겼다. 아니, 또 하나의 시선을 만드려고 노력했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거나, 위대한 유적을 보거나, 험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거나.... 아름답다, 멋지다, 웅대하다, 대단하다 그런 감상들에 더해 그것을 만들었을 사람들의 고단한 노력과 정성을 다했을 마음까지 느껴져 마음이 찡하게 울린다.

 

우리 문학계의 거장 조정래님의 <대장경>은 그런 시선에서 그려지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리가 지켜나가야할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이 그저 아름다운 유물이라는 시선이 아닌, 대장경을 만들어낸 민초들의 순정한 나라사랑과 고결한 신앙심의 결과물로써의 '대장경'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려진다. 이 작품은 조정래님의 처녀 장편소설로 30여년 전에 쓰여졌다고 한다. 그 세월동안 4판을 찍었다니 대단하다 하겠다.

 

몽골의 침략으로 부인사에 있던 초조판대장경이 소실되고 그 과정에서 부인사 스님들과 마을사람들이 죽임을 당한다. 12살 나리에 가족을 모두 잃고 불사에 참여했던 장균, 경판 작업하는 일을 자신의 목숨처럼 여기며 혼신을 다해 대장경을 제작하는 목수 근필.. 그들의 대장경을 향한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내 마음에도 대장경 경판이 새겨지는듯 했다.

 

대가라 일컬어지는 사람에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에 이르는 대작에 흠뻑 취했었는데 조정래님의 초기작을 다시 읽으니 '역시'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앞으로도 절판되거나 오래된 판본으로 남아 있는 작품들이 있다면 이렇게 복간해서 새롭게 만나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신작을 만나는 것도 더 없이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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