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바이올린
조셉 젤리네크 지음, 고인경 옮김 / 세계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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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거래를 하시겠습니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니오'라는 대답을 하겠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간절히 원하는 예술가라면 마음이 흔들릴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악마와 거래를 한 예술가들이나 저주가 깃든 악기에 대한 소설이나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다. <악마의 바이올린>에도 악마와 거래를 했다고 알려진 파가니니와 파가니니의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가졌던 사람들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세계적으로 희귀해서 어마어마한 몸값을 자랑하는 스트라디바리우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아네 라라사발은 출처가 불명확한, 파가니니의 스트라디바리우스라고 짐작되는 바이올린을 갖고있다. 그녀는 공연을 앞두고 대기실에 찾아온 지휘자에게 바이올린의 스크롤에 새긴 악마의 형상을 보여주면서 자신은 파가니니처럼 악마와 거래를 했다고 농담처럼 말을한다. 1부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2부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에 그녀는 누군가에게 살해되고 그녀의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사라진다.

 

살인사건을 맡은 페르도모 경위는 아네의 스트라디바리우스에 얽힌 저주같은 이야기를 알게 된다. 파가니니는 악마와 거래를 했다고 알려지며 시신이 교회에 안치되지 못했고, 지네트 느뵈는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아네 라라사발은 공연장에서 살해됐으며, 그녀의 스트라디바리우스에 악마의 형상을 새겨준 바이올린 장인은 우연한 사고로 목숨을 잃게된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정말 악마의 저주일까. 페르도모 경위는 차츰 사건의 진실에 다가간다.

 

이 책을 추리소설의 범주에 넣고 판단하자면 기가막히게 훌륭한 추리소설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저주가 깃든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이야기를 오싹하게 끌어가는 힘은 약하고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클래식을 기반으로 한 소설로 판단한다면 맛깔스럽다고 할 수 있다. 클래식에 그다지 깊은 지식이 없는 페르도모 경위를 등장시켜 클래식 전반에 걸친 상식을 들려주고 실존했던 클래식 연주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해 현실감을 강조했다.

 

어렸을 때는 클래식이 졸립고 따분한 음악이라 생각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클래식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클래식에 대해 아는것도 별로 없고 겨우 발걸음을 떼는 클래식 초보지만 마음 깊은 곳에 와닿는 울림이 느껴지는 클래식 곡을 만나면 몇 번이라도 반복해서 듣곤한다. 이 책의 부록으로 준 CD로 파가니니의 엄청난 테크닉을 요하는 곡을 들으면서 이 소설을 읽으니 더 맛나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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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도시락 - 맛있고 간편한
김정훈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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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이공계열을 전공했지만 '과학'은 어쩐지 어렵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이런 내가 어째서 그런 전공을 택했는지 의문이지만... 우리 생활과 뗄 수 없을만큼 밀접한 과학임에도 어렵게만 느껴지는건 나뿐만이 아니어서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과학'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는 과학을 '맛있고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이 책을 외면할 수 없었다. 과연 얼마나 맛있을지, 얼마나 간편할지 잔뜩 기대를 하고 읽기 시작했다.

 

도시락처럼 즐길 수 있게 쓴 책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어려운 과학용어들이 남발되지 않고 우리 일상과 관련된 과학상식들이 가득 들어있다. 우리 몸에 숨겨진 과학, 생활 속의 과학, 생명 연장의 과학,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 신기한 생태계, 미래로 나아가는 첨단 기술, 우주 정복의 꿈, 괴짜 과학자들의 비밀 노트. 이렇게 8단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편, 한 편이 너무 길지 않고 흥미로워서 과학책답지 않게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세포도 자살을 한다는 사실은 이 책으로 처음 알게됐는데 전체의 유익함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세포가 있다는게 놀라웠다. 논개같은 세포라고나 할까... 그런 자살 세포를 유도하거나 막는 방법으로 암이나 다른 질병들을 제어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암이 정복되는 날을 기다려봐야겠다.

 

요즘 항생제 남용에 대한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는데 항생제 내성균을 먹는 '박테리오파지'에 대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박테리오파지가 제대로 개발되어 다양한 병원성 세균을 모두 없앨 수 있는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또한가지 '항균'이란 말이 붙는 제품이 무조건 좋은게 아니란 사실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과학을 좀 더 쉽고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고마운 시간이었다. 이런 책들을 통해서 과학에 흥미를 갖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아이들이나 어른들, 누구에게나 간편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책이라고 권해주고 싶다. 조금 더 다양한 주제들로 또 한권의 '과학 도시락'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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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 싸부님 1 - 이외수 우화상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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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하면 긴 머리, 마른 몸, 주름진 얼굴의 해맑은 웃음이 떠오른다.

기인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던 탓인지 그의 모습이 예전에도 지금과 같았을거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월을 빗겨간듯한 그의 맑은 웃음은 일신의 안녕을 위해 몸을 사리는 사람들과 달리 세상을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맑은 정신에서 우러나는게 아닌가 싶다. 그의 맑은 마음을 만날 수 있어 그의 글을 자주 접하기에 <사부님 싸부님>이 새롭게 출간됐다는 소식이 반갑기만 했다.

 

지금도 변함없이 이상을 추구하고 맑디 맑은 웃음을 짓는 그의 마음처럼 이 책 <사부님 싸부님>도 세월이 흘렀어도 변함없는 힘을 지니고 있다. 20년도 훨씬 전에 냈던 책이지만 현대의 사람들에게 비추어봐도 꼭 들어맞는다는게 놀랍다. 이 책이 20여년 전에 출간됐었던 책이란걸 미리 알고있지 않았다면 아마 이외수씨의 새책이라고 믿었을거다. 1983년과 2010년은 경제적으로는 많이 달라졌을지 몰라도 혼란스러운 인간의 마음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나보다.

 

두 권으로 된 우화집 <사부님 싸부님>에는 자신의 존재를 고민하고 '바다'라는 이상향을 찾아 떠나는 올챙이가 등장한다. 보통의 올챙이와는 모습이 다른 하얀 올챙이는 개구리가 되기를 거부하고 올챙이의 모습으로 머물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를 '싸부님'이라 부르며 따르는 또 다른 올챙이 한마리도 등장한다. 둘이 함께 바다를 찾아 떠나는 길에서 만나는 인연들과의 짤막한 이야기와 달이 뜨는 밤에 둘이 나누는 철학적인 문답도 엿들을 수 있다. 가끔씩 피식하고 웃게 만드는 이외수식의 유머를 만날 수 있는것도 반갑다.

 

글보다는 여백이 훨씬 많은 이 책이 글밥으로 가득한 책 못지않게 생각할거리를 내게 던져준다. 올챙이의 고민과 사유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과연 올챙이만큼 사유하면서 살고 있나 되짚어보게 하고 그저 내 마음의 욕심만을 찾아 헤매고 있는건 아닌지 반성하게 만든다. 올챙이가 찾아 헤매는 이상향이 '바다'라면 나는 어떤 이상향을 꿈꾸고 향해가고 있나 고민하게 만드는 짧지만 간단히 읽을 수 없는 묵직한 책이었다.

 

세월이 흘러도 읽는 이에게 마음의 울림을 주는 책이 명작이라고 한다면 이 책 또한 명작이라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20년이 넘는 세월을 간직한 이 책이 2010년을 살아가는 내게도 마음의 울림을 주니까 말이다. 나도 하얀 올챙이처럼 믿고 따를 수 있는 그런 인생의싸부님을 찾아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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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려도 좋아, 달라도 좋아! - 선현경, 이우일, 그리고 딸 이은서의 유쾌한 한지붕 생활 고백
선현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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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전에 '틀림'과 '다름'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살짜쿵 충격을 받았었다. 바른 우리말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이었는데 우리가 흔히 '틀리다'라는 말이 '다르다'라는 말과 구분하지 않고 잘못 쓰는것에 대해 지적했다. 그때까지도 별 생각없이 '틀리다'와 '다르다'를 구분하지 않고 마구 썼던 내게 그 단어들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 사건이었다.

 

'틀리다'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무언가 옳지 않은것, 잘못 된 것이라는 뉘앙스가 풍기는데 '다르다'라는 말은 그저 같지 않음을 뜻할 뿐이다. '나는 너와 틀려'라는 말을 나는 얼마나 많이 썼었는지... 그 속에는 혹시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라는 마음이 들어있었던건 아닌지 곰곰히 생각해 보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다름'에 대해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받아들이고 있을까. 아직은 유연성이 많이 부족한 경직된 사회문화가 퍼져있다고 생각한다. 고르게 자란 풀들 중에서 유독 웃자란 풀을 가위로 댕강 잘라버리듯 남'다른' 것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그 싹을 짓밟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획일화된, 규격화된 것들이 옳고 '다른'것은 '틀린'것이라 생각하고 있는것 같아 아쉽고 나또한 그런 사고를 하고 있는건 아닌지 조심하려고 한다.

 

<느려도 좋아 달라도 좋아>라는 제목은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모든것을 '빨리' 이루어야 하고 '남만큼' '남들처럼'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느려도 좋고 달라도 좋다는 말은 얼마나 희귀하고 소중한 말인지... 게다가 저자가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쓴 선현경님이라고 하니, 제목에 이끌리고 '선현경'이라는 이름에 이끌려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기로 다짐하지만 가끔씩은 불안해하는 엄마, 아이를 아이만으로 대하지 않고 또 한 명의 인격체로 대해서 게임 할 땐 치열하게 승부를 벌이는 아빠, 다른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모두 학원에 가는데 자신은 집으로 바로 올 수 있어서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는 귀여운 딸, 그리고 고양이들.

 

조금은 남다른, 그러나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남들과는 다르게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선현경, 이우일 부부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즐거운 책이다. 만화와 글이 적절히 섞여있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게 읽었다. 나도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으리라, 자신이 행복한 일을 찾게 하리라 예전부터 다짐했지만 실제로 아이가 생기면 과연 그럴 용기가 있을까 모르겠다. 느려도 좋고 달라도 좋다고 아이에게 말해줄 수 있는 그런 '남다른'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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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오후 두 시의 기억 - 북유럽에서 만난 유쾌한 몽상가들
박수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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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의 향기가 온몸을 감싸고 흰 눈이 소복히 쌓인 겨울을 좋아해서 눈이 많기로 유명한 훗카이도와 겨울이 긴 스칸디나비아를 동경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멀고도 먼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기회가 되는대로 꼭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다. 가끔씩 서점에 등장하는 북유럽 여행서들을 놓치지 않고 읽어보고 그곳의 사진들을 보고 또 보면서 대리만족 하고 있다.

 

몇 년 전 북유럽을 여행하고 돌아온 엄마를 붙잡고 그곳 얘기를 한참동안 물어보기도 하고 찍어온 사진들을 보면서 질문세례를 퍼부었었다. 가 본 나라들 중에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엄마에게 물었더니 핀란드와 스웨덴을 꼽았었다. 그때부터였다. 스칸디나비아 중에서도 스웨덴에 대한 꿈을 모락모락 키웠던건....

 

<스톡홀름, 오후 두 시의 기억>은 여행서가 아니다. 스웨덴 웁살라대학에서 현대 유럽 역사를 2년간 공부했던 저자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의 국적은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터키, 미국, 스웨덴, 이탈리아 등으로 다양한데 서로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그들의 서로 다른, 때로는 같은 이야기들은 매력적이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리고 공부하다보면 국제적인 감각과 낯선 문화에 대한 포용성이 절로 길러지지 않을까 싶다.

 

40대의 적지않은 나이에 20년쯤 나이 차이가 나는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저자의 모습은 멋져보인다. 사실 책의 후반부에서 그런 나이차를 짐작했을 뿐 책을 읽는 동안은 그런 나이차를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꼭 대학생이 아니더라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열려있다는 스웨덴의 대학에선 나이나 국적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닐테니까. 평생을 공부하면서 살 수 있는 그런 사회적인분위기와 기반이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자리 잡혔으면 좋겠다.

 

스웨덴 하면 떠오르는 몇가지. 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 우리나라 아이들이 많이 입양되어 있는 나라, 성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나라, 백야... 이런 단편적인것들이 마구잡이로 떠오르지만 명확한 지식은 거의 없었다. 겨울이 길고 겨울 밤이 길다는 얘기에 겨울과 깜깜한 밤을 좋아하는 나는 가급적 겨울에 여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교육 시스템이 좋다던데 그곳에 살면 어떨까 하는 공상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런 저런 막연한 생각들로 가득했던 머릿속이 이 책으로 말끔하게 정리된 듯하다. 스웨덴을 그저 복지가 잘 되어있는 나라라고 결론짓기 보다는 소수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약자가 보호받고 양성이 평등한 성숙한 나라라는 평이 어울린다. 다수의 의견만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맹신으로 소수의 의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편협함이 자리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자라온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스웨덴의 성숙함이 부러웠다.

 

돈 있고 힘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힘 없고 소수인 사람들도 모두 끌어안아야 하는게 진정 행복한 나라가 아닐까. 이 책을 읽는 내내 약자들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자라고 있는 스웨덴의 아이들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스웨덴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조금 더 명확하게, 그들의 유연하고 균형잡힌 시각들을 만날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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