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니체를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진 철학을 읽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고, 그의 아포리즘을 인용하는 허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근대 철학은 니체와 마르크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 영향력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푸코는 니체에 대한 하나의 해석은 불가능하다고 하며 해석의 중층성을 제시했다. 행복한 삶을 위한 지식과 기술의 전파자로서의 니체, 삶의 허무에 대한 처방전을 제시하는 의사로서의 니체, 사유의 명랑함과 지식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광대로서의 니체 등등. 읽는 사람의 해석에 따라 시기에 따라 니체는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만큼 그의 아포리즘은 중층적이며 다층적이다.
니체는 '느리게 읽는 법을 가르치는 자'로 스스로를 명명했기에 라르기시모로 읽어야하고, 그의 사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망치'와 '다이너마이트'로 기존의 관념을 깨뜨리며 '갱도'로 들어가 '원석'을 캐내고 다듬어 '자신'과 대면해야 한다. 그리고 '늙은 신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영원히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해도 '그렇다면 다시 한번더!'를 외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고 '초인'이라는 목표를 향해 '즐겁고 명랑하게'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니체의 철학이다.
니체를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치유하고 고양하고 더 높은 경지로 이끌 수 있는 공부이기에 시대와 무관하게 노예가 아닌 귀족의 도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