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죄수들은 작업장으로 들어갔는데 간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곧 나름대로 작업을 시작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우두커니 서서 반항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누군가 나타나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하고 싶으면 일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 두어도 좋아. 상관없어. 너희들의 음모가 탄로났지. 며칠 전에 간수가 너희들이 하는 말을 엿들었거든. 그래서 머지않아 너희들에게 무시무시한 심판을 내리게 할 거야. 너희도 말겠지만 간수는 아주 지독하고 복수심도 강하지. 하지만 나 좀 봐. 너희들은 여태껏 나를 오해했지. 그러나 보기완 달라. 나는 간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는 나를 아주 소중히 생각하거든. 나는 너희를 구해줄 수도 있고 또 구해주려고 하고 있어. 하지만 잘 들어봐. 너희들 가운데 내가 간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어주는 자들만 구해줄 거야. 그 나머지들은 불신의 결과가 무엇인지 맛보게 될 거야." 얼마 후 나이 먹은 죄수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너를 믿고 믿지 않는 것이 대체 너에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지? 네가 정말로 그의 아들이고 또 네가 말한 대로 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를 위해 말을 좀 해주렴. 그것이야말로 네가 할 일이 아닌가. 그러니 믿고 안 믿고 하는 말은 집어치워주게나!" 그러자 어떤 청년이 이렇게 외쳤다. "그리고 나도 저자를 믿지 않아, 그는 단지 공상을 하고 있을 뿐이지. 일주일이 지나도 우리는 오늘처럼 바로 이 자리에 있게 될 거야. 내기를 해도 좋아. 그리고 간수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을 거야." 그때 뒤늦게 작업장에 나온 마지막 죄수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설혹 간수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고 해도, 그는 이제 더 이상 알 수는 없게 되었어. 간수는 방금 즉사했지.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소리를 질렀다. "야아, 야아 여보시오, 아드님, 유산이 얼마나 되는가? 아마 우리는 이제 당신의 죄수가 되겠군."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에게 말했지만 나는 누구든 풀어줄거야. 단, 내 아버지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만큼이나 나를 믿는 자들만 풀어주겠어!" 죄수들은 웃지 않았다.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를 내버려둔 채 가버렸다.
<방랑자와 그의 그림자> 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