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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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에 이름을 붙이자면 '부끄러움'이 어울리겠습니다. 

 솔직히는 이 부끄러움이 진심에서 나온 거라면, 어제나 그제 쓰던 방법과 다르지 않을 '오늘의 쓰기'를 포기했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를 조금 잘 아는 분들이라면 이쯤에서 '얘가 오늘은 또 왜 이런대?'하는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뜸 들이는 건 성미에 맞지 않으니 밝히기로 합니다. 

 오늘 부끄러움이 시작된 건 여기에서였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정확한 말을 찾고 그 문맥에 가장 잘 들어맞는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려 한다. 체를 치는 것처럼 섬세하게 가다듬는 과정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그 과정을 피할 수 없다. 글 쓰는 직업의 정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중


 이렇게 말하면 이상할지 몰라도 저는 글을 고쳐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거의 모든 글을 쓰는 방법이란 게 이런 식이죠.

"자, 써볼까?"로 시작합니다.

"끝, 다 썼다."로 끝납니다.

개요도, 퇴고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휘갈긴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제 문제를 찾아봅시다.


 네. 줌파 라히리가 밝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과정이 제 쓰기 과정에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글을 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을 얻지 못하고 다만 배설하듯 쏟아내기만 해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부끄러운 건 '쏟아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뒤처리에 전혀 마음을 쓰지 않았다는 겁니다.


 책을 읽고 정리를 해나가다 보면 생각이 전복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자면 5년 전까지는 이지성 작가의 글 어디가 문제인지 몰랐습니다. 4년 전까지, '아프니까 청춘'인 줄 알았습니다. 그즈음에도 연금술사의 '우주가 도와주는 기적'이 일어날 거라 생각했습니다. 2년 전까지 김훈 작가의 글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요?

전부 뒤집혔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는 어제 한 말, 쓴 글을 '오늘의 나'가 부정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계기'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고,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 따라 어제와는 전혀 다른 생각이 형성될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글을 휘갈겨놓고 수습하지 않았던 데에는 그런 이유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어제의 '불완전한 나'가 쓴 글을 굳이 고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과 불완전했던 모습을 증거로 남겨둬야 한다는 생각, 어떻게 고쳐 쓰면 좋은지 모른다는 대안의 부재가 조금 더 구체적인 이유가 되겠군요.


 그렇게 5년 혹은 6년을 써오는 사이에 어쩌면 오만해졌던 거라는 생각이 부끄러움을 더 키웠습니다. 오만할 수 없는, 오만해서는 안 되는 존재의 오만만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게 또 있을까요.

 그래서였습니다. 그래서 더 부끄러웠습니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는 퓰리처 상 수상자 줌파 라히리가 영어가 아닌 이탈리아어에 도전한 기록이자 도전의 결실입니다. 줌파 라히리는 벵골 출신 이민자로 태어나 미국에서 자라며 벵골어에도 영어에도 애착을 갖지 못한 채 거부당하고 소외당한 마음으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새롭게 알게 된 이탈리아어에 매료되면서 처음으로 '주어진 언어'가 아닌 '갈망하는 언어'를 갖게 된 줌파 라히리는 이탈리아어에 그야말로 '몰두'합니다. 마침내는 로마에서 살면서 이탈리아어와의 거리를 좁히려고 애쓰죠. 

 이런 질문을 아주 여러 번 받았다고 합니다.

 "퓰리처 상 수상자, 영어 사용자의 최대 영광을 차지한 실력자가 왜 낯설고 생소한 언어에 도전하는가?"

명시적인 답이 없었던 건지, 가볍게 읽은 탓인지 정확한 대답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얻고자 했던 건지는 알만 합니다. 

 줌파 라히리는 이탈리아어를 통해 줌파 라히리를 얻고자 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으로 자신 있게 '나'라고 말할 수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경험. 서툴고 더디며, 기교도 수식도 없지만 그 어느 순간보다 진실된 자기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죠.

 줌파 라히리는 분명 이탈리아어를 배움으로써 비로소 자기를 말할 수 있는 '언어'를 얻었다고 느꼈을 겁니다. 처음으로 '나'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렸겠죠.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는 '건너기'로 시작합니다. 

하나의, 제법 큰 호수가 있습니다. 그 호수 한쪽에서 다른 쪽을 수영으로 충분히 가로지를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늘 호수의 얕은 부분에서만 헤엄칩니다. 언제든 헤엄치기를 멈출 수 있는 안전한 곳에서요. 어느 날에 이 사람은 한계를 느낍니다. 더는 얕은 데서만 헤엄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큰 마음을 먹고 이쪽 편에서 저쪽으로 헤엄쳐 나가기 시작합니다. 150번쯤 팔을 저었을 때 호수의 가장 깊은 중심을 지나고 또 그만큼 팔을 저었을 때는 반대쪽에 닿습니다. 너무 쉽게, 간단히 호수를 가로지르는 데 성공합니다. 이 사람은 이제 좀 자신이 생깁니다. 다시 한번, 이 사람은 호수를 가로질러 저쪽 편에서 이쪽 편으로 헤엄쳐 옵니다. 이쪽이었던 건 저쪽이 되고, 저쪽이었던 건 이쪽이 됩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이미 모든 게 달라졌음을 이 사람은 깨닫게 됩니다.


 줌파 라히리는 이런 식으로 이탈리아어와의 거리를 좁혀나가지만 여전히 한계를 느낍니다. 노력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에 화가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변신'


한 때 추방당했던 존재는 이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해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 부딪힌 벽도 언젠가는 허물거나 뛰어넘게 될 겁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자발적인 변신에의 의지이고, 의지를 뒤따르는 노력입니다. 


 이미 충분히 뛰어난 작가인 줌파 라히리는 자기를 둘러싼 벽을 뛰어넘기 위해, 공백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변신을 선택합니다. 불안해하면서도 끊임없이 더 완전하게 자기를 표현할 방법을 찾아갑니다. 

 진정 '글을 쓰는 사람'의 모범이 되어줍니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라는 제목은 줌파 라히리가 처음으로 손에 넣은 포켓 사전 이야기 마지막에 적은 문장입니다. 

원제는 IN ALTRE PAROLE, 영어 제목은 IN OTHER WORDS인데 '다른 말로', '다시 말해서'쯤 되는 의미인데 책 내용에 비춰보면 '다른 언어로'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지 싶습니다.

 한국어 제목이 더 멋지긴 한데, 원제 쪽이 더 담백하고 명료합니다.


 뭐, 부끄러움으로 시작해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 끝났군요. 

올해 목표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삼아야겠습니다. 

가장 적절한 표현을 고르고, 글을 가다듬는 일을 조금씩이나마 익혀나가야겠네요.


아, 이렇게 적었으면서도 쓰기를 마치면 들여다보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올려버리겠죠. 

 구제불능성이 또 부끄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나아져 가겠습니다. 처음에는 호수의 얕은 데서 헤엄치던 줌파 라히리처럼, 어느 순간에는 호수를 가로지를 수 있게 된 줌파 라히리처럼, 조금씩 그러나  순간에 변신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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