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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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합니다.

 고작 페미니즘이 여성주의 정도의 의미이며, 페미니스트는 여성해방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라는 식의 단편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을 뿐이죠. 

 잘못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이해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큰 오해이자 착각일 수 있는지 알기에 잘못 알고 있는 거라면 바로 잡아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평소 나름대로 개방적이라고 믿어왔고 또 여성에 대한 시각도 뒤틀려 있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름대로'였던 거지만요. 정말 그랬습니다. 실제로는 조금만 깊이 들어가도 아는 것도, 이해하고 있는 것도 거의 없었죠. 

 '차별'은 생각보다 심했고, 깊었으며, 해결하기가 간단하지 않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무엇이, 어떻게 문제가 되고 있는지 알아야 했습니다. 어떤 배경에서,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거대한 규모로, 얼마나 오래 차별받아 왔는지 알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를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어떤 차별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현실을 명료하게 짚어주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즘 입문서로 추천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이유를 알겠더군요.

둘째, 얇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학문적 배경이나, 역사적 사건들을 깊이 파고 들어가기엔 부담스러웠습니다. 

왜, 우리가, 왜 지금,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지 일단 알고 시작하고 싶었던 거죠. 


 100페이지도 안 되는 책이기에 누구나, 부담 없이, 쉽게 읽을 수 있을 테니 줄거리나 내용을 따로 적지는 않으렵니다. 잠깐만 시간을 내시면 됩니다. 수천 년이나 억눌리고 차별받아온 이들을 생각하면 너무 쉬운 일이지요.

 

 페미니스트는 '평등'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싸우지 않는 방법도 있겠지만, 싸우지 않고는 내어주려고 하지 않기에 결국 싸우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평등.


우리는 모두가, 누구나가 평등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은 평등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여성들의 말이 옳습니다. 우리는 평등하지 않습니다. 평등을 부르짖으면서 실제로는 평등할 수 없도록 사회가 만들어져 있었고, 바로 잡으려는 시도는 번번이 봉쇄됐습니다. 


 서구, 개방적이고 평등하다고 하는 나라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경제학의 아버지이자 <국부론>의 저자인 애덤 스미스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이야기하면서, 집에서 자기 식탁에 저녁을 차려주는 어머니의 손도 '보이지 않는 손'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부키). 

 

 현실에서 남성과 여성은 전혀 평등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많은 차별이, 말도 안 되는 이유들을 내세우며 행해지고 있죠.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옛날보다는 나아지지 않았느냐?"라고요. 나아졌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더 나아져야만 하죠.


 우리가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성들만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당연히 주어졌어야 할 권리와 지위를 돌려주는 것뿐이며, 그 과정을 통해 남성들 역시 더 나은 삶으로 가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하고, 여성스러워야 한다는 식의 말은 반대로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남성스러워야 한다는 말도 됩니다. '남자다운', '여자다운' 모습이 정해져 있기에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평등'이 달성된다면 남성과 여성 모두 강요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이제 막 페미니즘에 입문하는 중이라 잘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페미니즘은 남성의 권리를 빼앗고자 하는 움직임도, 남성 위에 군림하겠다는 시도도 아닙니다.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권리를 요구하고 있는 겁니다.


 유치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남자의 말입니다.

"그럼 여자들도 군대 가라고 그래!" 

이게 말인지, 망아지인지.

이 말을 또 이렇게 받게 만듭니다.

"그럼 남자들도 애 낳던가!"

오죽 답답했으면.


 남성과 여성은 똑같지 않습니다. 다릅니다. 

어느 쪽이 열등하거나 우월하거나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다른 건 다른 겁니다.

우리는 이 다름을 '차이'라고 합니다.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차이가 차별의 빌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어느 사회에나 '성역할'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남자는 근력이 더 강하고, 신체적으로도 사냥이나 채집에 유리했기에 밖에서의 활동을 맡아했습니다. 여자는 아이를 낳고, 길러야 했기에 집안일을 맡아했습니다. 상황에 맞게 업무를 분담한 거죠. 그랬던 것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남자의 역할과 여자의 역할로 굳어진 게 현재의 모습입니다. 사회의 모습이 달라졌다면 과거 효율을 위해 맡았던 일에도 변화가 따르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남자가 사장이 되고, 여자는 비서가 되는 게 자연스러운 게 아닙니다.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집안일이나 하는 게 자연스러운 게 아닙니다. 관습이 잘못됐다면 바꾸는 게 당연합니다. 그게 서로를 위하는 일인 거죠.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현대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잘못을 짚어가며 문제를 제기합니다. 

 첫째 효과는 이런 일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배워왔기에 잘못됐다는 걸 모르는 이들에게 잘못이라는 걸 일깨우는 것입니다.

 둘째 효과는 당연히 받아들이고 참아왔던 여성들의 자각을 이끌어 낸다는 것입니다.

 셋째 효과는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의 반론이 얼마나 모순되는지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넷째 효과는 편견의 탄생 배경과 실체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효과는 더 이상 억지로 꾸미거나 억누르느라 에너지를 소모하는 동시에, 화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여섯째 효과는 우리가 무엇을 하든 자유라는 겁니다. 

여성성이나 남성성은 강제되지도 고정되지도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 대로 하면 되는 겁니다.  페미니스트도 힐을 신을 수 있습니다. 여성성이나 남성성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이상적인 모습이 사회나 타인이 강요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선택이기만 하다면 문제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페미니스트는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페미니스트가 추구하는 태도에 반하는 생각이라는 거죠.


앞으로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의 언어를 조금씩 배워나갈 겁니다.

생각도 넓혀갈 겁니다. 그때는 오늘 쓴 이 감상을 다시 읽으며 부끄러워하거나, 미안하게 느끼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나름대로 말을 골라서 적는다고 했지만 우왕좌왕하고, 횡설수설하다가 시간만 보내고 말았구나 싶습니다. 

나아지겠지요. 나아질 겁니다.


저는 페미니스트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차이가 차별을 정당화할 수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적은 노력이나마 보태겠습니다.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한 인간으로서, 저를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한 근본과 근원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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