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축복
켄트 하루프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2월
평점 :

모든 인간은 죽는다.
대드 루이스는 인간이다.
대드 루이스는 죽는다.
가장 잘 알려져 있을 삼단 논법을 흉내 낸 이 세 문장은 켄트 하루프 소설 <축복>의 줄거리이기도 합니다.
70이 넘은 노인, 대드 루이스는 폐암 진단과 함께 한 달도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죠. 대드는 담담하게 선고를 받아들입니다. "100세 시대에 80도 안 돼서 죽다니 말도 안 돼!"하는 식으로 현실을 부정하거나 하는 일 없이요. 부인 메리도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둘 다 진실로, 조금도 힘들거나 슬프거나 괴롭지 않았던 건 아니었습니다. 대드는 부루퉁해졌고, 메리는 대드를 간호하다 과로로 쓰러지기도 합니다.
더 이야기를 하기 전에 대드가 '대드'인 이유를 적어야겠네요.
아빠가 됐기 때문입니다.
대드가 메리와 결혼해서 딸 에일린을 낳았을 때부터 '대드 루이스'가 됐던 거죠.
세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게 너무 단순하고도 간단히 일어납니다. 대드에게 내려진 시한부 선고처럼 말이죠.
죽음, 너무나 확실한 죽음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이 되지 않습니다. 대드에게는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여러 가지 있었고, 마무리 짓고 싶은 일도 여럿 있었으며, 꼭 만나고 싶은 사람도 하나 있었습니다. 아직 기운이 있는 동안 대드는 해결해야 하는 일들과 마무리 짓고 싶은 일들을 하나하나 처리합니다. 유언도 남기고, 운영하는 철물점 경영에 대한 문제도 해결하죠.
적어도 대드에겐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갑작스러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나았던 거죠. 하지만 한 가지 풀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벌써 오래전에 집을 나간 아들, 프랭크와 화해하는 일이요.
죽음을 앞에 둔 적이 없어 확실히는 모르지만 흔히 말하기를 죽을 때 제일 후회하는 건 '하지 않았던 일'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을 전적으로 믿지 않습니다. 대드가 후회하는 건 두 가지였으니까요.
하나는 '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지 말았어야 했던 일'이죠.
말장난 같지만 후회를 하기 시작하면 했던 일이나 하지 않았던 일이나 모두 후회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결국 어떻게 받아들이고, 무엇을 할 것인지 마음먹는 게 후회하지 않는 혹은 덜 후회하는 길이라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대드는 현명했습니다. 자책하지만 스스로를 괴롭힐 만큼 얽매이지 않았고 덕분에 주변 사람까지 고통스럽게 만들지 않았으니까요. 오히려 대드의 마음을 헤아린 주변 사람들이 큰 도움과 위안이 되어줍니다. 마지막까지 곁에 머물며 이야기를 듣고, 들려주는 거죠.
모든 인간은 죽기 전까지는 살아갑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정말 소중한 사람이 죽어간다고 해도 삶은 이어지죠. <축복> 속에서도 삶은 이어집니다. 삶에는 갈등과 슬픔과 아픔과 미움이 따릅니다. 거기에 사랑과 기쁨과 웃음과 공감과 위로와 배려와 친절이 섞여들죠.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사람으로 나고, 자라, 살다 죽는 일.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모든 과정은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하나입니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무지한 필멸자라는 생각으로 괴로워하는 일 없이죠. 인식할 수도 없을 만큼 평범하게 지나가 버리는 하루하루의 일상. 특별한 무엇이 아닌 그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소중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괜찮다, 다 괜찮다'거나, '모두 지나갈 거다'라거나, '너만 그런 게 아니다'라거나 하고 위로의 말을 건넬 생각도 없습니다. 전혀 괜찮지 않은 일이 매 순간 벌어지고, 지금이 지나가 버리면 모든 게 끝일 것만 같고, 모두가 그런 거라고 해도 위로되지 않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
<축복>이라는 제목은 원제의 의미를 비추어 보면, '떠나는 자의 평화와 남겨진 자들의 안녕 모두를 기원한다'라는 의미로 읽힙니다. 떠나는 사람이 소중한 만큼, 남겨질 사람이 사랑스러운 만큼 이별은 고통스러워지기 마련입니다. 그런 그들이 서로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서로가 서로를 축복하는 일, 마지막까지 마음을 나누는 일이 아닐지.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슬프지만 작위적으로 꾸며낸 눈물이 스며들 틈 같은 건 조금도 없습니다. 다만 담담히 받아들이고 견디어 가는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 따뜻한 이야기였음에도 읽기 힘들었는데, 그 이유를 이제 알게 됐습니다.
번역된 문장에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많은 그와 그녀와 그와 그녀가 등장했던 거죠. 생략해도 되겠고, 고유명사로 바꿔 적어도 좋았을 텐데, 대드도 그고, 대드 아들도 그고, 목사도 그고, 목사 아들도 그고, 목사를 때린 남자도 그고, 목사 아들을 때린 남자도 그고. 게다가 메리도 그녀고, 메리 딸 로레인도 그녀고, 옆집에 사는 메이도 그녀고, 목사 아내도 그녀고, 또 다른 이웃 윌라도 그녀고, 윌라 딸도 그녀라는 식.
솔직히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외엔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불평하기도 하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보통의 시간.
잊혀서 기억하지도 못할 거의 모든 시간이야말로 삶이었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