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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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일.

그 대상이 복잡하고 난해한 존재일 경우에는 특히나 더.

'이해'는 기쁨이 됩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가 존재합니다. 

 어떤 인간은 이해할수록, 실상에 가까워질수록 화가 나고, 괴롭고, 슬퍼집니다. 

"이것이 인간인가!"하는 처참하고도 참혹한 외침, 비명이나 다름없는 그 말이 저절로 나오는 그런.


 <이것이 인간인가>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가 겪은 수용소 생활의 참상을 담담하고, 사실적인 어조로 적어 내려 간 기록입니다. 격앙되거나, 흥분하거나, 울부짖거나, 소리 지르지 않았음에도 가슴 깊은 곳까지 고통과 괴로움이 전해지는 날 것 그대로의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인간인가?"하는 물음은 비단 외국의 사례, 남의 나라의 일이 아닙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1980년 광주만 가도, 1987년 서울에서도, 2014년 진도 앞바다에서도, 2015년 광화문에서도, 2017년 오늘도 우리는 이 물음과 마주해 있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 있는가?"

하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것이 인간이다."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든 그럴 수 있다고, 그렇게 들고일어날 것 없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인간인가>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 유대인 학살을 증언하는 인물인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보다 더 사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믿을 수 있는 것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없이 오로지 생존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모습. 

그런 스스로를 경멸하고 비참하게 여기면서도, 때마다 찾아오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속이고 훔치는 일을 계속하는 자기모순.

프리모 레비는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일 수 없는 상태, 말 그대로 '파괴'하는 일에 성공한 자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전쟁이고, 독일의 나치였습니다. 


 헤밍웨이의 멋진 말.

"인간은 파괴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는 말도 아우슈비츠에서는 통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패배했을 뿐 아니라 철저하게 파괴당한 산 증인들이 바로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이니까요.


 340페이지 분량의 어렵지 않은 단어로 적어 잘 읽히는 이 책이 실제로는 까다롭고 읽기 어려웠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자꾸 멈춰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인간'일 텐데, 그렇게 여러 차례 인간을 이야기해주고 있는데도 도무지 인간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가해자들이 인간이 아닌 외계인이나, 다른 존재였다면 오히려 이해가 쉬웠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인간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왜 외딴곳에서 마주쳤을 때 가장 두려운 존재가 인간인지 확실하게 알려줬습니다. 인간은 인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알고 있었던 겁니다. '인간을 죽이는 건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을요. 그래서 두려워했던 겁니다. 겁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들이 우리를 죽일 테니까요.


 <이것이 인간인가>가 단순히 학살의 폭력성과 나치의 잔인함만을 이야기했다면 이렇게까지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했을 겁니다. '이것이 인간인가'하는 물음은 조금 더 근본적인 데서 시작됩니다. 인간의 본성과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치의 바닥, 한계까지를 보여주는 거죠. 


 빅터 프랭클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자기를 잃지 말라고,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말했다면, 프리모 레비는 무엇도 믿을 수 없다, 다만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을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변화란 나쁜 것이다."

수용소에서 무엇인가가 변한다는 건 적응을 다시 해야 한다는 의미 이전에 생존 자체가 불투명해진다는 걸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변화는 희망이 아닌 절망이 되기 쉽고, 결국 나쁜 것이 되어 버리는 거죠.


 프리모 레비의 입장에서 빅터 프랭클은 운이 좋았던 셈입니다. 아무리 건강해도, 자기 관리를 잘해도, 누군가에게 잘못 찍히면 저항할 수 없는 죽음을 선사받는 그런 상황이었으니까요.


<이것이 인간인가>는 '인간이라면 이러할 것이다'라는 모든 가정을 거부합니다.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예측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거죠. 


차라리 몰랐다면, 그들이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와 비슷한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았다면, 인간에 대한 신뢰와 믿음은 여전히 지켜지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보고 있습니다. '도저히, 도무지 인간이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는가?', '저것이 인간인가?'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오는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만인의 행복과 평화를 파괴하더라도 나 하나의 즐거움을 누리려 하는 자들.

그들 역시 인간이라는 게 두렵고 또 화가 납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이 피해국들에 사과를 하고, 배상금을 치르느니 마느니 하는 소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사과도 배상도 잃어버린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라진 생명들을 되돌리지는 못했습니다.


 아우슈비츠에 들어간 사람들은 우스개처럼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들어갈 때는 문으로 들어가지만 나갈 때는 굴뚝으로만 나갈 수 있다."라고요.


'굴뚝으로 나간다'는 말은 소각되어 연기가 되어야 나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죽는다는 거죠. 나가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아우슈비츠가 '죽음의 수용소'라 불리게 된 거고요. 


 아주 낙관할 수는 없지만 1945년의 아우슈비츠와 비교하면 헬조선 운운하는 대한민국은 아직은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나아질지 어떨지를 결정짓는 건 지금부터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이죠. 


 이런 식으로 안도하게 되어 안타깝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우리의 노력과 수고로 우리를 살리는 것도, 구하는 것도 가능한 상황입니다. 이성을 잃어버린 것처럼,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 것처럼 막무가내로 구는 이들이 있지만 광기는 오래가지 못하는 법입니다.


 비록 인간을 죽이는 것이 인간이고, 인간을 파괴하는 것도 인간이지만, 인간을 구하는 것도 결국 인간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도 우습지만 우리는 우리의 미래, 내일을 믿어야 합니다.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자신이 파괴되었다고 말한 프리모 레비는 오랜 시간 살아남아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전하는 일에 힘을 쏟았습니다. 결국 자살하기 전까지 말 그대로 최선을 다해 더 나은 세상을 꿈꿨습니다. 


 개인, 한 인간이 역사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작고 또 사소합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이렇다, 인간은 저러해야 한다는 정해진 관념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더 나아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인간, 역사의 주인들이 있을 뿐입니다.


프리모 레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간이 아니다. 그들의 인간성은 땅에 묻혔다. 혹은 그들 스스로, 모욕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줌으로써 그것을 땅에 묻어버렸다. 
<이것이 인간인가> 中

하지만 이어서 이렇게 적습니다.

하지만 로렌초는 인간이었다. 그의 인간성은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았다. 그는 이 무화의 세상 밖에 있었다. 로렌초 덕에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이것이 인간인가> 中

로렌초는 수용소 수용자는 아닙니다. 이탈리아 노동자로 빵을 주거나 편지를 전해주는 일을 아무런 대가 없이 해준 한 사람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한 사람이 자신을 살게 했다고, 자신이 인간임을 잊지 않게 해줬다고 프리모 레비는 말합니다. 


 누군가는 모욕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합니다. 누군가는 인간임을 포기하고 얻는 이익을 위해 인간임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어떤 순간에도, 마지막까지도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인간입니다. 하나가 아닌, 서로 다른, 그것이 인간입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빛이 밝아지면 그림자도 짙어지지만, 그림자가 아무리 짙어져도 빛은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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