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펄펄 눈이 옵니다~'하는 동요 노랫말이 이상하게 느껴진 건 처음입니다.

(아마, 처음일 겁니다.)


한강 작가의 <흰>에 감상을 적으려고 시작할 말을 찾기 시작한 지금, 떠오른 생각이니까요.

이유가 또 단순한데, 어제 내리는 눈을 보면서 정말 조금의 소음도 내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비하면 비는 대단히 요란하게, 말 그대로 '쏟아지'죠. 

시야를 가릴 정도로 내리는 빗소리는 천둥 소리나 바람 소리가 아니어도 그 존재감을 확실하게 표현합니다. 하지만 눈은 세계를 빽빽하게 채우며 내리더라도 소리 내는 법이 없지요.  

 도심을 떠난 시골 혹은 산 속이라면 작은 소리가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설혹 들린다고 해도, 그 소리는 거스르거나 부수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겠지요. 

'그래서? 그게 뭐?'라고 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펄펄 눈이 옵니다~'하는 동요 노랫말이 이상하게 느껴진 이유는 눈이 워낙 소리 없이 내린다는 사실, 하나였으니까요.


 책 얘기는 빼놓고 눈 얘기로 시작하게 된 건 제목이 <흰>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이 겨울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눈이 내렸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지나기까지 다시 몇 번이고 다시 눈이 내릴 거란 걸 알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아니지만 <흰>에는 줄거리와 비슷한 게 있습니다. 

제목이 <흰>인 이유에서부터, 책 속에 담긴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하나의 독백처럼 이어집니다. 

 책 속에 담긴 이야기의 시간이야 어떠하든 글 자체는 짧기에 '이 책은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하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책 얘기를 빼놓고 눈 얘기로 시작한 이유를 적는 건 앞에서 끝내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책에 대해 이렇다거나 저렇다고 할 얘기가 없어서도 그 이유가 되겠습니다.


 식상한 말, 무책임한 말이지만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 책은 이런 책입니다.


"읽어보면 압니다."


알만 하죠?

읽어보면 알게 됩니다. 백 번의 설명보다 한 번 읽는 게 나은 책이 있다는 거 아시죠?


책은 제목도 <흰>이고 표지도 '흽'니다. 그런데 겉표지를 보고 있자니, 속표지가 어떨지 궁금해지더군요.

 '예감'같은 거겠죠.

제목도 표지도 희지만 감춰진 표지는 '검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요.


예감은 절반만 맞아떨어졌습니다.

검다고 하기에는 밝고, 희다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짙은 회색입니다. 

회색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색에 밝은 분이 계시다면 이 색을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흔히 우리는 '빛'을 '희다'라고 합니다. '빛'이 있는 곳에는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책 얘기를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얘기를 꺼내는 게 못나 보이지만 떠오른 게 있어 조금 더 적기로 합니다.


 <흰>은 흰 것에 대한 이야기, 기억들을 담은 책이지만 희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읽어보면 오히려 '검은' 것을 연상시키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기이한 일입니다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흰 것'은 눈부실 수 있겠죠. 

예를 들면 카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아랍인의 칼에 비친 찌를 듯 눈부신 흰 빛에 위협을 느꼈던 것처럼 말입니다. 

'눈부시다'는 건 마주 보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마주 볼 수 없다'는 게 아니라,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인간 의지'로 어떻게 극복할 수 없는 압도적인 '흰', 그래서 오히려 '어둠'이 되어버리는 '흰'이 바로 <흰>에 담긴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이야기를 끝낼 셈인데, 딱 한 줄만 더 적겠습니다.


'흰' 것은 한 없이 가벼울 듯한데, 몹시도 무겁게 느껴지니 참 기이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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