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밑줄 긋는 남자 - 양장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이니까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사랑 중요하고, 사랑하는 거 좋다. 그래도 도서관 장서에 밑줄 긋지는 말자.
제목이 『밑줄 긋는 남자』고, 실제로 도서관 책에 그은 밑줄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니까 하는 얘기지만, 나는 도서관 장서에 밑줄 긋는 사람을 싫어한다.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싫어한다. 마치 혼자 보는 것처럼, 자기 책은 줄을 긋기는커녕 표지가 긁히는 것조 못 참으면서 공공의 도서에는 그렇게 마구 긋는 것만큼 예의 없는 행동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혹시라도 이 책을 읽고 모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그러지 말자.
제목 그대로의 이야기다.
로맹 가리를 몹시 사랑하는 한 여자가 있다. 이름은 콩스탕스, 이름의 뜻은 변함없음, 한결같음, 항상성. 콩스탕스가 정말 안타까워하는 건 로맹 가리가 쓴 소설이 고작 서른한 편이라는 사실. 일 년에 한 권씩 읽어도 곧 고갈될 것을 고민하기 시작한 콩스탕스는 다른 작가를 발굴함으로써 로맹 가리의 고갈을 늦추려는 시도를 한다. 그 시도의 하나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기로 한다.
콩스탕스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서 우연히 밑줄이 그어진 걸 발견한다. 그런데 이 밑줄이 그어진 부분이 절묘하게도 사랑을 고백하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었다. 콩스탕스는 '혹시 누가 나한테 관심이 있어서?'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고, 밑줄 그은 남자가 일러주는 다음 책을 찾아다니면서 누군지 모르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밑줄 긋는 남자』는 그렇게 알게 된 밑줄 긋는 남자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정확히는 밑줄이 엄청 많이 등장한다. 로맹 가리, 도스토예프스키, 키르케고르와 같은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이 주연인 셈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심리를 완벽하게 대변하는 고전 속 문장들을 읽어가는 재미가 색다른 즐거움이 되어준다.
도서관 장서의 틈바구니에서 로맨스가 일어나고 사랑이 싹튼다는 설정도 좋다. 죽은 나무의 무덤, 텍스트의 집합소가 아닌 생명이 움트는 공간, 감정이 살아 움직이는 장소가 된다는 그 설렘이 좋은 거다. 한 번쯤 꿈꿔보게 되는 그런 낭만적 사랑이랄까.
물론 아무리 사랑이 좋다고는 하지만, 도서관 장서에 그렇게 마구 밑줄을 그으면 곤란하다. 다른 사람들의 사랑도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내 사랑을 지키고 싶다면 말이다.
주된 관전 포인트는 콩스탕스의 감정의 흐름이다. 기대에서 흥분으로 나아가다가 실망하고 좌절했다가, 분노하기도 하는 그 과정에서 '남자'는 실제로 등장하지 않는다. 마치 사랑이라는 게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것인 것마냥, 그렇게 보이는 거다. 하지만 어떤 사랑도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이 이야기도 예외는 아니다.
가볍게 읽히면서, 이세욱 번역가의 맛깔난 우리말 표현도 즐길 수 있어서 잔재미가 많은 작품이다. 영어보다 낯선 우리말을 여럿 목격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콩스탕스가 클로드라는 남자 대학생과 처음 데이트를 하는 장면에서의 '남자가 리드해주지 않아서 좀 그렇다. 남자라면 박력이 있어야지'하는 태도를 보였을 때는 좀 의외였다. 여자가 바라는 남자의 모습이란 국경이 없는 건가 하는 생각과 함께, 남자가 그래야만 하는 건가 하는 약간의 의문도 있었다.
뭐, 꼭 그렇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지만 그저, 다만, 약간 그랬다는 거다.
문학이 사랑을 일으키고, 인연을 맺게 하는 이야기. 이건 문학에 하나의 가능성을 더하는 효과도 있는 것 같다. 단지 읽으면 재밌고 즐거울 뿐 아니라, 문학이 우리 삶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든지 더 많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니 말이다.
더 많은 사람이 문학을 즐겼으면 좋겠다. 그 안에서 사랑을 찾고, 사람을 배우고, 그 배움이 사람들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끝없이 계속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