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10장면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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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더 순진했던 날들에는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하는 생각을 종종하곤 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설마'보다 더 나쁜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었고, 일어날 수 있음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언제나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다닌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상처를 기꺼워하는 사람은 없다. 받지 않아도 될 상처를 굳이 몸이나 마음에 새기겠다고 덤비는 사람은 어딘가에 병이 있는 것으로 여겨져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놀라운 건 너무 많은 경우에 이 '상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거다. 


 이 책《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상식적인 사람들의 비상식적인 행동과 태도에 대한 10가지 심리 실험이다. 목적은 단순하다면 단순하다. 재해나 재난, 폭력, 전쟁처럼 개인이 제어할 수 없는 충격에서 권위에 대한 복종과 사랑의 근원과 같은 내밀한 심리까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결과가 어떻게 나온 것인지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거다.


 중요한 건 이 책 역시 그러한 실험들을 열거하고 있는 것이지 그것이 진리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는 걸 잊지 않는 거다. 

 "그런 일도 벌어질 수 있다."

이것을 알거나 모르는 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단히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세상의 누군가가 경험한 일이라면 그 일이 언제, 누구에게 다시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분되는 결정적인 근거 가운데에는 '사고한다'는 것이 있다. 하지만 이 '사고능력'은 많은 순간 통제 불능이 되거나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혹시 일어날지 모를 그러한 상황에 대한 예방접종 정도의 역할은 해줄 수 있으리라. 


 이것은 영화가 아닌 현실이지만, 우리는 언제나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을 현실에서 마주하게 된다.


나는 대체로 '트라우마'를 부정하려고 하는 편이다. 트라우마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라기보다 너무 많은 것을 트라우마로 설명하려고 하는 불성실함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트라우마가 있어서 '할 수 없다'는 것, 그 말은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부터 거짓인 걸까?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스키너라는 사람은 행동주의 심리학자로 '스키너의 심리 상자'를 고안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의 이론은 간단히 설명하자면 "체벌은 인간의 그 어떤 것도 개선할 수 없다."는 거다. '적절한 보상'의 지급을 학습시키는 것을 통해 얼마든지 교육시킬 수도 개선시킬 수도 있다는 거다. 


 스키너의 이론에 따르면 체벌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얼핏 생각해도 뭔가를 하지 않게 하는 데는 체벌이 그나마 효과적일 것 같지만 무엇을 하게 만드는 데는 거의 효과가 없을 것 같다(실제로는 하지 않게 하는 데에도 큰 효과가 없다고 한다). 반대로 뭔가를 했을 때 보상이 주어진다면, 그리고 그 보상이 적절하다면 뭔가를 더 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장점이 있는가 하면 단점도 있다. 어떤 사람은 단점을 보완하라고 가르친다. 어떤 사람은 장점을 극대화하라고 가르친다. 또 다른 사람들은 간단히 바로잡을 수 있는 단점은 보완하되 장점을 해칠 것 같다면 그만두라고 하는가 하면, 장점이 조금 줄어들더라도 최대한 단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한다. 

 어느 방법을 택하는 게 최선일까?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에서 다루는 심리실험들은 분명 납득할 만한 결과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 역시 절대적이지는 않다.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를 정하는 건 본인의 몫이다. 


 10가지 실험 중에 한 가지의 결론만을 꺼내놓았을 뿐인데, 벌써 지치는 것 같다. 그러니 다른 실험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들의 몫으로 돌려야겠다.


 모든 실험들이 생각해볼 만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한 가지만 여기에 옮겨 보기로 한다.

인지 부조화에 대한 실험의 결론 부분이다.

 우리는 평생 자신의 믿음과 일치되는 정보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주변에 자신의 믿음을 지지하는 사람들만 두며, 자신이 이미 저질러놓은 것을 의심케 하는 모순된 정보는 무시해버린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중

 인지의 부조화의 흔한 예로 '나쁜 남자(여자)에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 사람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서 자꾸만 좋은 점을 찾고, 발견하려 하고, 합리화하기를 계속하는 것은 아마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하면서 계속하는 행동일 거다. 자신이 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을 선택했기에 자기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자꾸만 거짓된 믿음을 만들어내는 거라고.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에서 다루고 있는 실험은 하나 같이 세상을 흔들만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한나 아렌트가 표방한 '악의 평범성'과 '권위에의 복종', '사랑', '인지부조화'처럼 어디에나 있지만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영원한 숙제들 말이다.


 인간이 선한 존재로 태어나는지 악한 존재로 태어나는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거다. 불완전하기에 더 알고자, 완전해지고자 노력하지만 때로는 그 과정이 불완전성을 키우기도 한다.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나 해석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더 많은 여지와 가능성을 알게 되는 것 아닐까. 앞으로도 심리실험은 계속될 것이고, 그 심리실험이 설명하지 못하는 일들은 여전히 벌어질 것이며, 그렇게 이해하지 못한 채 우리는 살아가게 될 거다.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안다. 하지만 그것만 알아도 이해의 여지는 커지지 않을까. 

 이해하고 싶다. 이해까지는 아니라도 오해하고 있을 수 있다는 정도는 깨닫고 싶다. 내가 바라는  그저, 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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