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의 술래잡기 모삼과 무즈선의 사건파일
마옌난 지음, 류정정 옮김 / 몽실북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흔히 절망적인 상황을 악몽에 비유하곤 합니다.

"이건 악몽이야!!" 하고 말이죠.

어떤 지독한 악몽이라도 깨어나면 사라지지만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현실이 그 어떤 악몽보다 지독한 악몽처럼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이건 악몽이야라는 말속에는 현실을 부정하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부정을 부정하고 계속해서 나아갑니다. 

이제 선택의 시간입니다. 

 당신이라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억지스럽게 부정하는 것을 계속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부정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하시겠습니까?


 <사신의 술래잡기>는 소설입니다. 그러나 그 시작에는 현실이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천재적인 능력으로 미궁에 빠진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탐정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모삼'

천재 탐정 모삼의 이름은 천재 법의학자 무즈선의 이름과 함께 나날이 유명해져 갑니다. 


그러던 중 기이한 사건, 아니, 참혹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람의 시신을 천 조각 이상으로 절단하는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요.


범인은 '양들의 침묵'의 렉터 박사보다 더 미쳐있는 변태 살인광이 분명했습니다. 

당연히 모삼은 그 사건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삼에게 경고가 날아듭니다.


"더 이상 이 사건을 파고들지 말아라. 계속한다면 너에게 지옥을 보여주겠다."하고요.


당연히 모삼이 포기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더 깊이, 더 자세히 사건 속으로 들어가지요. 

그러던 어느 날 모삼은 현실 속 악몽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됩니다.


범인이 약속했던 '지옥'을 선물했기 때문입니다. 

모삼은 범인의 칼에 수십 차례나 난도질당합니다. 

고통스러웠겠지요. 하지만 정말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안겨준 것은 사랑하는 여자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막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사건 이후 몇 개월 간이나 기억을 잃고 지내던 모삼은 우연한 사건을 통해 기억을 되찾습니다. 

그러자 범인은 모삼의 기억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게임을 시작하자며 편지를 보냅니다. 


한 쌍의 장갑과 함께 도착한 편지. 

그 편지가 게임의 시작을 알립니다. 

범인을 쫓고, 범인에게 쫓기는 술래잡기 게임의 시작을. 

사건의 범인은 얼마나 철두철미한 인간인지 무수한 사건을 벌이면서도 증거 하나, 흔적 하나 남기지 않습니다. 

단서는 단 하나.

모삼의 최면을 통해 알아낸 'L'이라는 타투입니다. 

모삼과 무즈선은 그 타투를 보고 범인을 'L'이라 부릅니다.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여러 가지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들에도 공통점은 있습니다. 

그 공통점은 '기이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건은 사건의 배경과 동기가 기이하고, 어떤 사건은 범행 수법이 기이하며, L의 의도 역시 기이합니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든 사건이 경찰이 인지하지 못했거나, 인지했더라도 미궁에 빠져 버린 '미해결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최근 '시그널'이라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며 방영을 마쳤습니다. 그 드라마의 소재 역시 '미결 사건'이라고 들었습니다. 

증거의 불충분, 공소 시효의 소멸, 실제 범인이 아닌 엉뚱한 사람에게 지워진 형벌. 

해결되지 않고 몇 년 혹은 몇십 년이나 미해결로 남겨지는 사건은 너무나 많습니다. 

더욱 두려운 것은 경찰이 인지하지 못한 사건들이 해결하지 못한 사건보다 결코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L의 의도가 기이하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미해결 혹은 경찰이 인지하지 못한 사건들을 게임의 소재로 삼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미치광이, 변태 살인범이 분명한 L이 경찰의 시야 밖에서 소리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리게 하고, 범인들을 검거하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L의 정체만큼이나 그 의도가 궁금해졌습니다. 


 우리는 흔히 범인을 잡는 쪽을 '정의'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그 정의가 너무나도 무능력한 탓에 무고한 사람들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그때도 그 정의를 믿고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범죄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일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닙니다. 무능한 정의를 대신해 자신이 정의를 행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자신을 괴롭혔던, 피해를 입혔던 이들에게 직접적인 제재 혹은 위해를 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L은 그런 사람들을 돕습니다. 그들의 복수를 돕습니다. 그리고 사건의 해결을 도와준 셈이 됩니다. 


의문이 하나 더 늘어납니다.

누가 더 정의로운 것일까요?


새삼스러운 의문은 아니지만 L을 보며 정말 새삼스럽게 떠올려봤습니다.

"도대체 정의란 것이 무엇인가?" 

"이 세계에 아직 정의가 남아있기는 한가?"


한 가지 기대는 이 책의 다음 이야기들을 지켜본다면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데 있습니다.

L이 누구이며, 왜 그렇게 했는지 알게 된다면 말이죠.


물론, 모삼과 무즈선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방식에도 흥미는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사건들은 하나의 곁가지일 뿐 줄기나 뿌리가 되지는 못하겠지요. 


<사신의 술래잡기>는 지금까지 읽었던 어떤 미스터리 소설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걸 목격한 작품입니다. 그 죽음의 방식도 잔인하고 또 가혹하더군요. 

"이것이 인간인가?"하는 물음도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미스터리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가 인간의 추악함과 비극적인 이야기들과의 필연적 마주침입니다. 뉴스와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무수히 마주치는 이야기들을 책에서까지 봐야 한다는 건 때때로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소설을 읽는 것은 그들의 투쟁을 지켜보는 과정을 통해 현실에서의 투쟁의 단서 혹은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희망 때문입니다.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삶이 끝나지 않는 한,

투쟁 역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을 조금이라도 더 아는 만큼 막연한 두려움은 줄어듭니다. 


이 책 속에 담긴 사건들 가운데 그 어떤 것도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건은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 게임은 시작되었습니다. 

당신은 어느 쪽에 서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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