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품격 - 삶은 성공이 아닌 성장의 이야기다, 빌 게이츠 선정 올해의 추천도서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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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과 겸손함의 균형에 대한 이야기다. 

겸손과 자신감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 책은 어떤 이에게는 채찍질처럼 읽힐 것이다.

또 어떤 이에게는 뜬구름 잡는 식의 이야기로,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로 읽힐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격려이자 응원이 담긴 이야기로 읽힐 것이다. 

 과거를 살다간 사람들의 삶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지만 옛날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며, 

미국 역사 속의 인물들의 이야기지만 한국 사회 역시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남의 이야기처럼 읽히지도 않을 것이다.


 책 속에서 저자는 이렇게 하라거나 저렇게 해야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이 책의 집필 목적이라는 것을 자주 드러낸다. 노골적으로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의도를 감추려고 하지도 않는다. '잘못하고 있기에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의미로 저자가 인정하는 이들의 태도를 언급함으로써 깨달음을 전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가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일방적인 주장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다. 오히려 어떤 이들에게는 안심의 시간이자 확신의 시간이며 응원의 이야기로 읽힐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가 권장하는 태도와 주장은 어디까지나 저자의 '견해'이자 '해석'일 뿐이다. 결국 이렇다 저렇다 해도 지금은 스스로 판단하고, 해석하며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시대이기 때문이다.


 내게 이 책을 전해준 친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을 했다. 

"자신감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 책을 주는 게 잘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정확히 이렇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의미로 받아들였던 말이다. 


어쩌면 정말 조금은 염려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적어두기로 한다. 

"그날도 이야기했듯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기대 이상으로 재밌게 읽었으므로 염려와는 반대로 고마워하고 있다."고.


 예전부터 정리와 설명에는 재주가 없었다. 이번에도 이 책의 무엇이 재밌었으며, 어떤 책이었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래도 조금 애써볼까 한다. 


자신감을 품어야 하는 시대.

스스로 자신을 홍보해야 하는 시대.

없어도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 시대.

겸양의 미덕을 몸에 익혀 겸손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시대. 


 분명 지금은 그러한 시대다. 그러나 지나친 겸손은 과도한 자신감처럼 사람의 품격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그를 인정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시하는 무례한 태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띠지에 적힌 'Big Me'와 'Little Me'는 말 그대로 '큰 나'와 '작은 나'를 의미한다. 바꿔 적어 큰 나가 '자신감 넘치는 나'라면 작은 나는 '겸손한 나'를 뜻하다고 보면 된다. 책 속에서 저자는 큰 나보다 작은 나가 더 훌륭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작은 나를 실천한 사람들, 겸손하게 절제된 삶을 살다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나치게 자신감을 찬양하는 이 시대의 표면적 질서 속에 숨어있는 함정을 드러내 보여준다. 


 절제된 삶을 살아가는 것, 겸손하게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것은 분명 품격있는 인간의 모습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적절한 순간의 정당한 자신감의 표출 역시 긍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하기보다 겸손과 자신감이 적절한 균형을 이룰 때 진정한 의미의 품격있는 인간이 탄생하는 것 아니겠는가.

 저자 역시 이러한 점을 모르지 않았으리라. 다만, 이 시대는 '지나치다'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내게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이 시대에는 미덕이 아니라 부끄러운 태도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그 '한 가지 태도'로 인해 적지 않은 피해를 견뎌오기도 했다. 그러나 애초에 나는 겸양을 두르고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말하면 교만하게 느껴지겠지만 나는 거의 모든 것에서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편이다. 겸양이 지나쳐 민폐가 된 일도 적지 않다.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웃기지도 않는 태도 덕분에 이 책 속에 담긴 인물들의 이야기에 상당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감은 공감일 뿐 나를 변화시키겠다거나 달라지겠다는 식의 다짐을 하지는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온 이야기를 책 속에서 읽고는 달라져야 한다고 결심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인가 실없이 혼자 웃고 말았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리 역사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미국의 근현대사를 공부하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책에는 의외의 효과도 있었던 셈이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의 전황과 뒷이야기가 풍부하게 실려 있다. 얼마 전 읽었던 필립 로스의 소설 <네메시스> 역시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었다. 그리고 루스벨트 대통령이 폴리오, 즉 소아마비를 앓고 장애를 갖게 되는 장면과 루스벨트 대통령의 사망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던 것을 떠올리며, 미국사를 복습하는 기분까지 느꼈다.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웃을 수밖에 없던 이유 가운데 또 한 가지는 저자가 소개하는 인물들의 태도가 저마다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 속에서 겸양의 미덕, 겸손한 사람의 인격의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그러나 책 속의 인물 가운데는 히스테릭한 사람부터 화를 잘 내는 사람까지 다양한 성격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물론 그들의 태도는 조금씩 변화하며 그 태도에는 의도적인 과장 혹은 필요라는 이유가 달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각각의 인물들이 스스로를 부정하거나 인정하고, 한계를 극복하려 하거나 수용하는 식으로 자신의 단점을 대하는 모습은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단점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 그 단점은 더 이상 단점이 아닌게 되기도 한다.


 겸양 혹은 겸손이란 무엇일까?

무엇이 인간을 품위있게 만드는 것일까? 

저자는 오만함과 자만심을 버리고 겸손하고 겸허한 태도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지나치게 자신감을 찬양하고 성과주의와 성공만을 인정하는 현대의 경향이 진정한 인간다움을 해치고 인간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자기계발서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믿으라고 가르친다. 한계를 감추고 자신만만해지라고 말한다. 더 이상 겸손이 최고의 미덕이 아니라고 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살아갈 필요는 없다.


 모든 인간은 동등하지 않다. 개개인의 가치가 동등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나 성격, 특징이나 재능 등 그 사람의 특징 혹은 삶을 가늠하는 재능이나 능력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뛰어나다면 뛰어나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대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인간은 기성품이 될 수 없다. 기성품이나 다름 없는 하나같은 사람을 만들어내는 현대의 교육과 제도가 오히려 인간의 근본적인 품격을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은 차별에 찬성하는 것과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차별한다는 것이 언제나 나쁜 행위가 되는 것도 아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군대에 보내지 않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 배려다. 모든 사람이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다. 


 잘못 읽은 탓인지 모르지만 이 책을 통해 얻은 결론은 인간의 삶은 대단히 다양하게 펼쳐진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규칙도, 완벽한 삶의 표본도 없다. 모든 삶은 아름다워질 수 있으며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품격을 갖출 수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삶, 품격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의지로 살아가야만 한다. 


 인간의 품격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자신이 꿈꾸는 삶을 완결시키기 위한 고집스러운 '나다움'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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