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의 무희.천 마리 학.호수 을유세계문학전집 39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신인섭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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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세 편의 작품이 담겨있다. 

세 편을 읽는 데는 거의 아무런 무리도 없었다. 그러나 단순히 읽는 것 이상을 얻으려는 마음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그 마음이 흐트러지고 무뎌지는 것 같다고 느꼈다. 결국 세 작품을 다 읽고 나서도 마음에 남은 것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남아서 움켜쥘 수 있던 생각이란 몹시도 편협한 데다 뻔한 것이라 낙담하기도 했다.

그 생각을 풀어 적으면 이런 문장이 될 거다.


"전 후 일본의 풍요롭고도 빈곤한 세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만큼 망가져 있던 게 분명하다."


 전후의 충격은 여러 면에서 일본을 망가뜨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즈의 무희>와 <천마리 학>의 분위기가 전혀 다른 것처럼 느껴진 것도 이상하지 않다. <이즈의 무희>에 남아 있던 모호한 아름다움이 <천마리 학>에서는 허무할 뿐 아니라 짓밟히고 침범당한 모습으로 그려진 것 같았다. 이제부터 새롭게 받아들여야 할 아름다움보다 연민과 미련으로 가득한 미래를 끌어 안으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망령에 시달리듯, 과거의 꿈 같은 시절을 잊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세 이야기 가운데서 가장 재밌게 느꼈던 것은 <호수>였다. 국내에는 처음으로 번역되어 나왔다고 하는데 이야기의 짜임새가 좋았다. 등장 인물 가운데 누구하나 버려지지 않고 두루 돌아가며 역할을 받아 쓰이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당사자 둘은 모르지만 사실은 둘 모두가 제각각, 나름의 인연으로 이어진 또 다른 사람을 공유하는 그런 형태였다. 그러나 그나마 <호수>까지 모호한데다 허무하기까지 한 결말로 이야기를 갑작스럽게 끝내버림으로써 허탈함을 부풀렸다. 

 잘 해내가고 있다고 생각하던 순간에 결정적인 일격을 당해 허무하게 목적을 잃어버린 채 항복해버린 전쟁과 닮아 있는 결말이었다.


<이즈의 무희>에는 무희 일행을 뒤쫓는 학생이 등장한다.

<천 마리 학>에는 아버지와 무관해지려 하고, 아버지와 거리를 두려 하면서도 마치 아버지의 그림자를 좇듯 이끌려 다니는 남자가 등장한다. 물론 아버지의 환영에 이끌려 다닌다는 건 내 인상일 뿐이고 실제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전개된다. 그러나 '천 마리 학'에 이끌리면서도 멀리 하려고 하는 모순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건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끈질긴 인연의 그림자였다.

<호수>에서는 여자들을 미행하고 다니는 남자가 등장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 이야기도 분명 허무함으로 가득차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거기에 무엇인가를 끊임 없이 쫓거나 쫓겨다니고 있을 것도 같다. 이런 쫓고 쫓김의 원인은 다른 데가 아닌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내면에 있을 것이다. 그는 얼마나 고독했기에 끊임없이 무엇, 혹은 누군가를 쫓아다녀야 했을까.


 이 세 이야기를 거의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에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를 길게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느낀다. 


 아, 노벨상을 수상한 것이 1968년 이라기에 나이를 계산해보려고 작가 소개를 읽다가 알게 된 것이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899년 생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69세쯤이 된다. 작가 소개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두 살과 세 살 때 잇달아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열 살 되던 해 누나를 잃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열다섯 살에 조부마저 잃어 완전한 고아가 되었다."

 바로 앞에 적었던 '쫓거나 쫓겨다니고 있'는 것의 배경에는 상실과 고독이 숨겨져 있던 모양이다. 작품을 아주 헛 읽은 것은 아니구나 하는 위안이 들기도 하지만 뭔가, 그래도 그렇게 쫓겨다녀서는 안 되는 것 아니었나 하는 반항하는 마음이 움트는 걸 아주 막을 수가 없다. 동시에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하는 동정과 공감의 마음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자란다. 


 부모와 형제 자매, 조부모까지 모두 잃은 것만으로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삶은 고단했을 것이며 흔들렸을 거다.

거기에 나약해질 시기에 나라의 젊은이들의 무수한 죽음을 목격함과 동시에 전쟁의 패망에 더해, 전 후 나라의 타락까지 그대로 지켜봐야했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순간의 나라를 떠나 이상향을 찾아 가고 싶은 마음도 품었던 게 아닐까. 


 설국까지 읽고 다시 읽어보면 조금 더 나은 인상에 닿을 수 있을까 싶은 막연한 기대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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