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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 네안데르탈인에서 데니소바인까지
스반테 페보 지음, 김명주 옮김 / 부키 / 2015년 9월
평점 :

유익성 : ★★★★
유용성 : ★★★
재미 : ★★★
구성 : ★★★
편집 : ★★★
"달무리가 짙게 낀 다음날은 비가 내릴 확률이 높다."
"저녁 노을이 유난히 붉은 다음 날은 흐릴 확률이 높다."
"아침 안개가 낀 날은 그렇지 않은 날보다 덥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위에 적은 내용들은 중고등학교에서 모두 배웠던 거다. 어쩌면 이제는 워낙 간단히 날씨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기에 배우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또래의 친구들에게 저런 내용을 이야기해줄 때면, 종종 "그런 걸 어떻게 알고 있느냐?"고 되묻는 통에 혼란스러워지기도 한다. 혼자만 배웠다고 믿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보기도 하는거다. 이런 이야기를 적는 이유는 이 책을 읽으며 "지금 이 책을 왜 읽고 있는 것일까?"하는 물음과 "이 책을 읽어서 뭘 하려는 걸까?"하는 의문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이 책의 쓸모는 뭘까?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나아지는 것이 있기는 할까?
무엇을 알고 싶어서 읽고 있다는 말인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 답하기는 쉽지 않았다. 실제로 이 물음들에 적당한 답을 찾아낼 때까지 이런 교양 과학서들과 조금 멀어지게 될 거다.
사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권한 것도 아닌데다 심지어 스스로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사서 읽으면서 이런 의문을 품는다는 건 모순된 행동임이 분명하다. 필요하지 않았다면 사지 않았으면 되는 것이고, 왜 읽어야하는지 모르겠다면 읽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런 문제로 고민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는 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어서 다행스럽다고 생각했다. 앞부분은 연구의 목표오 과정을 거듭 확인하고 나열하기 때문에 실제로도 몹시 지루하다. 그러나 거의 모든 발견이나 연구가 그렇듯 정말 운이 좋은 게 아니라면 모든 발전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이 책 역시 그렇다. 단순히 흥미로 책을 읽고 있는 내가 이 정도였다면 실제로 연구하고 있던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 책을 읽으려 한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깜짝 놀랄 준비를 해두는 게 좋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책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는 제법 유익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적어도 나는 지금까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니 하는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이고, 네안데르탈 인은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와의 생존 경쟁에서 밀려나 멸종한 것으로 알고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네안데르 탈 인의 DNA를 분석한 결과를 통해 네안데르탈 인이 현재의 인류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러면서 이렇게 결론짓는다.
"네안데르탈 인은 멸종하지 않았다. 네안데르탈 인은 우리 안에 살아있다."고 말이다.
놀랍지 않은가? 아니면 말고.
다카노 가즈아키는 소설 『제노사이드』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 인을 멸종시키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표현한다. 실제로 네안데르탈 인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잡아먹히거나 학살당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네안데르탈 인의 유전자가 현대의 인류에게 남아있으므로 '멸종했다'는 표현은 조금 성급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인간의 DNA 지도가 완성된 이후에 진행된 고대인류의 DNA 연구에 대한 최신의 보고서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불과 몇 그램의 뼈만 가지고도 네안데르탈 인을 '복제'할 수도 있다는 암시도 하고 있다. 어쩌면 실제로 어딘가에서는 이미 복제를 해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복제도 얼마든지 가능한 시대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책 속에서 연구한 네안데르탈 인과 데니소바인의 DNA 연구 결과는 분명 인류의 역사와 진화에 영향을 준 요소들을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어떤 유전자가 어떤 형질의 발현을 담당하는지, 왜 진화 과정에서 차이가 발생했는지, 결정적으로 분기가 이루어지는 이유는 무엇인지도 알 수 있게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위험성도 커진 게 사실이다.
인간의 욕심에는 끝이 없다는 걸 잊지 말자.
네안데르탈 인의 유전자가 인류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은 분명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러나 저자인 스반테 페보도 염려한 것처럼 인종차별주의자들이나 근본주의자들의 생각에 굴절을 더하고 차별을 정당화 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적어도 책에서 언급된 내용은 없지만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학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언제 무엇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은 기대를 품게 만드는 동시에 두려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한 네안데르탈 인이 호모 사피엔스와의 경쟁에서 도태된 것처럼 현재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인간 역시 언제든 새로운 종에 밀려 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한 권의 책이 많은 것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책은 세상에 나온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다.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역시 의미를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게 전해진 의미는 단순하게는 "네안데르탈 인은 사라지지 않았다"였고, 조금 깊이는 "인류 역시 같은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고대 인류와 진화에 관심이 있는 분은 꼭 읽어보시길.
당신 주변에 있는 누군가가 네안데르탈 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