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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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언제부터였는지 매일 '더 많은 것'을 하기 위해 시간을 아끼고, 효율을 높여야한다는 강박이 지극히 평범하면서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마 이런 깨달음은 지금이 처음은 아니었을 것이고 떠올렸다가 잊어버리고, 다시 잊었다가 떠올리게 된 거라고 생각해요. 뭐, 그런 거겠죠. 이번의 깨달음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잊혀질 거라는 걸 압니다. 그래서 몇 자 적어두기로 해요. 내일 혹은 더 나중의 내가 지금 끄적여 둔 이 글을 보고 다시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라도요.


 『모모』를 처음 읽은 건, 10년 혹은 그보다 조금 더 오래됐거나 덜 오래 된 어느날이었습니다. 그때 어쩌다 읽게 됐는지는 기억하지 못해요. 그러나 그때도 이야기 속 모모의 모습과 시간도둑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렇게 살지 않겠어"라고 다짐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모모』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회색 신사들, 즉 시간 도둑들의 존재를 잊어버리는 것처럼 저 역시 잊어버린채 살아왔지요. 바쁘기 때문에 잊어버린 것인지, 잊어버렸기 때문에 바빠졌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두 가지 모두 사실이에요. 

 저는 잊어버렸고, 또 바빠졌다고 느꼈어요. 

 이 책을 다시 꺼내 읽게 된 이유는 그런 거였습니다. 단순한 거였어요. 이런 물음이 떠올랐기 때문이죠.


"나는 왜 시간을 아낄수록 더 바빠지고, 시간이 없다고 느끼게 되는 걸까?"


 책을 읽을 틈이 있음에도 전처럼 느긋하게 책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되어버렸어요. 책을 읽으면서도 순간순간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하는 생각에 방해를 받았구요. 결국 이것도 저것도 하지 못하게 되어버렸죠. 

 

"왜 이렇게 된 걸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내가 그렇게 되는 걸 허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모』에서 시간 도둑들은 결코 무단으로 시간을 빼앗아 가지는 않아요. 정식으로 계약을 하고 허락을 받고 난 후에야 시간을 빼내게 되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시간 도둑들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되고, 너무 바빠서 다시 생각할 수도 없게 되어버리는 겁니다. 결국 사람들은 바빠지면 바빠질수록 더 시간이 없어지게 되는 곤란한 상황에 빠져버려요. 서두르지 않으면 뒤쳐지고 말 것 같은 두려움에 떨지만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더 서두를 수밖에 없게 되어버리는 거지요. 

 모모는 자꾸만 더 서두르려는 사람에게 '느리게 할수록 더 빨리 나아가게 되'는 공간을 통해 서두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하지만 실제로 느긋해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주변 사람들이 언제나 전력을 다해 달려나가는 걸 보게 될 것이고, 그들이 달려가면서 하는 소리를 듣게 될 테니까요. 

 "어이! 넌 지금 어마어마하게 뒤쳐지고 있다고! 패배자가 되고 말 거라고!!"

결국 이 말을 자꾸만 거듭해서 듣는 동안 조바심이 커질테고 다시 전력질주하는 대열로 돌아가게 되는 거지요.



 가볍게 쓰고 자려고 했는데 이거 또 지나치게 감정 이입을 해버렸네요.


『모모』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시간을 나눠주는 존재인 '호라 박사'는 모모에게 이런 수수께끼를 내놓죠. 물론 모모는 푸는 데 성공하지요.

그 수수께끼는 이렇습니다.




  210쪽

 세 형제가 한 집에 살고 있어. 그들은 정말 다르게 생겼어. 그런데도 구별해서 보려고 하면, 하나는 다른 둘과 똑같아 보이는 거야. 첫째는 없어. 이제 집으로 돌아오는 참이야. 둘째도 없어. 벌써 집을 나갔지. 셋 가운데 막내, 셋째만이 있어. 셋째가 없으면, 다른 두 형도 있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되는 셋째는 정작 첫째가 둘째로 변해야만 있을 수 있어. 셋째를 보려고 하면 두 형 중 하나를 보게 되기 때문이지! 말해보렴. 세 형제는 하나일까? 아니면 둘일까? 아니면 아무도 없는 것일까? 꼬마야, 그들의 이름을 알아맞힐 수 있으면, 넌 세 명의 막강한 지배자 이름을 알아맞히는 셈이야. 그들은 함께 커다란 왕국을 다스린단다. 또 왕국 자체이기도 하지! 그 점에서 그들은 똑같아.


 오이디푸스 왕은 스핑크스가 내놓는 수수께끼를 풀어냄으로써 테베의 왕이 되지요. 그 결말이 행복했든 불행했든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것은 스핑크스의 재앙을 멈추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지요. 모모에게 주어진 수수께끼는 무척 복잡해 보입니다. 하지만 호라 박사는 모모가 풀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호라 박사와 함께 있는 정확히 '반 시간 앞을 내다보는' 거북이 '카시오페이아' 역시 모모가 수수께끼를 푼다고 말하고요. 

 수수께끼의 핵심은 '세 형제'가 누구인가와 '그들이 함께 다스리는 왕국'이 어디인가입니다.


 정답을 알려드리자면 세 형제란 시간의 세 가지 속성, 미래와 현재와 과거를 의미해요. 

첫째는 미래고, 둘째는 과거고, 셋째는 현재입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중이고,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기에 벌써 나갔다고 했지요. 

셋째가 있으려면 첫째가 둘째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미래가 과거가 되는 중간이 바로 현재라는 뜻입니다. 

현재를 보려고 하지만 우리가 현재를 인식하는 순간 이미 그 현재는 과거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현재를 보려고 해도 과거나 미래만 보게 되는 거지요. 세 형제는 하나이면서 둘이고, 또 셋이겠지요. 

 그 세 명이 다스리는 왕국은 당연히 이 세상입니다. 

 모모는 오이디푸스 왕처럼 왕위를 얻지는 못하지만 시간의 속성을 깨달음으로써 시간 도둑들을 물리치고 갇혀있던 시간들을 본래의 주인들에게 돌려줄 수 있게 됩니다. 어린이들은 전처럼 마음 껏 상상하며 뛰놀 수 있게 되고, 어른들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일하고 살아가는 게 가능하게 되지요. 모모에게는 소중한 친구들이 돌아오는 보상이 주어집니다. 


 모모 이야기의 핵심은 '시간'에 있지요. 

그런데 이 시간을 빼앗아 가는 시간 도둑들은 사실 그 사람 자신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 스스로 무엇인가를 위해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과 자신만을 위한 시간들을 줄이거나 없애버란다는 거지요. 그것은 성공일수도 있고, 권력일수도 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 모든 것을 얻기 위해 애쓰는 이유가 무엇인지까지 잊어버리고 살아가게 되고, 단지 열심히 하기 위해 열심히 하는 무의미한 열심의 실천자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돈을 번다고 말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가족들과의 시간을 희생시키는 식이죠. 나중에는 돈은 많지만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이 없어지게 되는 겁니다. 무엇을 위한 열심이 되는 것일까요?

 카르페 디엠. 

우리는 이 말의 뜻을 너무나 잘 알고 있죠. 

"현재에 충실하라", "지금을 즐겨라" 뭐 이런 뜻이라는 걸요. 하지만 실천하기는 대단히 어렵다고 느끼는 게 사실이에요. 지금 이렇게 쓰고 있지만 제게도 그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 달려야 하는데 무슨 소리냐며 잠꼬대 혹은 팔자 좋은 소리 하지 말라는 핀잔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미래와 과거는 모두 현재를 위해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방금 전에 현재였던 순간은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어요. 이제 월요일을 위해 잠을 자야 할 시간이라는 거지요. 어쩌면 이번 주 역시 지난 주와 크게 다르지 않거나 더 바빠질 지도 몰라요. 하지만 언제나 여유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모모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아이입니다. 모모가 무엇을 해줘서도 아니고, 뭔가를 많이 가진 것도 아니지만 모모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모모에게만 가면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요. 모모의 비결은 잘 들어주는 것에 있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잘 들어줄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모모에게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모라고 48시간을 사는 건 아니지요. 다만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줄 수 있는 시간을 얼마든지 내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는 거지요. 


 시간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자꾸만 스스로를 몰아세우면서 지쳐가는 분들께 이 책 『모모』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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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2015-11-18 0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보고 싶어요ㅎㅎ 시간은 모두다 똑같이 주어지는데 왜자꾸 짧다고 느껴지는지 시간에 비해 왜 성관 없냐고 늘 투정하고 저 자신에게 스트레스만 쌓인거 같거든요... ㅜㅜ

대장물방울 2015-11-21 06:43   좋아요 0 | URL
^^ 맞아요. 정말 요즘에는 어찌나 시간이 빨리가는지 일주일이 하루 같아요.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생각은 있는데 정작 돌아보면,,
함께 힘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