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 펭귄북스 오리지널 디자인 4대 비극 시리즈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태원 옮김, 조지 헌터 판본 편집, 스탠리 웰스 책임 편집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다닌다. 

나이들지 않기 위해 애쓰고, 영원을 약속하거나 영원을 강요하기도 한다. 

마치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이 변하지 않는 동안은 그 내면 또한 변함이 없을 것처럼 생각하려고 한다. 

 시간이 흐르고 조건이든 환경이든지가 바뀌어 사람이든 관계든 그 무엇이든 '변했다'고 생각되면 가끔은 '배신'이라느니 '배반'이라느니 '실망'이라느니 하며 감정을 격렬한 혼란 속에 던져버린다. 그러고는 나중에 사과하기를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거나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한다. 혼란 속에 있어서 스스로도 자신을 어찌하지 못했다는 거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얼토당토 않은, 같지 않은 변명에 불과하다. 

 그들을 비난한 것도 자신이고, 자신을 혼란 속에 던져 넣은 것도 자신이다. 

그렇다.

맥베스가 마녀들의 말을 듣고 욕심을 품은 것처럼.

망설이는 자신을 부추기는 아내의 책망을 모호한 태도로 받아들인 것처럼.

일을 저지르고 나서 격렬한 혼란에 빠져 마치 혼이라도 나간 사람처럼 굴며 아내의 손에까지 피를 묻히게 한 것처럼.

 모두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으로 옮긴 거였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것이 누구의 탓이 아닌 스스로의 책임인 거다. 


 왕은 자신이 신뢰했던 신하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얼굴로 마음 속을 알아내는 기술은 없는가'하는 한탄을 한다. 그러나 얼굴이나 태도는 꾸미기 쉬운 법이다. 기왕 바랄 거였다면 얼굴과 무관하게 마음 속을 알아내는 기술을 구해야 했을 거다.

승전하고 돌아오는 길에 마녀들의 숙덕거리는 소리를 듣게 된 맥베스는 그 마녀들의 예언 속에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는 말이 들어있자 갑작스럽게(사실 갑작스럽다고 보기 어렵지만) 왕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품게 된다. 욕망을 품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게 되어 기어이 왕을 살해하고 왕의 호위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후 당황한 척 죽여버린다. 이것으로 입막음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왕위를 빼앗기게 될까 염려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그에게는 자식조차 없었기에 그의 왕위를 이을 존재조차 없었다. 

 맥베스는 마치 자신의 권위와 지위, 즉 왕이라는 지위가 영원할 것처럼 혹은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잠재적인 경쟁자들을 견제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자객을 보내 죽이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그러고도 불안했던 그는 다시 한 번 마녀들을 찾아가 예언을 들려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마녀들이 들려준 또다른 예언들에 마지막까지 의지한다.

 그러나 그 모든 예언들은 마녀들의 농간이었기에 결국 맥베스는 응당의 대가, 자신이 흘린 피의 값을 자신의 피로 치르게 된다. 


 줄거리는 그야말로 간단하다. 왕위를 노렸던 맥베스가 결국 인과응보, 권선징악적 결말에 따라 죽음에 이른다는 거다. 셰익스피어의 의도가 무엇이었건 내게 맥베스는 '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을 두고 변하지 말기를 바라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이야기처럼 읽히기도 했다. 얼굴을 꾸며 접근하여, 비위를 맞추고, 추임새를 넣어 마음을 빼앗아 이용할 수 있을만큼 이용하다 쓸모가 다하면 버리는 이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이들은 가장 신뢰했던 신하에게 배신당하고 뒤이어 맥베스에게 목숨을 빼앗기는 왕과 다르지 않다. 

 자기 귀에 솔깃한, 입맛에 맞는 말을 철썩같이 믿고 무모하게 달려드는 사람들.

좋게 말하면 욕망에 충실한 이들은 맥베스와 닮아 있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근거가 미약한 사실들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마녀들의 예언이 절대적일 것이라 믿으려는 맥베스처럼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변한다. 다른 것이 변하지 않더라도 사람의 마음이 변한다. 결국 어느 것이 변하든 모든 것은 변하게 되는 거다. 그럼에도 인간은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늘 갈망한다. 

 지위, 사랑, 권력, 부, 명예.

그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일 때, 자기의 손 안에 들어왔을 때에는 어떤 것도 변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손 밖에 있을 때 혹은 자신에게서 벗어나려 할 때는 변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인간이다. 변할 때는 변하지 말기를 바라고, 변하지 않을 때는 변하기를 바라는 스스로가 무엇보다 변덕스러운 존재인 거다. 


 어떤 일들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일으켜버린 다음에는 이렇게 태도를 바꾼다.

"그것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이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사나운 날이라도 시간은 흘러간다."

분명 시간은 흘러간다. 그러나 모든 시간이 정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그 앞과 뒤가 무척 모호하고 불분명한 것이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올바른 방향 또한 정해져 있지 않다. 거기다 시간이 흘러간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서 없던 것이 되는 건 아니다. 어떤 것은 시간이 가며 더 분명해지고 뚜렷해져서 나중에는 외면할 수조차 없는 현실이 되어버린다. 


 인간은 유혹 앞에 지극히 연약해지는 존재다. 

이 부추김에 책망이 더해지면 마지못해서라도 실행에 옮기게 되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유혹의 달콤함은 이후의 불행을 미화시키고 희석시킨다. 마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은 잘 될 것처럼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한다. 그러나 이것이 유혹의 독이라는 걸 너무 늦기 전에 깨닫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어버린 뒤라고 생각하기 마련이고, 이미 저지른 이상 더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미 피를 묻힌 손에 하나든 열이든 더 많은 피를 묻힌다고 해도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해버린다. 그러나 하나의 무게와 열의 무게는 엄연히 다르다. 어느 순간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하는 거다.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환상까지는 아니더라도 강력한 자기 합리화가 그 근원인 경우가 적지 않다. 다른 사람은 다 안 되더라도 '자신만은' 괜찮을 것이라는 믿음이 '왜 나에게만'이라고 하는 원망으로 변하는 것도 순식간이다. 

 

 셰익스피어에게는 미안하지만 맥베스 속에서 읽어낸 것은 인간의 얇은 귀과 나약함, 변화에 대한 변덕스런 믿음 혹은 원망,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지나치게 연연하는 사람들에게 찾아드는 불행과 같은 흔한 것들 이었다. 

 맥베스의 자기 운명의 개척이나, 죄의식에 시달리다 자결하는 부인의 비극같은 것은 부수적인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무엇보다 인간이 가장 간단히, 쉽게, 자주, 다양하게 변한다. 그런 인간에게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솔직히 무모해 보인다. 


그저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라는 오래된 한 마디를 다시 되뇌며 이야기를 끝마칠 뿐이다. 


그러니까, 당신, 지금 당신의 귓가에 지저귀듯 속삭이는 그 달콤한 말을 철썩같이 믿지 말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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