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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관계에 서툰 편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자신과의 관계도 두루 서툴기에 애써서 고치거나 바꾸려는 노력을 그만둔지도 오래 되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무척 서툴지만 그보다 더 서툰 건 나 자신과의 관계다. 만약 나를 객관화, 형상화 시킨다면 하루 종일 그의 잔소리에 시달려야 할 거다. 서로 나아지지도 변하지도 않을 걸 알면서도 그저 끊임 없이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될 거라는 거다.
종종 나를 소개할 때 "낯을 많이 가립니다"하고 말을 하고는 하는데, 지금까지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인 사람든 한 손에 꼽을 수 있는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어떻게 생각하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관계에 서툴거나 낯을 가리거나 하는 게 아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무리 사소한 관계도 꾸준히 지속하기에 어려움을 겪곤 하는 걸 보면 역시 관계에도 서툴고, 낯도 많이 가리는 게 맞다.
드러나는 건 사실 아무 것도 아닐 때가 있다.
하지만 보통은 드러나는 게 전부라고 말하고, 또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드러낼 만한 것은 자꾸 드러내라고 하고,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은 자꾸 감추라고 충고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그래서는 가뜩이나 진실과 진심이 메마른 세상에 또 하나의 진심을 거꾸러뜨려 시궁창에 처넣는 일이 될 게 분명하다.
내가 시궁창에 처박히는 건 참을 수 있어도 내 진심이 시궁창에 처박혀야 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참을 수 없을만큼 부당한 일이다.
그러므로, 드러나는대로 나를 드러내며 살 생각이다.
알랭 드 보통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한데, 그가 그의 진심을 드러나는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 생각은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많은 생각을 거쳐 자연스럽게 드러난 진심이란 걸 느끼게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나의 진심을 발견하곤 한다. 나를 발견하게 해주는 사람, 그 사람이 알랭 드 보통이라 좋아하는 거다.
<동물원에 가기>는 알랭 드 보통의 저서들 속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추려서 담아 놓은 축약본 같은 거다. <여행의 기술>도 있는 것 같고 <일의 기쁨과 슬픔>도 있는 것 같고, 분명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읽은 기억이 있는 글들이라 새삼 반가움을 느끼며 읽었다.
'모두가 느끼는 것임에도 아무도 표현해내지 못하던 걸 표현하는 것'을 써내는 알랭 드 보통, 정말 보통이 아니다.
보통이 아닌 것 같은 알랭 드 보통도 사실은 보통 사람이라서 그의 이야기 속에서 갈등하기도 하고, 오해 하거나 오해 받거나, 다투기도 한다. 연인을 만나고 또 헤어지기도 한다. 사소한 일에서 서로의 관계를 정하기도 하고, 예감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보통의 삶을 사는 거다.
그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그래, 이래야 사람이지."하거나 "역시, 이런 게 사람이지."하게 되는데 공감할 수 있다는 건 우리 사이가 그렇게 멀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할 거다.
우러러 보게 되기도 하는 그가 사실은 나 같은 보통 사람인 셈이니 말이다.
동물원에 가는 걸 즐기지는 않는다. 야생에 두면 멸종해서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고 해서 동물원이나 보호 구역에 가둬두는 게 최선일까 하는 생각도 있다. 넓든 좁든, 그 닫힌 우리 안에서 그 동물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자기의 삶을 산다고, 만족스럽다고 생각할까?
그러고보니 이 책 제목이 <동물원에 가기>인 이유가 동물원에 가면 대륙과 기후를 넘어 여러 동물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알랭 드 보통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 속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어보고 싶지만, 이레는 이미 소위 '망한' 출판사라서 문의할 수도 없겠다.
다음에 다시 알랭 드 보통을 만나게 되는 건 언제일까. 그때 나는 또 어떤 나를 발견하게 될까.
만남을 기대하게 하는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나를 발견하게 해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과의 만남이 기대되고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장마가 가고, 더위가 가실 때쯤, 동물원에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