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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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 그의 작품은 극적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극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워보인다."_서동민 曰


 브라질 처녀 마리아는 스위스의 한 클럽의 매니저의 삼바댄서 모집에 응해 스위스로 날아온다. 한 주에 500달러를 위해, 마리아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곧 그것이 꿈에 불과하다는 것, 깨어질 상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현실에서 깨닫게 된다. 남자친구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해고된 마리아는 매니저에게 5000달러의 배상금을 받아 스위스의 도심으로 들어간다. 지금 가지고 있는 돈으로도 충분히 브라질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마리아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자리를 찾기 시작하고 사진을 찍어 모델 에이전시에 보내기도 한다. 돈도 떨어져가고 포기하려던 순간에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온다. 나간 자리에서 마리아는 한 아랍인을 만난다. 그러나 그 아랍인이 요구한 건 하룻밤 잠자리, 그리고 그 잠자리에 대한 보상은 1000스위스프랑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마리아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리아는 거리로 나간다. 거리로 나간 마리아는 무작정 걷다가 '코파카바나'라는 브라질 이름의 클럽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날부터 마리아는 몸을 팔기 시작한다. 이른바 '창녀'가 된 거다. 자발적이고 직업적인 창녀. 

 코파카바나는 고급 업소다. 그리고 주인 밀랑의 말에 의하면 가족적인 업소이기도 하다. 이곳은 정찰제로 고객은 350스위스프랑을 내고 여자를 산다. 고급 업소인만큼 조건도 까다롭다. 그리고 제한 시간은 45분으로 그 시간 안에 돌아와 소개비 50스위스프랑을 밀랑에게 건내야 한다. 

 어느 순간 마리아는 한 가지 깨달음에 도달한다. 손님에게 주어진 시간은 45분, 그러나 그들이 이동하는 시간, 옷을 벗고, 일을 치르기 전까지의 시간을 뺐을 때, 손님들에게 섹스를 위해 주어진 시간은 고작 '11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리아는 그 사실을 깨닫고 실소를 금하지 못한다. '고작 11분의 섹스를 위해 그들은 돈을 치르고 시간을 쓴다'는 사실은 마리아에게 '창녀'라는 직업적인 위치를 더욱 확고하게 한다. 이것은 그저 하나의 모험, 멀지 않아 과거가 될 지나가는 일에 불과하며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해버리는 거다.

 산책을 나섰다 우연히 발견한 '산티아고 길'과 마찬가지로 우연이 들어간 그 근처의 카페에서 마리아는 랄프 하르트라는 유명한 화가를 만난다. 그리고 그와의 만남은 멈춰있던 마리아의 시간, 마음, 그 모든 것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


 아는 사람들은 알듯이 개인적으로 파울로 코엘료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작품을 읽기 전까지 그 이유는 무척 모호하고 억지스러운 거였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며 조금 더 파울로 코엘료가 싫어진 이유를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이상한 말이지만, 파울로 코엘료가 싫어진 이유가 분명해지면서 한편으로 그를 이해할 것 같다는 생각도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묘한 작가다.


 이 작품을 구상하던 때의 파울로 코엘료를 상상해봤다. 그는 이 작품 속에서 마리아의 내면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듯 이야기한다. 마리아는 여자고, 코엘로는 남자다. 솔직히 아무리 여자를 잘 아는 남자라도 여자의 성감이나 욕구, 오르가즘에 대해 자신있게 '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파울로 코엘료는 '코파카바나'를 찾는 남자들처럼 업소에 들러 상품을 팔듯 자신들의 성을 파는 여자들과 여러 밤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소설 속 마리아가 발견한 '11분'을 보냈을지도 모르고, 작품을 위해 그들의 깊은 이야기를 듣는 몇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말미에서 마리아의 친구였던 사서의 고백 속 반백의 작가가 파울로 코엘료를 반영한 모습인지도 모른다. 여자들의 견해는 어떨지 모르지만 남자인 내가 보기에 파울로 코엘료는 여자를 무척 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나는 이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불만이다.


 이 작품은 극적이다. 무척 잘 짜여져 있고, 한 여성이 자신의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던 상황을 잘 이겨내고 많은 유혹을 견뎌내며 지금으로 봤을 때는 더 없이 완벽하고 완전한 사랑에 도달한다. 성관계에 대한 묘사나 적나라한 표현도 많이 등장하지만 그것이 작품을 외설로 여기게 만들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의 '과정'으로 작동하며, 그 과정을 거쳐야만 다음 단계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 역시 불만이다. '그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다음 단계에 이를 수 있다'는 견해가 몹시도 거슬린다.


 결론부터 말하면 파울로 코엘료는 완전히 남성중심적인 성향을 띄기에 거북하다. <11분>은 마리아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마리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며, 남성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여성상'을 그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이야기가 끝나기 전까지만이다. 그토록 투쟁적이고 독립적이던 마리아는 마지막 순간에 한 남자에게 이끌리고 감화되어 그의 곁에 머물기를 원하게 된다. 페미니즘을 외치던 연사가 집에서는 현모양처로 머무는 아내를 바라는 거나 다름 없는 전개다. 

 마리아가 브라질을 떠나 스위스로 갔을 때 스물두 살이었다. 그런데 단 1년만에 한 사람이 평생이 걸려도 할 수 없을만큼의 경험을 하고, 돈을 벌고 사랑을 한다. 마리아의 깨달음은 신을 엿볼 수 있을만한 경지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깨달음조차 마리아가 사랑하게 된 남자는 이미 넘어서 있었다. 


 코엘료가 거북한 이유가 남성중심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이야기는 앞서도 적었던 것처럼 '극적'이다. 마리아에게는 선택지가 주어지지만 사실 선택지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그것이 필연'이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겪는 일들은 '필요한' 과정이고, '운명'이기도 하다. 종종 그 메시지가 너무 강렬해서 나조차 "정말 그렇게 믿으면 이루어질지도 몰라"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버린다. 

 확실히 파울로 코엘료는 능력이 출중하며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마약처럼 혹은 현혹하기 위한 종교처럼 맹목적인 순종으로 이끌릴 수도 있을만큼 말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이야기 속에서 마리아의 입을 빌려 "이 작품을 쓰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자아도취가 그의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을 거라는 건 분명하다. 이토록 몰입해서 작품을 쓸 수 있다는 게 부러울 정도다. 하지만 그가 서술하는 여성의 이야기는 뭔가 사춘기 소년의 상상 혹은 망상 속에서 더 자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자기 중심적 시선'으로 가득하다. 이 자기 중심성에 신의 의지라는 절대적인 힘이 더해지면서 이야기는 환상적으로 변한다. '기가 막히다'는 환상이 아니라 '믿기 어렵다'는 쪽의 환상으로 말이다.


 아무도 적지 않았던 것, 쉬쉬하고 감추고 숨기기 바빴던 이야기를 적어간 파울로 코엘료의 노력과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 그리고 잔잔하고 격렬한 감동은 그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다음 이야기도 읽게 할 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가 너무 멀리 가지는 말았으면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은 본래 외로운 법이다. 그렇기에 더 멀리, 더 완전한 경지에 닿기를 꿈꾸게 된다. 하지만 그 경지가 정도를 벗어나기 시작하면 작가로서 독자의 공감을 잃어버리게 되고 만다. 그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격렬함이나 긴박한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시선을 붙드는 힘도 있다. 그러니 아직은, 한동안은 이 속세에서 부족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이야기를 더 들려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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