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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친구와 현의 노래에 대해 이야기하다 "우륵을 주인공으로 했다는 게 무리수"라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적는다.
이 이야기는 우륵을 중심으로 흐른다. 하지만 역시 우륵이 주인공은 아닐거다.
진짜 주인공은 소리이고, 악기일 거다.
쇠의 소리, 금의 소리, 사람과 고을, 나라의 소리.
그리고 그 소리들을 내는 제가끔의 악기들.
중요한 건 균형이었을 거다.
그래서 우륵이 앞에 세워진 것이고, 우륵이 현이 되어 제가끔의 소리를 받아 들려주고 있던 걸 거다.
간과한 것이 있다.
우륵이 금을 만드는 과정, 가야금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다.
「그 소리는 나무의 소리이기는 하지만, 빈 것을 지나온 소리였다. 빈 통이 단단한 나무의 소리를 펴서 둥글게 돌려내고 있었다._198쪽」
「― 니문아, 봐라, 비어야 울리는구나. 소리란 본래 빈 것이다. 비어 있지만 없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있는 것이다._199쪽」
「― 여러 고을의 금들이 석 줄이나 넉 줄인데, 이제 새 금에 몇 줄을 걸어야 하리까?
― 열두 줄을 걸자. 열두 줄이면 이 세상의 넓이와 모든 시간이 담기기에 족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두 손은 능히 열두 줄을 넘나들며 울려낼 수 있다. 더 많아도, 더 적어도 안 될 것이다. 열두 줄이다._199쪽」
「― 니문아, 다로의 금이 생각 나느냐?
― 줄을 버팀목으로 고여, 그 오른편이 튕겨내는 소리를 왼편이 데리고 놀 수가 있었습니다.
― 그랬다. 새 금에 줄마다 버팀목을 받쳐야 한다._199쪽」
「금은 길이가 다섯 자 다섯 치에 폭이 한 자 세 치로, 사람의 키와 비슷하거나 조금 작았다. 굵고 가는 줄들이 가지런히 들어섰고 버팀목들이 들어선 모양이 날아가는 기러기 떼의 대열과 같았다.
― 니문아, 이것은 곧 사람의 몸이로구나. 끌어안고 뜯어보아라._200쪽」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비어야 한다. 하지만 비어 있음은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실히 있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비움이다.
세상의 넓이와 모든 시간을 담을 뿐 아니라 사람의 두 손이 능히 넘나들 수 있는 현의 수가 열두 줄이다. 그보다 많으면 능히 넘나들 수 없겠고, 그보다 적어서는 세상의 넓이와 모든 시간을 담아내지 못할 거다.
이것은 균형이 맞는 거다.
줄만 걸어서는 오른편이 튕겨내는 소리를 왼편이 데리고 놀 수 없기에 줄에 버팀목을 고였다.
이것은 이치다.
그 금의 길이와 폭이 사람의 몸과 비슷하다.
이것은 사람이다.
결국 우륵은 하나의 금을 만드는데 사람의 모든 능력과 가능성을 담았다. 제가끔에 맞는 모든 소리를 담고 있기에 누구나 자기의 소리를 낼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기 소리를 내기 위함이라 해도 비워야만 한다는 거다.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이치에 따라 균형을 잃지 말아야만 한다.
악기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누구의 소리를 내는가?
악기의 현을 울리는 사람의 소리다.
현의 노래는 가야의 이야기도, 신라의 이야기도, 신라 장군 이사부나, 대장장이 야로, 우륵의 이야기도 아니다.
이 작품을 읽으며 저마다의 소리로 울려댈 독자와 그 독자의 가능성이 만들어갈 세상의 이야기다.
제가끔으로 읽어 울려야 좋은 이야기로구나.
혹 작가 님이 들으신다면 묻고 싶은데, 왜 이렇게 어렵게 그려내셔야만 했습니까.
우문이지요. 그래야만 하셨을텐데.